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번역: 포스트구조주의.사회.비판 (4)

1.2 불안정한(prekär) 폐쇄프로세스들

 

[앞의 지적은 그렇다 치고 여기서 살펴 볼 점은]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과 이들이 취하는 진리 및 명증의 생성에 관한 관점에서 결정적인 점은 앞에서 언급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가운데 조작된 안정화가 항상 불안한(prekär), 깨지지 쉬운, 그리고 소요(騷擾)들로 속속들이 [점철된] 상태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이런 분석의] 특징은, 모든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에게 같은 비중으로 핵심적이지 않다 할지라도, 권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것을 분산된, 다원적인, 생산적인, 그리고 필연적으로 편재(遍在)하는 역들관계로 파악하는데 (“권력의 존재론”) 있으며, 이런 역들관계는 단지 일시적으로만 항상 불안정한 지배국면들로 응집된다는데 있다.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자기서술은 현대화프로세스의 결과로서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할 수 있다는] 우연성개방을 강조하지만, 포스트구조주의는 이와 대조적으로 권력집중에 기반한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우연성폐쇄에, 그게 헤게모니(라클라우 & 무페)를 통해서든, 디스포지티브들(푸코)을 통해서든, 재영토화들(들뢰즈 & 가타리)을 통해서든, 아니면 경찰(랑시에르)을 통해서든  - 아무튼 이런 우연성폐쇄와 나아가 이것이 [다시] 불안정하게 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정화된 것을] 규범과 실천사이의, [기도/염불과 같은] 호소와 [플라톤이 동굴비유에서 사용한 ‘뒤집어지기’(periagoge/Umwendung)를 다시 뒤집어 눈길을 피안에서 현실로 돌리는, 호소만 일삼케하는 억압적인 사슬을 누가 채웠는지 보게 하는] 현실직시(Umwendung)사이의, 규율과 적용사이의, 그리고 텍스트와 읽기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극을 강조함으로써 다시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는 일이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의 심장부이며, 이때 행위능력의 가능성을, 주체가 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을 그 어느 때도 간과하지 않으면서, 긍정한다. 그래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은 시종일관 구체적인 사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독자/독립적인 주체성(souveräne Subjektivität)과 개별적인 행위자율(individuelle Handlungsautonomie)을 주어진 상수로  전제하는 모든 접근들에 대한 근본적인(radikal) 비판을 개발한다. 그리고 주체의 해방이라는 현대화이론의 합창단에 화창하지 않고 역으로 주체화프로세스를 주체구성과 주체예속이란 동시성에 주목하면서 주제화한다.1)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은 인간의 주체되기에 억압이 어떻게 그 안에서 작동하는지 감지하게 하고 “주체들이 생산되고 차별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잔인성들을 폭로한다”(Butler 1992: 131). 이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의] 눈길은 [특정집단을 배제하는] 우연성폐쇄가 관철되는 과정에서 사회질서에서 배제된 주체성들과 실존양식들로, “인간-남성-백인-도시인-표준어사용자”(Deleuze 1980: 27)란 다수 규범의 저편으로 [있어서는 안 될 것으로] 내팽개쳐진 것들로 향한다. 여기서 Bude가 비판적인 사회학을 염두하고 요구한 “사회적 관계에서의 이득자와 손질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일이 사회적 지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그런 지위를 매기는 “놀이” 자체가 주제화된다는 면에서 더욱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1)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연결해주는] 핵심인물로서 알튀세르의 지대한 영항은, 그의 후기 이데올로기이론의 핵심적인 사안/동기들이 수정된 양식으로 거의 모든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에서 다시 찾아 볼 수 있다는 부분에서 명료하기 그지없게 드러난다. 여기에 그의 결정론 비판, 위계적인 권력모델 비판이, 나아가 특히 사회적인 권력의 주체화 효력에 어두운 쇼트-컷 적인 주체이해에 대한 그의 비판이 속한다(참조 Saar 2008: 196ff.).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번역: 포스트구조주의.사회.비판 (3)

1.1 선택적인 가족관계를 이루는 이론적인 제스처

 

모든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에게서는 Stäheli가 “선택적인 가족관계를 이루는 이론적인 제스처”(Stäheli 2000:7)라고 명했던 [통일적인] 것을 진단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 아래서 보게 되겠지만 -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사유의 보다 가장자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일련의 정치이론들도 포함된다.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의] 핵심적인 제스처는 차이이론적인 사유, 즉 사회현실의 그 어떤 요소도 동일논리에 따라 그 자체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고, 어디까지나 그것이 아닌 것과의 차이를 통해서 비로소 규정된다는 사유에 있다.1) 포스트구조주의의 핵심 요점은 다수를 이루는 개별적인 차이들이 [그저 다수에 머물지] 일정한 근거 혹은 [그것들을 하나의 총체로] 조직하는 원리(예컨대 생산관계, 현대, 혹은 가부장제)로 귀속되거나 그런 근거․원리에 의해서 안정화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유동적으로 - 그럼으로써 우연으로 - 머문다는 사정에 있다. 이와 같은 최종근거를 포기한 대목에 주목하면 대부분의 포스트구주주의적인 접근들은 “포스트-근본주의(post-foundationalist)”(Stäheli 2000: 9)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 이런 포스트근본주의적인 관점은 [예컨대 어떤 형식적인 가치의 실현과 관련된 자원/재원분배, 법규, 기구 등 총체적인 사회현실로서의] 구체성(Materialität)과 제도화의 저편에서 [놀아나는] 담론­이상주의 혹은 언어놀이와 동등한 의미가 아니다.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은 제도화된 형태들, 신체들, 그리고 실천들의 구체적인 실존(materiale Existenz)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생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데 있다. 현실이 담론으로 구성된다는 것과 관련해서는 담론 저편의 세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것의 경험불가능성에 주목하고 문제화할 뿐이다. “사유 밖에 있는 대상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그것들이 대상으로 부상(浮上)하는데 있어서 그 어떠한 담론적인 조건과도 무관하게 대상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주장을 부정하는 것이다(Laclau/Mouffe 1991: 158; 담론­이상주의와 거리를 두는 것과 관련해서는 또한 Butler 1997: 30f. 참조).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은 기독교적-서유럽 서양의 역사에서 그 중심의 중심을 차지했던 관념들, 즉  “진리” 혹은 “이성”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인식주체와 구별된, 역사 혹은 자연에 의해서 증명된 것이라는 관념들의 이론적으로 뒷받침된 탈정당화를 제공한다. 철학적으로 인식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는 “대질서”와 목적론이 차지한 자리에 중심을 해체하는 (dezentrisch), [모든 것을 지배하는] 원리를 부정하는(anarchisch) 세계관과 함께 “유기체론적인 사회개념”(Moebius 2010: 269)과 선을 긋는 단념이 들어선다. [포스트구조주의가 밀착하여 애쓰는/Anliegen] 핵심사안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이 항상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이성이 자신의 필연성으로 경험하는 것은, 보다 더 엄밀하게 표현해서 이성이 합리성의 다양한 형태들을 자신의 필연적인 현존[양식](“étant”)으로 내놓는 것은 역사를 갖는 것으로서, 우리는 [그 특수한 형태의 이성이 출현한 조건들로서의] 역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열하고 [그 특수한 이성형태로서의] 역사를 그런 우연성들의 [재]조직(Geflecht)으로 다시 획득[재현]할 수 있다.”(Foucault 1996: 179). 이런 - 단지 푸코로만 제한되지 않는 - 계보학적으로 다듬어진 관점은 보편개념들을 판독(判讀)하고 익숙해진 사유도식들을 의문시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자명함들을 배출한 역관계들의 특수한 짜임새를 파헤치는 일을 목표로 삼는다. Heinz Bude가 시대에 적합한 사회학을 요구하면서 사회학이 해야 할 일은 “어디서 좌우명들이 발신되고, 어디서 규율들이 정립되는지”를(Bude 2011: 13) 알아내는 일이라고 한 간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이 제공하는 관점보다 더 적합한 이론적인 관점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그리고 어떻게 허위적인 대안부재[론]이 조작되는지 질문하는 일이2) 포스트구조주의의 다른 핵심 사안이다. 다만, [푸코의] 권력과 주체 그리고 권력과 주체화를 함께 다루는 분석기법이 [바로] 그런 복잡한 프로세스를 [사회적으로 분배된] 역량에 기반하여 [그 범위 내에서] 자율적(souverän)으로 움직이는 개별 주체들이 서로 속이고 기만하는 일로 파악하는 걸 방해한다.

 

 


1) 동일논리적인 사유에 대한 비판이 포스트구조주의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Harald Wolf가 (이 잡지에 실린) Castoriadis에 관한 논문에서 보여준다. 역으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가 모두가 같은 비중으로 차이이론적인 사유를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푸고의 사례가 보여준다.


2)Bude는 “누가 거짓말을 하면서 세상이 처한 상황이 [이렇다는 걸 잘 알면서도 저렇다고] 자신을 속이는지, 누가 대안이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기만당하는지” 들춰 보여줘야 한다고 표현한다(Bude 2011: 13).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번역: 포스트구조주의.사회.비판 (2)

1. 포스트구조주의 재방문. 없는 것이 있게 된 경위

 

그들의 이름들은 다 잘 알려져 있다. 미셸 푸코는 이론 슈퍼스타가 되었고, 그를 따르는 신봉자의 수는 아마 마르크스만을 별로 놀라게 하지 않을 정도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운동에 참여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때그때의 표어를 제공하는 권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크 데리다의 영향은 2004년 그의 [때] 이른 별세가 문예란에서 [시대를 구분하는 대대적인] 사건으로 다루어진 이후에도 끊어지지 않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주디스 버틀러,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또는 안토니오 네그리 등이 무대에 등장하면 수천 명이 환호한다. 포스트구조주의에 뿌리를 둔 경계인이며 도발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슬라보이 지젝이야 더 말할 나위없다. “포스트구조주의”란 본래적인 의미가 없고 [단지] 외부로부터 부여된, 아무런 사상체계가 그 바탕에 있지 않는 에티켓[일 뿐]이라고 근거 있게 지적된다(참조: 예컨대 Lorey et al. 2011: 11). 그러나 이런 주장의 저편에서는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는]  - [위기를 직면한] 바로 근래에 들어서 - 비통일적인 [포스트구조주의의] 이론들을 [하나의] 이론영역으로 측정하려는 시도가 상당 수 이루어지고 있다(참조: 예컨대 Moebius/Reckwitz 2008; Stäheli 2000; Angermüller 2007). 60년대와 70년대 프랑스의 정치적 맥락에서 발생하고, 80년대에 이르러서는 영미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은1) 사회인문과학에서 이루어진 문화적 전환이라는 맥락에서 그 맥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런 문화적 전환이 관철되는 과정에서 사회적인 것들의 문화적, 그리고 상징적인 구조화에 [연구의] 눈길이 미치게 되었다. 68년 5월의 파리가 포스트구조주의에 있어서 갖는 의미는 [역으로] 많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이 60년대 및 70년대의 운동에 미친 영향과 마찬가지로 논란의 여지가 없다. 1968년이 마르크스주의적인 국가론과 이데올로기비판이 제시한 전략적 전제들과 억압에 기초한 권력모델로 방향이 잡혀진 좌파 정치와의 즉각적이고 근본적인(radikal) 절단을 알리는 선은 아니었다. 그러나 초점은 (경향적․점차적으로) 미시정치로 바탕이 색칠된 주체화와 욕망의 문제들로 이전되어 갔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학생운동은 [물대포장갑차가 쏘는 물에 쓸려] 거리에서 세척되어 담론이란 지하로 밀려 내려갔다.”(Eagleton 1994: 127)고 논박한 테리 이글턴의 말처럼 - 이런 논박은 이글턴뿐만이 아니었지만 -, 일반적인 탈정치화와 동등한 의미가 아니었다. 앞에서 언급된 거의 모든 이론가들의 정치적인 개입과 운동근접성은, 프랑스 감옥운동에서의 푸코의 역할, 인종주의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들뢰즈의 개입,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태리 자율주의와의 긴밀한 관계, 또는 주디스 버틀러의 퀴어 활동에서의 역할 등과 함께 다면적으로 검증되었다.2) 이와 같은 이론과 정치의 긴밀한 연계와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이, 특히 (물론 여기에 제한되지 않고) 퀴어 운동들의 발생[과정]에서 수행했던 지대한 역할들을 두고 볼 때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들에서 오로지 상아탑에 올라간, 고도로 추상적인 아카데미주의만을 보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것임을 입증하고 있다.

 

 


1) 포스트구조주의가 다양한 “물결”과 함께 상이한 학과들에 의해서 역사적으로 다사다난하게 수용된 이후 (이런 식으로 특히 철학에 이어서 언어학 및 문예학에서) 얼마 전부터 독일 사회학과에도 도착하고(Moebius/Reckwitz 2008: 7) 문화학적으로 방향이 잡혀진 분석기술로 독일 대학에 계류하게 되었다. Gender Disability Studies, Postcolonial Studies, 문화 및 신체사회학 등과 같은 개별연구영역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분석의 아주 큰 영향을 진단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및 산업사회학, 불평등 및 복지국가연구, 뿐만 아니라 경제비판 및 국가론 등과 같은 독어권의 다른 영역에서는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이론프로그램이 여전히 이물질이다.

 

 

2) 참조 Kuhn (2009: 56f.): “언급된 모든 이론가들은 정치적으로 활동했고 일부는 (..) 매우 급진적/근본적인 맥락에서 그랬다. 이들이 참여했던 맥락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게서 [그들의 혁명적인 성격을 의심하고] 모든 혁명적인 성격을 박탈하려는 비판자들이 참여했던 맥락보다 현저하게 더 급진적/근본적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번역: 포스트구조주의.사회.비판 (1)

2012년 Prokla 2호에 실린 질케 판 다이크(Silke van Dyk)의 논문 "Poststrukturalismus. Gesellschaft. Kritik - Über Potenziale, Probleme und Perspektiven"을 번역하여 올린다.

'Prokla'는 '계급투쟁의 문제들'(Probleme des Klassenkampfes')의 두자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71년 창간되었다.

 

원문은 여기

 

[번역]

 

 

포스트구조주의. 사회. 비판

 

잠재력들, 문제들, 그리고 관점들에 관하여

 

최근 위기들의 뒤를 이어 비판[이론]을 강조하는 새로운 바람이 거의 폭풍처럼 전국을 휩쓸고 있다. 독일 일간지들의 문예란은 금융시장위기의 전모를 다시 한 번 짚어가는 가운데 부분적으로 급진적인 말하기를 동원한 자본주의 비판을 그들이 당면한 [과제]로 발견한 모습이다. 점거활동가들은, 보통의 경우 운동을 꺼리는 (또 앞으로도 그럴) 시민들의 [이상적인] 다른 자아와 초자아가 되었다. 스테판 에쎌의 얇은 소책자 <분노하라!>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의 계산대 바로 옆에 놓여 있다. 동시에 잘 나가는 과목들의 주변으로 밀려나갔던 비판(사회)과학자들은, 그들의 집단따돌림표징으로 보였던 것이 이제 중심부에서 (비록 새로운 징후아래 그렇다 할지라도) 입맛을 돋우는 식거리가 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후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이야기하고 비판하는 일이 이제 다시 해도 되는 일이 되었다. 이런 배경아래 마르크스적으로 다듬어진 분석들에게는,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의 영향력이 꼭 더해졌다곤 할 순 없지만, 뜻밖에 새로운 반향공간이 열린 반면, 지난 몇 년 동안 대유행(hype)하고 대학 안팎의 좌파가 이론적으로 애지중지했던 아이들은 한방 얻어맞고 휘청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과 문화연구들의1) 중심에 놓여 있는 주체, 진리, 그리고 大질서의 문제화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미시정치들, 복잡한 역관계들, 그리고 해석을 둘러싼 투쟁들을 선호하는 일이 (새로 등장하는) 여러 사회비판가들에 사이에서는 대위기에 직면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케케묵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퀴어와 포스트식민주의 연구들이 일궈낸 배척된 존재양식들의 가시화 등 포스트구조주의적인 비판의 영역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다시 “현실적인” 문제를 직면하는 시대가 도래되었다는 목소리에 눌려 왜소한 놀이터로 퇴색되었다2).

 

2011년 12월 베를린에 있는 ‘세계 문화의 집’에서 저명한 지식인들 한 무리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유럽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고 모였을 때, 그들이 [이해하는] 세상은 마르크스 절망했을 만큼 단순했다. 이 점에서는 푸코도 아마 예외적으로 마르크스와 통했을 것이다. 이 행사를 창안했던 사회심리학자 하랄드 벨쩌(Harald Welzer)는 15살 땐 세상이 자본의 과두정치로 지배된다고 믿었다가 나이가 들어선 다년간 푸코와 다른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을 읽고 사태가 그리 간단하지 않고 아주 정말 복잡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오늘에 와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은] 내가 15살 때 생각했던 것과 똑 같다.”고. 이렇게 벨쩌와 같이 그다지 반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방식으로 청년기의 냄비근성에 못 이겨 참수한 마르크스를 [참수된 모습으로=정치경제학비판 이전의 마르크스로 제한하여] 다시 꺼내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위기들을 직면한 상황에서,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통적인”사회학이 다시 돌아올 시간이 도래했다고 자신한다. 뭐가 진리이고. 뭐가 옳은지 아직 헷갈리지 않았던 문화적, 그리고 담론적 전환 이전의 평온했던 시대로 시간의 수레바퀴를 30년 뒤돌리는 가운데, 위기에 알맞은 사회학의 과제가 뭔지 새롭게 측정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하인쯔 부데(Heinz Bude)는 “불평등, 지배,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관한 질문들을 제기”하고 (Bude 2011: 13)3) “사회 분열에 관한 진리, 인간들의 억압, 그리고 공공청중[을 모델링하고 거기서 벗어나면 그들에게 가해지는] 응징”(같은 곳)을 말하는 사회학을 지지하는 편에 서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사회학(들)의 의미상실을 [진단하고]․확언하였다. 이렇게 전통적인 두루마리를 걸친 새로운 사회학의 과제는 복잡한 역관계들과 지식질서들을 [직면하지 않고] 문화[차이]의 문제로 돌려 분석하는 쪽으로 빠져나가는 대신에 “사태 자체로” (같은 곳: 14) 돌아가는데 있다고 한다. 중단하라,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영역이라고 문화에 반하는 짓 그만둬라. 중단하라, 지역적인 전술들을 선호하는 짓 그만둬라. 사회로 귀환하여 사회를 분석과 비판의 대상으로 삼으라. 이것은 부데만의  단언이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접근들의 분석력과 작용범위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비판 잠재력에 관해서도 구구절절 표현된 불편한 심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패러다임을 비판과 진리, 불평등과 지배, 그리고 사회를 “대전체”로 분석하는 것과 관련해서 제기된 질문들과 대결시키는데 있다. 나는 [포스트구조주의를] 비판하는 근거 있는 관점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반듯이 곧바로 이론역사의 수레바퀴를 몇 십 년 뒤로 돌려야 하는 것과 동등한 의미가 아니라, 그러지 않고도 그런 관점들을 흘리지 않고 어떻게 포착하고 가공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한다. 나의 테제는 포스트구조주의가 현재 안고 있는 사회이론적인 면과 이에 따른 사회비판적인 면에서의 부족함은 [포스트구조주의] 패러다임의 사유유형 자체에 의해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 포스트구조주의가 대학[과 대학물을 먹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나 떠드는 속물이 되는 과정에서 관찰된 포스트구조주의 사유의 부분적인 “자기파괴”와 탈정치화가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4)

 

 

1) 1950년대 말 대영제국에서 신좌파(New Left)란 정치적이고 문화비판적인 운동의 맥락에서 생성된 [다층적인=그래서 study가 아니라 studies] 문화연구들(Cultural Studies)은 초기 경제적 환원주의와 선을 긋고 안토니오 그람시와 루이 알튀세르와 연계하여 사회 생산에서 독자적인 영역이 되는 문화에 주목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문화연구들은 점점 더 포스트구조주의의 영향아래 놓이게 되고 결과 특히 창조적이고 저항적인 행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하 문화연구들은 포스트구조주의 패러다임 영항아래의 것으로서 파악된 것이다.


2) 2000년대 중반에 이미 Terry Eagleton은 이렇게 논박했다: “In some cultural circles, the politics of masturbation exert far more fascination than the politics of the Middle east. Socialism has lost out to sado-masochism.” (Eagleton 2004: 3)


3) 이 부분에서 부데가 하필이면 [자유주의자인]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와 에르빈 쇼이히(Erwin K. Scheuch)를 보증인으로 불러 세우는 것은 [코멘트하지 않고] 지나가겠다.


4) 이런 발전에 대한 둘로 나뉜 심기불편과 관련해서 스테파니 그래페(Stefanie Graefe)와의 시사하는 바가 많은(instruktiv) 대화에 감사한다.

 

(계속됨)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센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