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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친구

  • 등록일
    2005/05/16 01:40
  • 수정일
    2005/05/16 01:40
서울에 올라갔다. 일이 있어서 올라가 대학때 동아리방에서 함께 전전긍긍하며 살았던 그를 만났다. 결혼을 해서 어엿한 가장이 된 그를 보니 웬지 부러움이 밀려온다. 선배가 죽어 만나는 자리였지만 그 친구 무심한 놈이라 말하며 연락한번 없다고 타박한다. 그래서 그가 살고 있는 집에 가서 맥주를 얻어먹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 앞으로 이야기들을 하였다. 하나도 변한 것 없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그도 학교때 이상을 아직 접지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30대 초반에 만나고 거의 만나지 못하였다. 학교때는 늘 붙어다니고 놀아줘 하면서 그와 함께 늘 집회현장을 배외하였는데.... 생활이라는 것 그리고 속한 단위라는 것이 같지 않다보니 몇년만에 만나보게 되었다. 그 연락좀하라고 부탁한다. 그러마 약속하였다. 각자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놈의 시간이 발목을 붙잡는다.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였지만 내일도 아침이 조금 걱정되어 다음으로 미루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동안 그와 헤어진 빈공간에 대한 회상을 잠시해보았다. 늘 함께할 것이라 믿었지만 그렇지 못해 서로가 간혹만나 안부를 물었고, 그 결혼식날 연락이와 한번 가보고 몇해 동안 그렇게 만나지 못하였다. 연락처를 알고 있었으나 경황이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도 그렇고 해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지 섭했나 보다. 그래도 서로 연락을 안해도 함께 바라만 봐도 든든한 사람이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음을 진작 알고 있었지만 게으름과 일이라는 핑계거리만 열거하고 전화기에 다이얼 하나 누르지 못한게 못해 미안하게 다가온다. 다음엔 꼭 자주는 아니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손전화라도 해야겠다. 안부도 그렇고... 네트워크 세상이라지만 그는 꼭꼭 숨어사는 사람인지.... 그 네트워크에서 보기도 힘든 위인이다. 그나마 건강해진 모습에 안도하고 뒤돌아서며 웃음지고 돌아섰다. 다음에 꼭 다시만나자라는 약속과 함께....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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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국주의론

  • 등록일
    2005/05/15 12:26
  • 수정일
    2005/05/15 12:26

    레닌의 저술 『제국주의론』(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은 1916년 초엽에 집필되었다.  그런데 사실 레닌의 이 저술은 그 전해에 저술되었으나 레닌의 책보다는 몇 개월 뒤에 출간된 역시 볼셰비키파의 지도자인 부하린(Bukharin)의 『제국주의와 세계경제』(Imperialism and World Economy)와 유사한 점이 많다.  부하린은 제국주의를 일종의 금융자본의 정책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시야를 확대할 때 중요한 것은 모든 특정국가가 제국주의정책을 추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 국가끼리 경쟁하는 점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그는 정책과 이데올로기로서 제국주의를 본후 발전의 특정단계 가운데 세계경제의 한 특징으로서 제국주의를 본다.

 

     레닌은 이것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여 제국주의를 자본주의 발전과정의 한 단계로서 다룬다. 다른 이론가들이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한바 있는 정책들은 물론이고 독점의 대두와 금융자본의 발생등 다른 제 현상도 이 단계의 특징을 이룬다. 즉 모든 것이 제국주의라는 표지하에 포함되는 것이다.

레닌의 이 정의는 다소 혼란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한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라는 보다 좁은 의미로 공통적으로 말해왔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레닌의 팜플릿『제국주의론』은 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이론 자체의 발전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 이유는 이론적 내용에서 홉슨과 힐퍼딩과 부하린과 같은 다른 저자들로부터 주로 끌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지침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이 저술에서 레닌이 취한 기본적인 연구방법은 집필 당시의 자본주의 발전의 일련의 경향을 부각시킨 다음, 각 경향을 실제적인 증거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부르주아지들의 모순을 지적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부르주아지적인 자료를 그 증거로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일련의 경향으로 제시한 한 목록은 다음과 같다. (1) 생산과 자본의 집중은 매우 높은 단계로 발전하여 경제생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독점을 창출한다. (2) 산업자본과 은행 자본의합병, 그리고 이러한 금융자본의 토대 위에서 금융과두체제의 형성 (3) 상품수출과 구별되는 자본수출이 특별한 중요성을 갖는다. (4) 세계를 자기들끼리 분할하는 국제적인 독점자본주의적 기업합동의 형성 .(5) 자본주의 초강대국간에 전세계의 영토적 분할이 완성된다.

 

     이 연구방법의 경우 문제점은 각 경향이 분리되어 묘사되고 그 경향들간의 상호연관성은 논쟁 가운데서 일시적 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론의 이론 정립에서 중요한 것은 이들 경향간의 상호 연관성이다. 즉 위에 열거한 일련의 경향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의 문제에 불과한가 아니면 자체내에 내재하는 경향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동시에 일어난 본질적인 상호연관성이 존재하는가하는 점이다. 위에서 보듯 레닌은 제국주의를 독점자본주의의 단계라고 가능한 한 최대한 간략하게 정의하면서 자본주의의 여타의 제 경향은 독점의 발전 때문에 일어 난다고 암시한다. 그러나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이러한 경향들은 실제로 그 당시의 자본주의의 발전을 지배했을 것이고, 레닌에게 실제적인 문제는 이 상황 속에서 혁명정당을 구축하기 위한 정치전략적인 문제였다.

 

      레닌이 제시한 경향들은 그가 예상한대로 진전되지 않았다. 첫번째 경향인 자본집중의 문제는 훨씬 심화된 반면 마지막 경향인 세계의 영토적 분할은 탈식민지화로 실제적으로 역전되었다.

 

그렇다고 탈식민지화로 제국주의적 지배가 없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변화된 상황을

파악하려면 레닌이 관찰한 제경향의 이면에 작용하는 과정들을 이해해야 한다.   레닌이 제시한 목록 가운데서 처음의 두 경향인 독점의 대두와 금융자본의 대두는 힐퍼딩의 견해를 크게 추종하고 있어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르크스가 예견한대로 점점더 소수의 단위에 생산이 집중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르텔의 경향을 강조한 것은 힐퍼딩과 강조점이 다르다.

 

그는 또한 은행의 독점적 발전과 산업자본에 대한 은행의 지배와 생산에는 전혀 능동적 역할을 하지 않는 화폐자본의 유휴소유자인 금리생활자의 기생적인 지배를 강조한다. 한편 그는 자본수출의 문제에서 자본수출의 필요성은 소수국가에서 자본주의가 너무 성숙하여 자국내의(농업의 후진단계와 대중의 빈곤상태로 인하여) 자본이 더 이상 '유리한' 투자분야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말은 문제가 있다. 농업의 후진단계와 대중의 빈곤 상태가  결코 이윤율 저하의 요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리어 농업의 후진단계는 자본의 평균적인 유기적 구성을 감소 시키고 이윤율을 증가 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리어 홉슨에 의해 제시된 과소소비론적 분석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본수출이 후진지역의 발전을 가속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도와 중국과 같은 후진 지역에 대한 제국주의 침탈을 결과적으로 옹호하는 논리로도 읽힐 수 있음으로써 논란의 여지가 있었던 마르크스의 견해의 반복이다.

 

*참고문헌: Anthony Brewer,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A Critical Survey (염홍철 역)  (사계절, 1984)

자료제공: 장세용 박사, 프랑스근대사 전공, 영남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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