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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3조

3조:

셋째, 지금까지의 관습은 [윗]사람들이 일관되게 우리를 지들에 속하는 사람으로 여겼는데, 이건 그리스도가 스스로 보혈을 흘림으로써 대가를 치르고 우리 모두를, 목자에서 최고권위자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방의 대상이 되고]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에 견주에 볼 때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는 자유롭고 또 자유로워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건 우리가 어떤 윗사람권세도 허용하지 않는 자유를 원한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명 안에 거하는 삶을 살라고 하셨지 육신을 따라 자기 맘대로 살라고 하지 않으셨고,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즉 우리 이웃들을 대하는 가운데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를 주인으로 고백하는 삶을 살고, 최후의 만찬에서 우리에게 지시한 그 모든 것을 기꺼이 따르는 삶을 살라고 하셨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한다. 이 계명이 우리가 윗사람[권세]에 [무조건] 복종해야 함을 보여주고 지시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 근데 윗사람[권세]란 게 뭔가? 우리가 윗사람[권세]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은 추상적인] 윗사람권세 그 자체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춰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또 우리가 [직접] 선택하고 지위를 부여한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하여야만 하나님에 의해서 지위가 부여된) 윗사람권세에 [그 권세의 권한을 월권하지 않는] 모든 정당하고, 그리스도적인 문제를 다루는 한도 내에서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는 당신네들이 참답고 올바른 그리스도인들로써 우리를 기꺼이 우리를 구속하는 제도(농노제도=Eigenschaft)에서 놓아줄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면 복음을 근거로 해서 우리가 당신네들에게 구속된 사람들임을 증명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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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농민전쟁 - 1525년 농민들의 12개 조항 (이어서)

일러두기: [  ] 역자 삽입, {  } 100% 자신이 없는 번역

 

 

한 마을이 혹은 다수의 마을이, {한 마을이 기초단체를 이루거나 여러 마을이 연합하여 기초단체를 이루는 경우를 막론하고},  큰 곤궁 때문에 십일조를 징수할 수 있는 권리를 팔았다할지라도1, 그 권리를 산 사람은 {십일조 징수권을 계속 양도하거나 금전으로 환산하여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어디까지나 우리가 적당한 방법으로, [그 권리의] 형태 및 사태에 따라 그와 타협하여 적당한 기한 내에 적당한 대가를 치르고 도로 찾기로 한다. 반면, 어떤 마을에 대한 그런 권리를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인수한 사람이나 그것을 [갈]취한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들이 교회[하늘]권세건 세속[지상]권세건 간에, 우리는 아무런 의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의무를 져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단, 우리가 선택한 목사를 부양하고, {교구감독과 재차 정산하여 수입과 지출을 가르고}, 나아가 성서에 기록된 바에 따라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것에 대한 의무만 있을 뿐이다. [이른바] 小십일조 [가축과 곡물 외의 야채와 과일에 대한 십일조]는 전혀 납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가축을 아무런 대가없이 주셨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십일조는 사람이 고안해낸 부정당한 십일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小십일조는 더 이상 납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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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세 후기에 들어서면 십일조에 대한 권리가 사고팔려, 즉 상업화되어, 목사의 몫으로 떨어지는 십일조는 보잘 것 없었다. 영주, 기사, [자유]도시, [도시] 연합체, 수도원 등이 그 권리를 행사하여 챙겼다. (Peter Blickle, Kommunalismus: Skizzen einer gesellschaftlichen Ordnung, Bd. 1 Oberdeutschland, Oldenburg 2000, S. 16 참조).텍스트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