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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5
    이주노동자 친구들을 많이 떠나 보내다.
    간장 오타맨...
  2. 2008/11/15
    평화와 통일을 여는 오산노동자(이주노동자)센터의 기도문
    간장 오타맨...
  3. 2008/11/15
    오산노동자문화센터 이주노동자 문화 활동 현황
    간장 오타맨...
  4. 2008/11/15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규탄 집회를 개최하고 오다.
    간장 오타맨...
  5. 2008/11/15
    이별이란 참 힘들게 다가온다.
    간장 오타맨...

이주노동자 친구들을 많이 떠나 보내다.

  • 등록일
    2008/11/15 23:44
  • 수정일
    2008/11/15 23:44
올들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국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단속추방으로 인해 붙잡히는 것이 불안한 생활이고, 단속강화로 인한 해고로 집에서 단속추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고국행을 선택하였다.

스리랑카 친구들은 E9비자가 만료되자 마자 집으로 갔고, 인도네시아 친구들은 몇몇 집으로 갔다. 그리고 어린이 집에 나오던 방글라데시 라비네 어머니도 단속추방이 강화되자 집으로 갔다. 이렇게 만나자 마자 이별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이주노동자 친구들은 지금 일자리를 구하기 보다 단속추방 추이를 지켜보며 언제 단속이 끝날 것인지 어느 사업장이 단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인지 저울질하며 단속강화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지켜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떠났을 것이다. 그나마 남아 있는 이주노동자 친구들 또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집 근처와 음식을 사기 위해 상점주변만을 거닐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표도 친구들이 많이 집으로 갔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송출비리로 인해 MOU체결이 제재를 받아 귀국하면 내년에 6개월만에 온다는 꿈을 안고 간 비자만료 이주노동자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길을 떠났다. 센터 근처에 살던 이주노동자들 또한 귀국 준비를 하고 있다.

막을 수 없는 길.... 불안해서 더이상 이 땅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귀국길을 서두른다. 오늘 내일 귀국길에 오를 수요또가 왔다. 체불임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였다. 사장은 내일 내일 미루던 것이 지금은 한 4개월을 끌어서 돈을 받지 못하고, 위임장을 써놓고 간다. 고국에 가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많은 않을 것이다. 오늘 친구와 같이 와서 사장이 돈을 주냐고 말을 하는데.... 사장은 돈이 없어 다음에 돈을 준다고 하였다. 20일... 이렇게 시간 끌기를 하면서 지연시킨다. 참으로 기가막히는 노릇이지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는게 미안할 따름이다.

친구 몇몇이 모여 작은환송회를 해주겠지... 부디 인도네시아에 잘 가시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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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을 여는 오산노동자(이주노동자)센터의 기도문

  • 등록일
    2008/11/15 23:44
  • 수정일
    2008/11/15 23:44
평화와 통일을 여는 오산노동자문화(이주노동자)센터의 기도문
 
장창원 목사(오산노동자-이주노동자-문화센터 소장)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요한 5:17)”
 
개인적, 사회적, 국가적 폭력을 극복하고 자본과 국경의 장벽을 넘어서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상을 만들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의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초국적 자본에 경제 침탈은 98년 아시아에 IMF 금융위기에서 확인 하였듯이 국경을 뛰어넘어 자본의 이동을 용이하게 하였다. 초국적 자본의 국경을 넘는 이동은 전세계 노동자 민중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으며,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노동자 민중의 삶을 통재로 삼키려는 위협을 가하고 있다. 또한 초국적 자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금융의 세계화를 급속히 확산시키며, WTO(다자간무역기구)를 통한 초국적 자본의 금융 세계화는 개별 국가의 존립 및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현재적 삶을 역사적으로 규정하자면 로마제국시대라 일컬을 수 있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로마와 같이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경제 질서의 야욕으로 세계를 전쟁과 기아 그리고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2001년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이라크 전쟁, 그리고 아프리카와 제3세계에 대한 군사력을 앞세운 내정간섭, 금융자본을 앞세운 자본 침탈을 서슴없이 전세계에서 벌이고 있다. 이는 노동자 민중의 삶과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되고 있다. IMF경제위기로 우리 사회에서 길거리에 노숙자, 실업자, 청년실업이라는 암울한 기운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렇듯 초국적 자본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미국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인류공동체와 하나님이 주신 노동의 신성함과 정의, 평화, 생명창조와 보존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우리가 이루려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노동자 민중의 지난한 노력과 연대의 차단이기도 하다. 이렇듯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의 인권, 민주, 평등을 위한 사회를 지키려는 건설하려고 하는 하나님 백성들을 미국을 위시한 초국적 자본은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

자본의 이동은 결코 금융만의 이동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본의 이동이 국경을 넘어 인간의 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 이민 100년사를 넘어서 지금 미국, 일본, 유럽, 중국, 호주, 캐나다,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무수히 많은 이주민들이 나가 있다. 이 이주의 역사는 힘든 육체노동을 하기 위한 이주노동의 행렬이기도 하다. 그러나 20여년부터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은 힘든 3D(Dirty, Danger, Difficult)노동이며,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힘든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현재 40만명이 죽음을 불사한 각오로 한국 땅에서의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이 고난의 길에 오산다솜교회는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누가복음 4장 18절)”  
 
1957년 4월 12일 존스 목사의 권유를 받은 후 예장 총회 전도부위원회가 총회 전도부 안에 “예장 산업전도위원회(PCK-Industrial Evangelism Committee)"를 두도록 권유하고, 그해 9월 총회 인준하였다. 이 뒤를 이어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1961년 9월 감리교, 10월 성공회, 1963년 기장, 1965년 구세권이 각각 산업전도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68년 산업전도 과정에서 변화를 거치면서 산업전도는 산업선교로 발전하였으며, 그 안에 도시빈민에 문제에 착목하면서 도시산업선교와 도시빈민선교가 활발히 진행되게 되었다.

이렇듯 예장은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도시, 농촌에서 노동자, 민중, 도시빈민의 현장에서 산업전도의 과정을 거쳐 산업선교, 도시빈민선교활동을 진행하였고, 노동자, 민중, 도시빈민의 삶의 현장에 권리회복과 참인간화의 복음교육을 통한 하나님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고 예장 민중선교연합은 민중교회 전통을 세워가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과정의 선교활동을 진행하였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출발한 오산다솜교회는 1991년부터 2006년도 활동 과정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마음도서실, 공부방, 환경모임 등 도시빈민 선교활동을 통한 삶의 현장에서의 복음교육 전파하였고, 현재는 도시빈민선교와 도시산업선교의 활동의 일환으로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오산노동자문화센터,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주민도서실, 녹색가게,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평화통일 활동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민중교회(일하는예수회)가 근거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에서 구원하라 : 출 3: 7-10” 는 해방과 구속사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 : 누가 4: 18-19”는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요한 5: 17”는 선교적 사명과 “샘솟는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 요한 7:38" 성령의 은혜와 “서로 교제하며 떡을 나누는 : 사도행전 4:32-35” 공동체 생활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고통에서 구원하라(출 3: 7-10)”
 
오산다솜교회가 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주민독서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도시빈민선교, 생명존중, 쉼과 회복을 위한 치유, 평화통일,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노동자권리보장,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 활동을 통하여 민중을 만나고 배우는 민중의 영성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서 오산이주노동자센터 활동을 통하여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네팔, 인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상담, 교육, 조직 대책, 연대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은 물론이고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전혀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출입국의 잘못된 입국정책으로 일 년에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미등록이주노동자들로 방치되고 있다. 현재는 이러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강제단속을 통한 강제출국, 노동조합 합법화, 노동권리, 건강권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에 회원으로 있는 네팔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고통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네팔 이주노동자는 경기도 화성인근 재활용센터에서 하루 11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을 하며, 한국에서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왼쪽 팔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였다. 한국어가 서툴렀고, 산업재해보상법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던 네팔 이주노동자는 알고 있는 한국으로 이주해온 네팔 동네 형에게 부탁하여 산업재해보상을 받게 해달라고 사업주에게 요구를 하였지만 사업주는 치료를 해주었을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되려 임금체불을 통하여 산업재해를 당한 네팔 놈씨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가 네팔 이주노동자와 만나게 된 계기는 2005년도 8월 네팔공동체 일원의 소개로 상담을 접수받게 되면서이다. 사업주는 체불임금은 물론 산업재해보상금까지 지급을 해줄 것을 근로복지공단에 요청하지 않은 상태였고, 네팔 이주노동자는 산업재해 치료만을 받고 있을 뿐이었다. 치료가 종결되었지만 사업주는 장시간노동을 시켰음에도 네팔 이주노동자 산업재해 사고를 회피하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사측과 협의를 하여 합의서를 작성하였지만 사장은 회사 사정이 여의치 않아 파산신청을 내고 네팔 이주노동자에게 체불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리고 산업재해종결심판을 받는 과정에서도 근로계약서를 네팔이주노동자의 동의없이 작성하여 임금을 책정하였다. 이를 번복하기 위해 종결심판관에게 네팔이주노동자의 월임금과 평균임금이 근로기준법에 근거하여 책정하고, 네팔 이주노동자가 제시한 근로시간을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여 산재종결심판은 네팔이주노동자가 제시한 근거로 지급되었다. 그러나 사측은 네팔이주노동자가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간 아픔을 방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되려 이주노동자의 아픔과 마음의 치료를 해주지 못하고 계속해서 체불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의 깊이를 여전히 치유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또한 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싶지만 왼쪽 팔이 없다는 이유로 평생 장애의 아픔을 치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해맑은 미소를 짖고 있지만 그 마음의 응어리를 여전히 치유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일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란 신분과 장애라는 현실이 이를 더욱더 어렵게 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네팔이주노동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논의하며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팔 이주노동자와는 다르게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현재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에서 비싼 의료비를 지급하기 때문에 건강권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고 있다. 큰 병을 얻을 때는 감당되지 않는 병원비 때문에 병원비를 볼모로 병원에 갇혀 하루하루 늘어가는 병원비에 허덕이는 이주노동자들이 경기도 전역에 수없이 산개해 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기 위하여 이들이 주장하는 강제단속저지, 노동권리보장, 노동허가제도입,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전면합법화를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네팔 이주노동자의 자그마한 소망은 노동을 하며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사회적 시선과 장애라는 제약이 그의 삶에 어두움으로 드리워져 있습니다. 네팔 이주노동자가 자신이 삶을 그리고 생활을 스스로 개척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라(누가 4: 18-19)”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옛 속담이 있다. 그러나 현재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기형적 현상으로 한국사회를 위시한 전세계는 20:80 사회로 가진 자와 못 가진 가로 가르고 있다. 이러한 가난은 가정을 파탄시키고 있으며, 사회 붕괴의 초석이 되고 있다. 가난이 부끄러움으로 존재하고, 가난에 의해 기아, 질병, 탈선으로 사회는 계속해서 병에 시달리고 있다. 오산다솜교회는 가난한 자들의 삶과 해방에 참여하는 민중교회의 영성 활동을 통하여 교회와 선교를 통하여 가난의 영성을 참된 가치로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 구현하기 위한 활동으로 공동체 구심으로 다솜교회가 중심이 되어 지역민을 위한 공동체 활동과 아이들을 위한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을 운영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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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노동자문화센터 이주노동자 문화 활동 현황

  • 등록일
    2008/11/15 23:43
  • 수정일
    2008/11/15 23:43

오산노동자문화센터 이주노동자 문화 활동 현황


김승만(오산노동자문화센터 간사)


1. 들어가며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오산지역 노동, 시민, 종교, 사회단체들이 2003년 1월 지역의 노동, 시민, 종교단체들이 모여서 지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지원을 위해 준비모임을 갖고 2003년 9월 28일 노동 상담소를 개소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노동 상담소를 운영하면서 접하게 된 이주노동자들의 실상을 보면서 지원이 절실하고 체계적인 각 나라별 공동체 형성의 필요성을 느끼며 오산노동자문화센터 내에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체계에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와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오산노동자문화센터 사업의 주가 오산이주노동자센터 사업으로 표면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산 화성지역 내에 있어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으로 대별되는 조직화 또한 한국노총 위주의 노동조합이 주가 되어 사회적의제로 형성되어 본격화된 비정규직노동자와 여성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에 속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업구상과 체계를 갖고 연대할 주체형성을 통한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한계가 존재하였다. 이렇다 보니 사업들을 피일차일 미루고 주 사업이 된 이주노동자 조직화와 문화 활동에 매진하였다. 그렇다고 그 사안들에 대한 사업 구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변 일색의 여성단체들을 바꾸기 위해  오산지역 내에서 사회활동을 하거나 과거 노동조합운동을 하였던 여성들과 연계하여 평화통일을 여는 아줌마 준비모임을 결성하여 몇 차례에 회의와 체계를 구성하여 여성단체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주체들의 가정사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2005년 말부터 모임 진행이 어려웠고, 이를 책임지고 나갈 주체가 부재하였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2004년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의 380일간의 농성투쟁을 마치면서 불기 시작한 이주노동자 전국노동조합건설이라는 내용에 부합하면서 본격적인 이주노동자 활동에 주력하게 되었다. 이주노동자들이 기존 평등노조 이주지부를 스스로 해체하고, 주체적 노동조합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정에 대해 내부적으로 주력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지원활동과 이를 조직하기 위한 문화 활동과 일상 활동을 병행하면서 조직화 사업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과거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던 노동 상담소와 연구소들의 맥을 이어나가면서 민주노조운동과 사회변혁운동의 아래로부터 주체형성을 통한 조직화와 교육기관이라는 과제를 갖고 사업들을 구상하였다.


현재 그 사업의 첫 단추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로 대표되는 이주노동자 운동의 형태로 발현되고 있으며, 다양한 운동의 영역을 센터가 소화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업들을 구상 집행하고 있다.


2. 오산이주노동자센터의 문화 활동 사업영역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분기별 사업영역으로 문화영역에서는 각 나라별 체육대회(스리랑카 크리켓 대회, 인도네시아 배구대회, 필리핀 농구 토너먼트), 이주노동자 찾아가는 한글교실, 영화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 인터넷과 컴퓨터 교육, 이주노동자 인터넷 라디오 교육, 이주민과 지역민이 함께 나누는 이주노동자 문화제, 명절전통놀이 등을 2005년 사업으로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할 예정이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오산노동자문화센터가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예산의 확보의 어려움으로 인해 다른 센터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프로젝트로 사업으로 이 재원을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사업보다는 이주노동자 공동체 대표들과 사업의 타당성과 필요성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며 이 사업으로 이주노동자 공동체 강화를 토대로 한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의 조직적 확대를 목표와 과제로 설정하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센터가 3년 사업을 하면서 다양한 영역에서의 프로젝트를 수행한 물적 토대를 형성하여 현재는 경기도, 경기도자원봉사센터, 경기문화재단, 영상미디어센터 Mediact,아름다운재단 해피빈, 한국노동교육원,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오산시 등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선정단체로 선정되어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1) 이주노동자 노동문화제(오산시 지원)

2004년 꽃다지 문화제를 시작으로 매년 오산시 시민사회단체 보조금을 지원받아 이주노동자 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사업을 진해하면서 부족한 점도 많지만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집행하고 있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오산지역 주류의 분위기는 이주노동자 문화제가 노동분야에 너무 치우진다며 거부감을 표현하거나 문화제를 통하여 이주노동자들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여 보다 많은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센터의 경우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이들이 갖고 있는 현실을 알기 위한 이주노동자 문화제로의 발전을 꿈꾸고 있다. 올해도 10월경에 이주노동자들과 지역민이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공유할 문화제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를 8월 휴가 이후 추진할 계획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


2) 영화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경기문화재단 지원)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문화재단으로 경기도 지역 문화 활동에 다양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천민중문화제가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구로에서 디지복(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체명이 디지털복지문화센터)라는 문화단체 또한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문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매년 10월경에 각 영역의 문화 활동에 대한 사업계획서 제출하여 심의를 받아 다음해에 문화제와 문화 활동을 지원해 주고 있으며, 매년 각 영역별 테마사업을 설정하여 지원을 해주고 있다.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작년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제를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였고, 올해는 테마사업 영화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로 떠나는 아시아 여행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화제와 행사 기획 배경에는 다른 센터의 문화사업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인위적으로 한국문화를 주입하거나 이주노동자를 동원의 대상으로 문화행사를 진행하는 것에 반대하며 이주노동자와 지역민이 함께 다문화를 체험하고, 이주노동자들의 문화적 다양성을 함께 체험하기 위하여 준비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을 대할 때면 지역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일단 하위문화라는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극복하고 함께하는 이들에게 이들의 역사,사회, 문화, 정치 현황을 공유할 수 있는 장으로 준비하였다.


현재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인도 영화를 감상하였으며, 덧붙여서 이주노동자들이 고국과 소통할 수 있는 주요한 매체인 인터넷공간에서 라디오를 통한 소통과 연대를 위한 이론 강의를 미디어활동가가 와서 진행하였다. 앞으로도 다양한 영화를 통해 아시아 각국을 직접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3) 이주노동자 인터넷라디오 교육(영상미디어센터 Mediact 지원)

영상미디어센터에서 2005년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영상교육을 진행하였고, 다음해 이주노동자들의 신분적 상황을 고려하여 소통을 위해 매체를 고민하다 인터넷 라디오방송교육을 진행할 생각을 갖고 영상미디어센터 교육팀에게 교육지원을 요청하였다.


현재 대구성서공동체라디오, 울산공동체라디오 등이 활발히 진행하고 있고, 안산지역에서 소출력 라디오 준비모임이 진행되고 있음을 착목하여 소출력 라디오는 아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자국의 소식과 음악, 한국의 상황을 알릴 수 있는 방송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갖고 준비하였다. 그리고 몇 차례의 교육이 진행되었으며, 8월 6일 교육과 함께 인터넷라디오방송을 위한 저예산 스튜디오를 관악 F.M 라디오 팀과 함께 구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소식 그리고 노동조합에서는 전국의 각 나라별 이주노동자들에게 자국과 한국의 상황들을 소통할 수 있고, MP3로 다운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인터넷라디오방송 스튜디오가 준비되면 서서히 각 영역별 인터넷라디오 방송을 확대하고자 한다.


4) 비문해자/이주/장애 여성을 위한 컴퓨터 문해 교육(한국정보문화진흥원 지원)

오산노동자문화센터 협력기관(다솜교회를 중심으로 센터는 다솜 공동체라는 협력구조를 갖고 있다. 다솜 공동체에서는 녹색가게(재활용센터), 지역도서관, 지역아동센터, 알코올 환자클리닉, 저소득 가정 사회복지 핫라인 구축지원, 저소득 노숙자를 위한 신나는 밥집운영, 도시산업/빈민 선교활동, 노동자 지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17년 운영한 저소득 가정을 위한 지역 공부방)에서 지역에서 오산 화성지역 비문해자 노인과 장애여성을 위한 한글교육을 7년간 꾸준한 사업으로 지원하였다 올해는 컴퓨터 문해(文解) 교육 사업이 있어 기자재와 장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 또한 진행하기 위해 센터 내에서 기획하여 사업을 제출하여 매주 화, 금 오전에 한글교육과 컴퓨터 문해(文解)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이주노동자들의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기자재 지원으로 다 나라 이주노동자들이 기존 게임방을 통해 자국의 소식을 접하던 것을 센터를 이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센터가 사랑방으로 자리잡고 정보를 교류하는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을 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마련하여 오산지역에서  문화센터 활동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였다는 것이 성과라 할 수 있다. 


5) 찾아가는 이주노동자 한글교실(경기도자원봉사센터 지원)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언어교실을 작년부터 진행하였다. 작년부터 자원봉사자들 모집하여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현재 국문과 대학원 졸업생으로 구성된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일요일 기초반, 중급반, 병원반으로 나누어 한글을 교육시키고 있다.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한국에 들어온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이주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산업현장에서 안전수칙과 산업재해예방 그리고 산업재해보상법에 대한 구제절차를 지원해주고 있다.

한글교육을 통하여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제공과 지역민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취지를 갖고 운영하고 있다.


6) 이주노동자 체육활동 및 여가활동

각 나라별 공동체를 중심으로 갖가지 체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서남아시아에서 유행하고 있는 크리켓, 인도네시아 축구와 배구, 필리핀 농구 등 각 공동체들이 오산화성용인평택안성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회의를 하여 각종 체육대회를 각 이주공동체별로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 서남아시아 크리켓 토너먼트 대회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공동체 대표인 해러드씨가 주축이 되어 경기남부지역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디아 아이티엔지니어링 등과 함께 토너먼트 대회를 대략 2달간 진행하고 있다.‘


(2) 인도네시아 축구 및 배구 대회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들이 오산에 많이 분포하여 있고, 축구를 중심으로 하여 에봉이 지역내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모임을 구성하고 있고, 인도네시아 공동체 대표는 아셈이 주도하고 있다. 아쎔은 배구를 좋아하여 지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모아 배구대회를 진행하는가? 하면 전국대회 또한 작년 가을에 진행하였다.


(3) 필리핀 농구토너먼트

필리핀 카사마코는 현재 지역에서 강제단속으로 많은 수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단속되어 강제추방 당하였다. 이로 인해 조직화의 필요성을 갖고 올해 8월부터 9울까지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필리핀 이주노동자를 조직화를 위한 방편으로 농구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8월 6일 시작하는 농구대회를 통하여 안으로는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의 단결과 밖으로는 카사마코의 조직 확대를 꽤하기 위한 사업으로 진행한다.


(4) 체육대회 및 여가활동(봄/가을 나들이, 여름캠프)

매년 봄 체육대회를 진행하지만 단속추방정책이 강화된 이후로 이주노동자들의 수가 부쩍 줄었다. 2004년도에는 15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모였으나 다음해에는 50여명 올해는 그수가 반으로 줄어 25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참석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각 나라별 체육행사를 기점으로 다시 체육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봄, 가을 나들이를 통하여 이주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국의 여러지역을 알고 함께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여름캠프는 휴가기간 각 나라별 상점 또는 나이트 클럽, 술집을 맴돌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쉼과 회복을 위한 기회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도 휴가기간을 맞아 전북 진안으로 이주노동자 여름캠프를 떠나고자 한다.

  

4. 사업진행 과정에서의 문제점

사업진행에 있어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목적이 분명히 하여도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사업을 진행하기에 다양한 서류를 구비하고 작성하는 일로 인하여 많은 시간 이주노동자를 지원하는 시간을 많이 빼기고 있다. 이러다 보니 센터에서 거의 먹고 자면서 사업을 수행하게 된다. 회계장부와 사업진행 서류를 챙기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게 소요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역할을 구분하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상담과 프로젝트, 대외사업으로 영역을 나누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주로 서류와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조직화를 위해서는 상담시간을 통하여 진행하고 있다.


정부사업을 진행함에 있어 초기 사업을 구성하는데 있어서도 목적성이 명확하고, 단체가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쉽게 사업을 위한 프로젝트에 매몰될 위험성 또한 전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에 주로 오산이주노동자센터는 사업을 집행하는데 교육사업과 조직화 그리고 이주노동자 주체형성을 위한 사업이 아니면 사업계획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주체형서 그리고 조직화를 위한 행사가 아닌 이상 이벤트 이상의 의미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각 문화영역의 사업을 기획하기를 부탁드린다. 


5. 끝맺으며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오산이주노동자센터를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기초를 다져주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센터를 인수인계하기 위한 사업으로 사업들을 구상 기획하고 있다. 이에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이 한글교실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눈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적 주체가 되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들을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면서 안착시키거나 체계화를 시키기 위한 준비를 함께 병행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산노동자문화센터는 현재 사회적으로 여론화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회적으로 여론화되지 않는 사회적 소수자인 장애, 도시빈민(철거민, 노점상), 동성애자 등의 투쟁을 위한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나름 데로의 꿈과 포부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걸음이 열 검음을 위한 도약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주노동자 사업을 통한 다양한 사업으로의 주체 형성을 통한 확장을 꿈꿔본다. 그리고 다양한 지역내 운동 특히 지역에서의 운동영역의 확대를 통한 지역운동진영의 연대와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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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임금체불 규탄 집회를 개최하고 오다.

  • 등록일
    2008/11/15 23:42
  • 수정일
    2008/11/15 23:42
화성 양감에 위치한 원하청업체인 주인전자에 규탄 집회를 하러 갔다왔다.
작년 7월 필리핀 이주노동자 4명이 주인전자로부터 임금을 받지 못해 오산이주노동자센터로 노동 상담의뢰차 방문하였다.

한달하고도 며칠을 일했는데 주인전자 사장은 밀린 임금을 주지않는다고 하여 센터에 와서 상담을 하고 갔다.
센터에서는 주인전자 과장에게 전화통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밀린임금을 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주인전자 사측은 갖은 이유를 들면서 필리핀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이에 몇차례의 전화연락 계속해서 주겠다는 구도약속만 받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밀린 임금은 받아내지 못하였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과 사업장을 방문하여 약속을 잡고 그날까지 주겠다는 마지막 약속을 하고 왔는데.... 기안이 되었지만 또 주지 않았다. 이에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고소고발하였지만 주인전자는 법대로 하라는 말로 응수하고, 밀린임금을 주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미등록이주노동자 고용에 따른 벌금만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11월 주인전자 규탄을 위한 사측 집회신고서를 제출하였지만 화성경찰서 정보과에서 자신들이 체불임금을 받아 줄테니 집회신고 철회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밀린 체불임금을 받아 준다는 조건으로 집회신고를 철회하였다. 그러나 정보과에서 사측이 아무런 미동도 보이지 않고 법대로 하라고 한다며 난색을 표명하였다. 센터의 바쁜일정으로 계속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법적 대응을 위해 수원지방노동부사무소 근로감독관에서 민사소송을 제기 할 테니 주인전자 관련하여 법적절차를 받을 수 있도록 미해결 사건에 따른 신청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수원지방노동부사무소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라는 이유를 들면서 난색을 표명하였다. 이에 센터에서 보증할 테니 써주라고 요청하였다. 그래도 써주지 않아 으름장 한번 놓았다. 안해주면 수원지방노동부앞에 천막농성을 할테니 알아서 하라고 하였더니 다음날 수원지방노동부 담당 근로감독관이 찾아와 미안하다며 서류를 써줄 수 있다고 하여... 법적 준비를 하였다.

일단 법률구제공단에 전화로 상담 사례에 대한 민사소송을 진행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작년 11월 말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주거지에 낮에 수원출입국관리소에서 25인승 버스 두대를 대동하여 단속을 하였다. 이런 일이 발생하자 인근에 있던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센터로 찾아와 일단 피신을 하고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에 대하여 소식을 나누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주인전자 체불임금 상담을 하였던 메이라는 필리핀 이주여성이 있었다. 수원출입국관리소의 단속으로 잡혔다.

이 사건으로 주변 공장에 있던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필리핀 이주노동자 8명 잡혔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서야 갔던 이들.... 야근을 하고 왔다던 필리핀 이주노동자 여성은 잡히지 않기 위해 커다란 담벼락을 넘어 인근 숲에 들어가 졸린눈을 비비며, 잡히지 말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며 졸린잠을 잤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저녁 11시가 되서야 센터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무서웠다고 말하는 이주 여성은 그래도 잡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변 친구들과 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은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시간이 가고 12월 연말이라 일손도 잡히지 않았고, 프로젝트 보고서 작성과 뒤숭숭한 연말을 보내다. 이제서야 집회를 잡고 주인전자를 찾아간 것이다.

방송차를 틀어 놓고 노래를 시작하니 인근 공장에서 소음이 심하다며 끄라고 하여 화성경찰서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진행하는 것이니 화성경찰서에 의뢰하라고 말하고 노래를 틀어놓았다. 한 2곡의 노래가 끝나갈 무렵 주인전자 전무가 와서 대화를 하자고 하였다. 이에 대화를 하러 들어간 사이 우리가 가져온 유인물을 쩌렁쩌렁 읽으며 주인전자 규탄집회를 하였다. 몇몇 주변에서 일하던 한국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집회를 하냐고 물어 가져온 유인물을 나눠주었다. 그러자 잠시후 나도 체불임금을 받아 줄 수 있냐고,,, 물어 센터에 찾아오면 다 해준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대화가 끝나고 돌아왔다. 이렇게 집회를 해야 합의서를 작성하고 체불임금 각서를 받는다. 미리 주었으면 서로가 편했을 것을 이렇게 자본은 벼랑에 몰려서야 준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이러한 현실로 체불임금을 다 받지 못하고 고국으로 간 사례가 적잖게 만다. 그나마 센터에 찾아와 상담을 진행해야 돈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주인전자 사장은 메이가 집에 갔으니 이 사람 돈을 빼고 주면 안되냐는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였다는 말을 하면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게 21세기 한국의 현실이다.

새해 메이는 갔지만 그래도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일 하나를 끝내 그동안 불편하였던 마음이 조금 개운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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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란 참 힘들게 다가온다.

  • 등록일
    2008/11/15 23:41
  • 수정일
    2008/11/15 23:41
이별을 예정하고 살아가는 것도 참 힘들 일이라는 것이 이 곳에 내려와 느끼게 된다.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 있고, 만남의 시간이 고정되어 있는 이주노동자 그/녀들과의 함께하는 삶은 즐거우면서도 한편 이별이라는 예정된 작별이 있기에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오늘 스리랑카 자나드씨와 만쥴라씨.... 이들은 EPS(Empolyment Permit System)를 받고 한국에 체류기간을 보장받아 아직 기간이 남은 합법이주노동자들이다. 합법과 불법의 차이는 그 기간의 차별은 추후에 말하더라도 이러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고국에서의 불안한 노동의 삶을 연장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다.

만쥴라씨 집에 빚이 2만달러를 져서 한국에 와야만 했고, 동생이 EPS를 통해 들어오면 자신은 내년도 비자만료시점인 1월에 출국한다는 말을 하였다. 자나드씨도 불법사람 무서워요. 집에 가요. 꼭 스리랑카 오면 저희에게 연락주세요. 말하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또 이별을 하는 구나... 시간은 남았지만 정해진 시간 또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막막하기 그지 없다. 이들에게 투쟁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기에 스리랑카에서의 삶과 상황이 이를 뒷받침 하기 어렵게 한다.

송출할때 브로커에게 4천달러를 주고 왔다는 만쥴라씨.... 집에 빚을 이제서야 다 갚았다며 안도하지만, 동생이 EPS로 들어오지 못하면 출국을 안한다고 말한다. 자나드씨 무서워서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워요. 친구들도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그냥 집에 머물고 있어요. 돌아다니지 못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한국에서의 고단한 삶을 털어놓는다.

자신이 가도 꼭 스리랑카에 오면 찾아달라고 안부도 전해준다. 자나드씨는 브로커가 친구와 절친한 사람이라 만쥴라씨보다는 적게 1800달러를 주고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한다. 유럽은 더 많은 돈을 브로커들에게 주어야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하며, 여전히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고 싶은 스리랑카 친구들이 줄서 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먼쥴라씨는 동생의 패스포드를 주면서 아는 사람중에 사장이 있으면 이 사람을 고용해 달라며, 카피해서 전달해 주라는 부탁을 한다.

이렇게 친구들은 이곳에 정착하고 싶지만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방인으로 취급받는다. 한쪽에서는 이주노동자 그/녀들을 위한 문화행사와 사회적약자를 위한 지역민과 함께하는 사업들을 진행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행사와 시간 때우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국제결혼한 가정의 이주민(이주여성)에 대한 지원 또한 다채롭게 되지만 이주민(이주여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그녀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원론적 접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남들이 하는 사업이니 진행해 보자고 그리고 그녀들과 친구하기를 말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따스한 말한마디 전하는 진솔한 친구를 원한다. 이러한 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기 그지 없다. 진행되는 사업이라는 미명으로 교육자와 피교육자라는 대상으로 전락한 사업은 이주여성이 한국에서 정착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게 오늘도 이별이라는 화두가 이주노동자들과의 이야기에서 진행된다. 참 마음이 아린 일이다. 웃고 함께 지속적으로 지내지 못함을 알았지만 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참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스리랑카 사이트에 들어가 노래를 듣거나 소식을 접하면서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갖게될 고국에 대한 향수의 깊이를 가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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