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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5
    수잔드씨 스리랑카엔 잘 도착하셨나요?
    간장 오타맨...
  2. 2008/11/15
    라비 잘 있니... 방글라데시에서 전화가와 궁금해 끌적여 본다.
    간장 오타맨...
  3. 2008/11/15
    “OK? Good~, No no~, 그거 not good”
    간장 오타맨...
  4. 2008/11/15
    세르게이 잘가시요.
    간장 오타맨...
  5. 2008/11/15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간장 오타맨...

수잔드씨 스리랑카엔 잘 도착하셨나요?

  • 등록일
    2008/11/15 23:57
  • 수정일
    2008/11/15 23:57

오늘 헤러드에게 들었습니다. 수잔드씨 집에 잘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구글 지도검색으로 보았던 그 지역에서 그동안 타향살이로 지친놈과 심신을 회복하고 있는지.... 한국에서의 고단하였지만 어려운 일도 지나면 추억이 된다는데.... 편안히 고향의 친구들과 크레켓도 해보고 그 동안 가보지 못했던 지역을 돌아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만을 해봅니다. 올해 말에 떠난다고 하여 함께 하였던 여행이 이별 여행이 되었네요.

상담일과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청주보호소에 가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글귀로 나마 남겨봅니다.

컴퓨터에 들어 있는 수잔드씨 사진을 보며 함께 전북 진안 소태정으로 여름캠프를 떠났고, 지리산 2박 3일 산행도 함께 한 것을 회상해 봅니다. 벌써 시간이 지나 가을 초입구에 들어섰습니다. 엊그제 같은 날들이 손살같이 지나갑니다.

휴가가 끝나고 공장으로 복귀하자 마자 출입국관리소의 공장단속으로 잡혀 강제연행되어 청주보호소에 이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어한이 벙벙했습니다. 늘 불안한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삶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이렇게 이별이 해마다 진행되는군요. 언제 끝 날런지....

주말에 어김없이 인터넷 라디오교육을 위해 오실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는데 공장에 들어와 단속되었다는 소식을 며칠이 지난 후에 들었고, 떨리는 전화음성으로 수잔드 씨임을 알았습니다.

수잔드씨..... 그곳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오늘도 자나드씨가 저번주 타밀타이거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스리랑카의 평화를 이곳에서 염원하고 있습니다. 수잔드씨 지역은 괜찮은지.... 궁금합니다.

잘 있다는 소식이 있으니 괞한 걱정을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한번 스리랑카에 오면 꼭 들리라는 말..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되는 범위에서 꼭 수잔드씨가 있는 지역에 방문할 일이 있을 것이라 기약해 봅니다. 지금 수잔드씨와 친하게 진했던 자나드, 헤러드. 람짓씨가 요리를 만들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수잔드씨의 빈 공간이 보이는 것 같네요.

술을 하지 못하지만 합께 술자리를 흥겹게 만들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물어보던 수잔드씨가 없는 이공간.... 그렇지만 사람이 사는 동네인지라... 얼마 지났다고 수잔드씨의 빈공간을 까먹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나봅니다.

지금 저희는 9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후원받아 진행하는 이주노동자 노동법 교육으로 분주합니다. 그리고 10월 15일 이주민과 지역민이 함께 나누는 문화공연을 위해 정신이 없네요. 이러한 일상을 지내다 보니 떠나간 이를 쉽게 그리고 너무 태연하게 잊어먹고 살아가네요. 미안합니다.

그래서 오늘 친구들에게 편지를 뛰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잘 있냐는 간단한 안부부터 수잔드씨 얼굴이 있는 사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 메일 받아보면 작으나마 우리가 함께 하였던 때의 정취를 스리랑카에서 느껴보세요.

이별도 이제는 지겹네요. 그렇지만 서로 언젠가 간절히 원하면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는 말에 힘을 빌어 언젠가 볼 날에 대해 기약해 봅니다.

수잔드씨 잘 지내세요. 읽을 수는 없지만 나의 마음을 그냥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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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 잘 있니... 방글라데시에서 전화가와 궁금해 끌적여 본다.

  • 등록일
    2008/11/15 23:55
  • 수정일
    2008/11/15 23:55

가냘픈 몸.... 태어날 때부터 인큐베이터에서 있었던 아이 그리고 밝게 자랐고, 방글라데시 말보다 또박또박 한국말을 잘하는 아이이다. 눈도 이쁘게 생겼고 아이들에게 말썽을 부려서 그렇지만 해맑게 자랐다. 아버지가 과로사로 죽은 아이 그래서 목사님과 삼촌들을 보면 아빠라고 서슴없이 말하며 따르던 라비가 이 한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방글라데시 집으로 간단다.

 

오목사님과 어린이집 이진희 선생님이 라비에게 줄 선물이라며, 잘 먹는 미역을 한아름 선물하고 옷가지 몇개와 선물을 준비하였다. 이별을 준비하기에 어린 나이... 마냥 엄마와 아이들과 뛰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인지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라비 안녕이라고 말하지만 라비는 집에 간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의미.... 그리고 한국에서 떠나면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생활을 기록된 사진 몇장으로 밖에 기억하지 못한 라비에게 잘가라는 인사를 하지만, 라비는 신이나 있어 이도 아랑곳하지 않고 떠든다.

 

아이들과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여러장 찍었다. 라비를 보내는 것이 아쉬움보다는 라비가 이공간에서 함께하였던 시간에 대한 애증이며, 사람과 사람이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늘 큰 목소리로 아저씨 삼촌을 외쳤던 라비의 음성을 이제는 듣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니 또 이별하는 구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전에 먼저 귀국한 방글라데시 밈 소식도 들었다.

 

방글라데시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것인지... 자꾸 아프다고 한다. 그래서 라비도 은근슬쩍 걱정이 된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이 외소한 라비.... 방글라데시에서 잘 적응하고 방글라데시인으로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었으면 한다.

 

내일이면 또 함께하였던 이를 보낸다. 며칠전에 환송회를 해주었으니 오늘 고국땅을 그리고 있을 라비의 엄마와 라비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센터에 있으면서 이주동지들과 이별을 늘 준비하며,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이 마음 한켠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달에 한두명 아는 이들을 보내는 것도 그리 썩 기분내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쓸쓸하지만은 않아서 다행이다.

 

온갖 어려움을 몸소 꿋꿋히 버텨왔을 그/녀들의 삶이 고국 땅에 돌아가서도 노동자로 살아왔던 삶을 되세기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생생히 알고 떠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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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Good~, No no~, 그거 not good”

  • 등록일
    2008/11/15 23:54
  • 수정일
    2008/11/15 23:54
"안녕하세요! 오산라디오입니다."


언어 소통의 무게란 게 이런 것이구나. 오산이주노동자들과의 라디오 미디어교육을 시작한 지 벌써 2달여가 다 돼간다. 이젠 첫 시작마저도 일상의 일에 파묻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도대체 이놈의 뇌는 어떻게 된 게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가물가물하단 말이더냐.


첫 시작은 참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라디오 미디어교육을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시작해 관악FM에서 1년여가 넘게 계속해서 교육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주노동자 밴드인 ‘스탑크랙다운’을 통해 이주노동자들과의 친분을 쌓아나간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다 소용이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스탑크랙다운’ 정도의 활동력과 한국어 실력을 가졌겠지, 라고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갔었던 게 가장 큰 실수였다.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다른 것이다. 한국어실력에서부터, 영어실력,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에 대한 의지가 천차만별이다.

 

 

교육 수위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도 모르겠고, 언어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특히 교사의 영어 실력이 콩글리쉬도 빈약하기 때문에, 하나의 기능을 알려주려고 해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듣는 이는 ‘열심히 설명하는데, 일단 고개는 끄덕여줘야지’라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머리 속으로는 그래도 침착하게 여유를 가지고서 참여자가 당황하지 않도록 하자고 다짐해보지만 쉽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첫 수업이 가져다준 당혹감은 다음 차시부터 영어로 된 교안을 만들게 했다. 물론, 배워야 할 기능과 내용에 대한 짤막한 교안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수업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언어소통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다소 쑥스럽지만 비공개되었던 나의 영어실력을 맘껏 뽐내게 되었다.


“자~ 여러분 OK? Good~~, 그 다음엔 Repeat practice하세요~. No no~ 그거 not good이에요~.”


웃음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소통이 원활하게 될 수 있었다. 그것을 어떻게 확신하냐고? 그들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어제와 달리 진실된 마음에서 끄덕이는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결과물 역시 교안에 따라 나왔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이해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그리고 진행하면서 인내와 절망에 대해 긍정하는 법도 다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되었다. 매 차시 변화하는 참여자들. 그와 함께 언어 소통 역시, 그리고 차시별 교육 역시 변화하게 되는….


그래도 제일 기쁠 때가 언제였는 줄 아는가? 처음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일지라도 좋았다. 컴퓨터를 잘 다룰 줄 알던가, 아니면 적어도 한국에 거주한 지 1년 이상은 된 사람들이 왔을 때의 그 기쁨이란…. 언어 장벽이 이렇게까지 높고 두꺼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교육기간이었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참여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고, 드디어 교육의 최종단계인 인터넷 방송을 하게 되었다. 컴퓨터 한 대에 헤드셋으로 하는 것이지만, 대략의 큐 시트도 만들어 실험적으로 방송을 했다.


진행자 1인에, 손님 2인으로 이뤄진 구성의 프로그램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찌나 재밌게 하던지…. 역시 이론적인 것보다 자신들이 직접 만들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아참! 그리고 중간에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참여자 한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편으로 웃기기도 하고, 한 편으로 씁쓸한 이 한국 땅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 회의 시간 : 모두 테이블 앞에 둘러 앉아 방송 소재를 무엇으로 잡을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소재를 이야기하다가, 한국말 가르쳐주는 코너를 만들기로 했다.

강사 : 한국에 와서 처음 배웠었던 것이나 많이 들었었던 말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을 듯 한데, 어떤 말을 많이 배웠고, 많이 들었어요?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 : (정말로 해맑게 웃으면서) 개새끼…. (모두들 뒤로 자지러진다.)


그 분의 말에 거기 있었던 사람 모두 어찌나 웃었던지. 물론, 그것은 그 욕을 한 사람에 대한 비웃음이자 해학을 통한 해소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만남은 참여한 모두에게 즐거움과 가능성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아마도 앞으로 있을 라디오 스튜디오 제작으로 가시화될 듯 하다. 30만원이라는 저예산으로 오산노동자문화센터 3층 방에 인터넷라디오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인데, 목재는 주변에서 구하고, 오디오는 녹색가게에서, 컴퓨터는 쓰던 것을 사용해 만들 계획이다.


그것도 함께 말이다. 이게 완성된다면, 이때까지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오산지역의 이주노동자의 소통을 위한, 그리고 이주노동자와 한국과의 소통을 위한 작은 교두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뭐, 사실 당장은 그런 것들보다 우리의 손으로 작은 스튜디오를 만든다는 것일 꺼다.


안병천 / 오산이주노동자 미디어교육 교사(관악공동체라디오 대표)


오산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미디어교육은 <안녕하세요! 오산라디오입니다>라는 제목의 라디오 미디어교육입니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에 자주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8차례의 미디어교육을 계획하였는데, 현재 6차례까지 진행된 상태입니다.


직접 건물 3층의 조그마한 공간에 라디오 스튜디오를 만들어, 다국어 인터넷라디오 방송을 하는 것을 목표로 두 차례 수업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에서는 센터 홈페이지(http://www.owcc.or.kr/)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직접 만들어가는 인터넷라디오 방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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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잘가시요.

  • 등록일
    2008/11/15 23:53
  • 수정일
    2008/11/15 23:53

고생많고 서러움으로 가득찼던 한국생활을 접고 한 이주노동자가 고국으로 갔다. 새벽 5시 20분 누가 잠을 깨운다. 세르게이씨다. 친구 나 비행기 타고 모스크바에 간다며 인사를 한다.

난 부시시한 얼굴을 비비고 일어나 악수를 청했다.

비록 말은 못알아 듣겠지만.. 친구 잘가... 언제 기회되면 당신이 손짓 발짓 써가며 공기 좋고 고기 많다던 카자흐스탄 호수가에 가서 낚시하고 고기구워먹읍시다.

마음속으로 인사하고 서로 악수를 하였다.


당신이 준 선물 잘 간직하고 일할때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당신의 채취로 가득찬 신발 감사히 받아 작업할때 작업화로 긴요히 쓰겠습니다.

지금쯤 인천국제공항에서 모스크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겠죠.

아 참! 불법이라 목사님이 Green door에 가서 출국하라는 말 잘 들었지요.

벌금 내지 않고 가기를 빌어봅니다.

 

한국 생활 고달펐지만 우리 함께 짧은 만남으로 친구가 된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죠.

 

어제 세르게이씨 맥주한잔 하면서 친구 사진찍자며 함께 필리핀 카사만코 친구들과 인도네시아 모임 대표, 스리랑카 총무 같이 환송해 해주었죠.

 

씁쓸히 보내지 않아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언제 살아있다면 만나지요. 꼭 당신이 말한 그 호수에서 꼭꼭꼭 우리 만나 고기구워 먹읍시다.

그리고 당신이 말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도 만나구요.

 

잘가시요. 세르게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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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

  • 등록일
    2008/11/15 23:52
  • 수정일
    2008/11/15 23:52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외치며 산화해간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이주노동자들 그/녀들의 삶 그 자체가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 상처가 덫나지 않게 나와 센터에 있는 사람들은 사방팔방 해결책을 찾아보기도 한다. 때론 비굴하게 사업주에게 제발 체류비자를 살려달라고, 아니면 강하게 끝까지 가보자고 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달라지는게 없다. 다만, 근로기준법과 산업재해보상법이라는 테두리에서 그/녀들은 한국인과 똑같은 법적 효력을 적용받는다. 그 이외에는 비자의 유/무에 따라 정부가 정해 놓은 합법이주노동자냐 불법이주노동자(미등록이주노동자)냐를 판가름 받게 된다.

 

이도 얼마전 법무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과 동일한 노동조건을 부여했다는 이유로 고용허가제를 없애고, 과거 트레이닝 비자를 통해 입국을 시킨다고 한다. 참 어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과연 그/녀들에게 노동기본권 조차 주어진 상황으로 한국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보자... 지나가는 개도 비웃는 일이다. 그/녀들 대부분이 가슴알이 하는 것은 무엇때문인지나 알고나 있는지....

 

단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으로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오판이다. 그/녀들은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업는 처지에 있다. 노동을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투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그/녀들의 전문적 지식을 활용하기엔 이 땅은 너무 협소하다. 그렇지만 불평불만 없이 노동을 하면서도 기쁘게 일한다. 고국에 돌아가서 금휘환양할 생각으로... 천만에... 자신의 꿈을 키우기 위해... 천만에.... 그/녀들은 일을 원하고 일 속에서 자기 자신을 대접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 꿈은 연수생으로 일하면서 산산히 부셔져 버린다. 아니 처참히 짖니겨 진다. 그래도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싶어한다.

 

정부는 그/녀들을 내 쫒는다. 악순환의 연속.... 이 땅에 들어와 어느정도 숙련노동자가 되면 정부는 장기체류를 빌미 삼아 고국으로 귀국을 종용하거나 단속을 통해 강제추방 시킨다. 중소기업 사장들은 한국인이 더이상 오지 않는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들 마저 없으면 회사가 망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회사 경영(저임음장시간노동)을 위해 불가피 하게 고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숙련노동자이기에 다른 이주노동자를 채용할 경우 그에 따른 시간과 인적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에 불법노동자 고용에 따른 불이익이 있더라도 야간작업만 시켜서라도 고용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정부는 다르다. 장기체류를 이유를 삼아 무작정 단속을 통해 강제출국 시키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 따라 연수생으로 한국 땅에 들어온다. 이 되물림은 끝도 없을 것이다.

 

어제 작년말 산업연수생(E9 비자)인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한 분이 와서 말이 도통 통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하소연 한다. 자신은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장이 가불한 돈을 떼어먹었어요. 어떻게 하면 되요. 그리고 가불한 돈 주지 않고 해고를 시켰다고 찾아온 인도네시아 연수생.... 작년 말에 와서 처음 겪는 그 낮설음 그는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도네시아 대사관, 노동부, 안산 외국인의 집을 찾아가 상담과 구제 방법을 찾으려 다니다. 마지막으로 해결점을 찾기 위해 회사 인근에 위치한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아 왔다.

 

오산에 와서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한다. 그래서 사업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화를 내면서 해고를 했다고 한다.(해고를 하고 통지를 하면 비자의 시한이 그즉시 소멸이 된다. 그리고 출국을 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자 신분이 된다.  참 어이가 없는 현실이다.) 이유는 사업장 무단 이탈과 잘못 계산된 임금을 달라고 사업주에 대한 말을 듣지 않아서 해고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이주노동자는 그나마 형편이 좋은 조건에서 노동을 하였다. 기본금 70만원, 수당 10만원, 밥값 식대 20만원 총 100만원을 받고 일을 하였다. 그러나 그 이주노동자는 무엇보다 회사에서 자신에게 이 새끼야 이 새끼야 하는 말에 대해 처음에는 몰라서 그냥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줄 알았다. 그 말이 욕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들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적대감이 컸던 것 같아... 그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이는 그를 보면서 해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한 말은 당신은 하나도 나쁘지 않다. 그런 욕을 하고 당신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잘못되 있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말을 잊는다. 그는 1998년부터 `1999년 1년간 일본에서 건설노동자로 취업해 있었다고 일본에서 증명하는 건설노동자 근무확인증을 내밀며... 그 곳에서 일할 때도 일본인들에게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하며, 서러움을 호소한다.

 

그를 달래고, 해고가 되어 어떻게 할 것이냐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대표가 와서 통역을 하면서 이야기를 같이 하였다.

 

우리는 그에게 당신은 하나도 잘못한게 없지만.... 당신이 불법체류자(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회사가서 사장에게 당신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싹싹빌어라 말을 하였다. 참으로 해결책이 없어... 하나도 잘못없는 이주노동자에게 비자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내놓은 안이다. 기가 막히지만 그는 불법체류자는 무섭다면 꼭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집에 동생이 아파서 병원비를 내가 벌어 주어야 한단다... 그래서 싹싹빌라고 하였다. 해놓고도 참 잘하는 일인가? 멍하니 한숨만 쉬다가 그래도 어찌하랴... 비자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잘못없는 그에게 회사사장에게 빌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제.... 마음이 하도 개운치 않아 소주를 몇병 먹었다.... 잘하고 있는 짓인지 몰라서... 잘못없는 사람을 죄인 만드는 것 같아 영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리고 아침.... 오목사님이 회사 사장에게 전화기로 한시간 가량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사장에게 인도네세아 이주노동자 해고를 철회해 줄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사장에게 그 잘못없는 이주노동자가 한국 사정을 몰라 잘못을 하였으니 선처를 해달라고 하면서 비위를 맞추며 해고를 철회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말이 잘됐는지.... 고려해 보겠다고 하였다.

 

칼자루를 쥐고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창고 바닥 콘크리트 작업을 하는 날이라 삽자루 질을 하였다... 땀은 비오듯 이마를 적시는데... 마음 한켠 영 개운치가 않고 속이 쓰리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맞이하였다.

그 이주노동자 센터에 찾아와 각서 하나를 건네준다. 그 각서를 잃고 해고가 되지 않았음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각서를 쓰게 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계속 불편해... 지금 그 이주노동자는 불법체류자 신분을 모면해서 기쁘게 웃고 갖지만.... 그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잘못을 했다고 시인하게 하였다는 생각을 해보니... 우리가 무엇을 한 것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구제를 위해서 편법이라고 하지만 참 그 순박한 노동자 그리고 돈 40만원을 포기하게 한 것 같아서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 일로 다들 마음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속이 궁금해진다. 그 숯덩이 같은 속을 어떻게 다스리면서 살까? 마냥 웃고 있는 모습이 아마도 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는 않을까? 생각만 해본다.

 

그리고 늘 단속추방의 공포로 불안감을 떨구지 못하며 살아가는 그/녀들 그리고 그 속에서 죽어간 꽃다운 이주노동자 35명의 열사들.... 그래 그러나 우린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렇듯 망각으로 모든 것을 잊거나 몇번 추도하다 이도 그 싸움에 참여한 이들의 기억으로 밖에 되새김 되질 않고 있다. 그리고 그 투쟁하였던 이들이 하나둘 강제추방되어 나가면 이도 잊혀지는 것이겠구나 생각을 하니 올해 열사력을 사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스럽게 다가온다. 올해는 열사력이 나왔나... 서울에서 멀어지다 보니 이도 챙기지 쉽지않다. 하루하루 걸쳐진 달력 속에 열사들 이름을 보게 되면 마음은 경건해 진다. 너무 많은 이름으로 빼곡히 차있는 날이면 술한잔으로 시름을 달래던 날도 있었는데.... 그렇게 잊고 살아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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