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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빈곤화에 대한 기사를 읽고

  • 등록일
    2005/01/12 19:24
  • 수정일
    2005/01/12 19:24
유의선, "사회복지제도의 미비에서 비롯된 결과" 김혜진, 안정적 고용보장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사례 최인기,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가정으로 전가" 위 말들은 구조적 문제 진단과 사회분석적으로 바라봤을때 맞는 말들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이를 뜯어 고치지 않고 집행하지 않는다면 이 진단들은 의의와 방향성 찾는데서 안주하고 마는 문제로 치부되고, 다른 문제가 붉어질때 이슈로서 대두었다 생명력이 소멸되고 마는데 그치고 말 것이다. 지난한 논의만 무성한채....


자본은 사회적 합의(아일랜드를 부각시키며 모델)를 도출해야 2만불 시대를 이끌 수 있다고 한다. 노무현의 경제발언에서 2만불시대로 경제를 이끌어 올리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유한킴벌리 사장은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합의를 힘 높여 이야기를 한다. 자본의 일방적 사회적 합의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서 우린 어떠한 대항 논리를 만드는 것에 따라 운동진영의 투쟁방향성은 세워지겠으나 이 투쟁의 여하를 불문하고 당사자들은 계속해 불안한 생활과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현실적 대안을 만들기에는 우리에게 인력과 재원은 너무나 어렵다. 간혹 노동사목을 하였던 목사님, 신부님 들이 민간 차원에서의 사회적 안정망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시빈민선교활동과 노동자선교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프라에 지나지 않는다. 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역아동센터(공부방)에 대한 결식아동급식지원과 영세민 수급자에 대한 지원, 여성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영육아 보호법과 성폭력 아동 피해구제 등 한계를 갖고 있지만 공공 사회 안전망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분석과 면밀한 국가의 공공성 강화를 통해 가정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확대방안을 마련하면 좋을 것이다. 시행되고 있는 정책에 있어 집행력을 담보할 수 있는 사회복지노조에 대한 지난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대구에서 건설일용직노동자 4살짜리 아이가 장롱속에서 죽었다. 신용카드 문제로 자식과 함께 투신 자살하였다는 이야기는 엊그제 일이 아니며, 아직도 죽음을 마지막 비상구로 생각하며 이 밤에 번민의 화염에 쌓여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우리 너무 비겁하지 않은가? 국가의 공공망을 확충하는 방안 지금의 제도 시행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이를 통한 안전망을 국가적 사업으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수급자에 대한 대책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부분적으로 있을 수 있다. 운동적으로 아직은 어렵지만 이를 시행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만들어 가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개발한 모델을 민간화 시켜 이를 공공화로 가는 교두보로 삼는 실천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의문만 던지지만 난 자세히 모르겠다. 그나마 내가 있는 공간은 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결식아동 무료급식을 지역아동센터(공부방) 급식으로 그나마 이용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개별적 수준의 지역아동센터들의 물적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사업방안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소모성 예산에 대한 집행을 공공적 복지정책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지 않을까? 또한 현재 진행되어지고 있는 비영리민간단체에 대한 지원을 이런 공공적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사업으로 전환하여 고용, 복지, 사회적 복지제도의 확충을 위한 방안으로 나서면 어떨가? 운동적으로 너무 원칙이 없는 운동인가? 그래도 운동 이전 공공 복지를 위해서 우리 사람을 살리고 보는게 올바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늘 논의에 있어 원칙은 명확하나 무엇하나 시행되는 것은 공염불인 것 같아 글이 눈에 안들어온다. 보육노조 대표의 말 처럼 말과 글보다 행동(실천)이 필요하지 않을까? 내가 잘못되었는지... 운동을 이야기 하기전 우리 공공복지를 위한 그 어떠한 노력에 있어 우리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지 부터 그리고 사회적 이슈가 아닌 장기적 계획에 우리 열심히 했다 하지만 우리 너무 쉽게 사안마다 손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운동적으로나 사회변혁적으로 위 토론자들 처럼 치열하거나 운동으로서 승화시키지 못하지만 낮은 곳에서 자본주의 모순을 지탱해 준다는 비난을 받으며 하루하루 밥을 나누어주고 찬물에 설거지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난 이 토론이 토론이 아니라 사업비젼이라도 투쟁방향과 행동이라도 지침이라도 내려 주었으면 속이 후련하ㅤㄱㅖㅆ다. 이럴때 난 양비론자가 되어간다. 회색으로 기울고 있지는 않을지....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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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매만들기...

  • 등록일
    2005/01/12 18:45
  • 수정일
    2005/01/12 18:45
썰매 만들기를 구경해본지 언 몇십년 만인가? 잊고 살았던 썰매만들기를 오늘 다솜 공부방 아이들이 만들었다. 아 신기하고도 재미있다. 난 다른 일정이 있어 처음 만드는 것만 구경하고 갔는데... 어느새 썰매는 다 만들어져 있다. 야 신나겠다. 요즘 눈썰매장에 가는 아이들 비닐부대를 타고 뒷동산을 온통 눈썰매장으로 만들었던 기억을 알고 있을까? 모르겠지... 부모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겠지만 그 남해화학 비닐 포대의 성능에 대해선 직접 시험해 본적이 없어 모를 것이다.(그 당시 우리 읍내에 이발소가 하나 있었지만 시골 전역을 돌며 이발을 해주는 아저씨가 있어 이발은 한달에 한번 이 아저씨에 의해 동네 아이들 전체가 통일적으로 이발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머리에 하얀 분말가루 무엇인지 모르지만 부모님이 좋다고 하기에 이발하고 나서 뿌렷던 그 약품이 DDT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 입학한 후 좀 지나서이다.)


사담으로 우리는 주로 비료포대를 남해화학(밭농사 지을때 질소비료를 많이 뿌리는데 남해화학이 인근에 인접해 있어 전라도에서는 많이 사용하였던 기억이..) 비닐 봄에는 아이스케키(일명 하드) 10원짜리와 교환해서 먹던 기억.... 동네 엿장수가 오면 엿과 바꾸어 먹던 아주 휼륭한 재활용품이었다. 이 남해화학 비닐포대는 겨울엔 우리에게 아주 유용한 눈썰매였다. 앞에 눈을 조금 넣으면 앞으로 나가는 추진력(속력)을 더 가속시킬 수 있었고, 안전 범퍼역활을 휼륭히 수행하였다. 어린 나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터득하였을까? 처음 이 남해화학 비닐포대로 눈썰매를 탓던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그 다음으로는 썰매이다. 논바닥에 얼음이 얼면 아이들과 나무 막대기를 짤라 아이스하키도 하고 널판지를 구해와 썰매를 만들어 타던 기억... 쇠가 귀하였지만 다들 썰매를 만들기 위한 쇠를 부모님들이 장터에 나가면 하나둘 사온다. 그러면 망치를 갖고 우린 연실 겨울놀이를 위한 준비를 한다. 지금 눈이 소복히 쌓이면 산에 올라 토끼잡이를 한다. 토끼는 뒷다리가 길어 위에서 아래로 몰아서 잡는다. 그래야 토끼가 도망을 치지 못하고 뒷다리 추진력을 잃고 중심을 잡지 못해 잡히고 만다. 겨울에 하였던 오징어 찜, 구슬까기, 딱지치기, 비석까기, 자치기, 깡통차기, 술레잡기, 얼음놀이, 땅따먹기, 말뚝박기, 제기차기, 닭싸움, 나무타기 등등 여러가지 놀이들이 우리 생활발전과 교육열로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정겹던 공동체 놀이... 모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너나할 것없이 무엇하자 합의보고 하였던 놀이... 바닥만 있으면 노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공이 없으면 공을 만들어 놀았고, 기구가 없으면 기구를 만들어 놀았던 그 당시... 겨울 해가 짧은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겨울 기나긴 겨울날 화롯불에 앉아 군밤을 구워먹거나 아니면 뒷마당에 있는 감을 따서 먹었던 기억... 동치미 국물에 콩고물에 쑥떡을 뭍혀 먹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런 먹거리를 먹고 싶어도 쉽게 찾기 힘들다. 오늘 아이들이 썰매를 만들고 놀이를 준비하는 것을 보는데 아이들이 한편으로 대견스러웠으나 놀이문화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쉽게 다가온다. 청소년들이 쉴 공간과 놀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이전 골목길은 다 우리들의 유용한 놀이터 였다. 골목길에서도 얼마나 재미나게 축구를 하였던가... 그런데 그 자리는 도로를 넓혀 차들에게 내어주고 나서 아이들이 놀 자리를 하나둘 잃어버리더니 지금은 아예 콘도나 웰빙이라는 상품으로 아이들이 자연과 더불어 놀 공간을 돈주고 가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우리가 그만큼 각박하게 살아가고 있고, 뒤보다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 세월의 그림자가 아닐까? 오늘따라 가로등 밑에서 동무들과 다방구를 하였던 중학생 시절 나를 회상해 본다. 참 산동네에서 재미나게 놀았는데... 달도 밝았고 나무 전봇대에 백열등의 환한 불빛이 우리는 반기며 동네 여기저기 아무개를 외치는 정겨운 우리 동네 아저씨 아주머님 목소리는 다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 정겨운 소리는 차의 경적소리로 다 바뀐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 그때는 다시 올수 없는 것인가??.....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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