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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백무산] 존재는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다.

  • 등록일
    2004/08/31 10:13
  • 수정일
    2004/08/31 10:13

계절이 지난 후에

지난 계절을 떠올리면

예컨데, 겨을날에 지난여름을

그려보면, 몇 달 앞 계절이 아니라

먼 옛날 상처 깊던 여름날이 뭉클하고

지난 봄날이 아니라

열아홉 바닷가 봄날이 새롭고

첫사랑 붉은 가을이 불쑥 펼쳐진다.



 

그런데 겨울을 떠올리면

어쩐 일인가, 기억을 넘어선다

한 삼백 년을 지난 겨울이

기억의 영토 밖에서

의식의 지평 저 너머에서 솟아온다.

 

산에, 저 겨울 벗은 산에

눈 내려 하늘 닿은 능성에 나는 있다.

의식이 분화되기 전에

기억이 발생되거 전에

감각이 조직되기 한참 전에

나는 옛 거울처럼 그렇게 있어

내 그리움의 원천은 언제나 그곳에서

그 혼돈의 영토에서 한 생각 몸을 얻는다.

 

생애의 시간과 기억은

존재의 작은 티끌이나 겨우 담을 뿐이다.

 

                                                       백무산 시집 初心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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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 등록일
    2004/08/31 10:05
  • 수정일
    2004/08/31 10:05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 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씌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을 알아요.

나는 다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한용운 시집 님의침묵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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