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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은 결코 해결될 수 없다.

  • 등록일
    2005/03/06 09:41
  • 수정일
    2005/03/06 09:41
저작권법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들 오고 간다. 그리고 이에 따른 입법활동과 이에 대한 여러가지 안들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난 저작권법에 대한 생각은 결코 입법활동과 시민사회영역으로서 이슈화 시기를 놓쳐버릴 사안이라 생각하고 있다. 특히 과거 통신질서확립법이라 명명된 정보통신망이용촉진법과 개인정보보호및이용등에관한법률이 통과되고 이에 대한 대응이 미온적이거나 여력이 없어 치닫게 된 사안에서 우리의 저작권법에 대한 대응 시기를 놓쳤다고 본다. 또한 과거 음악비디오물에관한개정법률(맞나, 하여튼 음비개법) 대응 또한 놓치면서 저작물에 대한 보호 및 정보이용에 따른 개인에 대한 자율성 침해성의 여지가 붉어졌으나 이에 발빠른 대응을 놓치고 현재까지 이에 대한 움직임이 정보통신활동가들의 영역이상의 의미로 사회화 되지 못한데서 실종이라 하겠다.(정확히 말해 사회적으로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사회운동진영의 인식의 부재가 크나큰 작용을 하였고, 활동이 대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전문가 영역이다 보니 이에 대한 문제인식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현재 한겨레신문에서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문제성을 실질적으로 발표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형태는 법개정 또는 법에서 문제점에 대한 부분보완정도이다. 이는 현재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이 있는한... 정보통신은 돈벌기 위한 대체산업으로 지속가능발전 수단으로 선전홍보될 것이기에... 그래는 결코 저작권법에 대한 활동은 해결 될 수 없다고 본다. 활동이 입법활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리고 사회적 공론화와 사회화 되어지지 않고선 전문가 영역에서 한치 앞도 진일보 할 수 없음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정보공유 라이센스 운동 또한 개인적 운동으로 그 의미성을 부여한다면 큰 파장력을 지닌 운동이라 보겠다. 그러나 저작물이 개인적 영역으로 궂이 닫혀 있지 않다. 이게 일정정도 사회화 되기 위해서는 기존 저작자중 이에 대한 공감취지를 나타내고 함께 행동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왜 저작물은 곧 생존권이기 때문이다. 저작자에게 있어 숟가락을 나누자고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형성 즉 사회화된 자산에 대한 공유에 따른 숟가락을 놓은 사람에 대한 이후 지속가능한 창작의 수단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정정도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 인간이기에 먹어야 함으로... 그러나 이러하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 미비하다. 개인의 자유로서 맏겨버린다. 신념과 양심....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것인가? 난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고 본다.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되는 선에서 정보공유 라이센스는 확산되어야 한다. 이는 곧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사회적 무츄얼 펀드 조성이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미국이라는 사회를 좋아하지 않지만 Free Software재단과 같은 사회적 비용을 통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정보통신 개발자들과 엔지니어들에 대한 정보공유운동을 위한 정보기술 인프라 및 사회적 아젠다 설정을 위한 노력을 하면서 개인영역에 있는 활동가들을 전체 사회운동의 일원으로 환원시키는 점을 본다는 그 의미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문예운동가에게 있어 정보공유 라이센스는 빚 좋은 개살구이다. 가뜩이나 문예운동에 있어 파업현장을 돌아다니며 투쟁의 연대를 하는 동지들 대부분이 힘들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창작과 관련한 아무런 지원 또한 받지 못한채 대부분 행사비용을 통하여 일정 수입을 갖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위와 같은 정보공유 라이센스 운동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닌다. 그러나 현사회가 자본주의 인지라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들었던 말 "어른들은 막걸리로 배를 채울수 있지만 아이들에게 막걸리를 먹일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2004년 3월 노동미디어 행사장에서 민주노총 문화국장의 말에서 들었다. 이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인식으로 모든 것이 치환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완 그리고 사회적 여론 형성 등이 없는 한 이 의미성은 닫힌 공간에 뭍히고 만다.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현재 그 의미성들은 의미로만 다가가고 있다. 열심히 활동을 하고 정보통신영역을 Public Acess와 정보사회를 위하여 유엔에서는 정보사회를 위한 세계정상회의(WSIS)개 개되고 있지만 이 판도 기술표준과 정보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인프라를 형성할 것인가를 놓고 이야기가 오고 간다고 한다. 돈벌이 수단으로 정보화를 이용하고자 하는 세계나라들의 각축장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한일이다. 이렇듯 정보화를 두고 계급 계층간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유 라이센스 그리고 저작권법 개정.... 전문가 영역으로 치환된 운동에서 그들과 공유할 내용들로 접목된다면 하나둘 그 의미들이 사회내적으로 환기되지 않을까? 저작권법 개정은 정보통신영역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한 결코 쉽지 않은일이다. 그리고 그 운동 영역에서 활동가들이 보다 값진 노력들이 필요하다. 전문적 영역에서 서서히 함께 호흡하는 운동으로 나갔으면 한다.(개인적으로 입법활동이라는 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 의미성은 때론 전술차원에서 유효적절하지만 전략으로 입법활동의 배치는 이제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나를 만들더라도 우리의 손으로 하나둘 쌓아갔으면 한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저작권과 정보공유라이센스는 의미성에 비해 사회화 시킬 가능성은 너무 미비하고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왜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정보화를 미래 성장동력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그를 위한 법안이 무수히 대기하고 있고 하루 자고 잃어나면 듯도 보지 못한 법들이 나와 머리를 내치는 사회이기에.... 한 의미로 무엇을 할 수 없다. 다만, 이전 전자정부에 대한 아젠다 셋팅을 통한 이후 예측하고 예비가능한 활동들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를 하였다. 그러기에... 너무 정보통신영역의 용어와 활동은 옆에서 비켜난 이에겐 어려운 전문운동이다. 간장 오타맨이... P.S 잘 모르는 이로서 뻘소리를 써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대중과 어떻게 호흡할 것인가? 지금도 열심히 정보통신운동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조금 더 분발하여 대중과 함께 한걸음 두걸음 발맞춰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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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총력투쟁은 과연 가능한가?

  • 등록일
    2005/03/04 17:48
  • 수정일
    2005/03/04 17:48
4월 총력투쟁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이 가시화 되려나.... 전노투는 3월 12일 총력투쟁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하려나.... 각 조직들은 민주노총 사회적교섭안 분쇄를 위한 움직임을 투쟁으로 응축시키기 위한 움직임으로 부산한 것 같다. 그러나 투쟁을 이끌고 현장에서 살을 파고드는 추위를 이겨내며 투쟁을 이끌고 있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장기투쟁사업장,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삶은 결코 화사하지 않다. 꽃망울은 겨울 추위를 이겨낸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꽃망울로 살며시 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내 주변 그리고 이 땅의 노동자에게는 늘 봄은 동경의 대상이요. 봄은 해방을 향한 몸짓으로만 갈구하고 있는 현실.... 올해도 2004년과 같이 노동현장의 삶은 죽음 또는 자신의 몸을 산화하여 투쟁을 이끌고자 하는 동지들의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슬픈 현실이다.


아~~~ 대공장연대 깃발과 동맹파업의 그 힘찬 깃발은 어디로 숨었단 말인가? 아쉽기보다 내가 서 있는 동안 운동이라는 것을 무엇을 위해 진행하였는지 의문이 든다. 아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 스스로 자책해 본다.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은 주장과 내용을 갖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투쟁에 대한 연대는 먼데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소한 일상의 영역이 투쟁의 영역으로 자리매김되어져 삶과 환경 거대한 담론들만이 난무하는 투쟁에 인간은 홀로 외로이 싸워야할 대상으로 전락하지는 않았는지... 노동자들은 역사의 주체와 생산의 주체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고, 자본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따라 움직이는 문제들에 대한 소소한 저항을 조직하는 투쟁만이 대의가 되어 지지하고 투쟁되는 현상.... 노동자 투쟁이라는 대의를 내걸고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퇴보한 운동으로 치부되는 현실.... 그러나 사람이 죽어나가거나 길거리로 내밀어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 능력과 실력 그리고 공부한 것이 삶의 척도로 자리매김된 현실에서 인간은 어떠한 존재일까? 노동자는 어떠한 위치에 놓여야 할 것인가? 운동이 과거의 활동과 머리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투쟁은 과연 무엇을 지향하기 위한 몸부림이며 실천일까? 활동가들을 조직하기 위해 연실 자신의 몸을 혹사시켜가며 투쟁을 조직해야 할 조직활동가들은 어떠한 고민에서 노동자들을 추동하고 있을까? 궁금증만 증폭되어져 간다. 문건과 사업이 정형화된 틀에서 잘 짜여진 문서로 대체되어진 현실에서 우린 서로간의 연대감은 무엇으로 치환시킬 것인가? 정보화 전국의 노동자들을 하나로 묶는 주요한 도구로서 작용하였음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보화의 장점에 뭍혀 단점으로 된 익명성이 왜곡으로 그 가능성들을 점점 희미해져가는 과정.... 조직을 비판하거나 투쟁을 할때 있어 이견이 있어도 제대로된 토론보다는 입장이 난무하고 상호 비방으로 온통 도배된 자유게시판과 속보게시판을 보면서 가슴을 쓰려내려가던 기억이 지금 현실이다. 하나가 되도 모자란 현실에서 우린 둘도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갈라졌다. 입장은 투쟁을 더 명확히 실천하기 위한 차이임에도 우리는 차이와 차별을 구분못하고 차별로만 모든 사안으로 치부하거나 몰아간다. 서로가 분명 차이가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곳에서는 자신의 주장이 유일한 대안인양 호들감 떨며 추진하는 모습에서 노동운동의 그늘진 단면을 본다. 노동자 깃발은 사라지고 현장에서의 입장이 다르다는 차별만이 난무하는 내용에서 우리는 과연 노동자 민중에 대한 입장은 견지하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않을 수 없다. 한원CC,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 기아 사내하청노조 등등 무수한 비정규직 장기투쟁사업장들은 우리내 모습이다. 남의 일이 아님에도 남의 집 불구경 하듯 관망하는 현재의 모습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아~~ 조금 좋은 이야기를 하며 낙관주의자가 되고자 하지만 이놈의 가슴은 담는 그릇이 좁아 늘 초조불안감에 휩싸여 회색의 덫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무엇이 입장인지 원칙인지 내 머리는 이내 혼통하고 있다. 그렇다고 탈출구가 보이지도 않는다. 앞을 보고 옆을 보고 뒤를 돌아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답답함과 안타까움... 투쟁이 끝자락에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만 증폭되어져 간다. 투쟁하는 동지들이 희망이라는 말을 난 하고 싶다. 그러나 그 희망의 꽃망울이 오늘 처럼 하나둘 꺾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 참담한데... 그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투쟁으로 자본가들에게 타격을 입힌다고 칼날을 세우며 결의를 하지만 우리내 힘은 턱없이 부족하다. 돈문제로 조합원의 흔들림을 추수리기 힘든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자신의 목숨을 동지들에게 헌사하여 투쟁을 기치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현실.... 이 개같은 현실이 서글프기 그지 없다. 운동도 꼬여버리고 세상도 변했다 하지만.... 이 변화는 우리내 무관심... 노동운동이 주요한 운동이지만 변화된 현 지형의 슬픈 자화상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화두는 이제 필요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 또한 이제 필요없다. 다시금 강철의 시대를 위해 새롭게 단련시켜야 하는 암흑시기이다. 이 시기 지나고 나면 굳건한 강철군화의 큰 울림이 일치단결된 모습으로 하나둘 보여졌으면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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