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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최하림]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 등록일
    2014/04/14 17:51
  • 수정일
    2014/04/14 17:51

저녁 바다와 아침 바다

최하림

광산촌의 여인은 보고 있었다 물에 뜬 붉은 바다
날빛 새들이 날아오르고 물결에 별들이
씩겨져 제 모습으로 갈앉고
상수리나무가 한 그루 흔들리고 있었다
키작은 사내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가
일천 피트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으나
가도가도 막막한 어둠뿐 모두 다 뜨내기와 갈보뿐
낡아빠진 궤도차가 달리는 길목에서
어허와어허와 궤도차가 달리는 길목에서
우리들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젓가락을 두들기며 노래
불렀으나, 신참내기 전도사도 노래 불렀으나 가슴의
멍울은 풀리지 않고 싸움도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슬픔만 달빛이 내리는
나무 그늘이라든가 산등에서 아주 낮게
흘러내리고 어떤 적의도 없이 흘러내리고
밤이 가고 아침이 오고
새들 무리가 무이미하게 날아오르고
물결에 흔들리는 여인의 얼굴 위로
상수리나무가 흔들리고 있었다.

p.s 투쟁하고 있는자 들은 이미 승리하였다. 그런 관념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보자 정작 그 패배뒤 그 삶의 버거운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굴욕을 참지 못해 이승의 삶 던진 우리내 투쟁하는 자들의 삶이 어찌되었는지 그 트라우마와 패배가 휩쓸고간 빈 공터 그 관심밖의 냉대를 이기지 못한 우리내 해방자들의 뒤안길을 떠올려 보자.... 그 투쟁을 이야기하기전 연대라는 이름으로 주체들의 투쟁 엄호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망각의 피조물... 잃어버린다 그 패배의 뒤안길... 그 빼앗긴 터들 빼앗긴 권리들을 이에 투쟁하는 자 모두 반드시 승리하여야 한다. 그 패배뒤 그 울분 그 분노와 한 삶의 자리를 내어주는 우리내 노동자 인민의 삶을 위해서도... 무조건 승리하여야 한다. 그 패배가 절망이 가져다줄 그 비극이 없기 위하여... 그 삶의 터 빼앗긴 들녘 대추리의 추억도 새만큼의 갯벌도 그렇고... 그렇게 그렇게 패배로 빼앗긴 땅 들녘 그리고 그 노동의 빈터의 삶 지켜보는 것도 힘겹다. 그 패배가 흔들리지만 이겨내라 말하지만 힘겨움이 여전히 타전되고 있다. 그 지키고자 하는 의미보다 더 힘겹게 다가온다. 연대라 무심히 말하기엔.... 우리내 너무 힘이 무더져 있다. 그 삶이 아니고서야 어찌 가볍게 이야기 할 수 있는지... 지켜보는 이들의 삶 모습을 보는 것도 눈시울 붉히거늘... 그 마음이라도 함께 포용해 주는 것이 진정한 연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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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역사임을 자랑스러운 것임을 우리스스로 늘 자각하였으면...

  • 등록일
    2014/04/13 18:57
  • 수정일
    2014/04/13 18:58
삶과 가치가 동일하여야 하는데... 참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삶으로서 노동을 일구는자들이 이 땅 노동으로 이야기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과 동일할 지어인데...

우리내 교육속 그리고 문화속 깊이 자리잡은 사공농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몸과 머리 삶을 따로 놀게한다.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이 자랑스런 노동으로 일구는 것이 노동운동인데... 노동자 스스로도 삶이 주는 팍팍함 그 억압과 착취 굴레를 자식에게만은 남겨주지 않기 위해 교육이라는 그 담론에 자식농사를 짖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내 노동이 갈 길 여전히 팍팍함을 느낀다.

노동의 가치 부여를 위해서는 그 노동이 이 땅에서 홀대 받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노동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을 만들고 인식시키는 것 그것이 자본으로부터 투쟁으로 쟁취할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내 노동교육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교육에서부터 체계적으로 받고 그 체험 그리고 그 노동이 이 역사를 지탱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일깨워야 한다.

그 교육이 그 인식이 이 굴종의 노동을 역사적 노동으로 노동의 소외를 노동이 이 세상의 역사 주체임을 일깨우는 계기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그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을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임을 스스로 당당히 할 수 있는 길... 걸어야 하지만 그 길을 상기하고 작금의 노조운동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투쟁으로 일구어냈던 그 조직이라는 것이 직장이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아래를 바라보지 못한 우리내 노조운동으로 포장된 노동의 단상이겠거니 한다. 말보다 행동이 행동보다는 인식이 되어야 하지만 그 것이 현장과 괴리되고 실천으로 타전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내 현 조직노동의 상층의 모습이다.

실천보다 주변상황을 이해타산을 따지는 현상에서 일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노동을 일구는데는 실속이 없는 현실로 타전된다.

과거 허리강화는 이제 확간의 단위에 대한 집적투자로 일정정도 이루었으니 이제 노조의 기둥인 허리강화가 아니라 몸전체를 위한 조합원으로 그 시야 돌릴 때이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노동을 만들기 위해 작금 투쟁하는 단위에 대한 노조차원에서 투본이라도 형성하여 소통하고 그 투쟁을 지역별로 만들고 함께 일구어 나갔으면 한다.

이번 메이데이도 권역별 집회라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집중된 노동의 총단결 모습으로 집중하고 전국적 투쟁의 기치 높여야 할 때이건만.... 그 모이는 것 조차 전국적 동시다발이라는 이름으로 산개되어 있으니.....

삶과 행동이 언행일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 삶으로서 노동을 말하지만 그 삶과 언행 그리고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을 자주 본다. 삶으로 노동이라 말하지만 허위의식이 꽉찬 우리내 모습을 본다.

그 삶을 말하면서 그 삶과의 조화를 떠올려 보며... 스스로 낮고, 작게 아래로의 향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스스로 물질화로부터 자유롭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과 행동이 중요한 문제임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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