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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행복한 놈이다.

  • 등록일
    2004/10/25 20:56
  • 수정일
    2004/10/25 20:56

* 이 글은 알엠님의 [파나마 사기극]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알엠님의 글을 보면서 난 참 행복한 놈임이라는 사실을 세삼 느끼게 되어  각인하는 계기가 몇자 끌적입니다.

 

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에서 내 삶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원래 내가 속한 정치조직에서 울산에 금속사업장에 이전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들은 몇차례 만남을 갖은 후 연락이 두절되어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후 알게된 사실이지만 이들중 한명(내 후배중에 한명이)의 반대하여 현장 이전준비는 무산되었고, 그 길로 난 술집과 학교 동아리방에 기생하며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당시 난 저녁마다 술에 쩔어서 운동을 포기할까 고민도 해보고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을 술로 달래며 약 3개월의 기간을 알코올 중독자 처럼 지냈다. 그 당시 난 노동운동을 꼭 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나를 알아주는 찾아주는 사람하나 없다는 사실에 두려웠고, 외로웠다. 캄캄한 암흑천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내 인생 가장 중요한 고비였고 참 힘들었던 시절이다. 교도소에서 나온지 별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동기와 후배들은 이야기하지만 참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저녁마다 참 많은 근심을 껴앉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한 동기(나보다 나이는 많음.)가 찾아와 같이 인천에서 활동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난  흔쾌히 동의하고 주저없이 98년 2월 인천으로 향했다.

설레임반 두려움반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 내가 그토록 열망하는 노동운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난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기분으로 뒤돌아보지 않고 인천으로 달려갔다.

 

인천에 도착... 기반이 없던 나는 인천에서 몇개월간 외롭게 지내야 했다.

인천이라 동네는 지역기반이 없으면 사업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리고 과거 운동하던 단체들이 많아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일정정도 현장과의 연계성을 갖지 않으면 단체로서의 생명은 곧 파산선고를 해야할 판이었다.

그러던 차... 노동정보화사업단(이하 노정단) 중앙에서 나우누리를 통한 민주노총 CUG(폐쇄통신망)이 민주노총내에서 조직적으로 활용시키고 민주노총과 연계사업을 하게되어 인천에서 나도 이덕을 톡톡히 보았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사람들이 이 당시만 해도 컴퓨터보다는 팩스를 주로 사용하였고, 통신을 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라 나의 도움이 필요하였던 터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난 이들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 교육을 통하여 난 많은 현장 조합간부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을 자산으로 하여 내가 속한 단체를 지역사회에 알릴 수 있었고, 종종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 소속 조합들 컴퓨터 교육과 컴조립을 해주게 되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엇을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많은 컴퓨터를 조립해주고 인천을 떠나왔다.

내가 즐겨가던 참세상방송국 인터넷방송 사이트(지금은 없어진 Zoo님이 운영하던 사이트 게시판에.. 내 고민을 적고... 미련없이 떠나왔다... 그떄는 도망치기 바빳고 도망쳐야만 했다.. 지금은 변명이라 생각하지만 그때의 패배감과 절망감은 나에겐 크나큰 상처였다. 무엇을 할지 망막하여 무작정 그만두고 한 보름을 쉰후 난 노정단에 찾았다.)에 인천을 떠나오면서 들었던 생각을 써놓았다. 지금 그 글을 보면 변명이라 생각이 들지만 그 당시 나의 심정은 그랬다. 도망치고 싶었다.

 

아래 나의 심정을 쓰고 미련없이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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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흔적의 여운을 들쳐보내며 떠납니다.  
 
2000/03/25 00:45
 
그동안 정말 충고와 늘 즐겁게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제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꼭 10년후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희망이라는 웃음을 가지고.....

여러 책들에 대한 것 특히 레닌의 무엇을 할것인가?(박종철 출판사 판은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음. 난 아마 백의가 백두인가에서 나온 책을 읽어 보았 을 뿐.) 볼세비키와 맨셰비키을 두고 혁명적 전위세력과 사민주의 세력이라고 쉽게 단정하면서 우리는 늘 기회와 사민 그리고 교조주의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것은 보지 못한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력들...
87년 민중의당 그러나 범민주 단일후보라는 사회적 힘에 밀려 출마를  포기하고 정당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다.( 여기서 발판을 마련하지 못함은 내 개인적인 생각에 의거하면 그건 곧 정파주의의 한계가 말해주고 있다. 좌파의 소수 엘리트적인 직업적 혁명가에 의한 혁명주도와 우파라 지칭되고 주사파의 대중적 획득적 힘의 획득에 의한 사회변혁으로 대립되어진 시대적 상황에서의 다수에 힘에 대한 굴종.) 그러나 좌파의 위기는 또 하나 있다. 좌파가 혁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수로밖에 남을 수 없었던 것은 서울대 그리고 여러 대학에서의 품성문제의 대두 즉, 혁명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인간적인 품성이 문제가 되었다.=86년 서울대 품성론 사건(아마도 말지 통권호를  보면 이 사건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나와있을 것이다.)

 

우린 아마도 혁명이라는 사회적 거대흐름 속에서 시기적 정세 파악의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쉽다. 87노동자 대투쟁 시기와 국민들의 연이은 사회개혁 시위가 BGR(부르주아지혁명)으로 이어져 SOR(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화가 이루어진다는 시기적 오류 우린 이론적 성숙기와 사회적 요건을 충분히 가추지 못한 상태에서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전혀 담보해내고 있지 못하였다. 아마  계획은 있었을 것이다. 공장으로의 대거 이전이 80년대 운동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그러나 흔히 말하는 학출운동권 아직도 몇몇 학출운동권이 현장에 남아 열심히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나, 과거에 비해 수 그리고 열의 그리고 자신의 운동노선에 대한 명확성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단지  노동조합 건설에 온힘을 기울였을 뿐 이후 투쟁에 대한 방향성은 동구권의 몰락이 가져온 충격으로 와해되었다. 몇몇 그룹만이 지금 존재하면서 자신의 운 동을 자족적으로 진행하고 있다.(이건 나의 사견임.)

 

민중의 당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전민련이란 실험적 통일전선체 그러나 실험은 실험으로 그치고 말았다. 통일전선의 구축의 시도는 사상적인 이유와 각 정치조직간 이해와 요구의 충돌로 인해 전혀 합의되고 집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통일전선은 그 의의만을 만기고 80년대 말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서히 살아지고 말았다.

우린 6.25란 역사적 단절이 얼마나 뼈절이게 이 운동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1919년 부터 일기시작한 사회주의 운동이 단절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의해 얼마나 처참히 깨지는가를...


정확히 말해 6.25라는 전쟁이 남겨준 우리에게 있어 반공이데올로기라는 허울 속에 기층 민중들과 소부르주아들의 정치적 이중성들을 즉시 할 수 있었다.


보수와 안정의 기성세대 그러나 그들은 말한다. 4.19의 혁명적 정신을  그러나 시대가 지나고 있는 지금 4.19의 주도세력은 어떠한가? 그들은 기존 정치권으로 편제되어져 그들의 엘리트적 기질을 발휘하여 한국사회의 피박받는 민중의 피를 뒤에 엎고 정치세력으로 정착하였다. 그리고 유신의 항거한 사람들 지금은 어떠한가?  80년 전두환을 일두로한 군부독재 잔당과 같이 정치적 동지로 서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많은 변절자를 보고 지금도 정치적 신물에 빠져 자족적으로 자위적으로 그들을 몰아세우며 찍을 사람이 없지만, 그들이 기존 보수세력이 사회적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논리 하나만으로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기존 정당에게 표를 던진다. 아 너무나도 한심하지만 이게 우리내 현실이다.
그런데 운동권들은 어떠한가? 이런 사회적 변혁기회 전민련이란 통전체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파 싸움과 힘겨루기에만 연연하지 않았나, 사회적 대안세력 혁명의 정당성을 알리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성을 지도하기는 켜녕 현실운동적 사안에만 갑갑했다.(많은 혁명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혁명론은 인텔리적인 운동의 피폐=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는 늘 고정되어지고 있었다. 노동자 계급성만을 담지한 그들은 노동자의 정치세력 선두에 세우기는 켜녕 자신들의 조직의 정치적 헤게모니 장악 정파간 혁명 사상에  대한 우위만을 강조하였다. 성과도 있다 맑스주의란 단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쇄신 즉. 학계의 맑스연구진행.. 그리고 여러 맑스주의에 대한 분석이 운동의 발전을 가져온 점이 있었다.

 

그러다 정반합이라는 유물론적인 합법칙성들은 상실되어져 갔다. 아마도 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로 싸잡아 말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인  확장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학문들에 대한 다양한 섭취를 못한 우리 운동의  한계성이 있기에 많은 정파운동이 자신들만의 외길 속에서 주도세력에서  사장세력으로 서서히 운동세력속에서 사라져가지 않았는가?


말을 하다보니 인텔리적 운동의 한계로 흘러갔군..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 통일전선체 운동이 충분한 중요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험적운동으로 실패하였는가를 잘 보아야 한다.

 

92년 총선과 대통령선거...
민중의독자적정치세력화(민독정)세력과 민중당, 한노당 그러나 그러나 그들은 부르주아 선거판에서 현실의 냉혹함 민중을 위한 진정한 세력으로 거듭나지 못함을 각인하는 계기를 분명히 얻었을 것이다.


민독정의 선거패배와 민중당의 선거당으로서만 역사에 무대에서 사라짐. 한노당의 의의성만을 강조하고 사라짐...  동구권의 몰락으로 인해 새로운 운동에 대한 대안마련과 모색을 위해 학계와 운동권(각 정치세력들)들의 암울한 시대였다.

이것을 정면 돌파하기위한 합법전술적 당운동..

당운동은 부르주아판에서 표를 획득하지 못하면 당으로서 존립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러한 한계가 있을을 극명히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민주대 반민주의 낡은 사슬을 버리지 못한 우파라 지칭하는 사람들의 민주정부 수립론(내생각으로 아마도 좌파에서 먼저 민중주도 임시  민주정부 수립의 기치를 먼져 들었다고 사료됨.)에 대한 환성에 젖은 비판적 지지론에 입각한 선거전술....

이러한 협격한 입장의 차이를 우린 운동세력들은 늘 염두해두지 않고 독불장군식으로 자신의 길만을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에 대한 이해와 객관적 비판을 하지 못하였다. 다만 정치세력들의 자신들의 이론적 입장에  근거한 비판만을 계속적으로 강화하였을 뿐이었다. 많은 좌파세력들은 민독정을 진행하면서 구로에서 안양에서 성동에서 노원에서 선거투쟁(학생들은 학생선거투쟁연합을 건설하여 나갔으며, 각  정치세력은 민독정에 결합하면서 각 조직에서 소속된 지역선거 본부로의   결합)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기대와 희망은 표라는 허울에 의해 처참히 뭉개져버리고 말았다.

혁명성도 투쟁성도 그리고 운동의 열정도 부르주아지 선거판에서는 표가 나오지 않으면 자족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난 이에 합법정당 한계는 표를 얻지 못하면 당으로 존립할 수 없다라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백선본 이후의 선거판도 마찬가지이다.  92년 대선 백선본운동 또한 표가 나오지 않음으로 인해 많은 선본세력(각  정치세력의 이후 방향에 있어서의 구별정립이 가시화 되어지지 않았는지..... 이 자신의 궤도의 이탈 그리고 운동에 있어서의 조직의 존립적 근거가 희미해지 는 현상을 낳았다.  "내가 겪어온 운동 속에서 우린 너무나도 학생운동  그리고 일부조직된 운동권이 전체운동을 책임질 수 있다? 는 오판과 환상 속에서 패밀리적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한다. 각각의 역활과  위치에맞는 활동이 배치되고 조율 되어져야 한다.

 

"청년이 서야 나라가 선다." 그리고 "청년들의 시대적 책임성"난 이말에 대한 무진장 반감이 있다. 그건 추상적 구호에 지나지 않고 청년이 시대적 책임을 전부 전가할 세력인가?라는 생각에서 이다.


우린 청년과 민족이란 단어를 언제서부터인가 매우 자주 그리고 친근감 있게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들또한 한 시대의 청년임에 불과하다. 그리고  학생운동권과 젊은 노동자를 청년이란 단어로 묶어주기엔 너무나 청년이란 피상성이 내재하고 있다라 생각이 든다.

난 청년에서 기성세대로 접어들고 있는 이들이 진정한 혁명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  얼마없다 라고 생각이 든다.

 

난 그들의 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늘 운동성만을 상실치  말기를 바랄뿐이다.

 

혁명의 주도세력인 젊은 인텔리 계급은 러시아에 소수에 불과하였다.

혁명의 원동력은 혁명적 노동자들이 었지 레닌, 트로츠키, 카우츠키,스탈린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의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 건설은 노동자 주력부대의  무장혁명에 의해 일구어낸 산물이다. 우린 레닌의 저술을 보면서 그의 뛰어남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레닌만의 고민에 의해 나온 전술과 전략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난 오판이라고 생각한다. 선진노동자 즉 인텔리들에 의해  지도되고 조직된 노동자들 계속적인 프략션을 통한 선진노동자 부위 내의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이라는 끊임없는 그들의 토론을 통한 산물이 지금 현재 우리에게 알려진 레닌저작선집의 책들이다.


그의 투쟁을 있게해준 배경들이 있었기에 레닌이 존재하였지 그의  천재성이 러시아 혁명을 완수하였다라고 볼수는 없다. 어느책에선가 러시아 혁명이 있은 당시 레닌은 혁명을 예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말은 얼마나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조직되고 계급성을 담지 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지...

 

난 자신 지금 공부를 하건 열심히 산업현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건 자신의 운동에 대해 비젼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것을 하루하루 실천하는 것이  더욱 더 절실하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운동을 시작하거나 운동의 변혁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운동에 대한 비젼을 가져야 된다고 본다. 그것이 당운동이던 아니면  여러가지 형태의 사회진보운동이건 무엇을 할것인가?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그건 아마도 자족적이거나 자위적인 운동이라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청년만이 운동을 한다. 사회변혁을 일군다라는 말은 오판이다.


어떻게 선진 운동가로 아니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운동을 통해  노동자에게 환원되어 질 것인가란 자신의 철학이 없다면, 기존의 정치적 야망에만 불타는 운동을 알것임은 뻔한 사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돈이 없으면 굶어죽듯이 운동에 대한 자신의 목적성과 삶의 기본동력이 없이는 운동이란 환상자체라고 밖에는...   난 청년이란? 말과 청년의 시대적 역활 청년이 사회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 자체는 피상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난 전진하고자 하는 자만이 쟁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선진 학생운동가라면 노동자 현장에서 인텔리의 근성을 버리고 노동자 계급으로 새롭게 거듭나는게 더욱 올바른것은 아닌지... 감히 말해 본다.

 

또한 대학생신문에 글중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적 실천이 없다."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난 지금 현실에선 "혁명적 실천없이 혁명적 이론은 없다."라는 말로 바뀌어야 하는게 아닌지... 내가 알기로는 실천이 이론보다 먼저 앞을 장식해 준다고 생각이 든다. 뭐 말의 앞위가 중요할 소냐


그러나 자신의 삶으로 가꾸면서 운동적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동자 계급성을 지도하는 사람들은 거의 드물기에 맑스를 이론의 잣대보다는 실천의 잣대를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게 올바르 않을까? 생각이 든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진보정당은 대중정당인가? 혁명정당인가?

난 노동자 민중의 대중정당은 원초부터 존재 할 수 없다고 본다. 그건 선거라는 공간의 협소성과 자본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모순속에서 결코 선거를 통한 혁명은 가능하지 않기때문이다.


이에 난 각각의 운동들이 분화되어지는 양산속에서 운동은 배치되고  집행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현실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 너무나 패권의식과 정파적 패밀지 의식들이 파편적으로 조직의 분화양산을  게모니 장악을 위해 너무나 패권적으로 그치고 있기때문이다.

모든 운동들이 마찬가지 이겠지만 현시점의 진보정당운동 또한 마찬가지이다.

현재 정식정당으로 청년진보당이 진보정당으로 등록되어져 있고 그리고 기존 국민승리21이 민주노총(민주노총 강령에 진보정당 건설이 강령으로 존재한다 라는 말을 하는데 민노총 강령을 모른 나로서는 도무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래서 들은 말에 의해 진보정당강령에 의한 민노총의 진보정당 참여 한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말한다.)의 과의 연계에 의해 진보정당건설추진위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난 개인적으로 두 세력간의 구분점들을 모르겠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두개의 당으로 양분해 진보정당운동을 전개하게 하는지를 아마도 기회와 사민세력과의 타협의 거부라면 난 진보정당  운동에서의 통전체적 당이 아니고서의 의미성들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과거 제기한 합비합 동시건설론이란 차별성에 의한 진보정당 건설이라고 말하면 모를까?


이런 양분화된 구도 상호대립적 관계를 통해 자율경쟁을 통한 진정한 세력으로 거듭남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과연 대중정당이 혁명정당도 아니면서 이런 구분속에서 무엇을 찾기에 진보정당운동이 양분화되어져야 하는지 난 사실 잘 모르겠다. 맑스에 의한 당이라면 난 합법적 진보정당을 건설은 현시기적으로 무리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누구를 위한 당인가? 슬로건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한것이 없다. 민중의 정치세력, 노동자 정치세력화, 보수정치를 갈아없자는 슬로건 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 구호들이 얼마나 민중들이라는 서민들 노동자에게 직간접적으로 피부로 다가올 말인가?


그냥 운동을 한 사람들의 필요성에 의한 운동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생각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드는 생각이다. 당 그리고 단체 인천에서는 너무나도 학생에 대한 불신과 그리고 배신의 골이 깊다. 그건 당시 노조에 있는 사람들은 말은 안해주지만, 인텔리들의 배신 그리고 계급성의 한계들에 대한 불신임은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한 조합을 들어가서 말을 들어보았다.


그 조합 간부는 진보정당이란 말을 해보았더니 피식웃으면서 집에서 효도나 하라고 나에게 말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 조합간부는 진보정당 동의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 세상을 바꿀 계획과 플렌을 당장 가져오면 지금 즉시 나도 진보정당 운동에 적극적으로 복무하겠다라고 말한다.

계획 만들면 되는것 아니냐...


그사람왈 말은 쉽지.... 운동권들이 정치적 프로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고 정치적 프로로 자리매김 되면 그들을 정치철세로 전락해 자신의 정치성을 잃지 않기 위해 어디론가 팔려가는 정치프로선수가 된다는 말을 한다.


남들은 쉽게 미리 부터 걱정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민단체들 요즘 참여연대를 보라 그들을 비판하지만 그들만큼 정책에 대한 비판(한계성을 내재한 비판)을 하는 세력은 어디있는가? 난 없다라고 본다.
그럼 혹자들은 넌 무엇하러 운동하냐라고 한다. 그러면 난 그렇다 대안을 만들기 위해 한다. 대안이 무엇이냐 난 끊임없는 실천활동과 연구를 통한 산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말을 들을면서 난 생각이 들었다.
정치세력화,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은 무성하다. 그러나 이후 선거에서 한석 아니 몇백년 후에 정치세력이 되었다고 치자! 그원칙을 늘 변치않고  가지고 집행 할 수 있는 우리의 사회전반적 계획은 가지고 있는지....

 

말이 아닌 실천을 할 수 있는 대안들 사회의 모든 제반 부조리들에 대한 해법들을 가지고 기존썩은 정치권을 가라엎지 않는한 우린 룸펜적 운동가(늘 운동권에 있어 술은 빠지지 않는다 늘 술이란 매채를 통해 서로간의 결속력과 동질성을 각인한다. 그리고 몇몇 사과서적을 읽으면 맑스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다르다 문제에 대한 끊임 없는 진단 그리고 해안들을 제시할 수 있고 이걸 대안들을 가지고 투쟁을 만들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우린 항상 룸펜적 운동가=자족적 운동가로 머물를 수 밖에 없다.)로 적용될 것이다.

 

자신의 그늘을 보지못하면서 남의 그늘에만 안주하고 또한 자신의 그늘의 폭을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너무나도 패밀리적인 운동의 한계성들이 우리 주변에 내재하고 있다. 너무 서글프다...

 

모두들 과거는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과거는 과거일뿐 현재를 견디어 내야 합니다...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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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난 그러했다.

 

지친 가슴을 부여잡고 난 노정단을 찾았다. 그러나 뜻밖에 여기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난 노동네트워크 상근자로 또다시 이어가게 되었다.

 

내가 노동넷에서 한일은 이 공간에 썼고 내려오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서 따로 글을 쓰지 않는다. 다만, 지금도 오산에서 이 끈을 부여잡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나에게 단 한가지 소망이 있다.

이곳이 나의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 평생을 이 곳에서 길을 겆게 해달라는 소박한 희망을....

 

난 학교때 잠시 고민을 하였을 뿐 별 탈없이 지금도 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다만 단체를 바꿀적 마디마디마다 조금 힘들었을 뿐....

 

참 행복한 놈임을 다시금 느낀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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