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 목록
-
- 예수의 발견
- 목동
- 2009
-
- 두 세계 사이에서
- 목동
- 2009
-
- 가능성의 세계를 넘어 믿음...
- 목동
- 2009
-
-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이해
- 목동
- 2009
-
- 홀로 설수 없는 인생
- 목동
- 2009
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왜 나는 버림받은 존재로 살아가야 만 하는가?
인간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 시종일관 이런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누구든지 그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은 태어나서, 자기가 어디에 소속되는 것과
자기자신에 대한 자존감과 자기가 꼭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그리고 나서 자기 성취감을 갖고서 살아야 바람직한 삶을 사람답게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이런 욕구가 기본적인 인간의 의식주를 해결하려는 욕구나 태도보다
더 필요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삶의 요구이며 자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왜 나는 거부당하며 살아야 하는가 라고
생각이 들도록 한 요인들을 살아오면서, 부정적이고, 힘든 일들을 겪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때는 그런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부모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왜 사회는 나에게 외면하는가?
항변하며, 사회악을 조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왜 주변사람들은 나를 무시하는가? 라고 좌절하며, 고통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려면,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에 대해, 자신은 버려진 존재로가 아니라,
받아들여진 존재로, 자신을 인정받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을 인정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볼때,
우리는 나는 받아들여진 존재라 여기는 옳은 인생철학을 가져야 하는데,
그 철학의 근저에는 신과의 관계로서의 자신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신을 생각하는 일은 그만큼 우리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릴때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은
누구나 신에 대한 개념을 갖고서 살게 되며,
그 신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가 어떠함에 따라, 자신의 삶을 이루어 간다.
먼저, 자신의 생각하는 신개념은 모든 인생에 대한 자세와 철학의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이고 바람직하게, 신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은
모든 사건이나 일에 대해, 창조적이며, 건설적인 태도로 대하게 되며,
설사 고통스럽고, 힘든일들과 같은 외부적인 어려운 일들을 당해도,
그것들을 극복할 힘이 있으며,
결국에는 그런 어려운 상황을 오히려 반전시키는 전화위복이나,
그런 도전에 대한 자신의 긍적적인 자기 응전으로 새로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누구나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나,
그런 종류의 경험을 갖고 있다.
특히 사랑하는 관계이며, 신뢰하는 경우에 당하는 자기 거부나 자기 상실은
자신에게 많은 좌절과 불안으로 내면적인 고통을 겪게 하며,
그런 현상들은 자신이 조정할수 없는 정신적인 불안정으로 발전하고,
일생을 통해 자신의 현재의 삶과 미래에 대한 태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은 자기자신에 대해 자신을 인정하는 존재로 여기고,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태어나고, 살아간다는 의식을 갖아야 할 것이다.
그러러면, 자신이 자신에 대해 받아들여진 존재로 여기는 건강한 자아상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런 건전한 자아개념은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있게 한
신에 대한 자세나 태도가 결정되어 진다고 생각한다.
신안에서 만 자기만족이나, 자아완성(구원)을 이룰수 있는 인간은
신을 떠나서는 자신을 바로 세울수 없다고 감히 단언하는 것은 존재의 근원이며,
자신의 존재의 의미의 근저가 바로 신 앞에 있을때에,
자신을 신의 혜택안에서, 용납된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문제이다. 누구나 사람이 태어나면서
신과의 단절가운데에 있는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그 신을 알지도, 찾지도, 그리고 발견하지도 못하므로,
신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 신을 알려주면, 그신에게 찾아가, 그를 알고,
그와 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가지고 있는 딜레마 중에 가장 큰 것이라 할수 있다.
스스로 그것을 이룰수 없으니,
다만 신만이 자신을 알려주는 신자신 혹은 신의 대리자를 통해 그 신에게로 다가갈 수 있다.
역사속에서, 극한 거부나 유기를 통해 인간의 당할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다 당한 한 인생이 있다면,
그는 인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가 그에게 찾아가, 상의하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우리가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만일, 신이 인간의 문제에 대해, 그것을 몸소 경험으로 그런 일들을 겪었다면,
우리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경험을
그 신에게 다가가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그분의 상담과 조언을 구할 것이다.
어려움을 당하거나, 좌절을 겪는 인생이 자신에 대해 생각할때에,
나는 세상에 대해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버려진 존재로 여기는 자신이 문제인 것이다.
세상을 붙드는 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한,
인생을 이 세상에 있게 한 신이 결코 인간을 버려지도록 놔두지 않고,
무엇인가를 인간을 위해서 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신에게 당연히 도움을 구할수 있겠다
용서하지 않는 태도를 치료하기
내면치유와 용서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쓴뿌리와 부정적인 사고시스템에는 용서라는 큰 주제가 놓여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정상적으로 회복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용서하지 않는 자신의 태도에 있다고 하겠다.
먼저 자신의 정신적인 건강이나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
자신이 주도하는 용서를 통해
자신의 내적인 측면에 대한 깊은 차원의 치유를 하여
자신에게 있는 쓴뿌리와 같은 부정적인 사고 시스템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용서하지 않는 태도가 대인관계에 있어서
자신의 사고시스템이나 감정조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내면치유의 장애요인은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앙갚음이나
혹은 섭섭함이나 혹은 괘씸한 생각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신의 부정적인 성향들은 더 나아가 분노를 촉발하고,
자신도 원치않는 상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용서하지 않은 마음을 계속유지하면,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자신의 내면에 큰 부담감을 가지고 살게 된다.
고로 자신안에서 마음의 평안과 사고하는 태도에 있어, 자유를 얻지 못한다.
용서하지 않는 상처들 그리고 상한 감정들은 자신속에 더 뿌리를 내려,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분노에 의한 원수 갚은 태도로
짓는 죄를 범하게 하며,
앙금된 마음에 고착이 되어,
그 상한 감정들이 자신속에 중한 부담감과
마음의 평안을 해치는 상시적인 불안을 가중케 하는 역활을 한다.
그런 죄의 성향들은 자신의 마음에 펴져있는 영적인 배설물이나
쓴 뿌리역활을 하는 자신의 고착된 부정적인 사고나 병든 성향의 흐름을 지배한다.
고로 그런 불안이나 내면의 병든 성향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의 상태를 전환하도록 자신의 상태를 살펴볼줄알아야한다.
용서는 인간관계를 푸는 열쇠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주요한 이슈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용서는 복음의 핵심으로
죄인인 우리들이 구원받는 근거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있다.
용서에 대한 메시지는 성경여러 곳에 나오고 있다.
마태5:22-24에서 형제에게 이유없이 화를 내는 것도 죄이며,
주님앞에 나가기 전에 형제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만일 서로가 풀어야 할 인간관계의 악화나,
증오된 상태라면, 상처를 준 사람이나
상처을 입은 사람 모두가
서로 화해를 갖는 것이 그들의 신앙행위에 어떤 일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들을 용서해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용서해 주소서” 주님이 가르쳐 주신 모델기도에 용서가 큰 주제이다.
마가복음11:25-26에 기도할때에,
어떤 사람에게 서로 마음상한 것이 있으면 용서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용서하는 그사람도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 라고 한다.
이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용서하지 않는 태도이다.
그 태도를 고치는 것은 먼저 자신이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죄를 고백하며( 마태복음 5:23, 요한일서 1:9)
그 마음의 약함이나 악함을 자인하며,
그안에서 벗어나기를 힘쓴다.
그러러면 먼저 하나님의 용서를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안에서 배울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모든 용서의 모델과 근거가 된다.
그는 자신을 저주하며 모함하며, 사형을 가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신다.
자신이 하나님의 용서를 배우고 받아들이고,
그분의 도움을 의지하여, 자신이 받은 상처와 용서치 않으려는 태도를 고쳐야 한다.
이 용서치 않으려는 태도를 넘어가는 길은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축복을 비는 마음과
그 사람을 용서할수 있는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사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는 자신이 받은 상처나 용서치 않으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도록
자신이 영향을 받은 마음의 상처를 발산하는 자기 나름의 감정표현방식도
상처난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용서하는 것은 하루 아침에 배우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두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수 있는 길과
상한 감정을 다루는 것이나,
병든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내적치유의 과정들이 필요한 것이다.
크리스챤의 영적인 치유와 심리적인 치유를 접목한 독특한 형태의 치유로,
크리스챤이 가지기 쉬운 영적인 함정이나,
정신적인 슬럼프에서 벗어나,
진정한 영적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내적치유는 영적인 치유에 중점을 두는 경향과
심리적인 치유에 주안을 두는 경우와
크리스챤의 자기 아이텐티티의 회복을 통해,
자아치유를 하는 경향으로 나뉜다.
영적인 치유에는 성령의 전적인 의존에 의한 인간영성의 치유로,
영적인 영향(악한 영이나,
왜곡된 인간 자신의 영적인 혼란 상태)으로부터 자유를 얻도록 하는데 있다.
심리적인 치유는 감정치유나,
기억치유를 통한 인간성안에 있는 억압된 모순이나 불합리를 제거하여
정신적인 건강을 얻는 것을 목표하는 치유이다.
자아치유는 참자아와 거짓자아사에서 갈등하는 자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은혜와 회복의 치유를 통해,
자신의 왜곡된 자아가 거듭나며,
새로와 진 자아상으로 태어나,
영적인 건강과 성장차원의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
데살로니가후서 1:3-12
3.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 대해서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여러분의 믿음이 점점 크게 자라고
여러분이 서로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분이 온갖 박해와 고난을 참고 견디며 믿음을 지키는
일을 하나님이 여러 교회에서 자랑합니다.
5.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는 증거입니다. 그 결과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알맞은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여러분은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6. 하나님은 공정하신 분이므로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으로 갚아
주시고
7. 고난을 겪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평안히 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그의 능력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8. 불꽃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우리 주 예수님께 대한
기쁜 소식을 순종치 않는 사람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9. 그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고 주님앞에서 쫓겨나 그의 능력있는 영광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10. 그날에 주님이 오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것이며
여러분도 우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그 성도들 가운데 포함될
것입니다.
11.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적합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여러분의 모든 선한 목적과 믿음의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2. 그것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는 것을 통해 크리스챤들 자신의 믿음을 자라게 한다.
고로 그들은 고통받는 현실에 대해 낙심하지 말고,
그 고난을 감수하며, 보다 나은 자신의 내일을 만들어 가게 할 것이다.
고진감래라는 말은 고난스럽고 힘든 일 다음에는 반드시 좋은 일,
달콤한 유익하고 축복된 일들이 다가온다는 의미이다.
인생의 고난을 겪으며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험한 도전과 어려운 과업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기 세움이나 성장에 있어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한 자기정체감을 갖고 있으며,
다가오는 미래의 어떤 일에도 용감히 대처해 갈수 있다.
고난당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믿음은 성장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소유한 영혼들을 돕는 일은
그들의 믿음을 키우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역이다.
그 영혼사역에 있어서, 사역자가 교우들을 위해
항상 그들의 영혼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앞에서 살것은
그의 사역을 통해 귀한영혼들의 추수와 열매맺음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다.
사역자의 영혼사역에 대한 자세는 사역의 질을 만들어 간다.
사역자의 열정과 정성을 통한 사역을 통해 사람의 심령에 접근하여,
그들의 영혼을 돕는 일들을 수행할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사역에 대해서도
자신의 영혼에 대한 태도(진지함, 열정혹은 영혼의 가치에 대해 깨어있음의 의식)에 따라
그의 영혼이 살든지 죽든지 혹은 병들든지,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영혼사역에 임하는 사역자의 자세는
이렇듯 사역을 통해 자신이나 타인에게 중대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영혼을 위한 사역은 영혼들의 믿음을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주는 믿음은 어디서 오며,
그것은 어떻게 자라는가?
그 믿음은 영혼에 양식이 되며,
영혼을 가진 사람과 그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이해와 신뢰심을 심는 말씀을 통해 오게 된다.
그 믿음이 자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 믿음이 자라도록 하려면,
그 믿음의 생명력을 유지함이 필요할 것이다.
믿음의 생명력은 믿음의 적응력과 창조력이 함께 어울러져,
그 믿음이 깊이 사람들 속에 뿌리를 내려,
그들의 생활에서 영향력을 나타내게 될때에 그들의 믿음은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믿음을 갖기 위해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역사에 순응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따라 경험하는 자기헌신이나 희생적인 수고가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장을 위한 노력은
지속적인 영적생활:자신의 영혼을 키우고 먹이는 것:
말씀의 섭취와 영혼의 호흡(기도)과 영혼의 운동(믿음의 자기증거)등을 추구하는 것일 것이다.
영혼을 맡은 사역자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할일은 무엇인가?
즉 그는 그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의 수고와 영혼을 움직이고 감동케 하는 사랑의 헌신과
영혼을 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력을 줄수 있는
열정적인 가르침의 노력등으로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영혼을 돕는 신앙에는 여러종류나, 여러 스타일의 신앙이 있지만,
가장 생명력이 있으며, 살아있는 믿음의 실체는
고난과 박해가운데에서 지켜가는 순교적인 신앙일 것이다.
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에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며,
기독교신앙을 가지는 것을 법으로 금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런 어려운 조건하에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믿음은
생명이상의 고귀한 신앙의 숨결이 있다.
신앙은 고난가운데에 고귀한 가치를 드러낸다.
고난을 참고 견딘 믿음은 고난을 통한 시련을 겪은
마음의 단련으로 금보다 더 귀한 정결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믿음을 지키려고 할때에 어려움이 오는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
하나님앞에서 영적으로 훈련을 받는 길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다.
고난은 신앙을 세련되게 하며, 강화시키며, 성장하게 하며,
자신의 안목의 차원이나 깊이를 넓혀준다.
예수 이름때문에 받는 고난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현재의 자신의 영성을 높이며, 자신의 신앙의 정체감을 강화시켜,
신앙의 가치와 효력를 높여준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고난의 흔적이 주님앞에서 자신의 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고난을 받은 것은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한 위함이며,
자신을 단련하는 시련과 훈련의 기회로 여기게 한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이들에게는
그것이 심판으로 나타날 것이기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받을 엄정한 심판의 원인을 제공하게 한다.
그러나 고난을 감당하는
주의 자녀들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타나게하는 영광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자신의 믿음을 강화케하는 고난의 과정과
자신의 성품을 단련하는 시련을 겪는 통과를 거치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훈련된 사람들,특히 고난을 통해 이들이 들어가게 된다.
그들이 받은 고귀한 사명과 영광된 미래의 기업을 위해
현재의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은 그들을 더욱 귀한 존재로 세우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귀하고 좋은 것들을 받기게 부족함이 없는 자들로 만들어 준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공평하게 대하신다.
그는 현재일이나 장래일의 이루어 질 일 가운데에 사람들을 택하며,
혹은 분별하여, 사람들이 행한 대로 공정하게 심판을 행하시며, 상급을 내려주신다.
그의 자녀들을 힘들게 하고 고통을 끼친 자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상응하는 형벌과 고통으로 댓가를 치루게 하신다.
고난을 겪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언제나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것을 이길 힘을 주시며, 그것을 극복할 만한 힘이나 노하우의 지혜를 주신다.
그후에 또한 고난 뒤에 얻는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평안과
장차 들어갈 고난을 겪는 이들이 얻을 영광에 이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은총을 입게 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신 주로,
그는 갖은 수모와 고난을 당하시며,
마지막에는 자신의 몸을 제물로 희생당하시므로,
고난당하는 자의 모델이 되셨다.
그는 고난 당하는 모든 이들을 이해하며,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하심과 그들을 이끌어 내시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며,
결국에는 그들을 영광의 자리로 올리실 것이다.
그 주님은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상급을 주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며,
그때에는 영광의 주로 임하시며,
그를 호위하는 많은 권능있는 천사들이 함께 할 것이다.
주 예수의 재림의 날은 모든 일들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때인고로,
어둠의 일들이 드러나게 되며,
하나님앞에서 그분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인생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도 그를 준비하지 않고,
하나님을 모르고 산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심판을 받으며,
주 예수의 전파되어진 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메시지를 거부한 인생들은 자신들을 구원할 근거가 없어,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시간은 영원에 속하게 되며,
인간의 모든 행위가 백일하에 드러나, 모든 것의 시시비비를 가려,
심판의 저울이 모든 인생에 적용이 된다.
모든 피조물이 다 창조주에게 나왔으나,
그들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신 그분을 거부한 인생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영원한 고통의 벌을 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모든 은총을 받는 것에서 박탈당하여,
영원한 감옥의 형벌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를 인정하고 그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의 찬란한 영광의 자리에 초청을 받으며,
그가 준비하신 모든 영광의 자리에 참여하게 된다.
주님의 날이 복음을 믿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날이며,
주님과 성도들이 함께 하늘 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때에 주님은 그의 택함입은 성도들로 부터 영광을 받으시며,
세상에서 올곧은 신앙을 지켜온 그의 백성들의 찬양을 받으신다.
그 주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무리가 되어
거룩하신 주님에게 붙어있는 사람들로 그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여,
그들의 누릴 영광을 바라보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현재 그의 성도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되 그 말씀의 증거를 믿어,
그 말씀과 함께 삶의 운명을 함께 하는 그들이 아닌가?
성도들을 택한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이
그들을 온전한 그의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
주님은 마련하신 은혜와 은사의 부르심을 통하여 이루어 가신다.
그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는 할수 없는
성도들의 영적생활[의인의 상태유지:
날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분의 공로(주님의 의의 전가)에 힘입어
주님으로부터 용서와 의의 인정을 받는다.
성화의 삶: 그의 거룩하신 영의 도움을 힘입어
날마다 거룩함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이루어 가는 은혜를 입는다 ]을 가능하게 한다.
더 나아가 그분이 그들에게 주시는 능력과 영향력의 은사들은
그분의 영광의 나타내심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자유롭게 공급이 되어진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사역을 온전하게 하며,
또한 사역의 열매를 맺게 하며,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들로 쓰여진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성도들의 온전함과
그들이 추구하는 목적지향의 삶을 가능하게 하며,
그리고 성도들 자신이나 사역자들의 기도의 협력으로 인하여
언제나 그분의 의도를 따라 살아갈수 있게하는 능력을 힘입는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의 자녀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약속과 축복이 보장된 것으로
주님의 자녀들이 기도의 응답이나 효과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들의 사역에 만족할 만한 성취와 업적을 이룬다.
그래서 그 기도는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고난가운데에 자라는 믿음도
그 고난을 이기려는 강한 의지와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과
그분의 능력을 간구하는 가운데에 이루어진다.
칭의에 대한 묵상 |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