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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07
    8월 끝자락에....
    간장 오타맨...
  2. 2004/08/07
    6월 함성이 저물어 가고 있는 요즘...
    간장 오타맨...
  3. 2004/08/07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간장 오타맨...
  4. 2004/08/07
    "바람이 분다"공연을 봤습니다.
    간장 오타맨...
  5. 2004/08/07
    꽃지고 새우는 계절은 왔건만
    간장 오타맨...

8월 끝자락에....

  • 등록일
    2004/08/07 12:58
  • 수정일
    2004/08/07 12:58

2002년 8월이 어느덧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으로 접어들어가는 계절의 마디에서 올 상반기를 둘러보게 됩니다. 가을로 접어들어가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농민의 심정처럼 노동운동또한 수확이 있는가라는 반문이 듭니다. 수확보다 올해 무엇을 하고 내년에는 보다 알찬 열매를 맺기위한 토양을 다지고  내년을 준비할 수 있을지.... 화전민 화전으로 일구어낸 땅에 한해 두해 붙혀먹다가 토양의 지대가 마모되면 다른 땅으로 이전하는 화전민으로 노동운동이 전락하고 있지는 아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야 뭐 중요하겠습니까? 그러나 결과에서 실패를 거울 삼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이후에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차피 노동자들의 투쟁이야 자본주의라는 적대적 모순속의 계급투쟁은 필연적 투쟁이니까요.
 
초반의 뜨거웠던 철도, 가스, 발전노조의 공공 3사 사유화 저지투쟁 그리고 5월 한통계약직노조의 500일 가까운 투쟁이 마무리 등 노동운동의 굴직한 일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한해의 끝자락으로 치닫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비단 올해 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늘 한해 나이가 먹을수록 저에게는 초조함만을 증폭시킵니다. 정리를 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투쟁이 승리하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저의 초조함은 과연 노동자계급이라는 계급성이 이 시간의 흐름속에 존재할  수 있느냐는 초보적인 고민입니다.



노동운동의 도화선 그리고 민주노조 쟁취투쟁이라는 당위속에서 많은이들이 근로자, 공돌이와 공순이이란 이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인  노동자라는 이름을 되찾았고, 이를 통 해 계급으로 전화하는 진일보를 일구어 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이름들이 차차 노동조합의 당위로서만 노동자 를 지칭할 뿐 이제 사회곳곳을 보면 시민이니 서민이니 하며 노동자들과  민중들을 갈라치기 하고 있습니다. 시민, 서민, 민중들의 근간은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민중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라 할 수 있습니다. 노점상과  농민들은  민중들의 근간일 수 있겠으나 근대화 과정에서 농민이 도시빈민 최하층 노동자로  전락되어진 한국근현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필연적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착취계급인 것입니다.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속에는 노동자라는 계급의 이름은 어느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노동운동이 유일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그러나 운동의 주체와 핵심세력은 노동자계급이라고 보며, 이에 저는 학생운동 시절 맑스-레닌주의에 의거한 활동을 전개하였죠. 지금은 저의 학생때와 다른 또다른 운동이 89년 동구사회주의권 몰락으로 전개되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저는 맑스-레닌주의는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루카치, 그람시, 알튀세르, 네그리, 들뢰즈, 푸코, 하버마스, 까따리 등 다양한 사상가들이 지금 사상계에 대두되어지고 있지만, 그들의 책에는 여전히  관심이 가지 않는 이유는 맑스-레닌주의는 난해한 책이 아닌 혁명적 실천속에 일구어낸 혁명적 이론이기고 20세기 노동자 국가의 가능성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며, 맑스의 이론이 단지 이론이 아니라 현실가능한 실천적 무기였음을 각인하는 노동자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론의 범람을 통해 사상계의 양적팽창을 하였지만, 사상의 질적발전은  이루어지지 못했죠. 변증법적 유물론의 양질의 전화법칙에 의거한 사상계의 발전은 통일성은 이루어내기 어렵다 하더라도 비판적 논쟁의 토양을 저해하고 난해한  학문적 용어와 수사를 통해 노동자들의 책들을 지식인의 전서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행위야 필연적으로 서구유럽 사회주의의 옹호로 동구 사회주의를 몰락을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의 미성숙에서 발생한 결과이지만 결과치고는 혹독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포스트주의와 싸우고 이제는 서구유럽  사민주의 형태로 운동의 정형으로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90년대 들어서면서 포스트주의와 서유럽 사회주의 사상의 조류는 주모순에 대한 접근방식에 대한 인식을 파괴하는 형태를 낳았습니다. 특히 그람시의 시민 사회혁명론과 수동적혁명론에서 들어나듯이 부문의 강화를 통한 진지전을 전개는 기존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세력의 투쟁을  바리케이트전의 기동전에 대한  비판을 잉태하는 모순을 낳았습니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처한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유효한 전술일 수 있으나 장기적 관점과 계급투쟁에서 볼때 계급의 주체를 세우고 사회변혁운동을 다양한 분화를 통해 인식의 일치성을 저해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환경, 여성, 농민운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운동적 관점과 사회내적 모순이라는 필연적 모순은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세련되어집니다. 주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계별운동으로 운동이 그친다면  운동은 비젼보다는 그 당시 화두와 이슈에만 매몰된 반항적 운동일 뿐 대중적 헤게모니는 장악하기 힘듭니다.
 
프랑스의 알튀세르의 경우 그의 사상적 논쟁은 프랑스에서 80년말 정리된  학계의 논지입니다. 그러나 동구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한국사회에서는 알튀세로 이론이 급부상하게 됩니다. 이유는 동구사회주의와 알튀세르와의 대립에서 알튀세르가 취한 소련에 대한 비판의식과 중국공산당의 대장정의 성공으로 인한  마오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특이할 만한 것은 알튀세르는  스탈린=레닌으로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어 맑스로의 복귀를 주장하며  맑스-레닌에 비판의식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애피소드로 알튀세로는 레닌에 의해 주창된  변증법적 유물론을 폐기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맑스의 자본론 2, 3권의 저자가 엥겔스가 저작하였다는 이유로 알튀세르 "자본을 읽자"라는 책에서 2, 3권을 배재 한 상태에서 맑스 자본론 1권을 중심으로 자본을 대두시켰다, 이렇듯  서구사회주의의 경향은 자신들의 토대에 대한 우위와 동구권에 대한 사회주의  이행기에 강한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혁명에 있어 발전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으며, 퇴행만을 가져왔다.
 
지금 프랑스 68혁명을 화두로 신좌파가 급격히 대두되어지고 있으며, 서점에 가면 신좌파의 상상력이라는 책이 학생운동권의 독서목록으로 읽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구좌파라고 속칭하는 이들이 권위만을 내세우고 독재를 행하였는지  난 그 동시대 사람이 아니기에 모르지만, 여러 평가중 동구사회주의권의  사회내적 문제점만을 싸잡아 비판하는 형태는 평가에 있어 협소함과 편협함만 가져온다.


권위와 독재의 타파는 자신의 독선과 오만에 대한 편견의 타파에서  출발하여야 합니다.
 
과연 한국사회의 미래는 있는가?
한국의 상황을 보면 중소사업장, 장기파업투쟁사업장, 비정규, 여성,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첨예하게 대립이 가시화 되어지고 있는 작금의 시기에 어느 누구도 그들의 투쟁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맑스시대의 영국의 노동자계급과  상황은 다르겠지만 여전히 착취와 억압이라는 굴레와 레닌에 의해 주창된 적대적 모순인 자본가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계급인 노동자계급들의 단결은 과연 이땅에  존재하고 있는가? 우리는 1930년대 조선공산당사에서 뼈아픈 경험이 있지 않은가 코민테른에서 조선공산당 지부를 건설하였으나 정파투쟁으로 인하여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조선공산당 지부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는 모습을 보면 계급투쟁속에서 정파들의 분파투쟁이 얼마나 운동을 저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구호는 사상이 아닌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구호이다.  혁명적 실천없이 혁명적 이론이 없다는 다소 당연한  말에  우린 이제 의문을 던져야 할 때가 되었다. 혁명적 이론없이 혁명적 실천이 없다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실천은 없고, 성숙되지 않은 낮은수위의 이론많이 난무하고 있다.
 
80년대 초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라는 대표되는  강철철학과 혁명철학은 이제 노동자들에게 무의미한 존재로 치부되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라는  판단을 해본다.
 
운동도 조금꼬여 버렸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 인가가 아니라 자신의 비판을 통해 무엇이 올바름인지를 인지할 때만이  운동이라는 토양이 양분을 머금을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을 의한 비판, 대안이 없는 공허한 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공간에서 이야기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중요한 것은 말에 대한 책임 그리고 행동이 따르는 구체적 실천을  제시하여 야 한다. 과거의 오류처럼 선언과 오만으로 제단과 다름만을 강조한다면 지금있는 토양도 송두리채 사라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운동은 거대 담론도 어려운 수식어로된 이론지도 아니다. 운동을 하면서 느끼고 고민하고 행동하면서 만들어낸 철두철미한 실천철학이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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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함성이 저물어 가고 있는 요즘...

  • 등록일
    2004/08/07 12:45
  • 수정일
    2004/08/07 12:45

월드컵 광기가 온통 메스컴을 도배하고 있는 지금...

 

어제 MBC TV를 통해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다큐형식 드라마를 보았다.

그 시절이 얼마나 지났을까? 과연 우린 "독재타도" "민주쟁취"를  이루어 냈는가? 문민정부니 민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하며 지난 10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세상은 변한게 하나 없는 지금.... 6월이 더욱더 슬픈 계절로 느껴진다.
 
15년전 시청앞과 서울 도심 곳곳에서 외쳐되었던 "호헌철폐"  "독재타도" 를 외친 수많은 노동자 민중들을 보면서 가슴 쓰라림을 느꼈고, 운동이라는 원칙과 선배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고문에 죽어간 박종철 열사를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시대는 변하지만 역사는 존재하는 법이다.
우린 민주주의를 의해 그리고 노동해방을 위해 87년 거리에서 외쳤던 구호들... 그건 분명 노동자 민중의 분노에찬 함성들이 모여 만들어낸 혁명이였다. 그러나 지금 그 자리엔 월드컵이라는 광기에 의해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 부르는 사람들은 87년의 함성을 알고나 있을까? 애국시민에 대한 호소를 하며 절규하던 군중들의 함성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응원을 보며 대조적으로 비쳐진 시위대와 응원단을 보면서 희비가 교차한다.


6월이 저물어 가는 이 시점에 흐느끼게 한다. 죽은자들인 열사들이 그래서 더 가엾이 느껴진다. 동지여 투쟁하라는 외침은 이제 과거라는 망각의 강에 머물어 더이상 흐르지 못하게 되었기에.... 그래서 더욱 열정이 사그러지고 과거의 거울을 되짚어 보지 못한이들을 보며 안타까움만 느껴진다. 즐겁고 재미있게 살고싶다. 그러나 이 사회는 나에게 즐길권리와 재미 있을 권리마다 박탈시키지 않았던가? 후대에게만은 물려주지 말아야할  오욕을 우린 망각에 파뭍혀 잊혀져 가고 있다.


월드컵이 온국민의 광기로 물들고 있는 6월 나는 부끄러움에 혼자 소스라 치고 있다. 그때 선배들에게 들은 무용담만은 지키고 싶다는 순수함에 취해서 혼자 외사랑을 하고 있다.
 
응원단을 보면서 부러웠다. 6월 그 뜨겁게 달구었던 시청광장이 민주주의 상징이 아닌 응원장소로 전락되어지는 치욕에 분노도 느꼈다. 두가지  잡념이 희비를 교차하였다.


집회를 하고 시청 진격투쟁해도 뚤리지 않던 그 시청광장이 응원인파에게는 허용하는 것을 보며 이치의 모순을 느낀다. 응원과 집회가 다를바  없는데 왜 응원은 허용되고 집회는 불허되는 작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정치사상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대한민국이라는 이 얼어붙어있는 동토에서 나는 또한번의 광기와 애국심에 무력해 진다.
 
4, 5, 6월로 이어지는 노동자 민중투쟁의 계절에 나의 무력함과 투쟁이라 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사는 이들을 보며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과연 4, 5, 6월 길거리에서 체루탄에 눈물을 머금으면 외쳐되던 구호들이 내가 그토록 갈망하는 구호를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외쳐불렀을까?  라는  비아냥을 연거푸 곱씹어 본다.
 
풍류를 즐기기 위해선 우선 모든 만인이 평등하고 두루 잘살아야  잔치구경에 흥이 돋아나지 않을까?
 
6월의 끝자락에 난 혼자.... 월드컵의 광기에 비웃음과 비아냥 거려본다. 월드컵은 나에게 무력감과 패배감만 더욱더 부채질 하였기에....
 
간장 오타맨이....
 
p.s 선배들의 말이 문듯 생각난다. 운동이란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라는 말이..... 나 같은 인식이 부재하고 조급한 이들은 어찌보면  운동이 라는 것을 지탱하기 어렵다고 본다. 늘 대범하고 당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에... 세상에 대한 비아냥과 인식의 삐딱함만 나를  감 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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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 등록일
    2004/08/07 12:38
  • 수정일
    2004/08/07 12:38

루이 알튀세르의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라는 자서전은 알튀세르 인생기라기 보다는 20C 서유렵(최소한 프랑스 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혁명에 대한 열정을 옅볼수 있다.
 
레닌의 러시아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고 이를  맹신적으로 추종하던 서구 유렵 사회주의자들의 고뇌와 혁명에 대한 열정이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책에 백미는 무엇보다도 서유럽 사회주의자들이 겪는  소비에트(평의회)와 겪는 갈등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서유럽 사회주의자들  모색과 사민주의의 팽창을 자세히 보여준다. 


 루이알튀세르는 끝까지 공산당에 나마 자신의 사상을 펼쳤지만,  이론에 대한 우회를 통해 오류를 범하는 큰 실수를 범하였다. 그건 서유럽이 맑스레닌주의에서 맑스주의로 회귀하는 현상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맑스에 의해 명명된 프로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에 대한 몰이해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냉전속에 맹주국이라는 소비에트의 오류를 다른 대안으로 창출하기 위한 방편을 이론의 우회로서 만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들(서유럽 사회주의 사상가)들은 큰 오류를 범하였다.  맑스로의 회귀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이론적 기반을 송두리채 거부하고,  새롭게 대두된 마오주의에 대한 접근을 통해 소비에트의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한 오류는 현재까지 이루어지고 있다.
 
과연 그들의 미래는 무엇을 고민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결론을 유출할수 있을까? 서구 사민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론적 대립속에 맑스는 과연 그들의 마음과 이론에 살아숨쉬고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맑스를 이야기하건 레닌을 이야기하건 현재 자본주의 내재적 모순은  분명히 존재하는 지금.... 미래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지....
 
간장 오타맨이...
 
잡생각이 들어 써봄...
 딜레마,,, 패러다임의 재구성,,,, 맑스로의 회귀,,, 마오주의... 무정부 주의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지금....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맑스가  철학 자 및 사상자들에게 박제가 되어있는 지금 무엇이 올바른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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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공연을 봤습니다.

  • 등록일
    2004/08/07 12:31
  • 수정일
    2004/08/07 12:31

바람이 분다 공연을 보러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 갔습니다.
연세대를 행사차 가본지도 정말 간만인지라 과거 몇몇 생각들이 들더군요.

강경대 열사를 시발로한 열사정국을 뜨겁게 달구던 91년 4월과 5월에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과 신촌로터리에서 가투로 노숙자 아닌 노숙자 생활을 했던 그 당시 기억들이 떠올르더군요.
 
그때 정권에 대한 분노와 맞서 공권력과 치열한 가투를 전개했죠. 그 당시 순수한 마음과 열사들에 대한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당시의 상황이 없었다면 현 위치에서 제가 운동이라는 끈을 부여잡고 있을지....



연세대와 신촌은 화염과 체루탄으로 얼룩진 4월, 5월이 었습니다.  선배들은 후배와 모이기만 하면 현 정세와 정권의 분노 그리고 운동이라는  거대담론을 후배들과 토론하고 설명하고 그러던 치열한 시기.... 살아  있었음 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이 올바른지 명확했죠. 그러나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을까?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연세대 노천극장에 7000여명의 인원이 모여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대부분 386이라 통칭되는 사람들과 20대와 30대들이 주로 공연을 보러왔죠. 그리고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는 노사모 회원들도 가족단위로 전국에서 올라와 공연을 관람하였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노사모 회원들을 보면서 과연 80년대 치열하게 민주주의 쟁취와 민주화를 요구하던 순수한 열정들이 노무현 만들기로 대별되어질  수 있을까?라는 반문을 했습니다. 그 순수함과 열정은 시대를 변화시키고  노동자 민중들이 세상의 주인으로써 떨쳐 일어난 계기가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도 대별되어질 수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그러면서 몇가지 생각이  스쳐 들더군요.
 
운동을 하던 이들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생활 전선으로 회귀하면서 순수함과 열정들이 어느세 사라지고, 자신의 소망을 다른 인물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대리 만족주의가 지배되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어느시에서도 이런 말을 하더군요. 20대 순수한 열정으로 세상을 변혁시키고저 운동을하고, 30대 사회라는 지배구조에 종속되어 무사안일주의로 자신의 대의는 어느세 사라지고 개인의 안위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저 살아가는  일반일들의 모습들을 나타내는 시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비단 어제 오늘 일만은 아닌데 늘 슬프게 하더군요.
 
공연이 시작되고 박은옥씨와 정태춘씨의 노래... 사람들을 개사하여  선사한 노래를 들으면서 벌써 이 노래도 10년이 되었구나하는 생각 92년  종로에서 장마라던가라는 노래... 그래서 10년후의 희망을 이야기하자는  정태춘씨의 무언의 메시지를 잘 전달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연에서 아쉬운 것은 80년대와 90년대 다양한 사상과 정서를 가지고 운동을 하던 이들이 있는데, 이 운동을 한 세대가 대표해 대별할 수 있는지.. 지금 386세대들이 운동공간에서 묵묵히 세상의 변화를 움직이고 있지만 그걸 알고나 있는지.... 그러면서 386이라는 통칭을 통해 무언가? 만 들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은 이해가 가지만, 다만 세대를 팔아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생각이 듭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던데... 강산은 변했지만, 노동자 민중의 삶이 얼마나 변했던가? 10년이 지난 지금 길거리를 전전긍긍하며 세상이라는 울타리에서 이탈된 노숙자들이 역사와 공원이 가득하고, 실업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는 지금.... 과연 동지들이여 세상이 변했고 우린 이 시대를 만들었노라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는 희망이 가득찰 해방의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세상은 변했다지만 아무런것도 변한게  없다. 다만 변했다면 세월이 지나 나이가 먹은 것 이외에는.... 아직도 우린 열사들의 애절한 절규와 동지들에게 부탁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가?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만사가 무르익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고 사는것이 인간이다. 내 아이에게 과연 나는 이 당시 순수한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말할 수 있는지... 아직도 그 기억을 잊지 않았다  말 할 수 있는지..... 열사력을 펴면 열사들은 단번이라고 동지여 투쟁하라는 호통을 치는 모습들을 상상해 본다.
 
이제 바람이 불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바람이... 보수 정치의 정치꾼들의 바람이 아닌 노동자 노동자 민중의 주인으로서의 바람이...
 
노숙자, 실업자들이 없는 나라, 장애인/이주/비정규직/여성노동자가  차별 받지 않는 나라, 정리해고가 없는 나라, 노동자 민중들이 신명나 대동굿을  신명나게 치는 나라 이런 나라를 만들 바람이 불어야 한다.

언제까지 우린 비판적 지지라는 미명과 당선가능성이라는 잦대만으로 머문다면 내아이 후세들에게 역사속에 난 자랑스러웠노라 말 할 수 있는지...
 
세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것을 각인하고, 자신부터 기대와 의지를 저버리고 당당히 나서야 한다.
 
바람이 분다 공연에서 사회자는 바람을 노무현으로 대별시키고자 하였지만 農者天河地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듯 나라의 기본은 노동자임 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은 정치인일뿐 대별될 수 없다.
 
이제 세상을 보는 눈을 떠야할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지를.... 가능성만을 옅보다가는 과거에 쟁취한 모든것들이 일순간에 사라질수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바람이 분다 공연은 추억이 소중한 것을 느끼지 못하고, 현재의 우수운 광경에 분노를 삭히며 돌아왔다. 기대가 산산히 부서져 공연이 끝나고  신촌 어느 통닭집에서 맥주로 마음을 달래며 돌아왔다. 아쉽다기 보다는 아직도라는 과거의 망각이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아픔을 느꼈다.
 
87년 범민주단일후보로 당선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백기완  선생님이 대선후보 사태를 한 80년대의 과오를 왜 그들은 기억하지 못할까?

민중의 당은 우리나라 토양에서 과연 언제 바람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불까? 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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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지고 새우는 계절은 왔건만

  • 등록일
    2004/08/07 12:18
  • 수정일
    2004/08/07 12:18
빼앗길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이육사는 조선의 광복을 목놓아 기다리며 시로서 조국의 봄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조국의 광복은 됐으나, 6.25라는 분단과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친일잔재 청산을 하지 못한 이후 반공이데올로기와 군사쿠테타  정권으로 조국과 노동자 민중은 오욕의 세월을 흘러왔다. 80년 광주 민중혁명으로 각인된 노동자 민중들은 조국의 봄이 무엇인지 각인하는 계기가 부여되었다. 이를 통한 민주화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통한 변혁운동의 르네상스 시대인 1980년대를 맞이하였으며, 급기야 이를 계기로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6.10항쟁으로 이어졌다.


6.10 민중항쟁은 이땅의 민주주의를 구현을 위한 민중들의  항쟁으로써 이를 통해 사회운동에 있어 각계 각층의 진보적 인사들이  사회운동의 토대 발판을 구현하는 계기를 부여하였다. 87노동자대투쟁은 노동운동이라는 강위력한 운동의 도화선으로 작용하여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자본과 정권에 항거하며 어용노조 분쇄와 민주노조 건설 토대를 구축하였다. 87년 노동자대투쟁 후 88년에서 현재까지 수많은  노동해방 열사들의 분신 산화와 구속수배 등 온갖 자본의 탄압에  맞서면서 오로지 민주노조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를 통한 전노협 건설 그리고 민주노총에 이르는 노동운동은 남한운동의 자랑찬 역사로 자리매김되어지고 있으며, 현재도 많은 노동조합들이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현장에서 묵묵히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시대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노동자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과연 노동자들에게 봄은 왔으나 진정한 노동해방의 봄이 왔는가? 아직도 노동현장에서 현장생산성 증대로 인해 과로사...  산재사고.... 정리해고를 통한 고용불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탄압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으며, 이것도 모자랐는지 탄압을 넘어 이제는 정리해고를 통한 생존권을 박탈하고 있다.
 
4월은 누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정말 잔인한 달이다. 봄의 따사로 움에 물놀이다... 소풍이다.... 봄의 기운에 취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생존권의 벼랑에 몰려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이 있음은 상기 하였으면 한다.
 
봄은 왔건만 언제 노동해방 민중해방 인간해방의 봄은 올것인가?

역사의 주체 노동자들은 무산계급으로 늘 자본과 정권에 의해 억압과 착취로 인해 수탈받고 있다. 필연적 계급적 적대적 관계가 결코 화해  할 수 없다라고 레닌이 말했듯이... 현 노정간의 투쟁은 결코 물러서 서는 안될 필연적 적대적 계급투쟁이며, 정경일치의 정치적 투쟁이다.
 
간장 오타맨이...
 
P.S 꽃지고 새순이 나와 온세상이 푸르름으로 가득만들고 있지만  봄 은 아직 가슴속에 오지 않았나 봅니다. 봄의 따스한 햇살처럼 노동자 민중의 가슴에도 푸르른 봄이 올 그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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