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목동

29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3/30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사람
    목동
  2. 2007/03/29
    자기 신분의식의 중요성
    목동
  3. 2007/03/29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관점들
    목동
  4. 2007/03/28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기
    목동
  5. 2007/03/27
    신앙의 경주(5)
    목동
  6. 2007/03/26
    주 예수께 대한 자신의 간구
    목동
  7. 2007/03/24
    회개해야 할 인생
    목동
  8. 2007/03/24
    이민의 정체감
    목동
  9. 2007/03/22
    자이언트와 힘겨루기
    목동
  10. 2007/03/21
    지도자의 세움
    목동

하나님과 세상, 그리고 사람

요한복음 1:1-9

성육신의 비밀은 하나님의 사람의 등장에 있다.
1.우주가 존재하기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2.그리스도는 맨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모든 것은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분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4.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인류의 빛이었다.
5.이 빛이 어두움속에 빛나고 있었으나 어두움이 이 빛을 깨닫지 못하였다.
6.하나님이 보내신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7.그는 이빛에 대해서 증거하여 사람들이 자기를 통해 믿도록 하기 위해서 왔다.
8.그는 이빛이 아니었으며 다만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것뿐이었다.
9.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있었다.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주님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가운데 계시면서, 존재하신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은 원래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그의 근본은 영원가운데에 있다.
인간예수에게서 하나님을 찾을수 있는 것은 원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을 통해 알수 없는 우주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오직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알수 있다.

주님은 말씀이시다.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심은 말씀이 세상의 근본임을 보여준다.
그 말씀은 우주의 원리이며, 세상을 움직이는
이치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통해 모든 만물이 생성되었으며, 존재하고, 유지되어간다.
그 말씀은 세상을 구원하며, 세상을 심판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가운데에 계셨다.
하나님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가 만물의 창조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셨다.
맨 처음이라는 말은 시초부터라는 말로
그가 모든 만물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생사에 대하 모든일을 관장한다는 말이다.
맨처음의 그분이란 모든 만물의 생존의 시작의 원인자가 되시는 것을 의미한다.

태초에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은
그 말씀이 모든 만물의 시작의 근원에 근거를 두는 존재이다.
구원받을 인생 자신의 시작은 그분안에 있었던 태초에 계획이 되어졌으며,
그분안에서 인생들이 하나님의 계획안에 생존의 시작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하시므로 영원가운데에 존재하시는 분으로
모든 만물의 창조의 이전에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 되셨다.
우리 자신들의 존재가 그분의 영원의 존재안에 있는 그분의 계획안에 있었다.

모든 만물은 그분의 계획을 따라, 그분의 방법으로 그분을 통해 생겨났다.
아무것도 없었던 “무”였던 이세계가 그분을 통해 만물이 생겨 나고 조성되었다.
그분을 통과하지않고는 어느 피조물도 생성될수 없었다.
즉 모든 만물은 그분의 손안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그 분은 처음에 빛을 만드심으로 세상을 창조하기 시작하셨다.
만물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 만물이 이루어 지게 되었다.
빛으로 시작된 이세상에 어둠이 깃들어 있게 된 것은
그의 창조물중에 반역자인 영물들(사단과 그의 하수인들인 귀신들)로 인하여,
이세상에 어둠이 또한 시작이 되었다.

그 분, 만물의 창조를 조성하신 그 말씀안에 인류를 향한 생명이 있었으니 ,
그 생명은 인류에게 비쳐주는 생명의 빛이며, 소망이며, 구원이 되는 근거가 되었다.
그 생명은 하나님안에 있는 영생의 생명이며, 죽을 인생들에게
소망을 가져다 주는 죽음을 이기는 생명이 었다.
빛으로 시작된 창조의 세계는 어둠이 함께 깃들이므로
죽음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빛과 공존하는 어둠의 영향으로 인하여
인생들이 어둠의 영향을 받아, 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에게 죄를 범하고, 그 죄의 결과로 인하여
죽음이라는 운명이 인류모두에게 드리워 졌다.
이 죽음이라는 운명에 처한 인생들의 삶은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하며,
어둠에서 헤매이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어둠에 처한 인류에게 구원의 빛이 비쳐주고 있었으니,
그 빛은 바로 인류를 죽음에서 구출하는 생명의 빛이었다.

빛과 어둠사이에 머뭇되는 인생들에게
그 빛은 더욱 밝은 빛을 발하여,
그 빛은 인간세상에 태어나는 성육신의 빛이 되어,
어둠에 처한 인생들에게 비추어 졌다.
그렇지만, 어둠의 영향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빛을 깨닫지 못하고 그빛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직도 이세상에 있는 인생들은
그 빛으로 나오지 않으며, 어둠에서 갈길을 못찾아 방황하고 있다.
어둠에 처한 영혼들이 하소연하듯 탄식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안에 있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닫고 있어서,
그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빛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빛을 이땅에 보내시므로
인류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그런 중에 주님은 준비된 사람들을 보내,
이 빛을 예언하엿으며, 그예언을 따라 빛이 세상에 임하시기전에,
마지막 예언자인 광야의 소리로
하늘의 소리를 대변하는 세례 요한이라는 사람이
세상에 먼저 와서 그 빛을 증거하고 있다.
진리는 증거되어야 하며, 진리의 소리는 들여져야 한다.
빛은 비추어져야 어둠이 물러간다.
인생들의 눈을 가리워 있는 무지와 혼돈의 상태를 벗겨내어,
그 빛을 볼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빛의 증거자들로 인하여, 인생들은 그 생명의 빛을 본다.

빛을 반사하는 사명이 요한에게 있었으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안내하는 사명의 메시지를 전파하였다.
오늘도 다시 오실 만왕의 왕으로 오실 그분을 전할 선파자들이 있다.
그 빛의 비침을 받고, 그 생명의 빛을 깨달은 자마다,
이빛을 전하므로 자신에게 투영된 그 빛을 드러낸다.

세례요한은 그 빛을 증거하였다. 세상의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온세상을 구원하실 메시야이심을 알려주었다.
이스라엘지역에 사는 이들마다 세례요한에게로 나왔다.
수백년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자가 오지않았으며,
하늘의 소리가 들려지지 않았는데,
요한이 광야에서 하늘의 메시지를 대변하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를 추구하는 인생마다, 그에게로 나아와,
그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는 일들이 일어났다.
오늘도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 사람마다,
하늘의 들려주는 생명의 전파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들이 생명을 얻을 살길을 찾는다.

그의 증거는 모든 듣는이마다 자신을 통해 구세주를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즉 자신의 증거의 메시지나 삶의 증거들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빛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 증거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주님을 믿도록 한다.
믿음은 들음으로 오며,
생명의 메시지는 마음의 들음을 통해 뭇 영혼의 심령 깊숙이 들려진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메시야 구세주가 아니라,
그는 자신을 구세주에게 사람들을 인도하기 위해 사명을 다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다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그는 흥하고, 나는 약해지며,
그는 높여지고 나는 낮아지는 겸손의 자세로 그는 구세주를 전하였다.

진정한 사람됨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겸손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하나님앞에서 참된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자신의 생애를 통해 그분 하나님을 높이며,
자신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올바르게 하기위해 그들의 그릇됨을 지적하고 깨우쳐주신다.
부모가 자녀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 훈계하며,
징계하듯이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생들을 향하여 진리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이 진리의 빛으로 나아오며,
이 빛안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난다. 그리고 변화되어 구원을 얻는다.

온 세상사람들이 와서 보아야 할 참 빛이 오셨으니,
온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죽은 듯한 인간들의 영혼들의 잠을 깨우며,
다가올 심판의 날에 모든 인생들이 구원을 얻도록 세상에 오신 그빛은
인간들의 모든 죄와 질고와 그들이 당해야 할 땅의 저주와
그리고 죽음의 심판까지 친히 담당하여 누구나,
그분을 통해, 저주와 죽음의 땅에서 살고 있는 인생들은
그 분에게 오면 축복과 생명을 얻는 길을 발견한다.

그 빛은 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다.
그 빛은 영원하며, 무한한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한 생명의 빛이며, 구원자의 광명이다.
그분은 하나님이며,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기 신분의식의 중요성

왕자와 거지이야기가 있다.
한나라에 왕자와 거지가 살았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문에서 태어났다.
한소년은 왕자로 자라 궁궐에서 왕자로서 품위있게 대접받으며 살아간다.
또 한소년은 매일 빌어먹는 거지의 왕초의 아들로 자라,
아버지가 하는대로 거지로 구차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왕자와 거지는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둘이는 서로 자신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서로 다른 삶의 현장으로 서로 다른 신분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신분에 대한 의식은 자기정체감으로
자신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의식이며,
자기 표현에 모든 것을 주장하며 주관하는 자기의식이다.
자신이 누구냐하는 자기정체감은 자신안에 있는 자기자신에 대한 생각이 자신을 만들어간다.
자신이 누구냐하는 물음과 그에 대한 해답은 중요한 절차이며 의식이다.

대통령이면 대통령에 걸맞는 자신의 의식이 있으며,
자신의 신분에 대한 태도가 있고, 그 태도에 따라 자신을 연출한다.
판사라면, 자신은 판사로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다.
의사라면, 자신은 의사로서 살아야할 자신신분에 맞는행동을 한다.
만일 대통령이 그 직책을 놓게 되면 자신의 신분은 평민으로 돌아간다.

자신속에 어떤 신분에 대한 의식이 있는가?
일생을 다해 갖는 신분에 대한 의식은 무엇일까?
신분의식은 자신의 의미지에 대한 자기인식의 옷이다.
신분은 자신의 의식의 표출로 나타난다.
신분의식을 통해 사람은 자기표현과 자기연출을 꾀한다.
이런의식은 단순히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역활로
주어지는 자신에 대한 신분의식이 아니라
평생을 살면서 자기의 진정한 모습에 대한 신분의식을 갖고 살면,
그 의식에 따르는 자기인생을 만들어간다.

특히 자기 신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얻어지는 자기정체감은
자신의 삶을 모든 요소에 영향을 미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 자기 정체감중에 자기신분에 대한 분명한 의식은
자신을 더 확실한 존재로 인식하게 하며,
모든 일에 있어 자신의 하는일을 더 탁월하게 효과적으로 일을 하게 하며,
자기의 하는 일에 대한 자아의식을 강화시켜서
자기 성취에 대한 기대와 당연한 결과를 기대하게 한다.

크리스챤들이 세상에 살면서 그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의식의 믿기전이나 믿은후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자기신분에 대한 깨달음이나
자아의식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여전히 자신은 불신의 상태에서 겪는 죄에만 오염된 자아약체의식이나,
혹은 자기결여에서 오는 영적인 방황을 겪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자신이 누구인가?
특히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기 신분에 대한 인식이 급선무이며,
자기인식을 바로 가질수록 자기의 크리스챤생활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살게 된다.
자기신분의 확인에서 오는 자기권한이나, 자기 영역에 대한 권리행사를 바로 할수 있다.

크리스챤의 신분은 죄의 노예에서 신의 자녀의 위치에 세워 졌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의 신분이 과거에 옛자아에서 겪은 죄와 어둠의 영역안에서
자신안에 갇혀있는 부정과 부패와 불만과 불안과 절망과
좌절에서 오는 자기패배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했다는 자의식의 발견으로 인하여
자신신분의 확고한 자기정체감을 가져야 하며,
그 정체감은 자아상실이나, 모호한 자신의 상태가 아닌
분명한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있는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너
새로운 세계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세계안에 있는 자신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
과거의 자기인식에서(죄인, 불안한 자아, 방황하는 영혼등)
새로운 신의 자녀로서 얻는 신분의 권한이나 권리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한으로서 깨달아지는 자기인식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자아신분발견이다. 그런 것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와의 관계에서 오는 자기이해의 확대: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일들을 할수 있는 힘,
그와의 교제에서 오는 실제적인 도움들:
기도를 통한 무한한 그의 자원에서 얻는 삶의 탁월한 지혜와
자기 능력(자기한계를 넘어가는 그와의 교제에서 오는 변화된 자기능력)의 확대등을 통해
전혀 다른 크리스챤의 삶을 기대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크리스챤의 자기신분인식과 그에 따르는 결과는
거지와 왕자의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대로 자기정체감의 인식을 통해,
자기신분에 따르는 삶을 이루어 갈수 있게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관점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관점들은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제공한다.

그런 섭리의 관점들은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에
우리를 새롭게 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우리를 새롭게 헌신하도록 한다.

그러나 아직 대답을 얻을 수 없는 의문들이 우리에게 있다.
플레블은 다섯가지로 그 문제점들을 이해하고 있다.
1.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가 힘들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의심스러울때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리들은 이런것들이 있다.
a.당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진실하게 두려워하는 즉
그를 거슬리는 두려움이 실제하는 지를 살펴보기
b.말씀을 더욱 연구하기
c.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을 제안하고 너의 실천해야 할 내용들을 알아보기
d.당신이 하나님의 조명과 분별을 위해 기도하기,
e.곤란한 상태에 있을때에 당신을 인도해달라는 간구를 하기 죄의 유혹에 빠지지않도록
말씀과 일치하는 섭리의 신앙을 가지기

2.하나님께서 우리의 평안과 축복을 위해 천천히 사역하실때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비들은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
고로 인내를 갖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지연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을 알고 조급해 하지말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경험하도록 기다려야 할 것이다.

3.하나님의 섭리의 특별한 사건들이 그의 사랑을 보여주는지
아니면 보여주지 않는지 하는 그의 사랑의 표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말할수 있는가?

하나님의 섭리는 쓴 약과 같이 우리가 쓴맛을 맛보는 것같으나
그 섭리들은 우리에게 양약이 된다.

4.하나님의 섭리가 크리스챤들을 고통스럽게 참게 할시에
우리의 크리스챤생활을 어떻게 안정하게 할 것인가?
어떤 시련들은 잠시동안 우리를 버려두는 것 같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아무것도 우리를 떼어낼수없다.
걱정은 쓸모없는 일이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의 능력과 목적안에
모든 것이 놓여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5.하나님의 뜻에 대해 어떻게 우리가 복종할수 있을 것인가?
다섯가지의 원리들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얼마나 무한한 지혜를 가지고 계시는지를 기억하며,
우리의 이해가 얼마나 제한 적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하나님의 방법들에 걱정하는 일이 우리이게 죄가 되고 해로운지를 알아야 한다.
셋째, 성경에서 나타나 복종의 예들을 살펴보고 섭리에 대해 거부하는 기질에 대해 부끄러워 함
네째,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영원한 안식을 주는 유익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다섯째, 하나님의 섭리에 반항하는 우리의 의지가
우리의 기도나 믿음생활에 치명적인 해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

*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들
1.하나님은 그의 만드신 우주를 다스리고 있다.
2.하나님은 그의 완벽한 목적으로 사역하고 계신다.
3.하나님은 우리들 자신의 종이 아니다.
4.하나님의 길들은 자신이 이해하는 것보다 더 신비스럽고 경이한 것이 있다.
5.하나님은 모든 때에나 우리들 자신이 신뢰할수 있는 선하신 분이다.
6.하나님의 타임스케쥴은 우리들 자신의 것과 다르다.
7.하나님은 우리들 자신이 무엇을 행하는 것보다
우리들 자신이 되어가는 존재가 되는 데 더 관심이 많다.
8.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은 크리스챤복음의 약속된 부분이 아니다.
9.고통은 크리스챤생활의 주요한 부분이다.
10.하나님은 우리들 안에서 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의 당하는 고난속에서 사역하신다.
11.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들 자신의 것이 아니며,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12.하나님은 그의 말씀의 렌즈를 통해
우리들이 그의 섭리를 읽을수 있는 존재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13.하나님의 길들의 경이로움을 추적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다.

Sinclair G. Ferguson 의 The Mystery of Providence by John Flavel 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기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기
섭리의 신비는 성경적원리들과 역사로부터 엮어진 내용을 포함하며,
추가되는 인용과 실제적인 적용을 통해 알게 된다.
우리가 섭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직접행하신 것을 무시하는 것이며,
우리안에 있는 믿음에서 주는 유익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비밀을 알려는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퓨리탄의 플레블은 4가지 원리를 제안하고 있다.
먼저 자신에게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기억하며 그것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일생을 통해 그분의 행하신 발자취를 알아가는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주신 축복들을 세워보면서,
물위에 떠있는 오리와 같이 물안에 있지만, 물속에 빠지지 않으며,
수영을 하는 것처럼, 섭리의 바다에서 우리는 그분의 행적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타이밍을 탐구하며,
때때로 정상적이지 아니지만,
이상한 방법으로, 혹은 친구같지 않으며 이방인처럼다가오는
그분의 손길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할때에 로마서 8:28의 믿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자들의 궁극적인 행복을 위해
그것들(섭리들)을 촉진하는 친우처럼 행하시는 행하심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섭리와 기도사이에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고,
섭리가 어떻게 당신의 기도들에 인준되어 응답하는 것으로 나타나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당신의 인생안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그의 약속하신 말씀들사이의 연결됨을 추적해보라.
이것은 성경에 대한 신뢰성을 우리의 주어진 환경안에서
채택되어진 하나님의 행동의 과정들을 확증할수 있게한다.
크리스챤의 생활은 성경안에 알려진 하나님의 뜻에 기초하고 있지,
그의 섭리안에 있는 비밀스런 뜻에 근거를 두지 않는다.
섭리안에서 나타나는 그의 뜻은 하나님이
항상 신실하게 그의 약속을 이루시는 사실을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자신을 인생의 주관자와 제공자로
하나님의 섭리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나 환경들을 넘어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성품들과 그의 행하시는 방법들을 생각해는데,
그의 사랑,지혜, 은혜,정중함, 목적들,선함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생안에서 그의 속성들을 통해
섭리가 이루어지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시련받음을 통해
그의 목적들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대해 전능하시며, 은혜로우시고,
지혜로우시며,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충족시키며,
변개함이 없으신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디에 계시는 지를
우리가 곤란의 힘든 시절들을 당할때에 알 필요가 있다.

합당한 자세로 하나님의 각 섭리의 사건들에 반응할 필요가 있다.
비록 그 반응이 슬플지라도, 크리스챤들이 위로와 기쁨의 요소들을 경험할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의 어떤 요소도 우리를 대적하는 의미로 실행되어지지 않는다.
엄격한 섭리의 때일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크리스챤들은 섭리에 대해 긍정적인 관점안에서
주님이 가까이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그의 약속하신 바와 부합하지 않을때에,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이나?
섭리에 대해 불만족스러움을 거부하는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의 행하실때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바라는 축복을 맛보려는 갈망이 증대되어질 지라도,
우리가 조급하게 요구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크나큰 축복을
즉 하나님과 그의 선한 즐거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열려있는 자세로 다가가
그 축복들을 가져다 줄 분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다 소멸될때에
그가 우리에게 기꺼이 다가오신다.
더우기, 우리가 아지 축복받을 준비가 되지않았지만 말이다.
만일 하나님의 모든 자비가 은혜로 주어지며,
우리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없지마는, 우리는 그것들을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한다고 상상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길들과 목적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섭리의 사역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그것들은 우리를 겸허하게 그리고 정중히 하나님을 공경하게 만든다.
즉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사람이 쉽게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시편73편에서 아삽은 하나님의 길들의 모든 복잡함을 이해하려고 힘쓰다가
그의 우울증이 늘어나게 된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에 대해 의심하는 감각
즉 어두운 영의 상태로 키워, 우리자신들이 하려고 하는 유혹에 걸려 넘어지게 한다.
그러나 그런 태도들은 섭리를 불신하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거부하려는 위험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에 대해 묵상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진행하는 하나님과의 소통으로 인도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의 섭리로 그의 백성들중에 자신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
그의 속성들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성품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추구하게 하는 크리스챤 생활의 주요한 기쁨이 된다.

그런 묵상들은 또한 당신의 마음에 일어나는 영향력있는
무신론을 제압하게 한다.
그 자연적인으로 일어나는 무신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해하기를,
즉 어떤 진실한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현존에 대한 의심으로 고통받는 것을 알고 있는
플레블은 참으로 지혜로운 목회자였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묵상들은
우리의 생애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돌봄과
그의 전능한 능력의 길들을 추구하는 것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요새와 같다.
이런 방법으로 과거에 보여진 섭리의 것들을 이해함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강화해준다.
예를들어, 젊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때에
그가 과거에 가지고 있던 하나님의 섭리에 기억으로 그의 힘의 근원을 삼았던 것이다.
그와같이 찬양의정신은
우리의 생애에 달콤한 멜로디로 호흡하게 하며,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애에서 더 중요한 존재로 여기게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의 모든 손길이
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태도들은 불안정한 세상에서
우리의 내면의 마음들을 강화시키며,
거룩함에 증가하는 헌신을 강화하게 한다.
우리가 다음과 같이 죽음에 직면하게 한다.
즉 플레블가 인식하는 것은
때때로 인간의 상당한 내면의 소동과
사단으로 부터 오는 특이한 유혹들로 인하여 죽음에 직면하게 한다.

믿음의 두가지의 어려운 행위들은,
즉 먼저는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자신이 죽음에 직면하였을때에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죽어가는 크리스챤들은
그 혹은 그녀의 생에속에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의 축복들을 회상하므로
그들이 죽어갈때라도,하나님의 평화를 확실히 간직할 수 있다.

Sinclair G. Ferguson 의 The Mystery of Providence by John Flavel 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신앙의 경주

빌3:12-16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얼마전에 이봉주선수의 마라톤의 경주에서 우승의 쾌거를 이룬 일은
모든이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나이가 이미 달리기 선수로서는 37세의 늙은 나이인데도,
그는 부단한 자신의 훈련이나 자기관리를 통해 부단히 자신을 매진하여,
경기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귀중한 예를 보여주었다.,

마라톤처럼 경주하는 것이 인생의 신앙의 경주라고 할 수 있다.
마라톤의 경주는 인간의 힘의 한계를 도달 할뿐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가는 경기이다. 시작에서 끝까지 힘의 안배가 중요하다.
그리고 골인 지점의 끝까지 잘달려야 한다.
경기에서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라톤의 경주에서 완주하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이리라.

이와같이 마라톤코스와 같이 긴 경주의 코스가
정해진 인생경기장에서의 신앙인의 경주에도 비슷한 원리들이 적용이 된다.

자신이 과거에 이루어 놓은 일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계속하여 진행되는 시간속에서 끊임없이
시간안에 잡으려는 자신앞에놓여있는 성취를 향해, 좇아가야 할 것이다.
내가 좇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 그 돈은 돌고 도는 것인데,
내가 그것을 얻고 그것을 나의 주머니에 머물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어느 덧,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그돈이 있다가 사라진다.
아까 까지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돈이 없어지고 끝없이 일어나는 자신의 소유욕을 그것으로 채울 길이 없다.

성경에 인생의 허무한 면들을 살펴본
전도서의 필자인 전도인은 인생이란 소유를 좇아가는 것이 허무하며,
거기에서 벗어나, 반면에 자신이 경험하는 모든 인생의 경험안에서
자신의 인생의 의미와 삶에서 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의미와 가치의 발견은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숭고한 인생의 가치를 예찬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무엇을 잡으려고 달음질하였나? 부귀와 명예혹은 세상공명에 취하여 살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끝없는 소유욕에 욕구를 충족시키려고 노력만 하였는지,. 돌이켜 자신의 날들을 살펴보며, 과거에 이루어 놓은 업적이나, 자기 성취에 대해 안주하지 않고, 지금 껏 달려온 길을 계속하여 달음짐을 하는 발길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는 것이 지혜롭다.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갈 것인가? 자신이 지금 껏 살아온 것들을 계속하여 그렇게 살아도 괞찮은지? 점검해볼필요가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잘못 정했으면 돌이켜 바른 길을 가며,
아직도 제자리에서 별로 진보하지 않았으면,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자신의 길을 다짐하며,
진행의 속도를 더 내도록 자극하여야 할 것이다.
자기 성취나 과거에 이룬 업적에 안주하기에는 아직도 자신의 갈길이 멀다.
인생들은 이미 도달한 것과 아직 도달하려고 나가는 중간에 머물러 있다.
고로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서 걸어온 길을 계속하여 지금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갈짓자로 걷지 않고 정도로 걸어왔는지?
아니면 정도를 이탈하여 자신이 가야할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빠지지 않았는지? 다시금 자신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바라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마음을 다해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향한 창조주의 의중에 따라 새로운 각오아래
그목적을 향해 다시 정진하는 자세를 가질 것이다.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그분안에 있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 발견하며,
그분이 부르신 자신의 갈길을 찾아 그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전도인 바울은 원래는 철저한 유대교의 율법주의자로
그의 종교와 생활은 크리스챤들을 핍박하는 일로 자신의 일로 채우며 지냈다.
열심도 좋고, 사명있는 생활도 좋았지만,
인생의 방향이 잘못 설정이 되어 자신의 추구하는 바가
사람들을 못살게 굴고, 억압하고 죽이는 도구자로 전락되어 살다가,
급기야는 하나님의 긴박한 간섭으로 하루 아침에 사람이 바뀌어져,
과거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가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하는
예수의 전도인으로 일생을 살았다.
때로는 이와같이 인생의 방향이 잘못되었을때에는 방향수정이 필요한 것이다.

누구나 자신안에 이루어 놓은 성취하는 과정이 있다.
어떤 이는 이미 많은 삶의 열매를 맺었을 것이며,
또 어떤 이는 성취하는 과정안에서 자기만족에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좌우간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나의 목표가 얼마나 달성했는지도 몰라도,
아직도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가야 할 길이 남아있는 것이다.
자신의 호흡이 멈추는 순간에 이 인생의 긴 경주의 때를 마치는 것이다.
그때까지는 계속해서 달려갈 길을 달리는 것이다.
인생에서 그때까지 은퇴라는 것은 없다.
육체의 생명이 다한 인생의 경주밖에서라야 그 경주가 끝나는 것이다.

만일 우리자신이 중간지점에 도착하여 거북이와 경주하는 토끼처럼 쉬고 싶어 낮잠을 자며는
경주에서 지는 꼴이 되고 만다.
안일하게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직업을 놓고 은퇴를 하였다하여,
자신이 가야할 길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때에 더욱 자신의 인생의 도달해야 할 목표에 대해 다시금,
열심히 살아온 길을 따라 그 길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힘있게 달려가는 것이다.

자기성취를 이룬 사람들, 즉 과거에 많은 일들을 이루었던 사람들이 실패하는 예는
자신의 더이상 진보하기를 중단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머물고자 할때에,
자신에 대해 실패하기가 쉽다.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하고 난후에
그의 나라는 확대일로로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나라가 융성하였을때에 그가 한가로이 자신의 궁궐의 전망대에서 거닐다가,
안일했던 그에게 정상적인 결혼에서 오는 성적인 생활 외에
불법적인 성적인 유혹을 받아, 넘어지는 자가 되었으며
그로인하여 자신의 가족사가 불명예스러웠고,
불법을 저지른 자신으로 인하여 나라와 국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나의 도착한 지점이 어디에 이르렀든지,
그지점에서 생각해볼 것은 나의 인생의 전체의 경주에서
어느 구간에 머물러 있는지를 알고, 거기에 맞는 태도와 처세를 해야 할 것이다.
젊은 날에는 열심히 미래를 준비할 것이며,
장년의 날에는 자신의 하는 일을 셈하여 쓸데없는 일을 가지치듯 정리하여,
가장 중요한 일부터 생각하여, 여러가지 일로 바쁘고
분주한 자신의 주변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노년의 삶의 거리에서는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주변에 있는 여건이나 상황에 대해 감사하면서,
남은 생을 열매맺을 수 있도록 전체의 자신의 날들을 돌아보는 일일 것이다.

어디까지 도착하였든 일관성있는 자세와 인생철학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런 인생의 자세나 생각들이 조석으로 바뀌어져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게 하고,
다만 시간을 낭비하게 할뿐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앞으로 계속하여도 후회하지 않을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의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진행하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 예수께 대한 자신의 간구

주 예수님은 나의 구주이시다.
그분이 나를 알고 내가 그분을 아는 것이
구원의 관계에서 그분이 나의 구원을 이루셨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고통당하며,
땅의 저주받음과 삶의 고뇌에서 애통해하는 자신을
받아주실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과 더불어 사는 은총을 입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사셨던 사람이며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이세상에 나와 같이 사셨던 분이다.
그분은 나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으로 사셨다.
그는 인간으로서 겪는 모든 과정을 다 겪으셨다.
보통 사람들이 겪는 것보다도 더 많은 질고와 고통을 당하셨다.
그래서 그는 우리의 고난과 고통을 아신다.

주 예수의 영은 자신안에 거하시는 주님이다.
우리 자신안에 오신 예수님은 자신을 주관하며
내가 주님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신다.
그분안에 있는 자에게 자기정죄나, 죄책감이나,
자기허탈에 빠지지 않으며, 자신의 새롭게 됨을 경험할수 있다.

새롭게 된 자신이 그분안에서 얻을 축복을 생각하며,
자신안에 계신 그분을 구하라.

그분에게 능력을 구하지 말고, 그분을 구하라.
그분안에 능력이 있으며, 그의 능력안에서 그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였으며,
그의 능력은 부활로 죽음을 이기셨으며,
그의 능력은 하나님의 우편위에 보좌를 펴시고,
만물을 주관하시며, 능력으로 따르는 무리들을 보호하며,
그들을 치유하는 일을 하며, 모든 정사와 능력이 그의 손안에 있다.
힘없는 자, 무능한 자에게 힘주시고 능력을 부어주시는 그분을 사모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전능자이며, 무한한 권능아래에 계시는 분이다.
그분 안에 모든 능력과 권력이 나오며, 모든 세상권세가 그분의 통치아래에 놓여있다.

그분에게 지혜를 구하지 말고, 그분을 구하라
그분은 지혜의 근본이시다. 그는 지혜로 세상을 펴시고,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신다. 지혜의 충만 그자체이시다.
지혜는 온 우주에 가득한 그분의 솜씨를 드러내며,
인생이 감히 찾을수 없는 깊은 지혜의 보고를 가지고 계신다.
지혜없는 자는 그분에게 가서 지혜를 구하며,
그분과 사귐을 가지면서, 그분으로 부터 지혜를 얻게 된다.
지혜는 내가 소유하기 보다는 내가 그 지혜의 도구로 쓰여지도록
지혜에 나를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지혜는 자신의 소유로 갖고 있기보다는 지혜가 나를 부를 때에
내가 그 지혜의 소명에 응답하며,
그 지혜의 길을 좇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분에게 부요를 구하지 말고 그분을 구하라
모든 만물은 창조주의 솜씨로 넉넉하게 만물이 조성이 되어,
보시기에 좋은 우주로 세워졌다.
모든 만물이 그분의 숨결에 살아 생동하며, 생육하며,
충만한 그의 복아래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곳곳에 궁핍과 곤란과 부족의 현상을 겪고 있다.
그것은 모든 부요의 원천이신 그분을 외면하면서
그렇게 우리 자신들에게 부요보다는 궁핍함이 가까이 있다.
부요하기를 원하면, 그분을 가까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분의 부요는 곤핍한 중에도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분에게 축복을 구하지 말고 그분을 구하라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신다.
그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주장하며, 세울자를 세우고, 버릴자를 버리며,
인간의 운명의 미래에 대하여 주장하신다.
인생의 날들이 형통의 날이 있는 가하면, 고난의 날들도 있다.
선인과 악인의 삶이 매일반듯, 그들의 생이 비슷하게 끝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모든 인생의 길을 인도하신다.
그분을 찾는 것이 인생에게 있어, 만족과 기쁨의 시작이며,
자신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합당한 해답을 얻는다.
어려운 날들의 미스테리나, 알수 없는 고민의 생각들이 그의 가르침안에서 해결받는다.

그분에게 물질을 구하지 말고 그분을 구하라
만물은 무에서 유를 이루어 내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 그에게서 나온다.
그는 천상에서 하지까지 모든 곳에 편만하시며, 모든 물질을 주장하신다.
그에게서 풍부와 부요함이 있으며, 넉넉한 자원이 존재한다.
만물의 자원이 물질에 있지만, 물질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생겨났다.
고로 그분안에 물질의 모든 풍부와 넉넉함이 있다.
그분 예수님안에 모든 부요와 풍부함이 있다.
그분안에 절박함에서 오는 궁핍을 해결할수 있으며,
사막에서 물길을 내시는 손길이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회개해야 할 인생

이사야 1:2-9

2. 하늘이여, 들어라, 땅이여 귀를 기울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기른 자식들이 나를 거역하였다.
3. 소도 자기 주인을 알고 나귀도 자신 주인의 구유를 알건만은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내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구나.”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여, 부패하고 악한 백성이여! 너희가 여호와를 저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배신하였다.
5. 너희가 벌을 더 받고 싶은가? 어째서 계속 거역하느냐? 너희 머리는 병들었고 마음은 약해졌으며
6. 밑바닥에서 머리 끝까지 하나도 성한 곳이 없이 온통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뿐인데도
너희는 짜내고 약을 바르며 붕대를 감는 치료를 받지 못하였다.
7. 너희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 성들은 잿더미가 되었으며 외국 사람들이 너희가 지켜보는 데서
너희 토지를 빼앗아 황무지로 만들었고
8. 겨우 예루살렘만 남아 포위를 당한 채 포도원이나 오이밭의 원두막처럼 되었다.
9. 만일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일부 생존자를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같구나.
여호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의 교훈에 귀를 기울여라.

왜 예언자는 하늘도 듣고 땅도 들으라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세운 나라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하나님을 저버리고 어리석게 그의 지시와 인도를 무시하여,
배반하는 일을 하고 있어,
하나님의 탄식하는 소리가 온 우주에 충만함으로 표현되고 있다.

배은망덕이라는 말은 인간사에 있어서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표현하는 말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이 있다.
은혜를 베풀고 선행을 했던이웃이 오히려 선에 대한 보답은 커녕,
원수로 대하는 경우일 것이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에게 먼저 대접해야 좋은 인간관계로 유지할수 있다.

배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덕중에 사람들의 본성이 타락하였던 것을 보여주는 속성이다.
거역하는 것은 거부하고 역행하는 일을 일삼는 것을 말할 것이다.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것은 인생이 당하는 가장 힘든 상태에 처해지는 것일 것이다.

동물도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는 데
만물의 영장이라 할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있게 한
창조주를 모르고 지내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참 인간다운 것은 자신의 위치를 잘알고
자신의 처신하는 일에 지혜를 갖는 일일 것이다.

범죄는 나라를 망하게 한다. 악이 나라를 멸망으로 이끈다.
부패와 악이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악이다.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악이 아니고, 선하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이 인간의 악이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죄를 짓는 일이다.
의(옳음)에 대한 배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일은 자신을 잃는 일이다.

죄에 죄를 더하는 것은 죄를 짓는 악인들이 더욱 완악해져서,
자신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하는 일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으로 달음질하게 된다.
계속적으로 악을 행하는 일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미 죄에 물든 몸이 죄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한다.
머리에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을 행하기를 꾀하고,
그 도모가 범죄를 생각하게하는 것은
그마음에 품은 것이 늘 어둠에 속하여 자신의 판단을 가눌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다.

정신이 병들고, 생각이 어두워져서 허망한 것을 좇아가고,
쓸모없는 일에 내버려두시는 유기의 상태에서
인간은 더 악을 일삼는 죄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마음은 옳은 일을 하려고 할 때에 강해진다.
마음이 왜곡되면, 그 마음의 상태도 건강치 못하다.
마음이 약해져서 옳은 일에 하는 것에 대해 자신을 다스리지를 못한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는 데
하나님은 사람들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의사가 환자의 질병의 상태를 올바르게 볼수 있다.
환자가 자신의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서 증상이 시작이 되어있으면,
이미 병에 깊이 빠져 있게 된다.
상하고 터지고 맞은 자국에 멍들고, 자신의 몸이 성한 곳이 없어져 있다.
그런데도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으니,
자신이 지금 암 말기증상에 있는데도 만일 치료는 커녕,
진단도 정확히 모른다면, 그 상태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
육체적인 불감증이나 도덕적인 불감증도 인간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영적인 불감증은 더욱 인간의 처지를 절망적인 상태로 빠뜨린다.

환자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질병에 노출되어있다고 판단하면 자신의 몸을 의사의 손에 맡겨야 한다.
인생도 병들고, 멸망으로 치달아가고 있다고 판단이 되면,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에게 나가야 한다.
그분과 대면하여야 살길이 열린다.

사람들이 악하면, 그 사람들이 사는 자연도 영향을 받아,
하늘의 벌을 받아, 땅도 농사를 지어도 열매를 맺지를 못하고,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버린다.

오만한 거나 완악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햇빛을 받고
이땅에 살수 있는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 것도 가당치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비를 내리시고, 일정기간동안을 혜택을 주신다.
사람들이 사는 땅이 몹쓸게 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악하고,
그리고 영적으로 병이 들어, 그 땅이 그들과 함께 버림을 받았다.

땅을 고치려면, 그곳에 사는 인생들의 마음을 고쳐야 할 것이다.
악인이 아무리 재물을 쌓으려고 애를 써도 그것을 허물어 뜨리는 이가 있으니
하늘에 계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은 재물들을 부지런히 모으지만,
그 재물을 쓰는 이들은 주님의 복을 받은 자들이다.
의인의 복은 의로우신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유다나라는 전국토가 남의 나라에 침략을 받아,
유린당하고,이제는 예루살렘만 남아,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자신의 몸밖에 없는 상황이란 참담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 않는가?
침략을 받아 멸망해가는 유다나라의 현실은
하나님앞에 범죄한 나라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징벌을 받는다.

의는 나라를 영광되게 하지만, 죄는 나라를 망하게 하고 파멸에 이르게 한다.
오이밭의 원두막같이 덩그러니 남은 예루살렘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속에 있다.
인생의 삶에서 위기의식을 가져본 적이 있는 경우는 자신의 생명이 경각간에 달린 상태로,
헤어날수 없는 자신의 몸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사업이 실패하여 진퇴양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빚의 독촉을 받아,
가히 절망적인 상황이 되어있는 경제적인 손실이 막강할 때일 것이다.
왜 자신의 인생이 유린당하고 억울한 일을 만날까?
알수 없는 문제투성이가 발생하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인간속에 겪는 수많은 재앙적인 요소들은
모두가 인간의 죄로 기인된 것임을 부인할수 없다.
그런 문제에서 헤어나올 길은 구원자를 찾아,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유다나라도 하나님에게로 돌아와야 살길이 보인다.

하나님의 심판은 종말의 때까지 늘 일시적이며, 제한적이다.
그것은 그의 심판가운데에, 자비의 손길이 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죄에 대한 심판을 그대로 실행한다면
아마 누구도 그의 심판앞에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인생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오고오는 세대에 심판의 경종을 알려준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았던 사람들처럼 죄를 짓는 일을 밥먹듯하며,
늘 생각하는 것이 죄악을 범하는 일에 빠르게 진행되어버린다면,
거기에 대한 댓가는 심판을 자초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유여는 그의 자비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다리는 그의 손길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하나님의 배려이다.
십자가의 심판의 죽음이 있기전에 자신에게는
십자가에서 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성자 예수의 수치스러운 죽음의 십자가를 바라볼때마다,
심판의 혹독함과 수치스러움을 보며,
자신속에 있는 죄악을 뉘우치고
자신속에 있는 영적인 질병과 도덕적인 타락을 회개할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들에게 자신의 그릇된 길에서 돌이킬 것을 명하신다.
인생들이 자신들의 길에서는 의를 발견할수 없으며,
의의 하나님에게 나아올때만이 의를 발견하고 그의 의안에서 평안을 얻는다.

인생의 변화는 대체로 두가지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있다.
그 변화는 인생의 나가는 향방(그 방향성으로 인하여 돌이킬수 없는
인생의결과를 초래함)을 생각해본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것과 안좋은 방향으로 트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는 좋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이정표의 역활을 한다.
회개는 현상을 변화시키는 지름길이며, 인간성의 개조의 주된 도구이다.
회개는 자기혁신이며, 인생변화의 분명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다.

사회는 인간성의 변화를 통해 개선되어진다.
인간이 사는 방법에 따라 사회의 상태가 결정이 된다.
유대사회는 하나님을 섬기는 인생들이 점차 사라지고,
종교를 방편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무리들로 인하여
자신이 멸망에 처한 사회로 심판에 이르게 된다.
사회변화는 인간변화에 의해 주도되어진다.
나라와 국가의 좋은 발전도 국민들의 변화를 통해 가능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민의 정체감

성경이야기는 많은 인생들이 한 시대에 태어나,
자신이 살던 곳을 떠나 살든지, 혹은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며 살았든,
혹은 옮겨다니며 살았던, 모두가 사람들의 이주하거나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삶의 이야기로 시작하였다.
처음에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시대를 거쳐, 그곳에 삶의 뿌리를 내려 살다가,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이민 반복의 역사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신의 부름으로
처음에 자기가 살았던 고향 땅의 사회나 문화를 뒤에 두고,
신이 지시하는 새로운 개척지로 옮겨 다니는 유랑의 생활을 하였다.
그의 후손들도 계속해서 자신들이 살던 지역을 떠나 이주하며,
새로운 지역에 가서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살았다.

아브라함의 이주는 하나님앞에서의 결단과 순종에 따르는 이민의 경험이며,
떠돌이 생활의 인생순례였다.
그는 가는 곳마다 자신을 인도하는 하나님앞에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일과
그곳에 정착하는 새롭게 지역사회에 적응하는 일을 시작으로,
그는 자신이 있는 지역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 지역에 동화하여,
지역사람들과도 일정한 거리의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라는 지역의 맹주와 일정한 이웃관계를 유지하며 살았고,
그곳 사람들과 매장지를 구입하는 일에 있어서도,
깨끗한 상거래를 하며, 그 곳에서자신의 뚜렷한 사회적인 위치를 갖게되며,
나중에는 그 지역에서 맹주가 되어 살았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젊은 날에 자기가 자라온 지역을 떠나
홀로 어머니의 고향땅을 밟아,
외삼촌 집에서 20년의 청춘의 삶을 지내면서,
거기에서 결혼하여 부인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자산을 함께 일구어 낸 자수성가의 생활을 하고,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와서 정착하여 살았다.

그후 야곱은 가나안에서 살면서, 전세계적으로 밀어닥친 심한 흉년으로 인하여,
온 땅에 기근이 심하였다.
야곱이 자신의 가족들과 기근으로 인하여,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는 동안에,
당시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 죽었다고 여겼던 요셉이
이집트땅에서 국무총리가 되어 출세한 위치에 있었다.
야곱의 온 가문의 사람들이 기근을 피해, 그곳에 내려가 정착하여 살게 되었다.

이집트땅으로 이민간 야곱의 가족들의 이주에서 오는 경험을 통해
그들의 타국에서의 생활은 자신들의 안전이나,
삶의 우선순위는 자신들의 정체감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이방땅에 갔지만
자신들의 살아온 생활습성이나 문화를 가져갔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자기 정체감을 가지며,
노예로 전락하는 고난의 세월을 살았지만,
나중에는 자신들의 독립적인 정체감을 유지하였고
나중에는 억압된 노예의 상태를 벗어나,
새로운 민족과 국가건설을 위한 발자취를 남기기도 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새로운 지역이나 사회나 문화에 적응해가는 적응력이 대단하였다.
자신들이 이주해 간 그 지역을 자신들의 고향처럼 여기고,
그곳에서 정착민으로 살아갈수 있었다.
비록 바벨론에서도 유페의 생활을 하였지만,
그곳에서도 독특한 자기들만의 유대문화를 지켜
지역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만의 민족의식과
민족고유 문화적의식응 지키며 살았다.
그후에 그들은 고향땅에 와서는
잃어버린 조국의 땅을 다시 찾아 그곳에 정착하며 새시대를 살았다.

그후 세계각지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이민자들은
디아스포라는 유대 이민자의 특유의 삶과 문화를 이루며 살았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후손들도 그들의 조상들처럼 가는 곳마다,
자신들이 지역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고 있다.

이민의 정체성은 지역사회에서 나그네로 사는 의식이다.
하지만, 그곳은 자신이 거주해야 하는 지역정서의식이 필요하다.
믿음의 조상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그들은 늘 자신들이 그곳에 있는 자기 정체감
(이중문화인으로 살아가는 양면의식: 하나는 하나님의 부름을 섬기는 선민의식,
또하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사회인)에 대해,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이민자들도 각기 자기들만의 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서,
다문화권적인 미국사회에 적응하고 있다.

이민의 추세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곳과 고향이라는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기회나,
새로운 문화에 접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취업이나 직업의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전혀 새로운 지역에 가기도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이민을 결정하기도 한다.

새로운 사회나 문화에 적응하고 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의 차이 나 언어의 극복문제가 생각보다 어려운 이민자의 과제이다.
언어사용에 대한 차별이나 자신만의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충격이나
인종적인 차별등을 극복을 하지 않고서는 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감당할수 없다.
주류사회에 대해 주변의식에 갇혀 살게되는 의식은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아도, 자신이 이민을 간 사회에 동화되지 않을수 있다.

즉 그런 사람들은 일차적인 문화권에서 떠나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으로 사는 신세이거나
혹은 이차적인 문화권에서도 오히려,
과거에의 회귀나 향수를 가져 그곳 새로운 지역에적응하지도 못하고,
양문화권 사이에 끼어, 이방인으로 사는 주변인으로 사는 삶으로 사는 경우 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모든 인생은 자신이 이땅에 태어나 살다가,
자기가 온 곳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모든 인생들이 이민의 삶을 산다고 생각할수 있다.
다만 자기가 태어나 자란 사회나 문화에 조금 익숙할 뿐,
인생이라는 자체는 이민의 정체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영원한 자신이 머물수 있는 곳은 이지구상에 아무데도 없다,
즉 이말은 모두가 이민자의 삶의 정체의식을 갖고 살수 밖에 없으니,
반대로 이민자로 어느 새로운 지역의 사회나 문화에 적응하여 살아갈 때에
어차피 인생은 나그네의 삶이라는 의식아래에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자리와 현재의 위치에 대해 만족해 하며,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처세의 지혜가 필요하다.

새로운 지역에 이주해 가려는 이민자들은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의식이 필요하다.
우선 이민의 삶 그 자체는 도전적이며,
이제까지 살지 않았던 곳을 향해 나가는 개척자정신이 요구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정착하려는 새로운 지역에서 오는 사회관습이나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적응하는 자신에 대한 충격을 줄이고
그문화에 적응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민을 가서 경험하는 일들은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노하우와는
전혀 다른 이질감이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
아무리 고향땅에서 살던 지식이나 삶의 경험이 축적이 되어 장성인으로 살았어도,
이민으로 새로운 지역에 가면,
이제 새로운 지역에 대해 모르고 이제 배우며 살아야 하는 학생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민간 지역의 사회적인 관습이나 문화를 익히는 일에
자신의 시간들을 투자해야하는 것이다.
이민으로 가면 그곳에 있는 그곳의 사회적인 관습이나
그들의 문화를 배울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할 것이다.

예를들면, 언어 습득하는 지역사회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든지,
지역사람들이 많이 모여 함께 하는 지역사회의 문화적인 행사나 활동들에 참여하여
자신이 스스로 그 지역사람의 한사람으로 일체감을 갖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빠른 시일내에 현지민을
친구로 사귀는 일을 갖는 일이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면, 언어나 문화를 익히는 데 제일 빠른 지름길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 현지인들이 보지 못하는(그들은 대개 이제껏 살아온 경험에 대해 신선하지 않고 그런 것들을 지나치는 것등) 이민자들만 볼수 있는(새로운 지역에 대한 호기심 발동을 통한 그 지역사회를 경험하기) 지역사회의 공간이나 기회
(예를들어, 미국에서는 도서관을 주로 많이 이용하기나 박물관 방문이나
지역행사에 참여하기)등을
활용하는 것이 또한 그 지역 사회에 빨리 적응하는 계기가 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이언트와 힘겨루기

자이언트와 힘겨루기(Facing the giants)

이 영화는 그랜트 테일러 라는 고등학교 풋볼코치가 겪는 삶의 이야기이다.
그는 만 6년을 고등학교 풋볼코치로 재직하고 있었다.
매년 그의 실러 이글스팀은 매시즌 경기마다
승점을 가저 보지 못한 만년 골찌를 면할수없는 최악의 팀이다.
팀이 나가서 경기를 할때마다 지는 것이 선수들이 하는 일이다.
그 코치는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는 팀을 이끌어 간다.

결혼한지 4년이 지났지만, 그의 부인으로부터 임신에 대한 좋은 소식이 없다.
병원에 가서 임신테스트을 받기를 하지만, 번번히 불임의 소식만을 듣고 있다.
부인은 부인대로 병원에 가서 임신테스트를 할때마다 풀이 죽어 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자신이 혹시 불임의 원인이 아닌가도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가 타고 다니는 중고자동차인 그의 차는 번번히 밧데리가 문제되든지
아니면 다른 부분이 문제가 되어, 자동차가 멈춘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안되는 쪽으로 발달이 되어
그의 마음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이번 시즌도 3경기를 치렀지만, 계속해서 지는 경기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그의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학교의 한 사무실에서 몇몇 선수들의 아빠들이 자신을 놓고 왈가왈부하며,
풋볼 코치를 내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급기야는 자신의 거취를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만 깊은 낙심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 부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만,
더욱 마음이 무거워 진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나는 무엇이든지 해도 안된다” 라는
자신은 실패하는 인생이라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어느 크리스챤이 그에게 와서
자신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이 보내서 왔다고 하며,
성경을 내어 놓고, 읽는 구절중에 두려워 하지 말라는 구절이 성경에 365번이 있다면서
결코 자신의 처지를 두고 낙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말며,
하나님을 찾고 의지하라고 권면을 하고 가는 길로
다시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다짐을 하였다.

평소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그였지만, 그의 권면에 용기를 얻어
그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밤이고 낮이고 시간이 있는대로 성경을 펴고 읽으며,
말씀을 묵상을 하며, 조용히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중에 하나님 왜 나는 하는 일마다 되지를 않습니까? 하나님께 물으며,
그는 하나님께 해답을 얻기 위해 그의 영혼이 울부짖고 있었다.
그는 몇일을 고민하며, 밤마다 몰래 일어나서,
하나님앞에 나가 기도를 드린다.
성경을 읽으며, 자신의 문제를 안고 씨름을 안다.

그는 하나님을 통해 다시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다시 정립하며,
자신의 하는 모든 일을 점검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하기 시작하였다.
집에서 부인과 함께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자신의 생활에 대해 다시 하나님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을 점검하기 시작하였다.

학교에 가서는 자신이 가르치는 풋볼팀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새로 정립하여,
선수들에게 자신들이 승리하려는 목적의식에 대해,
단순히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활에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가를 물었다.

풋볼팀에 대해 새로운 지침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그의 영광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팀이 되자고
일일이 선수들에게 믿음을 집어 주면서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연습을 하게 하였다.

하루는 대표적인 한 선수에게 힘에 부딪치도록 연습을 설득하여 시키며,
그 선수가 최선으로 연습을 하는 모습에 모든 선수들이 감동을 받았다.
모두 선수가 최선을 다하여 육체적인 훈련과 팀훈련을 집중적으로 하였다.
테일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모든 것을 상의하여, 지혜를 얻고 팀을 이끌었다.

새로운 선수 한명이 풋볼팀에 들어온다.
그 학생은 원래 축구 선수였는데,
그의 아빠는 두다리가 마비가 되어, 휠체워를 타고 다닌다.
그 아빠는 아들을 풋볼 코치에 데리고 와서는 자신의 아들을 받아 달라고 한다.
그 학생은 전문적인 키커로 풋볼선수중에 훈련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의 킥은 거의 풋볼 골대펜스를 넘지를 못하였으나,
집중적으로 계속하여 연습하였다.
나중에 경기에서 그 학생의 킥은 중요한 역활을 하기도 하였다.

선수중에 또 한 아이가 있었다.
그 학생은 그의 아빠가 데리러 올때마다,
아빠에게 대들고, 아빠를 무시하는 말투를 한다.
그 코치는 그선수에게 아버지에게 공손할 것을 부탁하며
성경말씀으로 부모에게 공경할 것을 주문하니
그선수가 코치의 말을 듣고나서, 새사람이 되어, 아빠에게 착한 아이로 변하였다.
나중에 이 두 부자는 코치의 고장나는 중고차를 몰래 가져가고
새로운 지프트럭을 선물로 아무도 모르게 가져나 놓았다.
그것을 받고서 코치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선물한 것을 생각하며
감격해져서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를 드린다.

이후에 코치는 더욱 열심히 팀을 이끌어
나중에 팀이 나가 경기를 하는데,
경기할때마다 팀이 승리하기시작하였다.
선수들은 코치팀과 한 마음이 되어 모두가 열심히 하여,
그해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가, 최종승부를 짓는 게임을 하게 되였다.

마지막 매년 우승하다 싶이 한 상대팀인 자이언트팀과 최종결승전을 치른다.
그 팀은 선수들이 모두가 건장하고 게임을 잘하는 선수들으로 이루어 졌다.
경기는 시작이 되어 먼저 자이언트 팀이 승점을 얻고 이기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그의 실러 이글스팀도 따라 붙여 점수를 얻었지만,
자이언트팀이 이기는 가운데에 전반전이 끝났다.

이런 와중에 전반전후 휴식시간에 코치는 선수들에게 독려를 하며
최선을 하자고 설득하고 나서는 하나님께 다함께 기도한다.
그 실러 이글스팀은 화이팅을 외치며, 선수들이 단합하여,
후반전부터 힘으로 밀어 붙이며, 자이언트 팀을 바짝추격하여
거의 동률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거의 끝날무렵에 불가능에 가까운 50야드 킥을 킥선수에게 주문하여,
팀은 마지막으로 점수를 얻어,
그 자이언트 팀을 이기고 그해 챔피언 팀이 되었다.

팀이 이기고 돌아와 집으로 왔는데 부인으로부터,
임신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테일러는 기뻐하였다.
그는 이제, 실패하는 자가 아니라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인생임을 알고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나중에 그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셔서 기뻐하는 모습을
크로스업이 되면서 영화가 마치게 된다.

이 영화는 한 교회와 그 교회에서 운영하는 크리스챤 학교의 관여된
아마추어 배우들이 대역을 맡아, 영화한 것인데
흥행에 성공하여, 많은 크리스챤들이 보고 즐기는 영화이다.
2006년도 가을에 출시되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도자의 세움

세계역사나 민족의 역사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기 보다는
그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지도자를 하나님이 세우시므로,
하나님이 역사의 중심이 되어 활동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신의 달려갈길을 다 마치는 인생의 경주를 끝나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민족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일에 의해 생겨나며,
새로운 환경이나 삶의 조건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요구한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만들어 내고, 시대가 만들어 낸다.
하나님께서 세울 자를 세우고, 폐할 자를 폐한다.
그에게서부터 모든 인물들의 지도력이 나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새 영도자로 명령을 받아,
새로운 사명의 일꾼으로 세움을 입는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는다.
그의 멘토였던 모세의 지도아래 일찌기 그는 수종드는 일을 통해
지도자가 되는 길을 걸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통해 지도자는 남을 섬기는 자임을 보고 배운다.
지도자는 자신의 의견을 따르기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있음을 배웠다.

사람들을 섬기는 자가 지도자로서 세움을 입는다.
모세는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그는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도자로 이스라엘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를 받들어 섬기는 종의 생활을 하였다.
모세의 부관이 되어, 그의 그림자처럼 보좌하며, 모세의 지도력을 배웠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는 훌륭한 멘토의 역활을 하였다.
그러나 일찌기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하에서 모세를 섬기면서
그를 통해 지도자수업을 젊은 시절부터 받아왔다.
비전이나 꿈을 가지는 나이는 젊을수록 좋으며,
비전이 혈기왕성한 나이에 가지면서,
그 비전을 성취할 준비를 착실히 다질수 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미래의 지도자상을 모세를 통해 배우고,
지도자로서의 갖추어야 할 품격을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배웠다.

지도자 모세는 고통당하는 동족의 아픔을 생각하며,
이집트의 왕자의 신분을 저버리고,
이스라엘 자기 동족들과 함께 고난을 각오하는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지도자의영도력을 따랐고,
모세이후의 여호수아의 새로운 지도력을 인정하였다.

모세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그 율법을 통해 무리들을 하나님에게로 이끈다.
지도자는 자신이 무리들을 지도할 분명한 교안이나 지도철학이 있어야 한다.
백성들은 그 율법대로 살므로
자신들의 생명의 축복과 번영이 있음을 지도자를 통해 배운다.

지도자란 인도자이다. 고로 지도자에게는 새로운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런 비전을 가진 자가 지도자로 세움을 입는다.
그는 자신의 앞서가며 따르는 무리를 인도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고로 그는 앞을 내다볼 줄아는 지혜와 그들에게 지도력을 나타내야 할 것이다.

지도자에게는 또한 책임이 주어진다.
따르는 무리들을 바른 길로 이끌 책임자이다.
지도자는 따르는 무지들에게 모델이 되어 주어야 할 모범자이다.
삶의 모든 부분에 있어서 본이 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따르는 무리들에게 본이 되고.
자신의 지도력을 수행함에 있어,
먼저 자신안에서 자신의 삶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배운다.

지도자에게는 자기만의 형통의 비결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세의 형통의 의 비결은 오랜 광야생활에서 터득한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였다.
양을 치는 목자로서 그는 하나님을 가까이서 모시고
그의 말씀을 생각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는 일을 힘썼다.
그것이 지도자로서 자신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주님을 섬기는 종은 항상 그분의 말씀을 항상 간직하여,
그분의 말씀으로 그분을 섬겨,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그의 말씀인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고 하신다.
그 율법책을 네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안에 깊이 묵상하며 살라고 하신다.
자신에게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 말씀이 살아있는 언어로 자신에게 들려지도록
부지런히 말씀앞에 자신을 나타내야 한다.

고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생활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일을 유능하게 된다.
자신이 먼저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그 묵상의 깊이에 대한 노력을 기울여
더 나아가 그말씀의 유익한 것들을 간직하여 지키려는 순종과
열정에서부터 자신의 영적인 지도력이 나온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은 말씀을 사랑으로 대하는 자세로부터 말씀을 품고,
그 말씀의 영향력아래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말씀을 따르는 영적생활이 유지되어진다.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도자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책임지신다. 그리고 주님은 그에게 명령하신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자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의 종이며 그분의 시종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지도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인고로
그분이 무엇이라 하시는 지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살피는 일이
지도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하거나
그분의 지시를 따르지 않게되면
그날부터 그 지도자는 하나님앞에 쓰임받지 못하고
쓸모없는 인간으로 타인에게도 해를 끼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동행하심에 대한 약속을 주신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말은 지도자가 어느 면에서나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여
그의 지도력을 붙들어 주신다는 약속이다.

지도자는 자신의 지도력의 정체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지도자가 오만하거나,
권력을 오용하는 실수하는 범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잘 인지해야 할 것이다.

정치 지도자는 백성들이 뽑지만,
그의 권력의 근원의 시작은 모든 권력의 근원인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다.
올해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뽑히는 지도자도 국민들이 뽑지만,
그의 권력의 힘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것은 선한권세나 악한 권세등 모든 권세는 하나님의 권한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지도자와 함께 하므로, 지도자는 자신의 하는 일에 형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은 백성들가운데에,
민중들이 그의 지도력을 인정받는 길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한 것 같이
여호수아에게도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앞날에
너의 평생에 너를 당할자 없으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지도자와 함께 하시고 그를 세우시면,
그의 지도력을 막을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며, 버리지 아니하리라 약속하시며,
그의 지도력의 앞날이 형통하리라.
그의 삶이 평탄하게 되리라 또한 약속하신다.

지도자에게는 무엇보다도 강한 마음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자신이 세운 지도철학을 관철하면,
소신있는 지도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격려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때에,
그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그사람이 그 일을 수행할수 있는 능력과 지혜가 되어주신다.

새로운 일꾼으로 나서는 일, 새 일을 맡는 일등
즉 지도자로 세움을 입는 일에는 용기가 제일 필요하다.
사람을 다스리는 지혜도 용기있는 지도력에서 나온다.

여호수아는 그렇게 하나님의 사역자로 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부터 시작하여,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 하였다.
젊은 때부터 모세의 시종으로 자신의 상관를 섬기고,
그 지도자의 부관역활을 잘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지도자의 노하우를 배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