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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쏭달쏭

며칠 바짝 긴장하고 있던 게 한번에 풀린 듯한 느낌.

기차를 타고 대추리에서 올라오면서 30분 정도 잠깐 졸았는데

일어나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음도 몸도 노곤하니, 오히려 편안하다.

 

다큐강좌의 수료작도 만들어야 하고,

아기 엄마가 된 슈아언니의 작업도 돌봐야 하고

황보출 할머니의 다큐멘터리도 완성해야 하고

황새울 방송국 들소리의 한 꼭지도 만들어야 한다.

이주여성 교육도 해야 하고

방도 치워야 하고

그리고 몇 가지 더 있었던 고민들.

 



며칠 간 그 모든 게 스트레스였다.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만 들었다.

이거 하는 동안 다른 거 생각하고, 다른 거 하는 동안 또 다른 거 생각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무엇 하나 싫어서 하는 일이 없는데, (앗 방 치우는 것은 아니로군;;)

다 내가 좋아 하는 일이고, 하고 싶어서, 좋아서 하는 일인데, 이상하게 힘이 들었다.

 

수료작은 무엇을 찍을 지 고민했다.

FTA와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많은 자료를 읽고 영상물들을 보았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고, 막아야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어쩐지 나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진도가 안 나갔다.

매일 같은 고민만 반복됐다.

 

대추리 들어가기까지, 평택역에서부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루종일 굶다 저녁 때 평택에 도착했는데 이것들이 무조건 못 들여보내준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왜 느그들 따위 허락맞고 들어가야 되나 싶은데

그 땐 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밥 좀 먹게 들어가게 해 달라고 했다.

느그들은 밥 먹었지, 나쁜 놈들 나도 밥 좀 먹자.

그런 걸로 싸우는 게 참 어이가 없는데도 거기 그러고 차에 탄 채로,

어두워질 때까지 수천마리의 날파리 떼와 함께 싸웠다.

'어떤 정정당당한 이유'를 대도 안된다던 그 지휘관 놈의 면상을 날려주고 싶었다.

화장실 가겠다는 여성들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가

함께 화를 내니 경찰 동행하고 한 명씩 다녀오란다.

허허벌판 논길에서 그렇게 어이없는 상황을 겪으며 세 시간을 있었다.

 

결국 돌고 돌아 마을분 차를 얻어타고 들어가면서 바보 소릴 들었다.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다. 더 화냈어야 했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못 냈다.

배고프다고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소리쳐도 들어올 수 없는게 대추리, 도두리였다.

 

일요일 아침의 대추리는 평화로웠다.

전경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웃음을 애써 참고 있는 전경들의 얼굴을 봤을 때 나도 피식 웃음이 났다.

아침부터 종일 여전히 익숙치 않은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니려니

몸은 이미 맛이 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용케 돌아다녔다.

다리가 아파 그늘에 앉아계신 할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전경들이 다 밟아놓은 상추밭을 보다가도

보리밭 따라 춤추며 행진하는 지킴이들을 보다가도

자꾸만 마음이 춤을 추었다.

오히려 더, 나와 먼 일인데도, 내 마음은 동해서 덩실덩실 움직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

잠깐 잠든 사이 나는 짧지만 긴 꿈을 꾸었다.

마음도 몸도 춤을 추었다.

진실한 것처럼 보이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정말 움직이는 내 마음을 만났어야 하는데.

여전히 진도는 많이 못 나갔지만 마음이 평온해졌다.

 

평화는 참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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