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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8
    하투(夏鬪)에 대한 단상들....
    간장 오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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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공개사진 공개] 조선공사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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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의 가장 기뻣던 추억....
    간장 오타맨...

하투(夏鬪)에 대한 단상들....

  • 등록일
    2004/08/08 13:12
  • 수정일
    2004/08/08 13:12

6월 보건의료산별노조 파업투쟁으로 부터 시작된 2004년 노동운동 하투(夏鬪)가 LG칼텍스 노조의 현장복귀로 끝마무리에 치닫고 있다.

이번 하투가 남긴 의미 그리고 이후 노동자투쟁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에 대한 여러가지 개인적 견해를 필역해 보고자 한다.



보건의료산별노조의 합법적 파업투쟁....
그 동안 직권중재라는 미명하에 보건의료산별노조 투쟁은 불법으로 매도당하며, 노동3권을 크게 제약 받아왔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보건의료산별노조 지도부는 직권중재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처음이루어지는 산별교섭의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15일간의 직중교섭기간을 설정하고, 이에 불응하자 총파업투쟁을 전개하였다.

 
보건의료산별노조 총파업은 준비된 파업이었다.
산별교섭/조합원 1인당 7만원의 파업기금 조성/병원 로비를 점거투쟁을 벗어난 집중투쟁 등 그 동안 병원산별의료노조가 진행하였던 투쟁전술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전체 조합원이 집결한 파업투쟁이었다. 보건의료산별노조 투쟁은 보건의료노조 투쟁의 새로운 전형을 가져다주는 좋은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사측의 교섭거부 그리고 준비가 덜된 산별교섭은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점도 안겨다 주었다.
큰 의미와 틀에서의 산별교섭은 국공립 대학병원, 정부가 운영하는 지방공사 의료원, 사립대학병원 등에서는 교섭에 있어 큰 난항이 없었으나 개별 병원 특히 광명성애병원 같은 노조탄압이 심한 곳에서는 산별교섭은 큰 의미로 다가가지 못하였다. 이에 이후 산별교섭에서는 일정정도 보건의료산별노조에서 전체 지부와 지회가 공유할 수 있는 산별교섭의 틀을 만들어 사측과의 교섭에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울대병원에서 붉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조속한 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의 파업투쟁....
자동차3사의 산업공동화 대책, 비정규직 정규직화, 손배가압류 철회, 최저생계비 등 제조업 노동자들에게 있어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난재해 있었다. 금속연맹과 금속노조는 작년과 올해초에 이르는 열사정국에서 이렇다할 대책을 시원스럽게 내놓지 못하였다. 특히 올해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에서 붉어진 박일수 노동열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현대중공업노조와 마찰만 빚어졌지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였다. 피로도가 누적되었다. 늘 노동자 선봉부대임을 자임한 제조업의 구심 금속연맹과 금속노조는 이따르는 산업공동화, 근골격계 투쟁 등 수많은 투쟁의 문제를 않고 있으면서도 피로도 누적으로 대중적 투쟁을 전개하는데 한계를 보여왔다.

 

긴호흠 강한 걸음으로 투쟁을 준비하자.
비록 파업투쟁이 부분파업으로 그쳤지만,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의 투쟁사안을 시한폭탄으로 잠재되어 있다. 특히 경제구역저지 투쟁과 산업공동화, 비정규직 철폐 투쟁,손배가압류 철폐 등 올해내그 토대를 다져 내년도 대정부와 사측을 압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금속노조와 금속연맹은 선엄적 조직으로 절락할 것이다. 선엄적 투쟁이 아닌 준비된 투쟁을 만들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여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에서 보이고 있는 노사정위 참여 및 사회적합의 도출 등 일각에서 불고 있는 코프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에 대한 경계심에 대한 긴장섞인 대립을 보여야 한다.

 


민주택시연맹 투쟁의 부재....
5월 또한명의 노동자가 분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민주택시연맹 정오교통분회 조합원인 조경식씨의 분신... 조경식씨는 현 택시노동자들의 문제를 자신 한몸 불 살라서 해결하기 위한 결단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오교통분회만의 투쟁으로 그치고 말았다. 아쉬움이 남는다. 다들 택시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하투가 시작되면서 이 사건은 다른 사안에 매몰되고 말았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린 택시노동자들의 완전월급제 쟁취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언론은 이에 대해 묵과하였다. 다만 인터넷언론에서 이 사건에 대한 간헐적 보도만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안이 비일비재하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 동지를 죽음으로 몰고가게 할 수 있는 분신을 통한 열사정국은 이제 투쟁으로서 극복하여야 한다.

다들 말로는 혁명과 노동해방을 부르짖지만 실천이 절박히 필요하다. 다들 중요한 사건에는 큰 관심과 연대를 보낸다. 그러나 정작 특종이 끝나고 나면 이에 대한 해결 및 사건이 어떻게 끝마무리 되었는가?에 대한 보도는 없다. 아쉬움이라기 보다는 보도행태가 그렇다. 이러하기에 노동자 민중의 삶에 서글픔을 금치 못하게 된다....

민주택시연맹은 총파업투쟁보다는 지회의 투쟁과 연맹의 투쟁이 결합하는 투쟁에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궤도연대 파업투쟁.....
언론기자와 공익요원에게 조롱을 보낸다...
개보다 못한 놈들 같으니라고....

 

7월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게 아스팔트와 철도레일을 달구고 있는 시점.... 궤도연대(서울도철, 서울지하철, 인천지하철, 대구지하철, 부산 지하철)은 투쟁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7월 22일 총파업투쟁 전개. 그러나 이 총파업투쟁은 대구지하철을 제외하고는 오래끌지 못하였다. 지도부의 결단 부재.... 그리고 언론의 흑색비방선전으로 말미암아 노조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언론의 흑색비방선전은 예견하고 있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이버 대책반까지 준비하고 파업을 감행하였다.

공익요원의 글하나 인터넷게시판에 기재되고 서울시의 서울지하철노조 임금에 대한 광고가 나가면서 노조홈페이지는 네티즌들의 비난글로 도배되었다. 그리고 노조의 홈페이지 게시판 폐쇄.... 서울지하철 위원장의 파업철회 발언으로 배일도 이후 벌어진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투쟁은 몇일만에 끝나고 말았다.

 

궤도연대가 내걸었던 주5일 근무제를 통한 지하철 안전운행과 지하철노동자의 신직업병인 공황증 문제는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언론의 위력이 감지되는 대목이다. 연 임금을 얼마나 받고 있다/ 지하철노동자는 일도 안한다/ 이러한 흑색선전에 무기력하게 되었다. 한간에는 지하철노조위원장의 발언이 적절치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무엇보다 언론과 국민의 인식이 빚어낸 사기극이다.
지하철운행에 대한 안전보다는 자신보다 임금을 얼마나 더 받느냐에 배아파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안전사고가 나면 노동자책임으로 전가하는 언론 또한 한몫을 하였다.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시되는 사회풍조에 쓴 웃음만 지었다.

 

연일보도되는 지하철에서의 자살사건을 보라.... 이들은 이러한 두려움과 지하철 공황에 휩싸여 근무를 하고 있다, 올해만해도 몇명의 사람들이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어갔는가... 그리고 1인 승무제를 통해 얼마나 혹독한 운행을 강요받고 있는가? 역무가 편하다고 한번 니기들이 가서 해봐라..... 표 팔아야지... 지하철 운행 관련 모니터링 해야지.... 그리고 시설물 유지/보수해야지.... 또 지하철 관련한 잡무에 시달려야지.... 그런 이들이 한가하게 놀 시간이 있겠는가? 노동현장에서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

궤도연대에서 왜 대구지하철만 이 언론과 대국민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건/대구지하철 참사... 왜 서울도시철도, 지하철은 이러한 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벗이 어디있는가? 돈 몇푼에 분노하는 국민과 시민사회에 난 조롱을 보낸다. 정작 그들의 임금에 대해 살펴보기 바란다는 주문과 함께.... 그들의 임금이 당신보다 많이 받는다면 차라리 당신이 지하철 도시철도 공사시험보고 들어가라..... 유독 왜 서울만 문제 삼냐 이 개새끼들아..... 이 글을 쓰면서 씨발 열받는다. 그들의 월급이 월급이냐 시간외 수당에 잔업 특근으로 연 4000만원 미만 벌어들이는 것 가지고.... 언론기자 니들 그리고 공익 그렇게 부러우면 조롱하지 말고 니기들이 공사에 들어가서 근무해 그렇게 많이 버는것 알면,.... 언론 기자 니 월급명세서 까봐 니 못해도 연봉 5000만우너 이상 벌잖아 그것도 시원한 에어콘 빵빵 나오는데서.... 그리고 언론사 석간신문때 늘 원고탈고하고 술마시는 것 조간되서도 원고 오전까지 탈고하고 점심술먹고 해롱해롱하잖아... 니 그들은 그러면서 같은 노동자들을 이렇게 까냐.... 나 새가슴이라서 니그들 이렇게 내 글에서 조롱해 본다.... 쓰바.... 과자먹은거 울컥할 것같다.

 

얼마나 힘들게 노동하는지 한번 언론 견학단을 만들어 봄이 좋겠다. 이후 기사가 생각난다.... 지하철 사고 자주 잃어난다. 노동자들 턱없이 모자르는 근무환경와 비정규직 증가..... 이게 현실 아닐까?

 

왜 노동자들은 고임금을 받으면 안돼는가?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아프다는 말 하나도 거짓말이 아닌것 같다. 우리 국민과 시민사회의 모습이다. 이후 벌어질 크나큰 문제는 배아픔에 사그러든다. 사고가 나야 정신을 차리니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궤도연대의 파업은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고, 사회적 문제로 붉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당한 파업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고등교육 수준에서 노동자(공돌이 공순이)들의 인식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각인되 그들이 받는 임금(월금이 아닌 1년 총 받는 금액... 일급을 기준한 월급(보편적으로 30일)+각종수당+상여금+잔업수당(특근+시간외근무수당+야간수당))은 과연 얼마나 받아야 하나.... 왜 언론에서 받는 사회이사 평균 연봉 11억에는 무덤덤하는가? 그들이 뛰어나서 그러는가? 뛰어나기는 사기많이 치고 동기와 선배 잡아먹어서 간 위치지.... 아니면 아버지와 어미니 잘 만나 재벌로 등극한 이들이 겠지..... 그들보다 왜 노동자는 못받아야 하는가? 난 잘 모르겠다. 아는이 있으면 누가 좀 가르쳐 주소....

 

궤도연대 파업투쟁을 거울 삶아 이후 철도노조 10월 투쟁에는 위와 같은 문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LG칼텍스 노동조합 투쟁....
진보누리 허영구 칼럼에서 사안에 뭍친 투쟁이 되지 않기를 갈망하는 글을 보아왔다. 그들의 주장하는 글도 보아왔다. 동감이 간다.
난 화학공학을 전공하였기(공부는 안했음... 그래도 서당질 3년이년 풍월을 읍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도 귀동냥으로 들었기에 화학공장의 위험성에서 대해 조금은 안다.) 중화학공업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안다.

언론은 LG칼텍스노동자들을 궤도연대보다 높은 금액인 70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서 그들의 주장을 어불성설이라고 호도하였다. 언론이 또한번의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궤도연대와 다르게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 일반 국민에게 있어 임금의 매력이 궤도연대에 비해 효력을 닿지 못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는 궤도연대보다 한차원 높은 수위로 진행하였다.
40년만의 파업이라고 하니 어떻겠는가? 준비는 당연 철저히 이루어졌을 것이고, 처음하는 파업에서 서울상경투쟁을 주요한 전술로 채택하여 준비하였다. 유효한 전술이었다. 그들이 내걸었던 것 또한 지역발전기금조성, 유해환경에 대한 대책마련 등 지역발전을 내걸었다. 그들의 파업투쟁은 경제투쟁을 넘어 지역발전을 위한 공동체 투쟁 즉 정치파업으로 치닫았다.(이에 대한 의견은 다르겠지만.... 난 공동체 파업이 정치투쟁을 내걸은 주요한 이슈였다고 봄.)

그러나 노동자들의 생명(고용)을 담보로 사측은 그들을 압박하였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들.... 그러나 오늘 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니 현장복귀로 그들의 투쟁이 선회되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임금의 허울이 얼마나 허망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화학공장의 경우 위험물과 유독물질을 취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업재해가 빈번하다. 그러나 이러한 취급을 싼 임금을 들이고자 사측은 비정규직을 고용하여 배치 빈번히 산재사고가 발발하였다. 부디 현장에 복귀하더라도 파업으로 내걸었던 사안 그리고 비정규직 산재사고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40년만의 파업... 정확히 말해 LG칼텍스 노조의 처음 이후 있을지 모르겠지만.... 박수와 연대와 지지를 보낸다.
부디 10년만의 무더위기 배낭을 들고 서울 상경투쟁의 뜨거운 동지애를 잊지말기를..... 위해사업장에서의 하루하루의 고된 노동속에서도 언제나 노동자임을 잃지 말기를바라며....


이렇듯 올해 하투는 많은 생각을 가져다 주게한다.
늘 벌어지는 파업.... 그러나 유독 대공장의 대규모 투쟁에 우린 관심을 갖는다. 그들이 임금을 많이 받아서도 그들이 잘나서도 아니다. 그들이 투쟁이 갖고 있는 사회적 파장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린 이에 머물지 말고 비정규/여성/이주/장애인 노동자들의 투쟁에 더욱더 뜨거운 연대와 지지의 정을 갖자..... 동력이 없어 때론 홀로 때론 연대를 바라는 그들의 글에 우린 한걸음에 달려가 뜨거운 동지애를 느껴봅시다.

 

명동성당의 이주노동자 투쟁에 신심어린 연대를 보내며.... 무더운 하투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끌적여 보았습니다.

 

장기투쟁사업장 여러분 화이팅입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여러분 화이팅 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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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사진 공개] 조선공사투쟁

  • 등록일
    2004/08/08 09:36
  • 수정일
    2004/08/08 09:36
흔히 우리나라 노동운동 역사를 말할 때 20년대 원산 총파업과 40년대 해방이후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 70년대 전태일 그리고 87년 노동자대투쟁 등의 굵직한 '사건'이 큰 흐름이 된다. 여기서 자칫 제대로 부각되고 있지 못한 사건이 60년대 말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투쟁이다. 본공과 비슷한 규모였던 임시공 1,174명 전원을 해고하겠다는 회사에 맞서 보름간 파업(68년)을 벌였던 곳, 이듬해 임금 56.87%인상과 임시공 퇴직금 즉시 지급 등을 내걸고 파업을 했던 곳, 이 69년 파업 때문에 건국 이래 처음으로 노동쟁의조정법 제40조에 따라 긴급조정권이 발동된곳, 바로 대한조선공사다. 당시 전국 해원노조 대한조선공사지부 상무로 노동운동에 첫 발을 내디뎠던 박인상 의원(민주당)을 통해 조선공사 투쟁 미공개 사진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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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보호'에 앞장서는 산림청

  • 등록일
    2004/08/08 09:30
  • 수정일
    2004/08/08 09:30

지난 7월 31일, 휴가길에서 돌아오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 I.C 부근의 간이휴게소에서 목격한 '어이없는' 풍경. 그 옆에 ‘자연보호’라는 글귀까지 있었다면 더욱 가관이었을 듯.

‘2002’라는 숫자로 미루어보아 벌써 2년 동안이나 ‘저 꼴로’ 방치돼 있던 모양인데, 산을 죽여 이룩한 산림청의 ‘자아도취’에 휴가길의 여행객들 혀를 내두를 밖에.

행여나 해양수산부나 수자원공사가 따라배울까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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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애칭....

  • 등록일
    2004/08/07 17:04
  • 수정일
    2004/08/07 17:04

이전 참세상에 써놓았던 글을 올려봅니다.

 

아울러 본의 아니게 이집저집에 써 놓았던 옛글을 뒤적이며 이 공간으로 이전시키느라 본의 아니게 도배를 하여서 진보네 지기님에게 무어라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홈페이지도 없던 놈이 공간을 갖다 보니 욕심이 생겨서 글을 옮겼습니다. 쓴 글중 20%밖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이런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필명에는 나름데로 사연이 있답니다.


간장이라는 별명은 학교를 다닐때 선배, 동기, 후배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간장이라는 건 다름이 아니라 학교에서 귀거하다보니 양말을 자주 빨지않아  발냄새가 무지 심했습니다. 저는 코가 알레르기성 질환으로 인해 코가 그리 민감하지 못하지만 동아리 선후배들은 거의 저의 발냄세  진동에  생난리를  부렸죠...

제 발냄새가 간장다린내와 비슷하다고 해서 생긴 별명입니다.
 
그리고 오타맨은 제가 통신초기에 글을 쓸때 거의 오타가 심해서 생긴 별명  입니다.

 

참세상에 와서 제 필명은 쓰는건 제가 통신초기 사용때 부터 낮익은 것이라  참세상 환경에서의 싯구나 구호를 적기가 뻘줌스럽더군요..

다른 이유는 같이한 동지들이 붙여준 나의 애칭이라 버리기가 쉽지않아  늘 가지고 다닌답니다. 내가 아닌 나와 함께한 다른 누군가가 불러준 나의  또  다른 이름이죠... 늘 이이름을 쓰면서 그들을 생각하고 함께한 즐거운 날들을 회상하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있었기에 저도 존재할 수 있었으니까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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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의 가장 기뻣던 추억....

  • 등록일
    2004/08/07 16:15
  • 수정일
    2004/08/07 16:15
인천을 떠나온지도 언 1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직도 내가 왜 인천에서 서울로 황급히 떠나왔을까라는 생각만 하면 가슴한 구석에 웬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 옵니다. 나는 과연 운동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지도 요즘 헤깔리고 있는 지금 제가 인천에서 제일 행복했던 일들을 써 놓았던 글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제가 인천에 있을때 제일 도움을 많이 받았던 형의 편지또한 올려봅니다.
떠난다는 생각이외에는 하지 못했는데.... 정말 이 죄스러움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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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와서야 승만씨가 인천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배노릇을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섭니다. 그래도 형이라고 찾아주고 했던 사람인데..
가슴이 조금은 아프기도 합니다.
무엇이 이렇게 사람을 떠나게 하는지... 그리고 승만씨는 왜 그렇게 연락도  없이 떠나야 했는지 궁금 하기도 합니다.
 
경험이 일천한 저로서는 한가지만 하기도 벅찹니다.
어떨때는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면서도 그것이 잘 안됩니다.
조만간에 또 만남이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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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뻣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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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보화사업단 인천지부 여름 수련회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 7월 31- 8월 2일까지 강화도 석모도에서 2박 3일이라는 기간동안  진행하였습니다.
 
전체 참석인원은 총 7인정도 참석하여 이런저런 이야기와 술자리를 가지며  휴가를 겸비한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좀 아쉬운것은 원래 계획를 수정하여 진행하였다는 것인데 수정을 불가피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적 요소가 많아 아쉬움을 남기면서 돌아왔습니다.
 
 1. 석모도 도착 하루
그날따라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내리면서 출발부터 수련회가 잘 진행되어질 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출발을 감행하였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갑자기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면서 부터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수련회가는 우리들을 불안케 하였다.. 그러나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은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표를 끊고 석모도에 들어오자 마자 비는 비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소방 호수로 물을 뿜어내듯이 비는 그칠줄 모르게 좔좔하늘에서 내리는게 아닌가.

그리고 우리가 배로 도착한후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이 운행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면 우린 아마도 석모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강화도 이름모를 어느곳에서 수련회를 보냈을 것이다.
 
비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 우리 일행들이 비로 인해 온 몸이 젖어 버릴 지경이 었다. 그러나 어느 자상한 석모도 유원지 식당겸 횟집을 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비를 피해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가 비를 피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집에 들어가서 비를 잠시 피하기로 하였다.
 
시장기가 감돌고 있던 일행들은 김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비도 좔좔 하늘에서 내리고 시장기는 감돌고 요기차 몇잔의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소주와 김밥만 먹기에는 너무나 미안하였다. 그래서 일행중 비상금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명의 사람들이 새우와 쑥 튀김과 인삼대추막걸리를 시켰다.  소주는 우리가 가져온 米ZOZU(경월에서 나온 미색소주.   월-마트에 있던 상점원의 꼬임에 빠져 술보다는 경품을 많이 준다기에 米ZOZU를 구입하였다.  경품은 무려 소주값과 같았다. 한박스를 구입했는데 구입한 가격과 경품가격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미색소주 20병 한box 1만5백원. 경품 1만원 상당 히히^^)를 먹기 시작하였다. 우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해 있기로 하였으나  일정은 여기서 부터 수정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주머니의 자상함과 하늘에서 내린 소방 호수 같은 장대 비에 의해 우린  계획을 수정하였다. 도저히 2박 3일간 이 폭우속에서 텐트를 치고 수련회를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의해....


원래 계획은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2박3일 음주가무를 감행하려 하였으나 비의 상태와 아주머니의 자상함에 우린 계획을 수정하고 민박집을 잡고 석모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지부장님의 민박집 가격흥정.... 유원지의 상인들은 고단수라는 것을  새삼 석모도에서 느낄수 있었다. 비도오고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다는 핑계호  우리 일행들에게 더이상 가격을 내려 받을 수 없다는 민박집 주인의 단호한 태도에 우리 일행들은 그냥 2박 3일 6만원에 흥정을 마치고 민박집을 구했다.


그리고 민박집으로의 출발.....

내평생 이런 집에서 민박하기는 처음이다.(너무 환상적인 집이다. 전통가옥을 개조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의 집이었다.) 6만원에 별장을 빌려 쓰는 기분이  들었다. 방 두개와 거실 그리고 주방이 딸린 집이었다.  독채를 우리가 6만원에 빌렸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나 좋은 집에었다. 그리고 모든 주방기기가 갖추어져 있는 집이었다. 먹을 것만가져가면 모든것이 해결될수 있다.   우린 인천에서 강화도 석모도 까지 무거운 주방기기와 그리고 잠동사니를  가져왔는데 하나로 이집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먹을 것과 음주가무를 할 수 있는  술만 있으면 된다. 전기밥통, 가스레인지, 그릇, 퐁퐁 등 다 가추고 있었다.  한 가지 없는 것은 수저와 젖가락이었다.
 
민박집에서 석모도에 새로난 농수로로 출발....

주인집 아저씨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치러 간다고 하였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을 쳐주는 대신 물고기 몇마리를 매운탕 끌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아저씨를 따라가서 그물 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바다의 짠기운이 감도는 바람을 가르면 우린 검은 하늘에도 굴하지 않고  그물을 쳤다. 서해 바다이지만 정말로 바람의 시원함은 지금도 잊기 못하게 느껴지고 있다. 더위를 날려 버릴 바다의 거센바람들 정말로 생각만해도 시원하다...

그물을 다치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와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나서 우린  본격적으로 술먹기에 들어갔다. 술을 먹고 있는 도중 민박 주인집 할머니가 찾아와  직접 수확한 토마토를 우리에게 건내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우린 직접  수확한 토마토와 숫불에 익혀지는 삽겹살에 술을 물먹듯 위장으로 집어 넣었다.  공기의 상쾌함과 술의 알딸딸함에 취해 우린 석모도 하루를 술과 함께 보냈다....
 
담배가 없어 진석이와 난(간장 오타맨) 폭우를 속에 석모도 시내를 비를 쫄딱 맞아가며 담배를 사러갔다. 정말 비가 많이 내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폭우였다. 그러나 진석이와 나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푹우를 해치면서 담배를 사왔다. 그러나 담배를 사오라는 사람들은 다 잠을 자고 우린 비에 젖은 옷을 벗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후 옷을 갈아입고 담배를 피려는 순간 오면서 뜯어 놓은 담배가 비에 젖어 거의 회생불능 상태가 되어있었다.   어찌 구한 담배인데 식당에 한개 남아 있다는 담배를 애걸복걸하면서 사온 담배인데 제대로 필수  있는 담배가 없다니... 오호통제라.........
 
이에 우 린 이와중에도 담배를 피워야 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중 양호한 담배들을 골라 가스랜지에 구워 놓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 피는 사람의 고충이 이리도 서러울 줄이야...... 흐흐 T.T

 
석모도 이틀째.....
비가 많이 내렸는지 텔레비젼에서는 수재상황이 특보와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석모도를 둘러봐도 비 피해상황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경기도 북부의 비 피해가 아주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우린 이런 와중 한 누군가가 우린 수련회(야유회)온게 아니라 피난 왔다라는 말을 하면서 비피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리고 아침식사 겸 점심 식사........ 곰돌이는 전문 요리사였다. 정말로  요리 솜씨가 가공할 정도로 굉장하였다. 장인의 정신을 엿보이듯 도마에 야채를  넣고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일류 요리가 저리가라 였다.  우린  맛있게 진석이가 요리한 카레와 여러가지 반찬을 가지고 아침겸 점심식사를 마쳤다.  정말로 맛있는 카레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석(곰돌이)  요리강연회를 열어야 겠다. 히히^^
 
비피해가 좀 몸으로 느껴 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지이시면서 밤새 비로인해 떨어진 고추들을 손질하고 쓰러진 고추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으셨다. 지부장님 친구이신 박동호형이 할머니를 도와 우리가 쉬고 있는  동안 고추밭 일을 도와주고 오셨다. 그리고 양손에 탐스러운 만큼 먹음직스러운  수박 2개를 앉고 오시면서 할머니를 도와주었더니  수박을 주셨다고 하시면서  수박을 먹자고 하였다. 우린 해장술을 겸해 수박에 소주한잔을 곁들어 먹었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어제 쳐놓은 그물 하나를 걷어오셨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정말로 고기들이 많았다... 메기, 잉어, 붕어, 강 준치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엉켜 있었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하나하나 끌어내서 고르고 있었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서 꿈뻑꿈뻑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물을 다 겉어내고 난후 아저씨가 가져간 물고기를   골라서  우린 죽어있는 강 준치를 4마리 정도를 골라 매운탕을 끌여 먹었다. 난 알레르기가 있어 매운탕을 못먹어 맛있다는 강 준치 매운탕을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먹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정말로 맛있다는 찬사를 어끼지 않았다. 흐흐 난  민물고기를 못먹는게 한탄스럽기 까지 했다.(민박주인집 아저씨는 정말로 야속하게도 메기 한 마리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민물고기를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기매운탕이 맛있다고 하는데 우린 메기매운탕 대신 붕어와 준치매운탕으로  물고기 맛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휴식과 비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휴식을 하였다.
 휴식을 마치고 난 후 우린 석모도 시내로 다시 나가기로 하였다.  석모도에 들어와서 어찌 조개구이를 먹지 않고 그냥 갈 수 있으랴... 우린 조개를 사러 석모도 시내로 나가보았지만 석모도 시내에서는 오로지 새우젓과 여러종의 젓갈만을  팔고 있을뿐, 조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 사람들은 조개를 갯벌에서 케자고 하였으나 지역주민들이 지형을 모르면서  조개를 케는 것은 의험하다고  말해 우린 배타고 나가기로 하였다. 강화도 선착장에 가면 조개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강화도로 나가보았지만 정말로 조개를 찾기가 영 힘들었다.  여러번 주변을 돌와보았지만 강화도 외포리에는 조개가 없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다시 석모도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착장에서 작게 식당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주변을 잘 둘러보면 있을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금 우린 조개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정말로 조개가 있었다... 여러 종의 조개는 아니었지만 두 종류의 조개가 있었다. 요즘 병균이 심해 조개를 잘 팔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조개를 왜 먹냐고 하기에 우린 조개 구워 먹을 려고 한다고 말을 하면서  조개구이를 할 조개를 2kg, 만원 어치를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후 최후의 만찬....
번개탄에 조개를 지글지글 구우면서 우린 조개구이의 맛에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 하면서 술을 먹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조개구이를 먹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져온 소주 20병이 금새 바닥이 나서 우린 다시금  술찾기에 나섰다. 술을 사러갈 사람들을 정해 술을 사러 시내로 나가려고 하는데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차를 몰고 오셨다.(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나타 나시더니 술이 있다면서 얼마나 필요하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그래 우린 한 4병 정도의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후 술을 받아왔다. 그리고 4병의 술과 함께  우리의 기억은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면 석모도의 이틀을 보냈다.
 
석모도의 마지막 날.....
정말로 비피해가 장난아니었다.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사상자도 많이 났고  재산 피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였다. 강화도 석모도에는 비만 많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비 피해가 심하다는 생각을 못하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후 우린 낮잠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 2시경에 짐을 다챙기고 석모도 시내로 나왔다.(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자가용을 타왔다.) 배를타고 나와 외포리에서 강화도 터미널에 나와 인천 송림동에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데 김포 일대의 논과 밭들이 비에 잠겨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린 이제서야 비가 장난아니게 많이 내렸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난후 노정단 인천지부 야유회는  막을 내렸다....
 
작년 여름의 석모도 햇볕은 쨍쨍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멋있는 섬 풍경과   좋은 술과 많은 이야기들속에서 여름의 추억들을 만들어 내지 않았나 생각이 되어  이글을 뛰어 본다.. 정말 멋있는 한여름을 보냈다... 이 겨울 정말 외롭고  쓸쓸한 지금 여름날이 었다... 여름날의 더움을 추위를 이겨내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하며 이 글을 다시금 편집하여 올려 보았음....
 
내년도 여름엔 멋있는 여행그리고 수련회를 기획하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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