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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도시화가 나주를 바꿔놓았다.

  • 등록일
    2005/06/26 15:32
  • 수정일
    2005/06/26 15:32

알엠님의 [해남여행] 에 관련된 글.

 

내가 알고 있는 나주는 인심이 많이 흐르는 곳이였다. 나주군 영산포를 일년에 몇번 오고가는 자리 그 자리엔 서울에 상경한 자식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할머니,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늘 기차를 기다리며, 이야기가  도란도란 흐르는 공간이였다.

 

영산포역 근처 국밥집에 들어가면 어디올라가냐고 물어보고, 서울에 가서 공부를 해서 집에 내려왔다 올라간다고 하면 아주머니, 찐개란과 갖은 반찬은 더 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이야기해주던 국밥집 아주머니, 매점에 가면 껌이라도 더 주던 아저씨가 있던 공간이다. 내 유년 그 시선은 늘 힘내고 공부하라고 격려를 받던 공간이다.

 

내가 사는 영암군은 호남선을 타기 위해 반드시 나주에 있는 영산포역이나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난 내가 자란 공간이 아니지만 영산포역 주변과 터미널 주변에 있는 밥집과 매점들에 대한 기역이 새롭다. 늘 격려해주시고, 혹시나 서울로 돈벌러 가지는 않는 것인지 물어보는 다정다감한 분들이 있던 공간이다. 우리 동네 형, 누나 그리고 친구들이 이 곳을 통해 서울로 올라와 고된 노동자로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였다.

 

영산포역은 나에게 작은 꿈을 주었다. 우리 동네형들 대부분이 집안사정 때문에 고등학교를 인문계로 진학하지 못하고, 수도공고나 철도공고에 입학을 하였다. 방학때면 교복을 입고 오는 형들의 모습이 좋아 어린 나에게 있어 꼭 수도공고나 철도공고에 입학해야지 하는 꿈을 주곤하였던 공간.... 이 당시 우리 집은 순전히 외가가 서울에 있고, 친척이 광주에 없어서 서울로 유학아닌 유학을 하였다. 형은 서울중학교에 시험을 보고 입학을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과 도시화는 나주를 돈이 만능인 사회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 알엠님 포스트를 보면서 변해버린 나주시내를 상상해 본다. 나주군에서 금성시로 금성시에서 나주시로 이렇게 바뀐 영산포는 그렇게 그렇게 사람이 번잡하고, 새로운 꿈을 꾸고 떠나는 이가 머물거나 도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귀향하는 이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그래도 인심과 사람의 웃음이 끊이질 않던곳.... 국밥집 어디를 가던 어린 것이 고생한다며, 뭐하나라도 더 집어주지 위해 분주했던 국밥집 아주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곳이며, 고마움이 저절로 보따리에 챙겨주신 꽃감이나 기차간에서 먹으라고 싸준 과자 봉지를 작은 손을 내밀며 건냈던 기억... 어머니 처럼 환대를 해주었던 그리움과 고마움이 배겨난 공간이었다. 어린 눈에는 커다랗게만 보였던 역이 나이가 먹으면서 작게 조그맣게 다가온 그 영산포역..... 그 공간은 내가 서울 올라올때면 늘 어머니에게 환송을 받는 느낌을 받게 하던 공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간이역 규모이지만 그 공간을 통해 무수한 사람들이 오고 갔음을 짐작해본다.

그 공간이 비둘기호가 없어지고 통일호가 없어지면서 그 인심 또한 사라졌음이 안타깝다.

 

비둘기호를 타고 올라오는 풍경 모든 역에 정차한다. 매 역마다 시암닭과 찬기름 그리고 쌀과 갖은 채소를 갖고 올라타는 풍경은 정말 정겹다. 그 정차역마다 서울 또는 지역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개주기 위해 바지런히 식품들을 챙겨다 주고자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그 기차역에서 까먹는 찐계란과 사이다는 기차여행의 백미이다. 저녁 8시에 타서 아침 8시 용산역에 도착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친해진 사람과 짧은 만남이지만 어느지역에 사는 누구라며 통성명하고 함께 기차타는 시간동안 친구가 되어 이야기 정겹게 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하는 그 기억들은 유년시절의 정겨움으로 남는다.

 

간혹 통일호를 타고 올라오는 길.... 그 풍경 또한 좋다. 비둘기호에 비해 빨라서 돈이 좀 있으면 통일호를 타고 올때가 있다. 고속버스는 요금이 비싸서 자주 타지 않았지만 정겹게 안내를 해주던 고속버스 안내양 누나가 생각난다.

 

아마도 집에 내려가거나 서울로 올라오는 일들은 나에게 있어서 유년시절 여행으로 기억된다. 그 기차여행에서 사이다와 찐계란 그리고 오징어를 먹으면서 내려오는 여유... 사이다와 찐계란 그리고 오징어 등등 과자봉지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어린 학생이었지만 그래도 혼자 그 먼 고향 길을 오고 갔던 생각을 하면 간혹 아찔하던 생각이 난다.

 

그 기억의 흔적은 KTX라는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서울역 역사도 함께 잊혀지고 있겠지.... 지금 시대 모두 빨리빨리 시간 단축이나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느림의 미학 여유롭고 다채로왔고, 정겨웠던 우리내 일상 소소한 정들을 시간의 빠름과 함께 잊혀지고 있다. 아쉽다. 그 정을 품었던 분들이 기차와 함께 떠올리게 한다.

 

덜컹덜컹 기차를 타고 12시간을 잠자다 일어나서 제잘제잘 거렸던 그 유년의 시절... 집에 내려갈때의 설레임과 올라올때의 아쉬움이 반복되었지만 그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늘 내 고향 영암군 시종면을 갈때면 들렸던 그 공간이 이제는 자본에 찌들어 각박함많이 흐르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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