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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29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유감
    손을 내밀어 우리
  2. 2008/12/26
    김이태 조합원 징계하던 날(4)
    손을 내밀어 우리
  3. 2008/10/29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손을 내밀어 우리
  4. 2008/10/23
    인문사회계 출연연에 대한 졸속 구조조정...(1)
    손을 내밀어 우리
  5. 2008/09/26
    과기계 출연연에 대한 이원화된 정책
    손을 내밀어 우리
  6. 2008/09/08
    [기고] 128일 투쟁 보고(3)
    손을 내밀어 우리
  7. 2008/09/03
    내 단골집(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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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9/01
    9월을 맞으며
    손을 내밀어 우리
  9. 2008/08/07
    기록으로 보는 출근투쟁 69일(7)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8/08/07
    [500자 단상] 투쟁 106일째
    손을 내밀어 우리

교육과학기술부 보도자료 유감

더 사이언스에 어제 날짜로 실린 글...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3일 배포한 ‘나라 경제 살리기에 과학기술계가 적극 동참키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사진)를 우연한 경로를 통해 사전에 입수하게 됐다. 박스로 테두리를 해서 요약한 내용을 보니 2000여명 인턴연구원 채용을 추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건비 동결, 경상비 10%와 업무추진비 20% 절감 등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를 한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1분기에 2009년 예산의 30% 이상을 집행하고, 상반기에 3분의 2 이상을 조기 집행한다고 했다.

정부 지시 순순히 응한 과학기술계

놀라운 것은 이어지는 본문 첫 번째 단락이다. 교과부 산하 과학기술계 27개 기관장들이 12월 23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를 열어 ‘자율적으로’ 강도 높은 경영효율화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의했다고 밝히고 있다.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열리는 시간은 23일 오후 2시였고 내가 보도자료를 받아든 시간은 23일 3시 이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아직 열리고 있던 시간에, 당사자들이 회의결과를 발표한 것이 아니라 교과부가 먼저 회의결과를 버젓이 발표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이 곧바로 보도자료 내용을 그대로 게재한다. 매일경제는 23일 오후 3시 7분에 인터넷판에 기사를 올렸고, 바로 이어 연합뉴스가 23일 오후 3시 57분에 기사를 게재했다. 그나마 맨 먼저 기사를 실은 매일경제는 어느 연구원의 말을 빌어 “현장에서 직접 뛰는 연구원들과의 합의 없이 기관장들이 효율화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과학기술분야는 일반 제조업 분야와는 다른 데도 예산을 조기 집행한다는 것은 정부가 과학기술분야도 건설 분야처럼 ‘속도전’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문제점까지 지적했다.

과학기술계가 정부의 지시에 순순히 따라간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제는 교과부가 제시한 임기응변식 처방이 ‘나라경제 살리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의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과학기술계는 정부의 지침이 주어지면 이렇다 할 반발 없이 고통을 분담해 왔다. 정년단축, 연봉제, 계약제 등의 일방적 도입과 차등성과급제 확대, 퇴직금 삭감 등 일련의 강압적 조치를 할 때마다 정부가 내세운 명분은 고통 분담이요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과학기술자들의 사기 저하, 그리고 극심한 이공계 기피로 나타났을 뿐 정부가 내세웠던 긍정적인 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1년짜리 비정규직 양산 도리어 부작용

그런데 정부는 또 다시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 아래 즉흥적이고 일회적인 방침을 밀어붙이고 있다. 교과부의 이번 발표는 구태의연한 전시행정으로서 국민에 대한 기만이요, 과학기술계에 대한 모독이다. 알아보니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가 소집된 것도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합의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교과부가 지난 19일에 산하 기관의 기획부장단 회의를 소집하여 이 같은 경영효율화 방침을 하달했고, 23일의 과학기술기관장협의회 또한 사실상 교과부가 소집했다. ‘나라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 앞에 기관장들은 언제나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았던 것이다.

과학기술계만 경제위기에서 비켜날 수는 없지만, 1년짜리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은 도리어 부작용을 크게 한다는 사실을 교과부는 알아야 한다. 더구나 연구현장의 요구가 아닌 정부의 지시에 따라 급조된 2000여명의 인턴연구원들이 당장 투입될 업무도 불확실하며,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나 계획도 미흡하다.

현재 과학기술계 출연연구기관은 비정규직이 1만 명에 육박하고 있고 그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법으로 인해 1년 이내에 해고될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기는 하는지, 새로 투입되는 인턴연구원들이 혹여 업무에 적응하게 되더라도 1년 후에는 다시 실업자가 될 텐데 무슨 대책을 갖고 있는지, 교과부에 묻고 싶다.

교과부가 진정 과학기술계가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하기를 바란다면 시늉만 하지 말고 연구현장과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하고 차근차근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이번 보도자료 사건과 같이 한 건 올리기에만 급급하다 보면 경제위기 극복은 물 건너 가고 한국 과학기술의 위기만 더욱 심화될 것이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이성우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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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 조합원 징계하던 날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김이태 조합원 징계 추진에 대한 성명서] 에 관련된 글.

 

23일,

김이태 조합원에 대한 징계위를 저지하러 건기연에 갔다가

어찌하여 징계위 참관하는 노조측 3명에 포함되고 말았다.

그 때의 메모를 더듬으며 끄적거려 봤다.

 

미디어충청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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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태는 복권되어도 대운하는 복원 못할 것이니 그 책임은 누가 지랴-
 
김이태 박사.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 첨단환경연구실 책임연구원. 20년 이상 상수, 하수, 생태, 수질관리, 환경영향평가 등 환경에 관한 전문가로서 연구에만 몰두하던 사람. 지난 5월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대운하 사업’이라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려 이명박 정부의 꼼수를 폭로한 사람. 이제 ‘김이태’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용기있는 과학기술자를 일컫는 보통명사이다. 그 김이태가 지난 23일 건기연에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정직’이라면 파면 다음 가는 중징계로서 직원의 신분은 유지하나 직무에 종사하지 못하며 일체의 보수를 지급받지 못한다.
 
23일 밤 9시경, 건기연 지하 회의실 앞. 김이태에 대한 징계안건을 심의하려는 건기연 인사위원들이 전국공공연구노조 간부들과 건기연지부 조합원들에게 막혀 회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치하고 있었다. 인사위원장은 마치 국회에서 배운 것처럼 선 채로 인사위원회 개최 선언과 정회 선언을 되풀이했다. 이 때 김이태가 그 현장에 나타났다. “제가 인사위원회에 응하겠습니다. 벌 받아야 할 것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게 당연하고, 인사위원회는 원칙이니까 물리적으로 시간 끌어 봤자 전부 다 힘들고 그러니까 좀 도와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고맙지만 물리적으로 막지는 막아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노동조합 간부들에게 요청했다.
 
오후 4시부터 줄곧 회의장을 막고 있던 노동조합 간부들이 징계 강행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지만, 김이태는 조곤조곤 말을 이어갔다. “감사드립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을 살펴보십시오. 같은 사람이 일을 했는데 참여정부 때는 안된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같은 연구진임에도 불구하고 대운하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거 물리적으로 무조건 막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그 정부 상황에 맞게 사는 분들한테는 내 의견을 밝히고 벌 받을 게 있으면 벌을 받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김이태는 양심을 처벌하려는 저들의 재판정에 스스로 나섰다. 승진을 위한 인사위원회를 제외하고는 부서장들이 20-30%쯤 참여하던 건기연의 관례를 깨고 김이태 징계를 위한 인사위원회는 12명 전원이 부서장들이었으니 결과는 뻔했는데도 말이다. 징계 사유도 구차했다. 정부가 대운하와 관련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고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비밀리에 폐쇄적으로 추진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퍼뜨림으로써 정부의 신뢰를 저하시켰으니 직원으로서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하나요, 대운하의 실현가능성을 미리 주관 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예단하여 연구원 개인의 의견을 일반인에게 알린 행위가 직무상 중요사항을 누설해서는 안되는 비밀엄수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 두 번째 사유이다. 특히 두 번째와 관련해서는 지난 5월에 건기연측에서 공개적으로 보안규정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고, 이번 특별감사에서도 연구내용에 대한 보안사항을 유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비밀엄수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
 
인사위원들의 추궁은 더 가관이었다. “우리가 하는 연구 중에는 외부로 노출되면 엄청난 파장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 보고서에 따라서는 대외비로 하고, 회의 끝나면 소각하기도 하고, 내용을 빼버리는 것도 많다. 대부분 국익과 관련된 일이라서 우리 입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 연구자의 정서이고 기본적인 자세라고 본다. 그러니까 김 박사는 연구원으로서 갖춰야 할 품위를 손상시킨 측면이 있다.” 명색이 부서장급 연구원이라는 인사위원의 발언이 이러하니, 스스로 연구자로서 기본적인 자질이 없다고 실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심지어 “연구를 의뢰하는 사람의 요구에 맞추어서 우리의 지식을 총동원하는 것이 연구원의 역할이며, 그것이 어려우면 이러저러한 가정에서는 가능하다고, 전제를 달아서 맞추어주면 되는 것”이라고까지 하니 아연실색할 수밖에.
 
반면 김이태의 답변은 시종일관 당당하고 떳떳했다. 우리 연구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년의 시간이 주어졌다면 문제점까지 지적하면서 보고서를 쓸 수 있었겠지만, 정부는 불과 1달 만에 모든 답을 제출하라고 했다. 답부터 주고 풀이과정을 쓰라고 하는 정부의 요구에 응했다면 모든 책임은 건기연이 지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건기연은 4년 반만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고 계속 국민과 함께하는 긍지있는 연구기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함으로써 정부 관계자가 TV에 나와서 앞으로는 투명하게 하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김이태의 마지막 발언은 이렇게 끝난다. “저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인사위원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지만 아마 저처럼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더 이상 할 말은 없습니다.”
 
지난 5월에 모두 8억 4천억원에 이르는 연구과제를 맡았던 김이태는 7천만원짜리 대운하 관련 과제를 ‘품위있게’ 수행하지 못한 죄로 앞으로 석달 동안 아무런 연구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김이태에 대한 징계를 끝내자마자 정부는 29일부터 4대강 정비사업을 동시에 착공한다. 역사는 김이태를 복권하겠지만 과학기술자의 양심과 국민의 저항을 짓밟고 밀어붙인 대운하사업은 결코 복원이 쉽지 않을 터이니, 지금 우리가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2008.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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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10월초에 라는 과학기술 관련 인터넷 신문이 창간한다고

우리 노동조합으로 정기적인 칼럼 투고 요청이 들어왔고,

몇몇 동지들이 번갈아 쓰기로 했다.

 

그 첫번째 글을 내가 쓰기로 하고 9월 12일엔가 보냈는데,

신문은 이번 주에 와서야 창간을 했는지

엊그제 실렸다고 전갈이 왔더라.

 

제목은 '출연연 몸은 출연연이 잘 안다'로 바뀌었는데, 좀 생뚱맞다.

원래 붙은 제목부터 좀 거시기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원문은 요기에 있고, 신문에 실린 건 첨부했다.

 

 

정부가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 PBS(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를 도입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초기에 ‘총연구원가 프로젝트베이스시스템’으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이, PBS는 인건비를 포함하여 연구에 소요되는 실제 비용을 프로젝트에 모두 반영하는 제도이다. 정부는 PBS를 통해 연구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연구책임자에게 권한과 책임을 모두 주겠다, 연구비만 확보하면 비정규직도 정규직과 동등한 처우가 가능하다, 연구만 잘하면 누구나 연구책임자가 될 수 있고 고액연봉자가 될 수 있다, 이런 얘기들이 당시 정부가 내세웠던 PBS 강행의 논리였다.

연구현장의 여론은 전연 딴판이었다. PBS는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여 출연연의 정체성을 잃게 할 것이며, 정부가 내세운 PBS의 목표는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1996년 7월에는 출연연 연구원 4천여명이 과천청사에 모여 PBS 폐지를 요구했지만, 정부는  PBS를 강행했다. 그리고 예고된 것처럼, 지난 12년 동안 PBS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연구원들은 자신들을 ‘보따리장사’, ‘앵벌이’라고 자조했다. 인건비를 벌기 위해서 프로젝트 수주경쟁에 매달렸다. 때로는 동료들과 낯 뜨거운 경쟁도 불사했고, 자신의 전공을 뛰어넘기도 했다. 인건비도 충분히 확보되기 않아 비정규직은 도리어 더 늘어났다.

출연연에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했다. 40대 박사들의 돌연사가 이어졌고, 연구비 압박에 자살하는 연구원도 생겼다. 출연연의 고유기능은 실종되었다. 그래서 출연연 개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PBS이다. PBS는 국민에게는 이름도 생소하지만 연구원들에는 길고 처절한 악몽이다. 정권과 장관이 바뀔 때마다 PBS는 논란거리가 되었으며, PBS 개선은 대선이나 총선의 단골 공약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인건비를 70%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한 것은 출연연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어디 PBS 뿐이랴. 1997년 이후에는 IMF 환란 극복을 빌미로 출연연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공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받고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연봉제, 계약제, 정년단축, 퇴직금누진제 폐지 등으로 인해 연구원들은 철퇴를 맞았다. 많은 연구원들은 살 길을 찾아 대학으로 떠나고 심지어 외국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내온 출연연의 고난에 찬 이력서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6개월이 지났다. 이제 정부는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정체성 확립 노력이 부족했다고 출연연을 나무란다. 연구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연구생산성이 저하되고, 국가경쟁력이 뒤떨어지게 된 것이 모두 출연연의 혁신과 개혁이 부족한 탓이라고 비판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푸는 우선적인 일은 출연연의 정체성 확보라고 충고한다. 대학과 민간이 하기 어려운 대형 융·복합형 기초연구와 국가사회적인 문제(National Agenda)를 해결하는 연구를 중심으로 출연연의 정체성을 확보하라고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일리는 있지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아니다. 출연연은 그동안 정부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고 모든 역량을 다 쏟아 과학기술입국에 매진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출연연에 떠넘길 때가 아니다.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와 같은 획일적인 정책으로 출연연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환경 구축에 실패한 정부가 먼저 지난 실패를 반추하고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PBS의 실패는 좋은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PBS를 도입할 때 연구현장의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그 후에도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불완전한 제도의 도입으로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출연연이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섣부른 개혁이나 ‘선진화’가 아니다. 시간이 걸려도 목표가 분명하고 실천계획이 충실하며 출연연 현실을 잘 반영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으고 연구현장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정책 당국과 연구현장이 따로 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럼 출연연은 어떻게 해야 하나? 정부 정책을 수동적으로 따라갈 것이 아니라 검증하고 비판하고 충분히 납득한 다음에 실행에 옮겨야 한다.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했다. 정부와 국민은, 출연연 스스로 환골탈태하여 재도약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2008.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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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계 출연연에 대한 졸속 구조조정...

지난 주에 썼던 한장짜리 정세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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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과학기술계 26개 출연(연)에 대해 중장기적 구조개편 방침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속 23개 출연(연)에 대해서는 연내에 구조개편을 강행하겠다는 계획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국무총리실 조원동 국정운영실장은 10월 13일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새 정부 들어 단행된 정부조직 개편에 맞게끔 출연(연)의 기능 통합 등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정부 입법발의로 할 경우에는 부처간 조율 등의 과정에서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의원 입법발의를 통해 연내에 입법을 완료하고 구조개편을 마칠 계획’임을 분명히 했다. 인문사회계 출연(연)에 대해 정부는, △연구회 체제 10년을 거치면서 당초 출범 취지에 비해서 출연(연)의 독립성이 지나치게 커졌고, △연구회를 통한 협동연구는 미흡하며, △운영의 효율성도 개선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이 10월 2일 공청회에서 발표한 ‘(인문사회계) 정부출연연구기관 운영 개편방안 연구’ 용역보고서에 대체로 반영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인문사회계 출연(연)을 각 부처로 환원하자는 안과 23개 기관을 하나로 통합해서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두자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안들이 모두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출연(연)의 발전과정을 거꾸로 되돌리려고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출연(연)을 개별 부처로 환원하자는 안은 당초 연구회 출범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출연(연)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합리화하는 ‘지식시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함으로써 출범한 것이 연구회 체제였는데, 다시금 각 부처의 간섭과 통제체제로 회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지적한다. 23개 출연(연)을 하나로 통합하여 대통령실 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것도 출연(연)의 공공성을 해치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엄연히 기관장 임명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들어서 23개 출연(연) 중에서 13개 기관장이 임기와 무관하게 교체되었는데 대통령실이나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두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인문사회계 출연(연)이 정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도구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공공연구기관으로서 위상과 역할을 분명히 할 것인지, 향후 2개월이 고비가 될 것이다.  (2008. 10. 16)

*인문사회계 23개 출연(연) :

산업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통일연구원, 한국교통연구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법제연구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국토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조세연구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한국교육개발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한국행정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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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기계 출연연에 대한 이원화된 정책

공공노조 부설 사회공공연구소 정세리포트 준비호에 보낸 것.

공부도 제대로 안하면서 이것저것 쓰는 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각주가 표시되지 않아서 괄호안으로 처리하고 하다보니까 더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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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위원장: 대통령)가 출범하면서 과학기술계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의 지배구조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정부 각 부처 산하에 산재하고 있던 20여개 과학기술계 출연연을 기초기술연구회, 산업기술연구회, 공공기술연구회 등 3개 연구회 소속으로 묶고, 이들에 대한 관리감독은 국무총리(국무조정실)가 담당하게 했다. 출연연의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정립하고, 출연연간 유사기능을 조정하여 연구개발투자의 효율성을 제고하며, 출연연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에서 탈피하고 출연연의 자율적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한다는 취지였다. 2004년에 과학기술혁신본부가 출범하여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과학기술계 출연연은 과학기술부로 이관되었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과학기술혁신본부-(기초, 산업, 공공)연구회-출연연으로 이어지는 일원화된 행정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남은 과제는 당초 연구회 체제를 도입한 취지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공공기술연구회를 폐지하고 과학기술계 26개 출연연을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로 재배치했다. 08년 2월 정부조직을 개편하여 과학기술혁신본부를 폐지하였고, 과학기술부를 통합한 교육과학기술부 산하에 기초기술연구회(소관연구기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국가핵융합연구소, 국가수리과학연구소,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소 등 13개 출연연), 정보통신부 일부를 통합한 지식경제부 산하에 산업기술연구회(소관연구기관: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가보안기술연구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재료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화학연구원, 안전성평가연구소 등 13개 출연연)를 두게 한 것이다. 과학기술혁신본부와 공공기술연구회 폐지에 대해서 국가과학기술정책의 최고의사결정기구라고 하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심의는 전혀 없었고, 과학기술계에 대한 최소한의 여론수렴이나 공론화 절차도 없었다. 99년에 출연연을 부처에서 독립시킨 취지는 원점으로 되돌아갔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보다 2개의 부처(교과부, 지경부)가 출연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올해 상반기부터 교과부와 지경부는 산하 출연연에 대한 기능재정립과 운영효율화 방안을 놓고 각개 약진해 왔다. 교과부(기초기술연구회)는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이라는 과학기술시민단체에, 지경부(산업기술연구회)는 <(주)날리지웍스>라는 컨설팅회사에 각각 연구용역을 주었고 최근 그 결과가 토론회, 공청회 등을 통해 연달아 발표되고 있다. 기초기술연구회는 출연연의 정체성을 ‘정부의 R&D 수요에 대응하는 공공연구기관’으로 설정했고, 산업기술연구회는 ‘산업 및 국가발전을 선도하는 세계적 연구기관’으로 출연연의 비전을 제시했다. Business friendly한 ‘정부의 R&D 수요’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민간 중심의 R&D 재원 배분의 컨트롤 타워’로 운영하겠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공공·공익적 연구개발의 축소를 의미하고, 미래산업·주력산업 경쟁력 제고, 기업성장 잠재력 제고,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촉진 등 지나치게 시장 중심으로 경도된 산업기술연구회 출연연의 기능정립 방향에 대해서는 관변의 전문가들조차 우려하는 목소리를 낼 정도이다.

 

연구회에 대한 졸속적인 통폐합이 지닌 문제는 연구용역의 결과로 제안되고 있는 ‘출연연에 대한 새로운 유형화’의 내용(표)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 출연연의 새로운 유형화 예시>

기초기술연구회(과실연)

산업기술연구회(날리지웍스)

유 형

내 용

유 형

내 용

글로벌 연구형

글로벌 과학기술 공동연구의 장

임무형

국가R&D수요를 감안한 목적지향적 연구사업

첨단산업 기초원천·공공복지형

산업계 수요 대응 기초원천 및 공공기술 공동연구

산업계 연계형

중견·중소기업 대상 산업계 기술지원

중소기업 특화형

기술혁신 중소기업 육성 등

창의 연구형

기관 자율로 기관의 미래 연구역량 축적을 위한 SEED형 연구

 

각기 다른 연구용역의 결과이니만큼 표현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소기업 특화형’은 ‘산업계 연계형’과 크게 다르지 않고, ‘첨단산업 기초원천·공공복지형’은 사실상 ‘임무형’과 겹치며, ‘글로벌 연구형’과 ‘창의 연구형’도 엇비슷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무슨 기준으로 26개의 출연연을 기초기술연구회와 산업기술연구회로 분류했는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정부가 우선 전체 출연연의 위상과 역할을 크게 설정하고, 26개 출연연의 연구영역을 면밀히 검토하여 유형별로 묶은 다음에, 2개든 3개든 연구회를 적절하게 구분하고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이미 늦었다. 출연연의 중복연구를 비판하는 정부가 도리어 중복사업을 벌이고, 인력, 예산,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연연 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부처가 출연연을 직접 관리·감독하고, 더구나 교과부와 지경부로 이원화되어서 발생하는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기초기술연구회는 3년 후에 출연연의 변화 방향을 자체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산업기술연구회는 3년 동안 한시적으로 거버넌스 기획 작업반 운영을 통해서 출연연에 대한 최적의 거버넌스를 설계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3년 동안 정부는 출연연 정책의 밑그림(거버넌스와 운영체제 등)을 치밀하게 그리고 그것을 검증하는데 주력하는 게 낫다. 만약 출연연의 기능재정립과 운영효율화만 무턱대고 앞세운다면 80년대 이후 지난 30여년간 정부의 출연연 정책이 치렀던 무수한 시행착오를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3년 만에 모두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2008.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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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128일 투쟁 보고

KIST지부의 청탁을 받아서 허겁지겁 쓴 글.

 

여럿이 모여 평가할 내용도 많은데 이런 거 막 써도 되나 몰러....암튼 기록삼아 올려 둠.

 

 



모든 직원이 하나 되어 강제통합을 막아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128일 투쟁에 관한 보고-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한국생명공학연구원지부(이하 “생명지부”)는 지난 8월 29일 투쟁속보(생공투 속보 82호)를 통해서 128일째 이어온 KAIST와의 강제통합 저지투쟁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강제통합의 진원지였던 청와대가 통합이 아닌 협력으로 방향을 선회했고,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KAIST의 협력방안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며, 생명연과 KAIST가 실제로 협력방안을 마련하여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강제통합은 더 이상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공공부문 선진화 방안 2차 발표까지 출연(연) 통합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그러한 결론에 힘을 보탰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가슴이 뿌듯하다. 4월 15일 KAIST 서남표 총장이 통합을 제안하여 논란을 일으킨 직후부터 5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투쟁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4월 22일에 박종구 교과부 제2차관은 생명연의 선임연구부장과 KAIST 부총장을 불러 두 기관의 협력방안을 5월까지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4월 25일에 당시 김도연 교과부 장관은 언론사와 인터뷰를 통해 “KAIST와 생명연이 통합을 준비하고 있다”고 통합을 독려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5월 7일에는 이주호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KAIST 서남표 총장이 잘하고 있다”면서 통합에 힘을 실었다. 마침내 5월 23일에 교과부는 박종구 차관 주재로 두 기관의 협력에 관한 세 번째 회의를 열고, “KAIST가 제출한 통합안을 뼈대로 하여 5월 27일까지 합의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5월 23일에 드러난 교과부의 계획은 6월에 통합논의를 공론화하고 7월까지 통합에 관한 MOU를 체결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기반으로 한 서남표 총장의 통합 의지, 서 총장의 MIT 동문이자 제자이기도 한 김창경 청와대 과학비서관의 적극적인 지원, 그리고 청와대의 의중에 충실하게 따른 교육과학기술부가 합작하여 통합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조차 “정부가 말을 꺼낸 이상 그냥 물러서겠느냐, 어떤 식으로든 통합을 추진하고야 말 것”이라고 했고, 일부 원로 과학자들은 말로는 강제통합에 반대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가 끝내 통합을 밀어붙일 것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생명지부는 서남표 총장의 제안 이후 정세를 주시하고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 곧바로 4월 24일에 비상총회를 갖고 통합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인위적 통폐합을 하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정부가 강제통합을 획책하는 것은 이율배반이고, 통합의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며, 5공 치하에서의 KIST-KAIS의 통합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강제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과학기술계 출연(연)의 강제통합은 이공계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라는 점 등을 지적하면서 강제통합 기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하였다. 5월에 접어들자, 생명연 뿐만 아니라 KAIST의 노동조합과 교수협의회, 그리고 대학원 총학생회가 모두 통합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조장희 가천의대 석좌교수, 홍창선 KAIST 전 총장, 신성철 KAIST 전 부총장, 백성기 Postech 총장 등 원로 과학자들도 우려한다는 견해를 속속 피력했다. 정치권에서도 통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기세를 높이기 시작했다. 생명지부의 투쟁은 한 달 남짓 만에 정부의 강제통합 방침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생명지부가 넉 달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투쟁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조합원뿐만 아니라 전 직원이 하나 되어 투쟁한 것이 가장 큰 힘이었다. 4월 25일부터 8월 6일까지 69일간 빠짐없이 진행했던 출근투쟁이 대표적이다. 비정규직, 책임급 직원, 보직자들을 포함하여 연인원 2,907명, 하루 평균 42.1명의 직원들이 참가했다. 5월 21일 교과부 앞 상경투쟁에는 조합원과 직원 200여명(당시 전체 조합원이 85명)이 참가했고, 5월 27-28일 KAIST 앞 출근집회에는 500여명이 함께 했으며, 6월 16일 연구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전 직원 결의대회에는 800여명의 직원들이 참가해서 통합반대를 함께 외쳤다. 출연(연) 역사에서 정부의 방침에 일개 연구소가 전면적으로 반대하여 이토록 강하게 저항한 것은 전례가 거의 없다.

투쟁은 일단 끝났다. 생명지부는 통합저지 투쟁을 통해 여러 가지 소중한 성과를 얻었다. 우선, 출연(연)에서 노동조합이 꼭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을 일거에 떨쳤다. 이번 투쟁을 통해 대다수 직원들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맞설 수 있는 조직은 노동조합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투쟁속보를 통해서 전 직원들과 만나고 교감한 것도 중요한 투쟁이었고 하나의 성과였다. 투쟁속보는 하루 평균 600부씩 발행했고, 점심시간마다 식당 앞에서 전 직원들에게 직접 배포하였다. 투쟁을 시작하던 당시 85명이던 조합원 숫자가 거의 2배로 늘었다. 생명지부의 위상과 역할은 투쟁 이전보다 훨씬 커졌다.

생명지부가 투쟁을 시작하면서 내걸었던 목표는 ‘생명연 해체 기도 저지’와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였다. 강제통합은 저지했으니 이제 ‘안정적 연구환경 쟁취’라는 목표가 남았다. 정부는 공공무분 선진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면서 출연(연)의 경영효율화를 강조하고 있다. 3년 동안 전체 출연(연) 인원을 10% 감원하고, 성과에 따라 급여 차등폭을 확대하는 것이 이른바 경영효율화의 주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생명연 뿐만 아니라 전체 출연(연)의 문제이다. 정부가 안정적 연구환경을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키려 한다면 생명지부는 공공연구노동조합의 깃발 아래 강제통합 저지 투쟁에 버금가는 투쟁으로 맞설 것이다.(2008.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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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단골집

대전 둔산 "동천홍"의 사천탕면
-노동자 역사 한내에서 쓰라고 하여 급히 쓴 것입니다. 맛에 대한 느낌과 판단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랍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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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도락가나 미식가는 아니다. 그렇지만 주변에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 있으면 꼭 한번은 들러본다. 길을 가다가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점이 있으면 혼자서라도 들어가서 먹어보곤 한다. 그러다가 내 입맛에 맞는 집이 있으면 동무들을 데리고 한 번 더 간다. 함께 갔던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하면 그 곳을 기억해 두었다가 모임이나 술자리가 있을 때 우르르 몰려간다. 몇 차례 드나들어 그 집의 맛에 익숙해지면 점차 뜸해지기는 하지만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의 입맛이 모두 바뀌지 않는 한 아예 발길을 끊은 적은 없다. 내가 사람을 사귀는 것도 그렇지만 음식점과 맺은 인연도 상당히 오래도록 간직하는 편이다.
 
정해놓고 자주 가는 집을 단골집이라고 한다면 내가 딱히 단골집이라고 할 만한 음식점은 없다. 점심때는 김치찌개, 청국장, 냉면, 순대국밥, 생선구이, 콩나물국밥, 설렁탕, 자장면, 칼국수 따위 즐비한 식단 중에서 먹고 싶은 것을 골라서 그 음식을 잘하는 곳으로 간다. 저녁이라면 주로 술안주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이다. 삼겹살이나 곱창 같은 구이, 탕수육과 양장피로 대표되는 중국요리, 쭈꾸미와 낙지, 아귀 등 해물류, 감자탕이나 황태전골 따위 토속음식, 가끔은 횟집, 이런 곳들이 소주맛이 나고 동지들과 어울리기에도 무난하다. 그 날 그 날 갈 곳을 정하는 것은 동행들의 몫이지만 나한테 넘어오기 일쑤이고, 그러다 보면 두루두루 번갈아 가기 십상이니 단골집을 만들 틈새도 그다지 없다.
 
애써 찾으면 단골집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음식점들이 있기는 하다.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다음 날 속 풀러 가고 싶을 때, 먼 곳에서 보고픈 사람들이 왔을 때, 동지들과 나눌 만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가고 싶어지는 곳이면 단골집의 반열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집들은 자주 가지는 않지만 한 십년쯤은 꾸준히 찾는 곳이다. 대전에서는 천복순대, 숯골원냉면, 아리랑보쌈, 왕비성, 동천홍, 미송, 임해조 볼테기, 역삼동 황태찜(대전) 등이 인연이 제법 깊고, 시골생막창, 오씨네 칼국수, 두레마을 등이 새로 드나들고 있는 곳들이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 중에서 오늘은 <동천홍>이라는 중국음식점을 소개하기로 한다.
 
<동천홍(東天紅)>은 대전 둔산에 있는 선사유적지의 골목 안쪽 돌담 건너에 있다. 동천홍이라, 동쪽 하늘의 붉은 색(빛)이면 떠오르는 아침해를 말하는 것이렸다. 왕비성, 취영루, 천안문, 중화반점, 포청천, 만다린처럼 흔히 중국음식점이 갖는 ‘성(城)’이며 ‘루(樓)’며 ‘반점(飯店)’ 따위 통속적인 이름을 벗어나서, 이름부터 새롭고 은근히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이름은 아니지만, 어느새 정이 들어서인지 동천홍이라고 부를 때의 어감이 참 좋다. 내가 이곳에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 어언 10년은 된 것 같은데, 언제 개업했냐고 물어보니 13년쯤 되었다고 한다.
 
동천홍은 널찍하고 조용하며, 몇 년전에 리모델링을 하고 난 후로는 분위기가 훨씬 정갈하고 깨끗해졌다. 가족과 함께 가도 좋고, 손님들과 어울려 가도 좋다. 나는 주로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하러 가는 편이다. 중국음식점에서 속을 푼다고 하면 십중팔구 자장면과 짬뽕을 떠올리겠지만, 미안하지만 틀렸다. 동천홍에서는 대표 메뉴가 자장면이나 짬뽕이 아니라 ‘사천탕면’이다. 주인한테 물어봤더니 한 때는 90%가 사천탕면을 주문했는데, 요즘은 새우볶음밥 주문도 꽤 늘어서 사천탕면은 7-80%쯤 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도 아니고 짬뽕도 아닌 것이 70% 이상을 차지한다면 놀랍지 않은가? 실제로 오늘 사무실의 동지들과 함께 가서도 세 사람 모두 사천탕면을 먹고 왔다.
 
남들이 사천탕면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그냥 ‘하얀 짬뽕’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마른 고추로 매운 맛을 내고 육수에다가 갖가지 해물과 채소류로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내는 것으로 보면 짬뽕과 흡사하다. 사천탕면은 짬뽕과 사뭇 다르다. 우선 국물이 뽀얗다. 얼핏 보아서는 맵지 않게 보인다. 그러나 국물을 한 입 떠 넣으면 입속에 매운 기운이 살며시 퍼지면서 오감을 자극한다.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매운 고추를 바짝 말려 볶아서 국물을 만들기 때문에 담백하고 깔끔하다. 매운 맛 다음에 곧바로 입안에는 구수하고 개운한 맛이 감돈다. 새우, 굴, 조개, 쇠고기, 양파, 배추 등이 육수와 넉넉한 굴소스와 어울려 내는 맛이다. 그래서 짬뽕이 갖지 못한 독특하고 감칠 맛을 갖고 있다. 특히 굴이 푸짐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이 국물만 떠 마셔도 오전 내내 술기운으로 요동치던 뱃속이 금세 평화를 찾는다.
 
동천홍의 점심시간은 몰려드는 손님들로 인해 언제나 바쁘다. 조금만 늦게 가면 줄을 서야 한다. 하긴, 사천탕면 한 그릇을 남김없이 비울 것을 생각하면, 줄을 서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음식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아니겠는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좋아하는 동지들과 어울려 사천탕면을 먹다가 보면 간밤의 취기는 온데 간데 없고 절로 소주 한 병을 청하고 싶어진다. 작년 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어느 동지가 와서 사천탕면과 요리 한 접시, 그리고 고량주를 주문했다. 처음 먹는 사천탕면이 너무 맛있다며, 동지는 오로지 국물만을 안주 삼아 고량주를 들이키는 것이었다. 이제 누구든지 대전에 와서 연락하면 내가 비싼 요리는 말고 사천탕면에 술로 푸짐하게 대접하리라. (200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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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을 맞으며

오늘 속보(생공투 속보 83호)에 쓴 글이다. 지면 관계로 내용도 중간을 잘라냈고 사진도 삭제했는데, 여기에서는 모두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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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9월을 맞으며

어느 덧 9월입니다. 새벽에 가는 비가 뿌리더니 하늘은 아침부터 찌뿌드드하여 초가을 날씨같지가 않습니다. 한가위가 불과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는데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여름은 참 길었습니다. 난데없는 강제통합 기도에 맞서, 불볕더위를 무릅쓰고 투쟁은 흔들림없이 계속되었지만, 정작 강제통합 논란을 야기한 사람들은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통합의 논리를 내세우면서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도, 출연(연) 일각에서는 “정부가 그냥 물러서겠느냐, 그러지 못할 것이다, 정부가 한번 말을 꺼낸 이상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없던 일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하고 정부 분위기를 지레 짐작하면서 목소리를 낮추었습니다. 말은 통합에 반대한다면서 행동으로는 정부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08년 6월말까지 합의안을 도출하고, 7월 초에는 공식 발표를 통해 공론화하며, 각계 각층의 토론 결과를 반영하여 7월 말에는 고용승계, 처우보장, 상호 의무와 권리관계 등을 MOU로 체결하겠다고 했던 교과부의 계획서가 그것을 뒷받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투쟁은 소처럼 우직하게 계속되었습니다. 5월 21일 상경집회가 끝나고 비로소 교과부 장관이 우리가 반대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5월 27일에는 전임 원장이 통합에 반대하는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6월에는 정치권에서도 통합반대의 목소리가 확인되었고, 6월 16일에는 전체 직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2,907명이 참가한 69일의 출근투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통합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이 없으니 철회할 이유도 없다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5월 7일에 정부는 통합방침을 얘기했었고, 5월 23일에는 교과부 차관이 직접 구체적인 통합계획을 생명연과 KAIST에게 지시했었다는 것을, 그리고 청와대 과학비서관은 틈만 나면 생명연을 비난하면서 통합의 논리를 강변했다는 사실을.

따라서 이제 우리는, 모두가 함께 하는 투쟁으로 강제통합을 저지했다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연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출연(연)에 대한 강압적 통폐합 기도들이 일단 원점으로 되돌아갔다고, 다른 출연(연)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길고 힘들었던 여름이었지만, 우리는 출연(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자랑스럽게 썼습니다. 앞으로 감당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만만치 않지만, 9월의 첫날을 맞아 실험실과 사무실에서라도 저 건너 가을이 오는 풍경을 잠시라도 맛보고 넘어가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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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보는 출근투쟁 69일

*출근투쟁 참석현황(4/25-8/6)

 

            -5/19-6/20: KAIST 정문 앞 1인 시위 포함.

-6월 13일 퇴근투쟁 30여명은 포함하지 않음.

차수

날짜

참석인원

차수

날짜

참석인원

1일차

4.25(금)

8

36일차

6.20(금)

32

2일차

4.28(월)

8

37일차

6.23(월)

37

3일차

4.29(화)

17

38일차

6.24(화)

32

4일차

4.30(수)

13

39일차

6.25(수)

41

5일차

5. 2(금)

11

40일차

6.26(목)

40

6일차

5. 6(화)

8

41일차

6.27(금)

23

7일차

5. 7(수)

12

42일차

6.30(월)

34

8일차

5. 8(목)

11

43일차

7. 1(화)

40

9일차

5. 9(금)

10

44일차

7. 2(수)

38

10일차

5.13(화)

10

45일차

7. 3(목)

27

11일차

5.14(수)

15

46일차

7. 4(금)

29

12일차

5.15(목)

16

47일차

7. 7(월)

30

13일차

5.16(금)

18

48일차

7. 8(화)

34

14일차

5.19(월)

17

49일차

7. 9(수)

37

15일차

5.20(화)

30

50일차

7.10(목)

32

16일차

5.22(목)

29

51일차

7.11(금)

22

17일차

5.23(금)

21

52일차

7.14(월)

23

18일차

5.26(월)

36

53일차

7.15(화)

34

19일차

5.27(화)

350

54일차

7.16(수)

27

20일차

5.28(수)

167

55일차

7.17(목)

27

21일차

5.29(목)

28

56일차

7.18(금)

18

22일차

5.30(금)

41

57일차

7.21(월)

21

23일차

6. 2(월)

64

58일차

7.22(화)

31

24일차

6. 3(화)

152

59일차

7.23(수)

26

25일차

6. 4(수)

72

60일차

7.24(목)

21

26일차

6. 5(목)

72

61일차

7.25(금)

23

27일차

6. 9(월)

132

62일차

7.28(월)

19

28일차

6.10(화)

163

63일차

7.29(화)

26

29일차

6.11(수)

132

64일차

7.30(수)

23

30일차

6.12(목)

121

65일차

7.31(목)

24

31일차

6.13(금)

29

66일차

8. 1(금)

28

32일차

6.16(월)

34

67일차

8. 4(월)

12

33일차

6.17(화)

32

68일차

8. 5(화)

28

34일차

6.18(수)

26

69일차

8. 6(수)

24

35일차

6.19(목)

42

연인원

2,907명

 

4월 25일부터 시작하여, 정부중앙청사 앞 상경집회가 있던 5월 21일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빠짐없이 진행되었던 출근투쟁을 오늘(8/7)부터 8월말까지는 유보하기로 하였습니다. 연구단지에서 유래가 없이 길고 끈질기게 진행된 이번 출근투쟁에 관한 기록을 중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1. 69일 동안 연인원 2,907명, 하루 평균 42.1명이 출근투쟁에 참가했습니다. 집회 형식으로 치러졌던 5월 27-28일과 연구소 비대위가 부서별로 요일을 정하여 집중했던 6월 9-12일을 제외하더라도 하루 평균 29.3명이 꾸준히 참가하였습니다.

2. 처음엔 노동조합 간부들과 연대 조직을 중심으로 10명 안팎으로 진행되던 것이 5월 19일부터는 조합원들이 대거 참가함으로써 연구소 차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특히, 5월 23일 교과부의 통합방침이 확인되고 5월 27일 연구소가 통합 거부입장을 명확히 하고 나서는 일반 직원들까지 대대적으로 참가하여 힘을 보탰습니다.

3. 연구소 비대위가 적극적으로 조직했던 6월 9일부터 12일까지는 연일 120-160명의 직원들이 출근투쟁에 나와서 통합 반대의 의지를 연구단지 전역으로 떨쳤습니다. 논란 끝에 1주일 만에 끝나서 아쉽긴 했습니다.

4. 6월 13일부터 8월 6일까지는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꾸준하게 투쟁을 전개한 기간입니다. 날씨는 점차 더워지고 휴가기간으로 접어든 이후에도 20명 이하로 떨어진 날은 단 3일(7/18, 7/28, 8/4)에 불과할 정도로 조합원들과 일부 직원들이 열심히 참가하였습니다.

5. 휴가기간이고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출근투쟁 참가인원이 급격히 감소하지 않은 상태, 즉 투쟁을 이어갈 힘을 보존하면서 휴식을 맞게 된 것은 앞으로도 필요한 경우에 투쟁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투쟁의 전망을 밝게 하는 것이고, 열성 조합원들과 간부들이 더없이 고마운 이유입니다.

6. 평가모임은 따로 갖고 종합 보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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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자 단상] 투쟁 106일째

“출근투쟁 잠시 휴식이라는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이 소식이 기쁨이 될 그 날까지 홧팅!” 8월말까지 출근투쟁을 유보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런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노동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통합 문제가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쟁을 쉬어간다는 것은 결코 흔쾌한 문제가 아닙니다. 회의에서 어렵사리 결정은 했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모두에게 기쁜 소식을 만들 때까지 저마다 일하는 자리에서 홧팅해야겠죠! 아자아자~.~” 하고 답을 보내면서도 마음이 활짝 개이지 않았던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오늘 출근길에 KAIST 앞을 지나면서 왠지 썰렁하고 야릇한 생각이 들더라는 조합원의 말에서 느끼는 마음도 그랬습니다.
암튼, 날마다 출근투쟁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아침에 1시간쯤의 여유가 생겼다고 하면, 바쁜 시간 쪼개서 애써 나온 동지들을 서운하게 만드는 말일까요?^^;; 출근투쟁을 하던 그 마음으로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틈틈이 우리 연구원의 장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좋은 결론이 있으면 즉시 노동조합으로 알려주시구요! (2008. 8. 7)
......출근투쟁이 잠정 유보되면서 투쟁속보에 출근투쟁 풍경란이  비게 생겼다.
궁리 끝에 [500자 단상]이라는 것을 연재하기로 했다. 뭘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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