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엄마에 관한 기억

알엠님의 [상담] 에 관련된 글.

엄마가 죽을 뻔하다 살아돌아왔다.

며칠간 엄마도 나도 실감나지 않다가 갑자기 어제 아침 엄마가 누워있는 나를 꼭 안더니 그런다.

'이렇게 살아와서 너를 다시 안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사고가 난 순간에도 이제 아이들이 다 커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하다.

엄마는 늘 항상 있어야 할 것 같은 사람인데... 그러고보면 나는 참 엄마를 많이 의지하고 산다. 이 나이가 되고도 자꾸 엄마한테 안아달라 그러고 ㅋㅋ

 

 

 

 



어릴 때 부터 엄마는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법한 직장에 이야기나

당시 엄마가 공부하던 문서들이나 여성 평등이나 아빠와의 문제나 뭐 그런것 까지 다.

 

(그런 일화도 있다. 아빠가 대공장 다닐 때 얘긴데, 그 땐 주로 울집서 모임을 하고 그래서 아저씨들이 가득 오면 양동이로 감자탕을 끓여먹곤 했었다. 내가 한 4살 때쯤인데 갑자기 일을 막 도와주더란다. 그래서 엄마가 참 신기하다 얘가 왜 이러나 했더니, 내가 숟갈 몇 번 나르더니, 가만히 앉아있는 아저씨한테 가서 '이렇게 쪼꼬만 여자도 일하는데 아저씬 왜 가만히 있어요!' 이랬다는 ㅋㅋㅋ 나는 매우 치밀한 아이였던 가보다...)

 

여하튼 나는 엄마의 얘기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고,

아주 어려운 문제들을 나에게 선택하게 하면 엄마가 너무 미웠다.

다른 엄마들은 다 길을 정해 주고 이것도 하라고 하고 그랬는데,

엄마는 엄마 일을 나한테 물어보고 그러니까 나 사는 것도 힘든데 엄마꺼까지 나한테 미루는 것 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엄마는 너무 바빴다. 아빠야 아주 어려서부터 같이 못 지냈으니까 으레 그런가보다 해도 엄마도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니까 속이 상하기도 했고,

그래서 엄마랑 자주 싸웠다.

쓸데없는 고집도 많이 피우고, 엄마가 싫어할 만한 짓을 골라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할머니네 버스 타고 가야 하는데, 시간 다 됐는데 일부러 안 나가고 안 간다고 고집부리거나...그런 거.

그리고 일기장에 엄마 밉다고 막 써 놓고, 심지어 티눈액으로 집에 가구에다가 엄마 미워 이렇게 막 새겨 놓기도 했다. ㅋㅋ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지만.

 

 

여하튼, 정신없는 집 때문에 나는 주민등록을 바꿔서 일찍 학교에 보내졌고,

내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도 집에서 좀 먼 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 때 우리집이 산본 시장에 있는 작은 단칸방이었는데,

나와 동생은 만날 문을 열어놓고 잠이 들었다.

위험하니까 문 닫으라 그래도 끝까지 안 닫았다고 한다. 쯧쯧.

 

엄마랑 얘기하고 싶은데 엄마가 없으니까 난 편지를 써 놓곤 잠들곤 했다.

그럼 엄마가 답장 써주고, 그럼 내가 동생한테 읽어주고 그랬었다.

몇 번 그러니까 엄마가 어느날인가 편지를 테이프에다 녹음을 하고 나갔다.

그럼 학교 가기전에 일어나서 그거 듣고, 학교 갔다와서 자기 전에 동생이랑 답장 쓰고 그러고 잠이 들었다.

정확하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얼마나 그 일을 지속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얼굴 못 보는 엄마에게 카셋트에다가 대고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녹음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틀리면 지우고 다시 녹음하고 그랬는데...ㅋㅋ

그 기억은 굉장히 강렬해서, 나중에 그걸로 동화도 쓴 적이 있었다. ㅎㅎㅎ

(동화를 큰 맘 먹고 올리려고 했는데 파일첨부가 안된다. 이런~)

 

사실 크면서 엄마, 아빠를 원망한 적이 많았다.

어린시절이 보다 풍족했더라면, 좀더 평범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그랬었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애썼던 사람들인 거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를 지나쳐 살다보니,

엄마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알게 되어서 인가.

 

엄마에 대한 기억들이 참 많은데 종종 써 놓아야겠다.

하지만 너무 칭찬해 놓으면 그 여인이 또 너무 흡족하게 생각할까봐 불안하다. ㅋㅋ

다음 번엔 욕을 써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