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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대를

  • 등록일
    2019/05/22 06:16
  • 수정일
    2019/05/22 06:16

빈곤과 인신매매혼으로 이주한 이주여성 그리고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필요한 시기이다.

오산은 평택이 인접한 지역이라 미군에 의한 성폭력과 성산업이라는 구조에서 일상폭력에 노출되어있다.
필리핀 이주여성의 경우 엔터테이먼트 비자(E-6)로 입국하여 미군들이 다니는 클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엔터테이먼트 비자로 입국한 이주여성은 공연을 목적으로 입국하였지만 클럽에 종사하는 이주여성은 노예계약서와 같은 계약을 맺고 한국이나 여러 나라에 입국하여 클럽에서 종사하고 있다.

에이전트 계약서를 들어다보면 한국에서 생활하기란 어려운 조건에 취해 있다. 대부분의 여성이 한국에서 받는 임금과 다르게 필리핀에서 에이전시를 통하여 300달러로 계약을 필리핀에서 맺고 한국에 입국하면 또 다른 에이전시가 취업을 시켜준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 에이전시에게 100달러를 의무적으로 소개비로 매월 지급하고 한국에서 받은 금액에서 500달러 정도이다. 현재 클럽에서 150만원 계약을 하고 있다. 150만원에서 600달러를 제외한 대략 800달러를 에이전시가 착복하고 있다. 에이전시는 앉아서 돈을 벌고 이주여성은 이러한 저임금 구조에 이차를 강요받고 있고, 성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엔터테이너먼트 비자로 들어온 이주여성은 근로기준법의 사각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엔터테이너먼트 비자로 입국한 이주여성은 일명 2차라는 성산업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업주는 미국인과 2차를 비자연장(E-6 비자 1년 단위로 엔터테이너먼트사업자에 의해 연장)을 무기로 클럽 업주와 엔터테이너먼트 사에서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한국 기지촌=집창촌 여성의 자리를 점차 필리핀, 구소련연방 이주여성, 아프리카 난민지위를 받는 이주여성이 성산업 노동자 자리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지역에서 평택 안정리와 송탄은 필리핀여성이 많고, 평택항 인근과 천안 등지에는 아프리카, 구수련권 국가의 이주여성들이 미 관련 클럽에서 일하며 성산업으로 내몰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다.

제3세계 빈곤에 의한 이주화의 피해당자자는 여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의 빈곤의 이주화는 여성을 성폭력이라는 폭력적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제식민시대 정신대할머니의 피해를 위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지만 경제적 우위로 우리는 제3세계 여성을 성산업으로 성폭력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경제적으로 어려운 결혼이주여성과 이주여성 등이 돈을 벌기위해 쉽게 유흥산업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니 내몰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사회가 다문화라는 말속에 차별과 억압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근지역 이주여성과 결혼이주여성을 보면서 쉽게 알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결혼이주여성은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막대한 예산을 부어서 운영하는 전국의 다문화센터가 있지만 이곳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주여성이 도움받기란 어렵고, 프로그램 또한 이들을 위해 운영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여전히 위기/보호가 필요한 이주여성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져 있는 이주여성들 그리고 이주노동을 위해 유입한 이주여성의 여성권이 강화되어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동화주의적 지원이 사회적 문제시 되고 있지만 개선의 의지가 없으며, 이들 또한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여전히 이방인이고, 비자체류자격을 박탈당하면 미등록이주노동자이다.

초기 한국사회에서 1990년부터 결혼이주는 통일교 포교사업 일환으로 대거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도 들어서면서부터 지자체의 농촌총각 장가보내기로 정부지원금으로 농촌지역에 중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국적의 이주여성이 들어왔다.
그러나 남편과 시댁식구에 의해 여성결혼이민자 인권과 차별은 위험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민의 배우자(F-6, 결혼이민자, F-6-2 한국 국적의 사람과 사실혼 관계의 자녀를 가진 결혼이주민, F-6-3 사별한 미방인) 비자연장은 것은 철저히 한국남편과 시댁식구에 의해 연장여부가 결정된다. 이러다보니 남편과 시댁의 폭력과 차별은 상상초월 할 정도이다. 이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는 한국사회 문제이지만 전혀 다문화라는 지원 하에 여성결혼이민자의 인권 감춰져 있고, 좋은 면과 그녀들에 대한 지원만이 능사인 것 처럼 진행되고 있다.

국민의 배우자 자격은 박탈은 곧바로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전락하는 현실..... 비자의 유무는 결혼이주민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고 있다.

국민의 배우자에서 이주여성으로 전락하고 사회적 지위로 부터 박탈하는 이주여성에 대한 시각이 필요하다.

이주여성들은 이주노동자와 또 다른 이중차별로 받고 있다. 
이주여성에 대한 인권침해 그리고 한국사회가 인신매매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다양한 시각과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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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도 그렇게 흐른다.

  • 등록일
    2019/05/21 16:07
  • 수정일
    2019/05/21 16:07

진달래 붉게 피는 4월의 제주는 4.3의 기억이 되새겨지고, 개나리 피는 서울에서는 수유리 4.19묘역이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이렇듯 봄은 우리에게 잊혀서는 안 될 역사를 덧씌우고 있다.
그리고 연두색 꽃잎이 녹색의 푸르름 머금은 5월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될 광주라는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이 밀려오는 달이다. 그래서인지 봄이 오면 들녘에 피는 꽃이며,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이 이름 없이 죽어간 무명열사의 혼(魂)이 되살아 살아있는 우리에게 꾸짖음을 하는 착각을 갖게 한다.

4월 무엇에 쫓겨서인지 4.3 항쟁이니 4.19라는 날들을 잊어버리고, 오늘에서 5.18이라는 지울 수 없는 기억을 떠올려 본다. 광주민중항쟁이라 칭하고 더러는 광주혁명이라 말하는 그 5.18이 이제는 정치권의 행사로 전락하였고, 그 넋을 기리는 이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광주 역사의 현장의 기억을 추모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 작금의 시대에서 광주혁명의 빛은 정치권의 행사로 점점 더 퇴색되어져 가고 있다. 
다만 추모하고 기리는 이들이 광주혁명의 역사 현장에서 그 광주의 무명열사와 광주의 영령 열사들을 추모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광주는 우리들 곁에서 잊혀져가고 있다. 광주혁명이라는 정치권의 기념으로 남겨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 오월이면 버스를 대동하여 구 묘역에 열사의 묘역을 수놓을 추모의 행렬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 역사의 현장에 대한 숙연함으로 결의를 다지던 그 장소가 접근도 할 수 없고, 정치권의 행사로 그 광주의 영령들과 만나며 다짐하는 그 결의마저 공권력의 비호아래 정치권이 막고 서 있다.

홍세화씨가 말했듯이 광주에서의 용서와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학살책임자는 버젓이 골프를 즐기며, 초호화 저택에서 살아가고 있다. 광주의 흔적을 삶의 恨으로 짊어지거나 짐으로 짊어지고 있는 분들은 여전히 광주라는 이름에 덫 없이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데,,,, 야속하게도 광주는 시간이 지난 만큼 광주민의 광주가 아닌 기념을 해야 할 정치인의 행사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이 개탄스럽다.

광주,,,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리는 그 순고한 이들의 이름이 아로새겨 아직도 그 이름이 가슴에 못이 박혀 결코 지울 수 없는 인민의 역사이다. 그렇지만 작금의 광주는 죽어간 꽃다운 넋의 숭고한 정신을 찾아보기 어렵다. 망월동묘역에 찾아갔을 때의 그 모습과 지금 텔레비젼에 비춰진 모습은 참으로 다르게 다가온다. 다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분들은 세월의 흐름인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죽어간 이들의 한과 함께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연 광주만 변하였던가요? 광주만이 아니다. 민중항쟁의 정신을 팔아 정권을 잡고자 하는 이들이 지금도 버젓이 정치를 하고 있고, 광주혁명을 팔아 정권을 잡았던 세력이 거짓 민주화를 이야기하고 민주화를 팔아 지금 존재한다. 광주혁명에 참여한 그/녀들이 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며 바라고 열망하고 소망하였던 작은 소박함이 작금의 정치라는 이름이었을까? 반문하게 된다. 그 광주 정치행사를 보며..... 그 광주혁명을 팔아먹은 이들이 여전히 지역토호세력으로 만행을 저지르고 노동자 인민을 기만하고 있다. 
80년 광주 자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룬 이들.... 군부에 대한 광주민의 혁명이었다. 신군부와 파쇼권력에 맞선 민주주의와 참된 사회를 바라는 소박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함은 정치가 덫 씌어져 사라지고, 이들의 숭고한 정신은 정치권의 슬로건으로 이미 빛바랜지 오래이다.

광주혁명을 기점으로 우리사회 이념운동 사회주의가 자리되었다. 그리고 그 사상을 발판으로 민주주의를 넘어 노동자계급의 진군을 위한 노동해방, 민중해방, 인간해방이라는 사회주의 실현가치가 공장담벼락과 대학가 그리고 길거리를 뒤엎었지만 그 열망은 꽃피우기도 전에 서서히 모색이라는 이름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희석화 되고 있다.

광주혁명을 다시찾기 위한 길,,,,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땅에서 정치사상의 자유를 통한 사회주의 가치가 실현되는 정치의 자유가 쟁취되어야 한다. 또한 그 가치가 노동해방이라는 노동자의 염원 그리고 인민의 염원을 창출하는 그런 정치세력으로서 노동정치, 인민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노동자 인민의 정치실현을 위한 길이 광주혁명이 이루어낸 이 땅의 투쟁의 산물이지 않을끼? 작금의 시기 멀고먼 길이지만....

그래서 이제 다시금 우리의 광주를 되찾아야 한다. 노동자 인민의 광주... 그리고 광주혁명에서 죽어간 넋들의 염원들을 갖고 가야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혁명의 모습이 많이 빛바래지고 있다. 광주만이겠는가? 우리의 모습또 노동자 인민의 계급적 조건도 여전히 힘겹다. 
그러나 그 험난한 길 서로 어깨부여잡고 한사람의 열 걸음이라도 그 띠인 걸음을 토대로 우리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이 되어 가야한다. 한걸음씩....

이 땅 투쟁하는 모든 곳이 광주혁명정신이 깃들인 곳이고, 작금의 광주혁명의 연장선상의 전투장이다.

 

&&&  작년 광주 들렸다 간 지리산 만복대에서 본  운무 사진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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