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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동쟁의 동향

독일 제조업부문의 노동쟁의는 이제 거의 없는 것 같다. 파업하면 딴 데로 가버린다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자본의 협박에 노조지도부까지 '일자리우선'하면서 파업을 자제하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산업구조의 변화와 함께 노동쟁의구조에도 변화가 온 것인가?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면 주로 서비스부문에서 파업이 있었고 또 항공기조정사는 항공기조정사끼리, 기관차조정사는 기관차조정사끼리, 항공관제사는 항공관제사끼리, 승무원은 승무원끼리 등등 특수전문직들이 따로따로 살림을 차린 '전문영역노조/Spartengewerkschaft'의 노동쟁의만 있었던 같다.

지금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독립항공승무원조직/Unabhängige Flugbegleiter Organisation-UFO)이란 노조의 노동쟁의를 봐도 그렇다. 개원 의사들이 파업할 조짐도 보이고.

노동자운동 역사를 보면 가장 잘 나가는 부문의 노동자들이 항상 기관차적인 역할을 하면서 노동쟁의를 주도해 왔는데 이젠 노조들이, 특히 전문영역노조들이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항공관제사의 파업이 그런 비판을 받았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독일 친경제연구소인 쾰른 소재 <독일경제연구소/Institut für Deutsche Wirtschaft-IW>에 따르면 1970년 이후 독일의 노동쟁의동향은 아래 그래프와 같다. (여기참조)

 

사용자 삽입 이미지

(노동쟁의로 상실한 노동일(검은 선) 및 서비스부문의 비중 (막대기), 독일연방노동청 자료에 기반한 IW 통계)


노동쟁의로 상실한 노동일이 1970년대에는 연평균 80만 일이었는데, 1990년대 연평균 33만 8천일에서 2000-2011년 연평균 14만 4천일로 줄었다.  

1984년의 경우 주 35시간 도입을 놓고 진행된 노동쟁의로만 그해 560만 노동일이 상실되었다.

현재 전반적으로 저조한 노동쟁의에 서비스부문의 비중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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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하기 - 칼 마르크스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를 놓고 베를린 자유대 철학 거장들이 돌아가면서 강의하는 Ringvorlesung이 있었다. 80년대 말로 기억된다. 그중 참신한 보수이며 학자보다는 선생이었던 미하엘 토이니쎈(Michael Theunissen)의 강의 일부를 번역 소개한다. 이 강의는 "시간의 부정신학"(Negative Theologie der Zeit)이라는 묶음집에 발표되었다. 역자는 받아 쓴 것을 번역했기 때문에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이제] 철학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을 각인한 두 번째 경험을 이야기할 순서입니다. [역사의 아프리오리(A priori)를 사유하려다 거의 미쳐버린 예나 시기의] 헤겔을 [다시] 기초철학(Fundamentalphilosophie)으로 내 밀고 [논리학으로 떨어지게 했던 첫 번째 경험처럼] 이 두 번째 경험도 사유의 [현실]접근(Denkansatz)에 있어서 혁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마르크스 사유에서의 단절(Bruch), 즉 곧바로 [철학에 몰입하는] 철학적인 저서에서 경제비판적인 저서로서의 전환을 말하고자 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이토록 명망을 상실한 오늘날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 때문에, 1844년 <파리 수고>와 1867년 <자본론> 사이에 일어난 마르크스 이론의 변화가 철학을 이런저런 관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닌 사람들도 인정하는 오늘날의 철학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초기 마르크스에서 후기 마르크스로 넘어가면서 철학은 비판이, 비판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철학이 역사철학이라면, 철학은 동시에 유적인간의 발전경로의 청사진(Entwurf)을 출발점으로 하여 현재를 이해하려고 시도한 이론에서 이젠 거꾸로, 당시 알려지지 않은 프랑크푸르트 시기의 헤겔에 무의식적으로 접목하면서, 현재를 출발점으로 하여 역사 전체를 시야에 넣으려는 이론으로 변합니다. 여기서 저는 여러분이 대수롭지 않는 것에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마르크스가 경제학 고전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영박물관에 처박혀 자기 생애의 10년을 투자했다는 단순한 사실입니다. 이 10년 사이 철학은 예전에 전혀 없었던 [예전과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습니다. 연구(Forschung)가 되었습니다. 철학적 연구는 자신을 부정하는 양태로서의 철학입니다 (Philosophische Forschung ist Philosophie im Modus ihrer Negation.)

유감스럽게도 마르크스 후의 철학이 계속 연구로 머물렀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철학이 오늘날 두루 연구가 아니라 할지라도, 철학은 - 최소한 이것은 주장하고 싶네요 - 연구여야 한다는 혹은 (...) 연구로 시작해야 한다는 요구아래 있습니다. 오늘날 철학이 견실한 것이 되려면 달리 할 수 없고, 남은 것은 오로지 자신의 부정양태입니다. 이것은 또한 철학의 첫걸음이 연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리고 이 대목에서만, 내가 스스로 내 자신을 굽혀 받아들이는 요구를 다른 사람에게도 할까 합니다. 이 요구를 명확하게 하기위해서 철학적 연구라는 보편적인 개념과 특수한 전제 때문에 철학이 철학적 연구가 된 마르크스의 특수한 상황을 구별해야겠습니다. 저 자신에겐 이런 특수한 의미로서의 연구로 시작하는 철학을 요구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찌되었던 간에 그들이 철학을 연구이상에 맞추기를 기대합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추측컨대 마르크스가 [철학을 철학적 연구로 만듬과] 동시에 모든 철학적 연구에 적용되는 잣대를 정립했습니다. 마르크스 후의 모든 철학이 그의 부정된 철학의 개념에 미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그 잣대는 마르크스가 출발점으로 삼은 특수한 전제에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특히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제를 고려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첫째, 현실은 역사적으로 되어진 것이고 이런 것으로서 모든 철학적 청사진을 앞서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전제는 모든 철학으로 하여금 [자신을 까뒤집어] 밖으로 향하게 하고 실재하는 사실(Realien)로부터 가르침을 받도록 강제합니다. 둘째, 현실은, 역사적으로 되어진 것으로서, 지적 활동의 성과로,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는 전공학과의 연구결과(Erkenntnisse)로 매개된 것으로서 역시 모든 철학에 선행되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전제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현실로서의 정치경제학을 과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거쳐서 서술하게 강제했습니다. 이 자리는 철학과 경제학의 관계를 토론할 자리는 아닙니다. 단지 여러분이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적용한 방법의 모범성에 주목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의 [연구]진행방법의 모범성은 그가 철학을 그렇게 진행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모든 철학으로 하여금 전공학과에 빌어 붙어 [연구하게] 한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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