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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광주에 도착했다. 교육부 감사 때문에 거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2주가 지났고, 그 와중에도 번역과 학원일을 하느라 머리속에 무슨 젖은 솜뭉치가 든 것 같이 노곤했다. 게다가 다음 주에 또 강의가 잡혀 있다.
택시를 타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왔다. 구구를 안고 마중 나온 사람. 난 이 사람이 있어 복되다. 그 어떤 신앙도 이 마음 속에 든든하게 자리 잡은 신뢰와 사랑을 넘어 서지는 못할 것이다. 눈빛과 눈빛, 손과 그 움직임들, 몸이 가는 곳에 내 감각이 반응하는 이런 친숙한 느낌들, 이 모든 공유의 감정은 단 한 낱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은 '유일하다.'
아침에 일어나 동물원에 갔다. 그녀가 치즈와 스크램블 그리고 맛살을 얹은 토스트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난 그동안 방을 치우고 나갈 준비를 했다. 두 시에 그녀의 수업이 있었기 때문에 우린 좀 서둘렀다. 오늘은 구구도 동행이다.
많은 동물들을 만났다. 새들, 원숭이들, 그리고 사자와 호랑이 곰들. 하나 같이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거나, 따가운 초가을 햇살을 피해 그늘에 깨느른하게 누워 있었다. 가끔씩 그녀가 작은 비명을 지르거나, 구구를 채근했다. 구구는 겁이 나는지 이동백 안에 고개를 자꾸만 파묻었다. 저와 똑같은 몸짓을 가진 호랑이나 표범을 보고는 코를 킁킁대다 연신 고개를 돌렸다.
전남대 상대 뒤, 커피숍 [시애틀]. 수업을 마친 그녀가 왔다. 음운론 수업이 어렵다는 그녀. 그건 분석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상상력이 분석의 기초가 되겠지만, 그러한 지적 비약이 가능하기 위해선 오랜 동안의 도제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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