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변호인 700만명 돌파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14/01/06 11:28
  • 수정일
    2014/01/06 11:28

변호인 700만명 돌파라는 기사를 접하고 한국사회의 정치 인식의 천박성을 생각하였다.

그 영화 이전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 천박한 역사의식 현대사에 대한 몰이해가 머리를 띵하게 하겠다. 그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내 노동자 인민이 당하였던 억압과 착취 그리고 그 불통의 통치에 대한 판단이 영화로 희화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지만... 여전히 우리내는 대의주의 그리고 한 영웅을 바라는 그 인민의 갈망과 무지가 우리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공과사를 논하기 전 그는 사가 너무 많은 노동자 인민 특히 노동자의 분신 그리고 농민의 죽음에 이르게 한 학살자임에도 우리는 찬미한다. 그 향수가 우리 스스로 정치를 퇴화시키고 노동자계급적 운동을 저해함에도 그 계급적 힘을 갈구할 당이 없음이 못내 아쉽다.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렀고, 민중이 경찰폭력으로 죽음에 이르렀지만 망각한다.
그리고 영화에 환호한다. 영화의 대사에 환호한다. 그것이 이 땅의 현실이다. 변호인의 송광호에 열광하고 노무현에 열망하는 우리의 집단 광기의 발현이다.
너도 나도 그 변호인이라는 영화를 보고 양심을 느낄 때... 우리 노동자는 여전히 풍찬노숙의 농성과 투쟁을 하고 그 해외매각 기업에 의해 정든 잁에서 쫓겨났다.

나에게 닥치지 않으면 쉽게 망각하는 현실....
노동의 불안정화에 대한 애써 외면하는 현실에서 노동자 인민은 여전히 투쟁을 갈망하지만 그 투쟁을 세워줄 우리 세력은 미약하다.
민주노총이 그 세력임에도 방관자로 서 있는 지금... 투쟁은 존재하지만 늘 사회적 파괴력이 되지 않으면 뻥파업이라도 불러 외치지 못하는 현실에 노동은 투쟁하는 자들이 이끌고 있다.

전노현의 노동자연대 노동자 동맹은 실종된지 오래이다.
변호인이 죽인 김주익열사를 떠올린다. 변호인이 만든 비정규직 개악법안이 떠오른다. 변호인이 죽인 농민을 떠올린다. 그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농민이 그 폭력에 죽어 갔는가? 그리고 장애인 열사... 생활임금 장애의무부양제를 만든 장본인이 변호인이라고 각색되어졌다.

장애인 열사 최옥란 열사의 그 절규....
찬미에 익숙한 우리들이 만들어낸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생활이 투쟁하는 자가 아니기에 그 영화에 위안 하지만 우리는 죽음으로 가는 롤러코스터에서 정리해고, 노조탄압, 노동탄압, 민중탄압으로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투쟁하는 않은 한... 법적 잣대 법적 힘에 기대지 말고 우리 스스로 자본으로부터 권리와 투쟁으로 획득하지 않는한 우리의 미래는 어찌될지 무섭다.

언론이 여론을 조장하고 정치를 조장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외침이 유일한 희망이다.
변호인에 환호하지 말고 보지도 않았으면 한다. 그 열사와 노동자 인민의 죽음이 내 삶이 나의 일이 아니기에 애써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와 현재는 동일하여야 한다.
그 과거가 아름답다 포장하지 말고.... 작금의 현실에 눈 돌릴때...

난 변호인을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도 그 동조자라 생각한다.
그들과 난 투쟁할 것이다. 이 세상 투쟁하는 자의 몫이기에.... 그가 만들어놓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투쟁하고 있고 자본에 치욕을 받고 있다.

망각과 그 회피의 시대에... 여전히 노동자는 노동을 해방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정든 일터에 쫓겨나 억압과 착취를 받고 있다. 그 장본인이 희화화 된다 현대사 역사 왜곡이다.

그 억압과 착취의 노무현 아니 변호인이... 야만의 시대의 주범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