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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이문재] 새벽의 맨 앞

  • 등록일
    2004/10/18 22:02
  • 수정일
    2004/10/18 22:02

그대는 이제 마음의 극지까지
몸의 맨 앞에까지 나서려 하지 않는다
무심함이 가장 큰 힘인 줄을 깨달았는지
온통 무심함으로 가득 완강해져
노을 속에서 노을빛으로 붉어지고
어둠 아래에선 어둠으로 어두워진다
이제 나의 발음은 의미를 불러오지 못한다

초승달이 무슨 잘못처럼 떠 있다
이내 사라지고 밤하늘 온통
두드러기처럼 별들 도진다 잔뜩 화난 듯
열꽃처럼 피어난 별들
초승달 있던 자리를 지나
전속력으로 뛰어내린다
새벽 하늘을 할퀸다

 

                                    이문재 <마음의 오지> 중에서...1999, 문학동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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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백기완] 군고구마

  • 등록일
    2004/10/17 22:54
  • 수정일
    2004/10/17 22:54

몸도 마음도 꽁꽁 얼쿠는 눈보라
언듯 감춰오는 한잔 생각을 제끼며
현대재벌본사 앞 지하철층계를
막 내려서려는데 그만 삐끗
빈 도시락통과 함께 요란하게 굴렀다

 

부추겨 주던 낯모를 젊은이
딸네 집 길을 잃은 시골노인으로 알았던가
군고구마 한봉지를 안겨주고 간다
손자녀석들은 맛있다고 야단이고
아내는 사십년만에 처음이라 하고
상채기를 감추려 고개돌린 두 볼엔
군고구마보다 더 뜨거운 인생길이
소리없이 흐른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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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재개발 지구에서의 추억

  • 등록일
    2004/10/17 22:48
  • 수정일
    2004/10/17 22:48

2000/03/13 23:35
 
추억이라 하기에는 좀 그러한 철거촌 아니 재개발 지구에서의 세입자 투쟁에 결합적이 있었다.

 

나는 가슴과 마음 그리고 뼈속으로 스며드는 그들의 아픔을 모르면서 투쟁이라는 말들을 하고 설치고 다녔었다. 그들의 고충과 그리고 철거라는 그들의 자의감에 대한 생각없는 투쟁이라는 당위에 대한 말들... 용역깡패들이 몰려오면 골리앗 사수투쟁을 하라는 말들... 네가 철거민이 아니니까 쉽게 말하고 쉽게 행동하 는 그러한 모습 속에 난.... 철부지 였는지 아니면 투쟁을 쫓아다니는 몰이배 였는지도 모르게 난 당위와 그리고 원칙이라는 가식들을 가지고 그들을 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철거투쟁을 하면서 늘 구호로  임대주택 쟁취!  가수용 단지 건설! 등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너무 아픈 그들의 마음을 정작 보지 못했다.  아니 보려고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단지 투쟁이 좋아서 그들이 싸우니까 노빈학연대이니 뭐니 그런 허울 뿐인 단어에 휩쓸려 모리배 정도로 정착했을 지도...



그들도 가족을 거느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철거민들의 투쟁을 보면서 늘 생각하지만 늘 안묵적으로 그들에게 투사가 되라 아니면 철거투쟁가가 되라는 보이지 않는 압박과 강요들이 그들을 때론 힘들게  때로는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의 철대위분들이 그렇듯이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대부분의 남자의 경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철거지역 사수와 투쟁에 온힘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면 그들의 가정은 점차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니 모아둔 저축통장을 하나둘씩 깨가면서 투쟁을 한다는게  올바르겠군... 그러다 보면 또한 가족이란 울타리에 보호받고 귀여움을  맘껏 받으면서 자라야할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고 죄스러움들이 때론 그들을 힘들게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중학교 고등학교의  자녀를 둔 철대위 분들은 자식들이 학교에서 받는 어려움들....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을 죄여 온다...


그들도 철거민이기 전에 이땅의 국민이요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 땅의 어버이 들이다. 어찌 자식사랑에 지위 고하를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무너져 가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몇푼의 이주비를 받고 철거싸움을 종료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그들이 이주비를 받고 떠나서 철대위가 무너졌다고 분노하는 많은 학우들,, 단지 우리가 철대위분들 이주비 챙겨줄려고 노빈학연대투쟁을 했냐고 푸념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정말 안타까움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히 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푸념과 함께 나는 철거민이 아니면서 왜 그들에게 투쟁만을  왜 쳤을까.. 그들이 늘 그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난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그들이 자식걱정을 할땐 난 골리앗 보수와 철대위 강화를 위한 교육을 하자고 말한 것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겠다..  지금 들어선 정말 한심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투쟁도 어찌보면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보급과 무기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보급이라면 그들이 늘 자식 학비 걱정, 생계걱정, 집걱정 없이 늘 자신들의 주장을 펼수있는 그런 조건들이 구비되었으면 과연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그후가 어떤 무기인가? 무기라고 해서 뭐 사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고 끝까지 자신들의 영구임대 주택쟁취! 가수용단지 건설! 이땅의 노동자 민중 빈민들의 주거권 쟁취라는 더 커다란 내용들의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뭐 지금도 투쟁이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건 나라는  주관에서 너라는  존재가 서로 만나 주관이 아닌 서로 상호관계속에서 만들어내는게 아닌지... 잘 모르지만 그때는 그들의 심정을 아무것도 보지 못 하였다. 싸워주는 그들만 바랬을 뿐...

 

정말 아픔을 함께 가지고 투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함께 나누고 함께 나가는 그러한 모습으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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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추억....

  • 등록일
    2004/10/17 22:34
  • 수정일
    2004/10/17 22:34

2000/07/18 14:11 
 
석모도 도착 하루
그날따라 그동안 내리지 않았던 비가 내리면서 출발부터 수련회가 잘 진행 되어질까라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출발을 감행하였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더니 갑자기 강화터미널에 도착하면서 부터 비는 장대비로 바뀌어 수련회가는 우리들을 불안케 하였다.. 그러나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은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가 표를 끊고 석모도에 들어오자 마자 비는 비가 아니었다. 하늘에서 소방 호수로 물을 뿜어내듯이 비는 그칠줄 모르게 좔좔하늘에서 내였다.

그리고 우리가 배로 도착한후 강화도와 석모도간의 배편이 운행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정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좀 늦게 도착하였다면 우린 아마도 석모도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강화도 이름모를 어느곳에서 수련회를 보냈을 것이다.

 

비가 좀처럼 그치질 않았다. 비가 계속해서 내려 우리 일행들이 비로 인해 온 몸이 젖어 버릴 지경이 었다. 그러나 어느 자상한 석모도 유원지 식당겸 횟집을 하시는 아주머니 한분이 비를 피해 들어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고 있다가 비를 피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그집에 들어가서 비를 잠시 피하기로 하였다.

 

시장기가 감돌고 있던 일행들은 김밥을 안주삼아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비도 좔좔 하늘에서 내리고 시장기는 감돌고 요기차 몇잔의 소주를 먹기로 하였다.


그러나 소주와 김밥만 먹기에는 너무나 미안하였다. 그래서 일행중 비상금을  가지고 있었던 여러명의 사람들이 새우와 쑥 튀김과 인삼대추막걸리를 시켰다.  소주는 우리가 가져온 米ZOSU(경월에서 나온 미색소주.   월-마트에 있던 상점원의 꼬임에 빠져 술보다는 경품을 많이 가져가기로 하고 米ZOSU를 구입하였다.  경품은 무려 소주값과 같았다. 한박스를 구입했는데 구입한 가격과 경품가격이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미색소주 20병 한box 1만5백원. 경품 1만원 상당 히히^^)를 먹기 시작하였다. 우린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비를 피해 있기로 하였으나  일정은 여기서 부터 수정되어지기 시작하였다.



아주머니의 자상함 그리고 비에 의해 우린 계획을 수정하였다.
원래 계획은 석모도 민머루해수욕장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2박3일 음주가무를 감행하려 하였으나 비의 상태와 아주머니의 자상함에 우린 계획을 수정하고 민박집을 잡고 석모도를 차근차근 둘러보기로 계획을 수정하였다.


그리고 지부장님의 민박집 가격흥정.... 유원지의 상인들은 고단수라는 것을  새삼 석모도에서 느낄수 있었다. 비도오고 민박집 구하기도 힘들다는 핑계호  우리 일행들에게 더이상 가격을 내려 받을 수 없다는 민박집 주인의 단호한 태도에 우리 일행들은 그냥 2박 3일 6만원에 흥정을 마치고 민박집을 구했다.

 

그리고 민박집으로의 출발.....
내평생 이런 집에서 민박하기는 처음이다.(너무 환상적인 집이다. 전통가옥을 개조해 겉과 속이 전혀 딴판의 집이었다.) 6만원에 별장을 빌려 쓰는 기분이  들었다. 방 두개와 거실 그리고 주방이 딸린 집이었다.  독채를 우리가 6만원에 빌렸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너무나 좋은 집에었다. 그리고 모든 주방기기가 가추어져 있는 집이었다. 먹을 것만가져가면 모든것이 해결될수 있다.  우린 인천에서 강화도 석모도 까지 무거운 주방기기와 그리고 잠동사니를  가져왔는데 하나로 이집에서는 필요치 않았다. 오로지 먹을 것과 음주가무를 할 수 있는  술만 있으면 된다. 전기밥통, 가스레인지, 그릇, 퐁퐁 등 다 가추고 있었다.  한가지 없는 것은 수저와 젖가락이었다.

 

민박집에서 석모도에 새로난 농수 배수로로의 출발....
주인집 아저씨는 물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치러 간다고 하였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을 쳐주는 대신 물고기 몇마리를 매운탕 끌여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무조건 아저씨를 따라가서 그물 치는 것을 도와주었다.
바다의 짠기운이 감도는 바람을 가르면 우린 검을 하늘에도 굴하지 않고  그물을 쳤다. 서해 바다이지만 정말로 바람의 시원함은 지금도 잊기 못하게 느껴지고 있다. 더위를 날려 버릴 바다의 거센바람들 정말로 생각만해도 시원하다...


그물을 마치고 다시 민박집으로 들어와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나서 우린  본격적으로 술먹기에 들어갔다. 술을 먹고 있는 도중 민박 주인집 할머니가 찾아와  직접 수확한 토마토를 우리에게 건내면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다. 우린 직접  수확한 토마토와 숫불에 익혀지는 삽겹살에 술을 물먹듯 위장으로 집어 넣었다.  공기의 상쾌함과 술의 알딸딸함에 취해 우린 석모도 하루를 술과 함께 보냈다....

 

담배가 없어 진석이와 난(간장 오타맨) 폭우를 속에 석모도 시내를 비를 쫄딱 맞아가며 담배를 사러갔다. 정말 비가 많이 내려 앞이 보이질 않을 정도의  폭우였다. 그러나 진석이와 나는 담배를 피워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푹우를 해치면서 담배를 사왔다. 그러나 담배를 사오라는 사람들은 다 잠을 자고 우린 비에 젖은 옷 을 벗고 샤워실에서 샤워를 한후 옷을 갈아입고 담배를 피려는 순간 오면서 뜯어놓은 담배가 비에 젖어 거의 회생불능 상태가 되어있었다.   어찌 구한 담배인데 식당에 한개 남아 있다는 담배를 애걸복걸하면서 사온 담배인데 제대로 필수  있는 담배가 없다니... 오호통제라.........


이에 우 린 이와중에도 담배를 피워야 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중 양호한 담배들을 골라 가스랜지에 구워 놓고 담배를 피웠다....  담배 피는 사람의 고충이 이리도 서러울 줄이야...... 흐흐 T.T

 

석모도 이틀째.....
비가 많이 내렸는지 텔레비젼에서는 수재상황이 특보와 속보로 나오고 있었다.


석모도를 둘러봐도 비피해상황은 확인할 길이 없었는데, 경기도 북부의 비피해가 아주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우린 이런 와중 한 누군가가 우린 수련회 (야유회)게 아니라 피난 왔다라는 말을 하면서 비피해 상황을 예의 주시하였다.


그리고 아침식사 겸 점심 식사 진석(곰돌이)이는 전문 요리사였다. 정말로  요리 솜씨가 가공할 정도로 굉장하였다. 장인의 정신을 엿보듯이 도마에 야채를  넣고 정성스럽게 썰고 있는 모습이 정말로 일류 요리가 저리가라 였다.  우린  맛있게 진석이가 요리한 카레와 여러가지 반찬을 가지고 아침겸 점심식사를 마쳤다.  점말로 맛있는 카레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진석(곰돌이)  요리강연회를 열어야 겠다. 히히^^

 

비피해가 좀 몸으로 느껴 지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지이시면서 밤새 비로인해 떨어진 고추들을 손질하고 쓰러진 고추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으셨다. 지부장님 친구이신 박동호형이 할머니를 도와 우리가 쉬고 있는  동안 고추밭 일을 도와주고 오셨다. 그리고 양손에 탐스러운 만큼 먹음직스러운  수박 2개를 앉고 오시면서 할머니를 도와주었더니  수박을 주셨다고 하시면서  수박을 먹자고 하였다. 우린 해장술을 겸해 수박에 소주한잔을 곁들어 먹었다.

 

그리고 민박집 주인아저씨는 어제 쳐놓은 그물 하나를 걷어오셨다.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정말로 고기들이 많았다... 메기, 잉어, 붕어, 강 준치 등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그물에 엉켜 있었다. 우린 아저씨와 함께 그물에 걸려있는  고기들을 하나하나   내어서 고르고 있었다.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아서 꿈뻑꿈뻑 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물을 다 겉어내고 난후 아저씨가 가져간 물고기를   고나서  우린 죽어있는 강 준치를 4마리 정도를 골라 매운탕을 끌여 먹었다. 난 알레르기가 있어 매운탕을 못먹어 맛있다는 강 준치 매운탕을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먹은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정말로 맛있다는 찬사를 자아내었다. 흐흐 난 민물고기를  못 먹는게 한탄스럽기 까지 했다.(민박주인집 아저씨는 정말로 야속하게도 메기 한마리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민물고기를 잘 먹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  메기 메운탕이 맛있다고 하는데 우린 메기메운탕 대신 붕어와 준치 메운탕으로 물고기 맛을 달래야 했다....

 

그리고 휴식과 비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휴식을 하였다.
휴식을 마치고 난 후 우린 석모도 시내로 다시 나가기로 하였다.  석모도에 들어와서 어찌 조개구이를 먹지 않고 그냥 갈 수 있으랴... 우린 조개를 사러 석모도 시내로 나가보았지만 석모도 시내에서는 오로지 새우젖과 여러종의 젖갈만을  팔고 있을뿐, 조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 사람들은 조개를 갯벌에서 케자고 하였으나 지역주민들이 지형을 모르면서  조개를 케는 것은 의험하다고  말해 우린 배타고 나가기로 하였다. 강화도 선착장에 가면 조개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가지고 강화도로 나가보았지만 정말로 조개를 찾기가 영 힘들었다.  여러번 주변을 돌와보았지만 강화도 외포리에는 조개가 없었다. 그런데 배를  타고 다시 석모도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선착장에서 작게 식당을 하시는 아주머니가 주변을 잘 둘러보면 있을것이라고 말을 하였다. 그래서 다시금 우린 조개 찾기에  나섰다. 그런데 정말로 조개가 있었다... 여러 종의 조개는 아니었지만 두 종류의 조개가 있었다. 요즘 병균이 심해 조개를 잘 팔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조개를 외 먹냐고 하게에 우린 조개 구워 먹을 려고 한다고 말을 하면서  조개구이를 할 조개를 2kg 만원어치를 사서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식사후 최후의 만찬....
번개탄에 조개를 지글지글 구우면서 우린 조개구이의 맛에 다시금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술을 먹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신나게 조개구이를 먹었다. 그런데   또 문제가 발생하였다.. 가져온 소주 20병이 금새 바닥이 나서 우린 다시금  술찾기에 나섰다. 술을 사러갈 사람들을 정해 술을 사러 시내로 나가려고 하는데  민박 집 주인아저씨가 차를 몰고 오셨다.(술이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운전을 하고 나타나시더니 술이 있다면서 얼마나 필요하냐고 우리에게 물으셨다. 그래 우린 한 4병 정도의 술이 필요하다고 말한 후 술을 받아왔다. 그리고 4병의 술과 함께 우리의 기억은 가물가물 사라지기 시작하면 석모도의 이틀을 보냈다.

 

석모도의 마지막 날.....
정말로 비피해가 장난아니었다. 상당히 심각한 모양이다 사상자도 많이 났고  재산 피해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하였다. 강화도 석모도에는 비만 많이 왔다.  그리고 그렇게 비 피해가 심하다는 생각을 못하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후 우린 낮잠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 2시경에 짐을 다챙기고 석모도 시내로 나왔다.(민박집 주인 아저씨의 자가용을 타왔다.) 배를타고 나와 외포리에서 강화도 터미널에 나와 인천 송림동에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오는데 김포 일대의 논과 밭들이 비에 잠겨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면서 우린 이제서야 비가 장난아니게 많이 내렸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와중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굳건히 놀러갔다 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군요.. 이때부터인가 놀러갈려는 날짜가 잡히면  모두 비가 오는날이 되는 불길한 징후가 보였다.... 흐흐 T.T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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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합법화를 보면서....

  • 등록일
    2004/10/17 22:26
  • 수정일
    2004/10/17 22:26

2000/07/18 14:27 

 

반공 이데올로기로 점절된 척박한 이땅 분단 이후 남한 노동진영은 국가 발전이라는 원동력, 일꾼, 그리고 산업의 주역이라는 온갖 거짓말 속에서도 한국의 노동자들은 묵묵히 일했다.

파쇼 정권에 의한 철저한 노동자 민중 탄압의 역사... 80년 광주항쟁이 준 광주무장혁명으로부터 파생된 노동자 계급에 이론적 무기인 사상을 전파시켜 주었다.

 

약 40년 만의 노동자 대투쟁 현대중공업의 파업투쟁은 47년 남노당 주도의 철도파업 이후 노동자 대투쟁을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구사대와 공권력에 탄압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민주노조 건설 투쟁.... 그건 시대의 암흑을 깨부시고 노동자로 새롭게 거듭나는 희망의 불씨였다.



전국 현장으로 번진 민주노조 건설 투쟁...
70년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라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노동자의 투쟁이 었다.. 그리고 90년들어서의 전노협.. 자랑스런 노동자 투쟁의 상징으로 우뚝 솟았다.

그리고 인천을 도화선으로한 삼민투의 대쵸체로서의 인민노련의 투쟁들..  아마도 인천의 인민노련 투쟁이 없었다면 전국적 노동자 대투쟁의 시발점들의 포문은 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87년  현대중공업의 투쟁을 통한  민주노조 결성의 시발점이 었던 투쟁들이 없었다면은 노동자대투쟁은 아마도 경험과 실험 의의성 만을 부여하는 투쟁으로 끝날을 것이라는 평가를 해본다. 이러한 성과들이 모여 민주노조 투쟁건설 투쟁에 대한 전형을 만들어 주었다.

민주노조 사수투쟁....  열사들의 분신...  동지들의 굳은 다짐들..

민주노조 건설하고 노동해방 쟁취하자!라는 구호 그리고  전노협 건설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중소사업장들의 선도투와 민주노조 투쟁들.... 이러한 과정에 있어었기에 민주노조는 이땅에 척박한 노동현실에서 굳건히 건설되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구사대폭력과 사측의 가진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민주노조의 자랑인 중소사업장들이 기층부터 붕괴어지고 있다. 정말 헌신적으로 투쟁을 하던 중소사업장 민주노조가 기층부터 붕괴.... 인천지역에서 몇몇 중소 사업장의 노동조합이 와해 되고 해체 되어지고 있다.. 아니 많은 중소사업장이 민주노총이 건설 되어졌지만 무기력하게 민주노조 깃발을 내리고 해고와 그리고 실업으로 얼룩져지고 있는 지금....

 

과연 민주노총의 합법성 쟁취가 주는 의미가 무었인지... 뼈속깊이 다가 오지 않는다. 아니 민주노조 건설시기인 90년대 말 보다 무기력한 노동조합의 모습을 보면서 합법성이 진정 노동해방을 앞당기는 길인지 의심이 간다...

 

민주노조 사수투쟁이 민주노총 합법성 쟁취를 위한 투쟁이었는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길이었는지... 의미성을 도저히  내리지 못하겠다. 그 의미가 나에게 실효성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워크 아웃 , 빅딜 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lay-out)로 인해 자신의 삶이 깃든 현장투쟁이 배겨난 정든 현장에서 명예롭게 나오는 것이 아닌 개보다 더 못하게 끌려나오고 있다.

그리고 삶은 철저히 파괴되어지고  노숙자로 전락한 노동자들을 서울역전에  가보면 흔히 볼수 있을 것이다....

 

자랑스런 노동자란 이름이 무색케 할 정도로 너무 비참해 지고 있다. 아니 민주노총은 합법성을 쟁취했지만 노동자 투쟁이 언제부터인가? 합법성만을 쟁취하는 투쟁으로 경제투쟁 일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삼미특수강 고용승계투쟁, 일진중공업 고용승계 투쟁..  그게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이것이 민주노총의 합법화라는 것인가....
기층의 노동자는 하나둘 노동자의 생명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리고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운동 등 사회에 새롭게 명명  되어진 투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조직되지 않은 노동진영에 있어 사각에 놓인 노동자들은 아직도 자본의 억압과 착취의 사슬에 묶여져 있다. 그게 노동진영의 현실이다. 현장의 상황이다.

민주노조가 진정 민주노조인지 의심받는 지금 상황에서 민주노조 합법성이 과연 성대히 축하해 줄 일인가 아니 그전의  불법이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던 전노협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인지... 산별건설을 통한   업종별, 기업별  노조의 장벽을 깨고 굳건한 노동조합을 건설한다는 말은 말뿐으로 들려오는 것은 왜일까....

 

대공장 노동자와 중소사업장의 현장 근무조건, 임금, 투쟁 등 이러한 점들이 또한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

 

대공장 노동조합원은 중소사업장 노동조합원에게 있어서는 어찌보면 귀족으로 대상화 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과연 민주노조의 정신은 민주노총 합법화에 있어 아이러니 다가온다..

대공장이 민주노조인지 의심하는 현실,정신이 의심받는 현재, 민주노조는 어떻게 볼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하겠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빼앗긴 민주노총 합법화 그건 투쟁하는 민주노총이 건설되지 못하고 투쟁하는 산별노조 그리고 노동자간의 기업별 업종별 벽을 허물지 못한다면... 정권이 추구하는 노사정합의주의(코프라티즘)에 빠져진 형식적 민주노조로 전락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생각하면서... 횡수를 마친다.

 

머리와 몸 마음 가슴을 빼앗긴 민주노총 합법화를 바라보면서...

 

인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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