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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님의 [김예슬의 뉴타입 정신과 소심함] 에 관련된 글.
햄릿은 자기 마음을 피리쯤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을 죽음으로 보냈다. 자칭 친구라는 자들이 온갖 궤변을 동원하여 햄릿을 주물러 보려고 했다. 햄릿은 문득 피리를 하나 꺼내놓고 불어보라고 한다.
햄릿 : 이 피리를 불어보게.
길던스턴 : 전 불지 못합니다.
햄릿 : 부탁이네.
길던스턴 : 정말로 전 불 줄 모릅니다.
햄릿 : 간청하네.
길던스턴 : 저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왕자님.[1]
예슬님의 마음을 가지고 피리를 불려고 한다.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나 있는 구멍을 다 알고 있단 말인가? 그 몸을 주무르고 그 마음의 구멍을 열고 닫아서 무슨 소리를 내는데 이상야릇하기가 그지 없다.
세상이 어지럽다. 세상이 돌아버릴 것 같이 돌아가는데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씨 착한 우리 어머님들이 하던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님들은 금강 연변에서 무를 다듬으셨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의식은 필연 <자기가 아닌 것>으로 존재해야 하고, 또 <자기>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우울증의 근거다. 예슬님은 이 우울증에 걸리는 굴레에서 벗어나왔다. 그는 무엇엔가 잡힌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잡힌바 된 그것을 진실로 취하기 위해서 힘차가 나아갈 것이다.
피리불지 말자. 소심쟁이 뱀 나올까 두렵다.
둥둥둥 북을 치자.
[1] 이경식 해설·번역, <햄릿>,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1998). pp. 232~233. 인용은 <스테레오>님의 블로그에서 (http://stereotype.tistory.com/1#footnote_link_1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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