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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상학 서설 §14

(§14) 이제 겨우 시작하는 학문으로서의 학문은 어쩔 수 없이[1] 아직 [내용적으로] 빠져서는 안될 세부적인 면까지 모두 갖춘 상태가 아닐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완벽하게 다듬어져 있을 수가 없는데, 바로 이점이 [비학문적인 의식이] 질책하는 것이다. 이 질책이 등장하는 학문의 본질에 일격을 가한다고 하는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정당한 질책이 되려면 앞서 언급한 형태의 연마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인정/수용하지 않으면서 다만 등장하는 학문을 비난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기모순에[2] 빠져있는 비학문적인 의식의 꽉 막혀있는 상태를 풀어내는 것이 오늘날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이 매듭을 풀기위해서 학문으로 연마해 나가야 하는 의식은[3] 이리저리 갈라져 서로 다투고 있지만 다들 아직 충분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이렇게 갈라져 있는 비학문적인 의식의 오늘날의 현상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보자면] 한편은 소재의 풍부함과 이해가능성을 고집하는 반면, 다른 편은 둘 다 업신여기거나 아니면 적어도 이해가능성을 업신여기면서 이성과 신성의 직접성을 고집한다. 현재 전자는 침묵하고 있는 상태다. 그의 침묵이 순전히 진리의 힘에 의해서 그렇든 아니면 상대방의 격렬성이 여기에 한몫 하여 그렇든 아무튼 그가 사태의 근원 앞에서 달리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을 느낀 나머지 굴복하고 침묵하게 되었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소재의 풍부함과 이해가능성을 고집하는] 전자의 침묵이 위에서 이야기한 학문의 요구와 관련해서 만족을 느낀다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정당한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가 침묵하고 가만히 있다고 해서 후자가 완전히 승리한 것이 아니다. 승리의 반쪽은 [일정한 진리에 기반한][4] 후자의 것이고 다른 반쪽은 [골 때리는 것을 뭔가 엄청나게 참다운 것을제시하여] 기대를 격양 시키고 또 격양된 기대가 가라앉지 않게 기대한 것을 갖다 주겠다고 약속은 계속하지만 약속 이행은 하지 않는 데서 보통 빚어지는 [오늘날의] 권태와 무관심에 항복한 것이다.



[1] 원문 

[2] 원문 . 이 대립은 학문과 학문으로 향하는 의식간의 대립이 아니라, 학문이 덜 된, 갈팡질팡하는 의식 안에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대립이다.

[3] 원문

[4] 헤겔도 직접성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성과 신성의 직접성을 주장하는, 예를 들어 피히테의 Intelletuelle Anschauung(지적직관)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서론 §8 역자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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