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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결혼이민자의 남편 - 도종환 시인 글

  • 등록일
    2008/11/16 01:09
  • 수정일
    2008/11/16 01:09
여성 결혼이민자의 남편

                                                                                      도종환


11일 하인스 워드가 미국으로 돌아간다.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서울 명예시민증을 받고 눈물을 흘리던 그의 순박한 얼굴을 보며 나는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면서도 애틋한 연민의 감정이 더 많았다. 우리가 이중문화 가정의 자녀를 처음 대한 것은 전쟁과 참혹한 가난의 끝에서였다. 다른 인종의 피가 섞인 아이들이 주변에 생겨났고 그들은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너의 고향은 아가야/ 아메리카가 아니다./ 네 아버지가 매섭게 총을 겨누고/ 어머니를 쓰러뜨리던 질겁하던 수수밭이다./ 찢어진 옷고름만 홀로 남아 흐느끼던 논둑길이다./ 지뢰들이 숨죽이며 숨어 있던 모래밭/ 탱크가 지나간 날의 흙구덩이 속이다.”(정호승, 〈혼혈아에게〉) 이 시에서처럼 그렇게 아픈 역사의 캐터필러가 지나간 자리 옆에 그들은 있었다.

주한미군 흑인병사였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간 김영희씨는 도착 1개월 만에 남편과 헤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 30년, 김씨는 공항에서 기내식 만들고, 버거킹에서 햄버거 굽고, 밤에는 청소 일을 하며 혼자 아들을 키웠다. 가난하고 고단한 삶의 곁에 남편은 있지 않았다. 아들이 2006년 슈퍼볼 최우수선수가 되어 환향한 그 곁에도 물론 없었다.

지난해 외국인과 혼인한 사람이 4만3천여 명으로 2004년과 대비하여 21.6%나 늘었다고 한다. 100쌍 중 13.6쌍이 외국인과 혼인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농림어업에 종사하는 남성이 외국 여성과 결혼한 비율이 35.9%나 된다고 한다. 이들 중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여성도 있지만 많은 결혼이민자가 의사소통,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차이, 생활 습관 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이들은 심청이들이다. 자신과 가족의 가난을 해결하고자 한국으로 온 제3세계 여성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땅은 용궁이 아니라 인종모순, 계급모순, 성모순이 중층적으로 결합된 인당수 한복판이다. 공양미 삼백 석 값에 해당하는 돈을 주고 이들을 데려온 한국인 남편은 같이 살면서도 자신감과 확신이 부족하여 자주 아내를 의심하는 증세를 보인다고 한다. 부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언제 도망갈지 모른다는 의혹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폭력이나 폭언, 경제적 학대로 나타나곤 한다는 것이다.

여성 이민자가 이주여성인권센터를 찾아와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를 익히려고 애쓰는 동안 이들의 남편이 비자 신청권이나 국적 취득권만을 무기처럼 붙들고 있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남편도 아내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알려고 노력해야 하고, 어떻게 아내가 문화·사회·경제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해야 한다. 이 여성들이 아이를 낳고 있고 이들이 학교를 들어오고 있다. 시골 학교는 이들이 교실을 채워가고 있다. 이들이 인종과 문화에 따른 차별과 소외와 집단 따돌림을 겪으며 성장할까봐 어머니들은 전전긍긍하는데 아버지들은 앞에 나서기를 주저한다. 외국인 여성과 사는 것에 대한 자의식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 얽매여 아내와 자식을 책임지는 데서도 적극적이지 못하다. 이들이 워드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영희씨 말대로 “사랑은 피부색과 상관이 없다.” 워드가 태어난 병원 건물에 “하인스 워드, 당신이 태어난 병원입니다.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이런 펼침막이 걸린 걸 보았다. 오늘도 이땅에 수많은 여성 결혼 이민자의 아이들이 태어난다. 그들 하나하나도 자랑스럽고 소중한 아이여야 한다. 그들이 30년씩 차별과 편견과 눈물 속에서 살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나라와 사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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