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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생활을 돌아보며....

  • 등록일
    2004/08/06 19:26
  • 수정일
    2004/08/06 19:26
  정말 시간은 빠르게 흐르나 봅니다.
 
  동암역에서 터를 틀고 창립을 하고 사업을 시작한지가 어느세  2년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98년 4월 12일 정식지부 창립 총회 후 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 출범. 저의 인천에서의 노동운동이라는 작은 진보운동의 첫발걸음 내딛던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가슴이 두른반 세근반 하는 설레임. 그리고 부푼가슴을 안고 시작한 노정단 상근일.... 정말 세상의 그 무엇을 얻은듯한 기분이 들었죠.
  도저히 언어라는 수식어를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쁨들이 있었던  시기였죠. 또한 학교생활때 부터 늘 동경하면서 하고 싶어하던 운동적 삶이라는 것을 내가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뿌듯함들 그게 나의 2년 간의 힘이였고 이후 내가 또 가야할 길인것 같습니다. 늘 처음처럼 한걸음을 내딛듯이 말이죠.


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 출범과 나의 인천생활

 

백영민 대표의 정보화운동에 대한 가단하고도 명확한 강연과 지부창립 총회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군요. 시작은 정말 초라하고 사무실 한칸도 얻지 못해 지금은 한국노동자운동연대로 바뀐 인천노동정책연구센터의 사무실에  엊혀 사무실을 개소하고 어떠한 일들을 해야할지 막연한 고민들과 이후 활동들에 대한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고 좌충우돌하고 그러던 때의 모습들이 지금의 아주 우숩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은 낳아졌다는 안도와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희망들이 보이기에 그렇겟죠.
 
정말 할 일이 없어 노정단 방의 거의 출근하다시피하던 때가 눈앞에 선하군요.


그때는 지금에 비해 나우누리 노정단CUG가 회원들간의 의사소통의 장으로 발돋음 하지 못할때라 저의 거의 매일 횡설수설에 가까운 글들로 도배가 되어졌던  기억이 이제는 과거 추억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가고 있죠. 그때는 그리 할일도  많지않아 사무실에 오면 늘 통신과 씨름을 하면서 거의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 까지 통신이란 무엇인가?를 연구하였죠. 지금보면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지만 그때  저의 하루 일과는 통신으로 시작하여 통신으로 끝나는 그런 생활들 상근인지  아닌지도 거의 규명할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죠.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감옥속에서 컴통신하면서 배고프면 밥먹고 심심하면 통신하는 그런 경지에 이룰정도로 일과에 있어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죠. 그때 정말 내자신이 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매우 의심스러운 정도로 정말 무료하고도 따분한  하루 하루의 매일 반복되는 생활에 찌들여 갔죠.(지역에서 할 일이라는 자체가 없었던게 아니라 할 수 있는 조건과 지역에 있어서의 단체로서 자리매김이 되어지지 못한 상활이었죠. 그래서 늘 노동조합에 들어가면 퇴자맞기 일수였죠.)
 
정말 지난 일만 주어지면 일에 살고 일에 죽을 각오로 일을 열심히 하고 싶었죠.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였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은 쉽게 돌아다니면 일이 생긴다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정말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조직적 일들을 만들어낸다는게 정말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쉽지만은 않은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늘 왜 우리는 이럴까? 하면서 하루에 한숨을 쉬지 않고 늘 쉬었죠. 휴~~~~~~~ 그래서 인천에 내려온지 한 4개월쯤 지나서 술에 찌들어 한 2달간 산적이 있습니다.

 

이게 뭐 운동이냐 이런거면 나 그냥 집에서 놀고 먹을 란다 하면서 투정도 많이 부리고 그리고 화도 많이 냈죠.  그때에 또 사람들이 하나둘씩 노정단을 떠나구요... 그래서 정말 무엇을 할지  깜깜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무실에서 멍돌이가 된다는 기분들 정말 느껴보지 못하신 분들은 잘 모를꺼죠. 그래서 괜히 인천에 내려와서 일하는게 실수였구나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서울에 있었으면 그래도 이렇게 멍하니 시간축내지는 않을텐데 하는 생각에 잠겨서요....
 
그러던 어느날 실업극복 국민운동 인천본부라는 곳에서 연락이 오더라구요 엑셀로 실업자정보를 데이터 베이스화 할려는데 노정단 인천지부에서 도와 주었으면  한다는 요청이 들어왔죠. 정말 하늘에서 구세주가 내려와 우리를 구원해주는 구세주 나라는 생각에 전 잠시 머뭇걸임도 없이 그냥 달려가서 무작정 일을 도와주었죠.  그래서 조금조금씩 지역의 분들도 알고 차차 지역활동에 대한 여러 활동의 조언들을 많이 들었죠. 어찌보면 실업극복 국민운동 인천본부가 없었다면 아마도 전 지금 현재의 노정단이라는 공간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었죠. 그러면서 한층한층 나갔죠. 그러면서 조금조금씩 컴퓨터 조립법에 대해서 공부를 하였답니다. 이리 저리 실업본부일로 현장을 방문하거나 몇몇분의 노동조합 간부들을 만나면서 아 직도 인천의 노동조합들은 386과 486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리고 천천히 노동조합을 방문면서 컴을 업그레이드, 노동조합 상임간부  교육 등 약간의 교육사업과 컴 조립을 하였죠... 그리고 배상훈 지부장님이 오시면서 사업은 날개에 닻을 달은듯이 훨훨 날아다녔죠. 정말 일때문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분주하였습니다. 그때의 희열이란 눈물이 나도록 기뻤죠... 히히^^

이렇듯 짧은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잡스러운 생각들과 비애와 기쁨들이  교차하면서 작지만 그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하는 지부일드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은 머나 멀지만 그래도 자리매김 되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도전욕 그리고 더욱더 미약한 나에 대한 부족함들을 하나 둘 보충하면서 늘 정진할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들이 솟구칩니다.
 
그동안 저를 믿어주시고 늘 아껴주신 노정단 분들 마음이 아프거나 늘 힘들때면 한번도 거르지 않고 위로와 격려 그리고 늘 힌내라는 말들 그게 저에게는  정말 큰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운동이라는 것을 놓지않도록 만들어준 사랑의  매일 수돌 있구요. 종종 힘들다보면 사람들이 개인적 고민으로 치부하면서 책임성 없이 떠나버리는 그런 일들이 있는데... 노정단 분들은 그렇지 않도록 늘  곁에는 없었지만 늘 마음과 통신상으로 아껴주고 도닥겨려주어서 지금 제가  편안하게 노정단을 잠시 떠나 노동현장이라는 공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군요....
 
아마도 이런 노정단 모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제가 공장에 들어가는 것  조차 엄두고 못내고 중도에 포기하고 어디선가 그냥 내 안에 안주하면서 살아갔을 것 입니다. 늘 부족한 저에게 격려와 위로보다는 늘 따끔한 충를 해줄 수 있는  그런 분들이 늘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내일 결정이 날 것 같은데 아마 월요일 2월 21일 부터는 남동공단에서 공장노동자로 또다른 삶을 살아갈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그날까지 저의  위치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살아가고자 합니다. 욕심없이 서두르지 않으면서요.


돌아올때 더 큰 무엇인가를 얻기보다는 한 노동자로서의 모습을 가지고 늘 변함 없이 살아가는 그런 모습으로 돌아오고자 합니다.
(떠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글을 횡설수설 막 섰군요.. 늘 충고부탁드립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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