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의 사회를 본다.
대한문 앞 자신을 보수라 칭하는 그 대한애국당 당원들이 애국을 이야기하며 한국 국군주의 파시즘을 이야기한다. 군사 쿠테타 일으킬 듯한 언행과 만행에 치가 떨린다.
저들은 파시스트이지 결코 보수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보수를 이야기 한다. 그리고 보수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그/녀들은 좌파정권이라 말하며, 박근혜 복귀와 군사쿠데타로 정권 수립을 노골화한다.
이렇듯 한국사회 분단 상흔에 의한 이념적 장막은 정치와 사상 그리고 좌와 우의 이념적 표상을 이 한국사회에서 거세하였다.
국가보안법으로 정치 사상의 자유가 거세된 사회 파시스트가 보수를 참칭하고, 보수가 좌파로 규정되는,,,,
이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 그 파시스트들에게 관변단체로 규정하고 중앙/지방 정부가 인민의 혈세를 스스럼 없이 지원하여 그 단체를 유지 존속시키는 사회가 작금의 한국사회이다.
다시금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한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노동자계급이 주도하여 나서야 한다.
빗발치는 투쟁 그 투쟁을 한데 묶고 나서는 투쟁이 필요하다. 총오동의 총단결 총투잴으로 다시금 노동자계급아 나서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전개할 때이다.
우리 노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노동악법에 의해 거세된 투쟁 그 노동의 굴종의 역사 집회/시위 자유 정리해고, 비정규직 악법이 우리 노동자계급을 어떠한 위치로 규정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 연장선의 문재인 정권이 벌이고 있는 노동 배제 전략 그리고 세계경제 위기에 따른 정리해고, 구조조정 등이 만연에 따른 노동운동 무력화 시도는 불보듯 뻔하다.
경제위기 빌미로 사회적대화라는 명목으로 한국노동시장의 노동유연화 즉, 해고요건완화와 비정규직 다양화를 통한 양적확대로 재벌독식의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속내 친자본 정권으로서 스스로의 위치를 규정하고 한쪽엔 총 한쪽엔 양보안을 들고 조직노동에게 다가설 것이 자명하다.
다시금 머리 띠 묶고 노동자가 나서는 세상을 바꾸는 투쟁..., 노동해방을 위해 나설 때이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나희덕
길을 그리기 위해 나무를 그린 것인지
나무를 그리기 위해 길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또는 길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를 그리기 위해
길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길과 나무는 서로에게 벽과 바닥이 되어왔네
길에 던져진 초록 그림자,
길은 잎사귀처럼 촘촘한 무늬를 갖게 되고
아무는 제 짐을 내려놓은 듯 무심하게 서 있네
그 평화를 누가 베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시간의 도끼는
때로 나무를 길 위에 쓰러뜨리나니
파르르 떨리던 잎사귀와 그림자의 비명을
여기 다 적을 수는 없겠네
그가 그린 어떤 길은 벌목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
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네
굽이치며 사라지는 길을 끝까지 따라가게 하네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
마음의 지평선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
누군가 까마득히 멀어지는 풍경,
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나는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 하네
.......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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