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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그/녀들을 생각하며....

  • 등록일
    2008/11/16 00:18
  • 수정일
    2008/11/16 00:18
사무실에 출근해서 늘 벌어지는 일상들.... 그러나 이전 안산에서 친구집을 방문하였다 세균성 장염에 결린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로이씨가 병이 호전되다가 또 갑자기 위 출혈로 병세가 악화되어 이주노동자센터 상담실장님과 소장님이 급하게 서울병원으로 갔다.

병세가 호전되었다고 어제 소식을 들었는데..... 아픈 것도 문제이지만 미등록이주노동자이기에 건강보험 혜택을 전혀 보장받지 못해 이후 나올 병원비 또한 걱정이다. 안산에서 치료비만 160만원이라고 했는데... 서울병원에서는 얼마가 나올까? 그리고 병세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면 또 얼마의 병원비가 나올지 걱정이 된다. 이에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다 나라 이주노동자들에게 로이씨 병원비 마련을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지만.... 이 비용이 얼마만큼 도움이 될지 걱정이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병원에 입원하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제일 걱정이다. 그렇다고 병원을 차려놓을 수도 없는 실정이다. 한국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제몸을 돌보지 못하거나(전혀 몸을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을 못하면 못한다고 잘하면 왜 빨리 못하냐고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그들.... 과로로 인해 돌연사 하거나 산재를 당해 팔을 잃어버린 이주노동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를 보면서 작업장에서의 산업안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들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특히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의 산재 환자의 경우 산업안전 교육이라는 것을 전혀 받지 못하고, 몸이 아프거나 몸의 일부가 기계에 의해 잘려나가고 난 후 우리 센터에 산재관련 보상이 아닌 체불임금과 퇴직금 구제를 위해 찾아온다.

그나마 이주노동자들은 문제해결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 이문제를 접한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이다. 그래서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간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주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센터에 찾아오는 경우는 산업재해보상은 커녕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지급 건으로 찾아 온다. 미등록이주노동자 산업재해 환자의 경우 사업주가 신고하겠다는 신변의 위협과 언제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단속으로 인해 강제출국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생활하며, 한국에서의 노동자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 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들도 유엔에서는 차별적 용어로서 사용을 금기하고 있는 외국인이라는 단어를 쓴다. 우리는 내국인이라는 말을 쓰지 않듯이 내국인 외국인 국경이라는 경계를 긋고 그 안에 살지 않으면 나와 다른 차별적 인간으로서 규정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2000년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살색이 차별적 용어라는 규정을 하고 살색이라는 단어를 없앨 것을 권고하였듯이 외국인이라는 말은 정부부터 사용을 금기하여야 한다. 정확히 외국인(alien)이 아니라 이주자(Migrants)라고 지칭을 사용하고 올바른 용어로서 통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이주노동자 스스로가 주체로 서면서 독자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이 노동조합의 결성은 2003년 10월부터 2004년 10월 까지 명동성당에서 380일간 단속 추방반대!(Stop! Crack Down)와 이주노동자 노동비자 쟁취, 노동기본권 보장,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 합법화를 내걸고 투쟁을 하였다. 이 투쟁이 전개하게된 계기는 이주노동자들의 불안한 한국의 삶과 법무부 소속 출입국관리소의 인간사냥에 의한 35명 이주노동자 열사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가스총과 그물 총 그리고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인간사냥을 하는 법무부 소속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형태는 한국인이 보았을 때도 무슨 테러 용의자를 검거할때나 사용하는 무기이지만 이 무기들이 이주노동자 단속을 하는데 쓰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은 출입국 관리소 단속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불안감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불안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그 불안감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직도 해결없는 사태... 센터는 과연 이주노동자들의 도피처나 휴식처로 남아야 하는가? 이 물음을 계속해 본다. 이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차후 이주노동자센터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나아가 이주노동자들이 자유롭게 노동할 노동비자가 쟁취되고 합법화를 통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여야 한다. 혹자들은 한국도 어려운 상황인데... 이주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와 한국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오산화성지역의 이주노동자들의 실태 그리고 이를 넘어 경기도 전국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한국인들이 하기 꺼려하는 일.... 구인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들어가 일을 하고 있다.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호소를 한다.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어 구인란에 허덕이고 있다고.... 이런 상황인데도.... 이주노동자들이 마치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사람들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건설현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해서 그렇지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쓰는 이유는 단하나이다. 근면, 성실이 요령을 모르고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 자본가가 돈을 쓰는데 있어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던가? 이런 이유에도 왜 이주노동자들을 많이 확보한 용역센터는 다른 곳에서 더 많이 일자리를 용역센터에 의뢰하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내 부모님처럼 근면 성실을 몸에 달고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없어 고국에서 먼 타향으로 이주한 이주자이며, 노동자이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은 비록 적은 돈이라도 자국에서 노동할 일자리가 있었으면 이 먼 타국에 오지 않았다라 말한다. 비오는 날... 고된 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을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오늘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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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조선족 아저씨의 귀향

  • 등록일
    2008/11/16 00:17
  • 수정일
    2008/11/16 00:17

중국조선족 아저씨.... 1년이 넘게 건설현장의 체불임금으로 인하여 여러 상담소를 거쳤지만 번번히 해결되지 않아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법률원을 찾아 저희 센터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1년이 넘게 걸린 상담.... 한국에서 법을 몰라 물어물어 간곳에서 시원한 답을 듣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무심코 집회장에서 도와달라고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부탁을 하여 법률원에서 저희센터로 상담을 의뢰해서 지난달 14일 만나게 되었다.

 

아내의 죽음에도 체불임금을 받지 못해 떠나지 못했다며 연실 눈시울에 눈물을 흘리는 아저씨....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와 코리아 드림을 꿈꾸었지만 돌아온것은 아내의 지병과 체불임금으로 황폐해진 몸덩어리.... 매일 쑤시는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아내의 지병을 걱정하며 열심히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내의 치료비를 벌기위해... 그리고 자식들의 학자금을 송금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업친데 덥친격이듯 아내는 병으로 쓰려져 아이들의 학자금을 송금하기는 커녕 학업을 중단시켰다. 6개월의 치료로 벌은 돈은 거의 탕진하였다. 그러나 더더욱 문제는 아저씨가 다녔던 회사가 공사 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공사가 중단되면서 일거리가 없어지고, 체불임금이 발생하였다.

 

작년 3월, 4월 밀린 임금 310만원.... 그리고 이 와중에 아내는 지병이 도져 중국에서 작년 4월 15일 사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자식들에게는 돈을 받으면 곧 돌아갈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며 다녔던 현장소장에게 애원을 하며 밀린 체불임금을 줄 것을 요청하였다.

 

소장이 곧 준다는 말을 믿고 기다렸지만 소장은 이내 연락이 되지 않아 노동부에 진정을 넣었다. 그리고 한참을 노동부에서 이리가라 저리가서 도움을 요청하다. 마지막 심정으로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를 찾아갔다고 한다.

 

돈을 못받으면 가지도 못하겠구나 하며, 이를 꽉물고 부인의 곁으로 갈 생각가지 가졌다며 연실 눈물을 흘리는 아저씨.... 아저씨가 가져온 쪽지와 내용을 잃고, 담당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근로감독관은 회사를 수소문하여 강원도 원주로 회사가 이전하였다며, 서울지방노동청 원주지청에 사건을 이감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4일을 기다리고 원주지청에 전화를 걸어 출석요구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5월 29일 원주지청에 함께 동행을 하여 근로감독관을 면담하였다. 아저씨는 온몸을 불불 떨면서 체불임금으로 기간 겪었던 이야기를 근로감독관에게 털어놓았다. 나에게 이야기하였던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야기 내내 눈에서는 굵은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근로감독관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이 사건에 대하여 꼭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해주겠다며 아저씨를 위로하며,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며 아저씨를 위로해 주었다.

 

한국에 와서 이렇게 고마운 말은 처음 듣는다며 연실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는 말과 인사를 하는 아저씨의 모습.... 모든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몰라서 당하고, 이주민이라는 천대로 인해 마음을 술로 달래는 그/녀들은 오늘도 이 아저씨 처럼 상념과 마음의 고통을 간직하며 코리아에서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오늘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왔다.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며 돈이 입금되었다며 드디어 치루지 못한 아내의 장례식을 치루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보낼 수 있게 됐다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다들 이렇게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저번달 평화시장 수선공장에서 10년을 일한 필리핀 이주여성이 폐병을 얻어 그만 기숙사에서 사망하여 고국으로 떠나보냈다. 그리고 천안에서는 이주노동자 한분이 기계에 산재를 당해 사망하였다. 연실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의 소식을 듣지만 여전히 현실은 개선되기는 커녕 기계부품 하나가 없어진 것으로 치부된다.

 

산재를 신청하더라도 위임장을 받는 것도 어렵기에 상담을 통하여 산재승인을 받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렇듯 우리의 이웃이며, 아시아 가족인 이주민은 한국에서 위와 같은 삶을 살아간다. 단지 꿈 나와 같지 않는 삶을 가족과 나라에 주기 위한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바램은 막다른 형태로 치닫지 않으면, 강제추방이라는 불안한 삶에 노출되어있다.

 

지원을 한다거나 도움을 주는 곳, 쉼터를 제공하지만 근본적인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자유로운 이동과 자유로운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이 우리의 이웃이요 친구로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함께해나가면서 차별를 극복하고 차이를 존중하는 사회로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주노동자 그/녀들의 한국에서의 제도 개선은 이주민 지원단체만의 몫이 아닌 우리모두의 과제이며, 아시아로 다가가기 위한 한국사회의 발전모습이며 한국이 아시아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역할이다,

 

오늘 아저씨의 웃음으로 그나마 작은 기쁨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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