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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아모스 오즈, 1968)

  • 등록일
    2009/10/06 00:20
  • 수정일
    2009/10/06 00:20

또 하나 독서의 흔적을 남긴다.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최창모 옮김, 민음사, 1998

 

[7]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9]고양이는 자기를 좋아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은 결코 사귀지 않지요. 고양이는 결코 사람을 잘못 보는 법이 없거든요.

 

[20]잠시 동안 그는 커다랗고 슬픈 꼬마처럼, 머리카락이 거의 다 잘려나간 꼬마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모자를 사주고 싶었다. 그를 만지고 싶었다.

 

[23]겨울밤에 예루살렘의 건물들은 검정색 배경 앞에 얼어버린 회색의 형상처럼 보인다. 억눌린 폭력을 잉태하고 있는 풍경. 예루살렘은 때로 추상적인 도시가 된다. 돌과 소나무, 그리고 녹슨 쇳덩이들.

 

[25]잔인한 시련에서 자긍심이 솟아나왔으므로 나는 그 시련을 소중히 여겼다. 권력의 수복. 나는 병이 낫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다. 로젠설 선생님의 말로는 어떤 의미에서는 병이 자유로움을 주기 때문에 아픈 것을 더 좋아하고 낫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해 늦겨울에 병이 다 나았을 때 나는 유배감을 경험했다. 나는 연금술을 일으키는 힘을, 꿈과 현실을 구분짓는 선을 넘어서 나에게 꿈을가져다 주던 힘을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깨어난다는 것에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 나는 심각한 병에 걸리고자 하는 막연한 나의 열망을 비웃고 있다.

 

[31]{미카엘}비가 오면 예루살렘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요. 사실은 예루살렘이 언제나 사람을 슬프게 하는데 그것이 매일 매순간, 매년 매시에 종류가 다른 거죠.

 

[32]{미카엘}한나 고양이들은 겨울에, 그것도 가장 추운 날 가장 발정을 많이 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 결혼하면 나는 고양이를 기를 거예요. ... 난 외동아들이에요. 고양이들은 어떤 제약이나 관습에도 묶여 있지 않으니까 교미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발정한 고양이는 낯선 사람에게 붙잡혀서 죽도록 짓눌린다고 느끼나봐요. 그 고통은 육체적인 거죠. 타는 듯하고.

 

[36]물론 나는 그가 고양이를 기르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나에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준다. 어째서 내가 결혼할 사람이 아주 강해야 한다는 걸까?

 

내 곁에서 침묵하며 걷고 있었다. 그와 나, 우리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기묘한 한 순간, 나는 내가 깨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아니면 시간이 현재가 아니라는 격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 모든 일은 전에 겪은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 여러 해 전에 어떤 사악한 남자 곁에서 이 칠흑 같은 좁은 길을 다라 걷고 있을 것이라고 내게 경고했을 것이다. 시간은 더 이상 평탄하지도, 흐르고 있지도 않았다. 시간은 일련의 갑작스러운 격발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꿈 속이든지, 무서운 이야기 속이든지. 갑자기 나는 말없이 내 곁에서 걷고 있는 그 희미한 형체에 두려움을 느꼈다.

 

[40]그가 외투 단추를 끌러 나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실재였다. 나는 억눌려 있던 그의 공포를 받아들였다. 나는 그것을 즐겼다. 당신은 내 것이에요, 내가 속삭였다. 절대로 다시는 멀어지지 말아요, 하고.

 

[47]보통 사람이 철저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거짓은 늘 저절로 드러나버린다고 말이다. 그건 마치 너무 짧은 담요 같은 것이다. 발을 덮으려고 하면 머리가 드러나고 머리를 덮으면 발이 빠져 나오고. 사람은 그 구실 자체가 불유쾌한 진실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무언가 숨기기 위해서 복잡한 구실을 만들어낸다. 반면에 완전한 진실은 철저하게 파괴적이고 아무런 결과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조용히 서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91]잠을 자지 않을 때에 아이는 눈을 뜨고는 새파란 섬을 보여 주곤 했다. 나는 이것이 이 아이의 내면의 색이라고, 눈이라는 틈을 통해서 아기 피부 아래에서 몸을 가득 채우고 있는 밝은 파란색의 작은 방울이 보이고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106]날은 여전히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나는 매일, 매시의 경과를 이 글에 기록해야 하는 엄숙한 의무를 지고 있으며 그 이유는 나의 날들은 나의 것이며 나는 평온하고 날은 예루살렘 가는 길에 기차에서 내다본 낮은 산들처럼 쏜살같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109]나는 그의 자제력을 사랑했다. 그것을 깨부수고 싶었다.

 

[199]나는 기쁨과 기대로 몸을 떨면서 창가에 서 있었다. 덧창 사이로 붉은 구름에 뒤덮여 밝은 안개의 미세한 틈을 뚫고 지나가려는 해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해는 갑자기 나타나서 나무 꼭대기를 밝은 빛에 휩싸고 뒤쪽 발코니에 걸려 있는 양철을 번쩍이는 광채로 뒤덮었다. 나는 거기에 사로잡혔다. 맨발에 잠옷차림으로 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섰다. 창틀에는 서리꽃이 피어 있었다. 실내복 차림의 한 여자가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왔다. 그 여자의 머리카락도 나처럼 헝클어져 있었다.

 

[209]땅은 억제된 화산 위에 놓인 초록색 껍질에 불과하다.

 

[212]이 남자는 언제 자제력을 잃을 것인가? 아, 한 번만이라도 저 사람이 겁에 질린 것을 한번만이라도 보았으면. 기쁨으로 환호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달리고.

 

[231]죽음과 나는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가깝고도 먼 사이. 인사나 겨우 하는 정도인 아는 사람.

 

[233]꿈이 산산조각나면 민감한 사람들은 구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깨진다.

 

[233]<너의 파괴자들과 너를 소멸시킨 자들이 네 앞에 나아가리라.> 이사야서의 이 구절이 가지는 의미는 두 가지이다, 라고 교수가 말했다. 우선 히브리 계몽운동은 그 자체 내에 궁극적적으로는 파멸에 이르는 사랑을 키웠다. 그 다음에는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 낯선 땅을 보게 되었다. ... 소수의 꿈구는 사람들과 투사들, 현실에 반기를 든 현실주의자들이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부흥은 없었을 것이고 말 그대로 파멸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업을 달성하는 것은 언제나 꿈꾸는 사람들이라고, 교수는 결론지었다.

 

[265]<말해 봐요, 미카엘> 나는 혐오감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미카엘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 질문에 대해서 잠시 동안 생각했다. 그 동안에 그는 테이블에서 부스러기를 모아 자기 앞에 한 무더기로 쌓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질문은 무의미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살고 있지. 그걸로 끝이야>

<미카엘 갠츠, 당신은 태어났을 때와 똑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죽을 거예요. 그걸로 끝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지. 그걸 진부한 말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말이 맞을 거야. 하지만 진부하다는 건 진실의 반대는 아니야. ‘2 더하기 2는 4이다’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래도 …>

<그래도 미카엘, 진부하다는 것을 확실히 진실의 반대고, 나{266}도 언젠가는 두바 글릭처럼 미쳐버릴 거고 그건 다 당신 책임일 거예요, 얼간이 갠츠 박사님>

<진정해 한나>

 

[292]평화로운 미풍이 소나무를 건드려 흔들어 놓는다. 먼 하늘이 서서히 창백해진다. 그리고 저 광대한 공간에 조용하고 차가운 정적이 내려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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