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의 사기가 밝혀진 건 그런대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 일을 빼 놓고 나면
주위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듣기 좋은게 없다.
회사내에서도, 과기노조에서도
추위에 온몸을 던져 싸우는 동지들에게서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온통 짜증나는 얘기들뿐이다....
퇴근시간이 되어가니까
배만 고프네...
좋은 일도 없고,
굶으면서 싸운는 동지들도 많은데
가끔은 뱃속에서라도 뭘 넣어달라는
아우성이라도 좀 없으면 안될라나...




황우석의 사기가 밝혀진 건 그런대로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 일을 빼 놓고 나면
주위에서 들려 오는 소리가 듣기 좋은게 없다.
회사내에서도, 과기노조에서도
추위에 온몸을 던져 싸우는 동지들에게서도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온통 짜증나는 얘기들뿐이다....
퇴근시간이 되어가니까
배만 고프네...
좋은 일도 없고,
굶으면서 싸운는 동지들도 많은데
가끔은 뱃속에서라도 뭘 넣어달라는
아우성이라도 좀 없으면 안될라나...




풀소리님의 [블로거투블로거] 에 관련된 글.
당초 감비님이 블로거투블로거란 걸 쓸때도 그냥 풀소리에 대한 찬사의 글 내용만 보았지,
그게 어디에 쓰이는 거란 데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느날 만난 풀소리님이 "산오리를 블로거투블로그에 썼다"고 했을때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그리고 막상 풀소리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그내용을 찬찬히 봤더니,
그게 월간지 '네트워커'에 게재된 것이라는 걸 알았다.
집에 배달된 네트워커를 뜯어 봤더니 두면에 그 글이 블로그의 사진 몇 장과 함께 실려 있다.
으... 낯간지러워라...
제목으로 뽑은 '진정한 풍류객'은 산오리의 꿈이기도 하니,
지금은 아니라 할지라도 꿈과 희망을 잘 표현해 주신듯하다.
별로 잘하는 것도 없고, 별로 칭찬받을 만한 것도 없는 산오린데,
무려 두쪽에 걸칠만큼 많이도 써 주신 풀소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겠다.....
그런데, 산오리에 대해서야 칭찬을 하든 약점을 들추든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가면 되지만,
블로거투블로거라고 다른 블로그를 또 물고 들어가야 할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어쩌라구...
산오리의 단순한 삶(http://blog.jinbo.net/sanori)
요즈음은 가히 블로그시대(?)인 것 같다. 주변을 들러보면 블로그 하나 갖지 않은 이가 없고, 어떤 블로그에는 하루에 만명 단위의 네티즌이 방문한다는 소문도 들리니 말이다.
블로그는 각종 포털 사이트에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기업 홈페이지 등 각종 홈페이지, 심지어 내가 속한 운수연대(www.woonsoo.in)에도 블로그가 있다. 그야말로 블로그 홍수다.
블로그 홍수 속에서 진보 블로그는 독특한 것 같다. 불과 1000여명이 활동할 뿐인 숫자에서도 그렇고, 화장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맨얼굴의 담백함이 미덕인 동네라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렇다. 맨얼굴의 담백함. 굳이 꾸미지 않는 데서 오는 편안함과,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솔직함. 이것이 진보 블로그와 블로거의 특징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블로거 산오리와 블로그 「산오리의 단순한 삶」은 진보 블로그의 전형 또는 대표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단순한 삶”. 어찌 보면 세상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무관심하다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오리의 단순한 삶은 그런 ‘단순한’ 삶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사업장 노동조합에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 대하여 소극적인 것에 대하여 “겉으로는 절차와 의견수렴을 얘기하지만, (속내는) 한 푼이라도 나눠 먹지 못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질타하고, 나아가 사내 게시판에서 앞장서 투쟁(?)하는 게 산오리 식의 “단순한 삶”이다.
그러고 보면 ‘원칙’은 ‘단순’한 것이다. 산오리가 말하는 ‘단순’은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고 실천이겠지만, 내게는 ‘세상에 대한 풍부한 애정을 가지고, 우직하게 일관된 원칙을 적용한다면 뭐 세상이 그렇게 복잡하겠는가’ 하는 일갈로 들린다.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산오리는 원칙만 확고한 것만도 아니다. 성실한 실천이 켜켜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단순한 삶” 카테고리 안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들은 도무지 1년 반 동안에 올린 것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 많은 글들은 또한 단순히 머리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자신이 활동하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것들이다. 그만큼 활동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산오리는 시인이기도 하다. 산오리와 산오리 블로그의 열열한 팬이기도 한 내 아내가 ‘산오리가 시집도 냈다’는 소식을 전한 게 꽤 오래 전인 것 같다. 하지만 산오리 블로그를 보면 의외로 시가 적다. 시가 필요 ‘없는’ 세상이어서 인가? 아님 의외의 낯가림인가?
그래도 몇 편의 시들 속에서 산오리의 시 세계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시 “오만(傲慢)”을 보자.
그는 낡은 자전거로/ 나는 걸어 산책하다가/ 우연히 소진로에서 만났다/ 몇 년 만이던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내 집’/ 사람들이 필요한 건 ‘일자리’/ 이걸 만들려 노력하고,/ 싸워야 하는 게 당인데/ 민주노동당은/ 집도 일자리도 다 가졌는지/ 사람들에게서 멀어진다며/ 되돌아오지 않겠단다, 그는//
내 집도 가지고 있고,/ 정규직 일자리도 지키고 있는/ 나는/ 가슴 한 켠이/ 뭉턱/ 잘려 나간 걸/ 뒤늦게 알았다
세상의 잘못에 대하여 분노를 밖으로 표출하기 전에 자신을 성찰하고, 그 성찰을 분노의 용광로로 삼는 것이 그에게는 실천이고, 삶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깊은 상처와 상실감, 분노는 또 한 측면에 있는 깊은 애정에 비례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오리를 소개할 때 난 격의 없는 자리에서는 ‘한량’,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풍류객’이라고 소개한다. 둘 다 찬사를 담은 명칭이다. 비록 본인은 좋아할지, 싫어할지 모르지만 말이다.
틈만 나면 산으로 들로 나서고, 하다못해 주변에 있는 ‘소진로’라도 다닌다. 심지어 지난 부산 아펙투쟁 때도 앞뒤 시간을 쪼개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한때 ‘감성이 풍부해야 투쟁도 힘 있게 한다’는 말이 돌면서 운동권 내에서 문화적 소양(?)을 쌓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유치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풍부한 감성이 파도가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강력한 파도인 ‘쓰나미’처럼 거대한 힘을 만드는 원천이 아닐까?
블로그 전체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산오리는 참 따뜻하기도 하다. 비록 스스로는 ‘무섭다’고 하지만 말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성심을 다하는 모습은 그의 글 ‘분재’에서도 드러난다. 선물 받은 분재를 며칠 돌보지 못해 땡볕에 말라 입이 다 졌을 때, 출근을 하자마자 물을 주고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화분을 갖다 주신 분의 그 착한 마음씨를 생각하니 이렇게 빨리 죽으면 안 된 다’는 그의 기도의 변이다.
산오리의 가족에 대한 사랑은 꾸밈이 없다 못해 투박하기까지 하다. 특히 공부 못한다는 걸 빗대 ‘돌맹이’라고 부르는 둘째 아들 동명이에 대한 사랑은 산오리 식의 가족 사랑법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의 멘트를 하나 들어보자. "야, 돌멩아!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냐? 그냥 놀지..." 거기에 대한 아들의 대꾸, "별로 열심히 안 해..." 짧은 대화 속에서도 아빠와 아들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그려지고,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어디 완전한 사람이 있으랴. 산오리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회의(會議)에 대하여 회의(懷疑)를 하고, 나아가 회의가 조금만 길어져도 눈총을 마다않고 잠을 청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것도 원칙인 듯 꿋꿋하게 실천하는 걸 보면 도통하여 약점을 강점으로 바꿨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이 강점으로 통할 정도로 이 사회가 단순하고 유머가 있는 사회가 아니니 산오리의 고달픔은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 지역위원회 회의에서 실제 나온 얘기를 전해보자.
“이번 지자체 선거에 시장 후보로 누가 좋을까요?” “산오리는 어때요?” “산오리는 안 돼요!” “왜요?” “시장 후보는 방송토론을 해야 하는데, 길어지고 재미없다고 토론 도중에 잠자면 어떻게 해요!” “하하하...”
토요일 대구에서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다닐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니까 그 이후로 첨 본 친구들은
30년이 넘은 후에 만난 것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다 한들, 30년도 더 지난 얼굴들을 기억할까마는
악수하고, 서로 이름 알려주고 나면 30년 전의 친구들로 금새 되돌아 갔다.
참 신기한 노릇이지...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즈음의 얼굴이 조금 남아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혀 이름조차 생소한 친구들도 물론 있고..
친구들이 많으니까 대구에서 가끔씩 모이는데,
이번에는 서울부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 5명이 합세했고,
모이거나 들럿다 간 친구들까지 합치면 40여명이 되었다.
그당시 한학년에 세 반이고, 한반에 60명이 채 안되었으니까
170여명 가운데 40여명의 얼굴을 본 셈이다.
어쨌거나,
음식점에서 밥먹고 술 몇잔씩 하고,
그리고 회비도 거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회장과 총무도 뽑고,
앞으로 애경사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하고,
여기까지는 여느 모임과 다를 바 없는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 정도였는데....
10시즈음에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부터는
거의 '아줌마'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도 많은 '뽕짝'이 무려 4시간동안 불리워졌고,
그 뽕짝에 맞춰서 자리에 앉는 적이 거의 없이
쉼 없이 뛰고, 흔들고 춤추기의 계속이었다...
노래방에서 그렇게 계속되는 '뽕짝' 에 우선 적응이 잘 안되는데다,
또 한순간도 앉아 있지 못하게 끌고 다니면서 '돌리는' 데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산오리는 노래 부르라고 해서 딱 한곡을 불렀고,
그 난리통속에 목이 잠기고 말았다....
노래방에서 무려 4시간..
그 분위기를 이끌고 간 친구들은 당연히(?) 아줌마들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 노래방을 나왔으니 끝내려나 했다.
어느 아줌마가 밤새우고 놀아야 하는데, 너무 못놀았으니까
나이트클럽에 가자 는 제안을 했고,
슬금슬금 뒤꽁무니 빼는 친구들을 몰아서 나이트로 갔다.
그리고 또 두어시간을 그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에 맞춰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뛰고, 흔들고, 춤췄다.
춤이라고 제대로 추는 사람이 어디 있었으랴마는...
그리고는 겨우 잠자러 왔는데, 그것도 아쉬워 더놀아야 한다며
끝까지 몇 몇은 남았다.
이제 애들 다 키워서 군대까지 갔다 온 아들을 둔 친구도 있고,
대부분은 대학생 자식들을 두고 있으니까.
이즈음까지 살아온 인생을 조각조각 들어봐도
그 숱한 고생들을 강물에 풀어 헤쳐도 모자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남편의 심한 간섭에 저녁에 친구 만나러 놀러 나가는 것조차도
감시(?)받거나 거짓말 해가면서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노는 것'이 인생에서 너무 부족했음이 틀림 없다.
그들 아줌마 아저씨들을 신나게 놀게 좀 해 줘라!(특히 아줌마들은)
문득,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는 벌금을 물린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는데,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라고 장려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싶을 때 놀다가 사고라도 나서
혹시 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노는 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권리일테니까
부부라고 해서 그걸 간섭하지 말도록 하는 법을 만들든지...
고종사촌 여동생이 10일 대구에서 결혼을 한다.
산오리는 그날 저녁 시골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해서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이제 하나 남은 '누님'이고 그 딸이 결혼한다는데,
한번 가실거 같아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월요일인가, 화요일인가...
내려가시겠다고 해서 10일 내려가는 KTX 는 아버지와 산오리 부자의 표 두장.
아버지 거 한장... 이렇게 예매를 후다닥 하고 카드 결재도 하고,
프린터로 표까지 인쇄했다.
(어떻게 변할지 몰라, 거의 막바지에 가서 표를 사야 하는데... 하면서)
그 와중에 대구에 갈 산오리의 친구가 차를 가져 가야 한다고 전화를 했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가면서 같이 가자는 거였다.
결혼식 시간에 맞춰가면 되는 거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아버지가 아들 친구의 차에 같이 가는게 좀 거북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뭘 타고 가면 어떠냐고,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 밤 느지막해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몸도 않좋아서 안갈란다, 너 혼자 같다 와라!"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은 무슨일... "
"알았어요!"
(어이그,,, 성질머리 하고선...)
전화를 끊자마자 산오리가 혼자 한 말이다.
(이 양반이 분명 하루만 지나면, '결혼식에 갈거니까 표 취소시키지 마라'고 하실 게
분명한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산오리는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예약된 표 모조리 취소시켜버렸다.
그리고 낮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왜 아버지 안가신다고 하느냐?고...
전날 저녁에 반찬투정 하다가 화를 벌컥 내고서는 한잠 주무시고,
그러고는 산오리한테 전화해서는 안간다고 하셨다는 거다.
열차타고 가자 했다가, 친구 차로 바꾼거 때문은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한데,
뭔가 신경질 난다고 엄마한테 한바탕 하고서는 애꿎은 결혼식 가는걸
취소하라고 한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하셨다.
"그 표 다 취소시켰냐?"
"예!"(당당하게 대답했다)
"다시 좀 사라, 같이 가자"
"예............"(대답하기 싫은 걸 억지로 했다)
그리고는 어제 대전 출장가는 길에 서울역에 나가는 길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표를 다시 샀다.
젊었을 때부터 불같은 성격에 집 밖에서 화풀이는 못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 자식들한테 화풀이 해대던 성격이었는데,
지난 수년간 수술 두차례 하시고, 성격도 많이 누그러 졌다는 평가가
자식들간에 지배적이었는데,
여전하시다....
그 성질에 맞서
하루만에 전화올 걸 예상하면서도
똑같이 예매표 취소시켜 버리는
산오리도 그 아버지의 '못된 성질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감기기운도 있는 데다,
얼마전부터 계속되는 귀에서 나는 쇳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냥 며칠 그러다가 좀 쉬면 나을까 했는데,
여전시 소리가 나고, 신경이 쓰인다.
어제 나 의원이 하는 한의원엘 갔다.
맥도 약하고, 몸도 허하고.....
그래서 연말이라 이런저런 일이 많겠지만,
약좀 먹고, 침 좀 맞으란다.
2주간 약먹는 동안은 술 마시지 말라고.
오래되고, 일찍 치료하지 않으면
귀가 안들릴 수도 있다고..
약을 지었다.
오늘은 약속이 있어 술 마시고,
낼부터 약먹으면서 술은 당근 안마신다.
올 연말은 편안하게(?) 보낼수 있을 듯하다.
무슨 연례행사처럼 연말 즈음이면 병원에 간다.
엊저녁 당위기 토론회 끝나고 뒷풀이 피해서 집에 갔더니 11시.
잠이나 자려고 누웠다가 텔레비전을 보니 케이블에서
'수취인 불명'이라는 영화를 한다.
웬 여자애가 머리로 한쪽눈을 가리고 나오고,
그 머리카락을 들추면 한쪽눈이 하얗게 망가져 있어서
이게 무슨 공포 영화인가 하면서
끄고 잘까 했는데,
그냥 공포영화는 아닌 모양이었다.
점점 영화내용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고,
할 수 없이 1시까지 영화를 다 봤다.
며칠전 극장에서 본 '광식이, 광태'에 비하면
정말 수준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요즘에 보아도 적절한 영화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 개장수가 개잡는 방법이 다양하게 나오고,
결국은 개가 죽듯이 자기도 죽임을 당하는데,
오늘 점심에
구내식당에 가자고 했더니
굳이 옆에 팀원들이 탕 한그릇 먹으러 가잔다.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개 잡는 야그 실컫 하고,
목 매달고 두들겨 패서 죽인 개 생각하면서,
탕 한그릇 맛나게 먹고 왔다...
일산 근처 지나다 점심때가 되고 탕 한그릇 생각나시는
동지들 있으면
산오리한테 전화 주세요,
탕 한그릇 사 드릴게요... 겨울에도 맛이 좋더라구요.
지부장은 중앙위원회 갔다 와서는 걱정이 태산이다.
총파업에 결합은 해야 하는데,
도대체 분위기가 그렇지도 못하니,
위원장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되는 데로 갈 사람 모아서 가보자고 했고,
산오리는 오후 휴가를 냈다.
모두 7명...
kist 지부에서 8명이 왔다고 했고, 나머지는 다른 지부의 전임자들.
수도권에서 모인 과기노조 조합원은 모두 30여명?
어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물대포를 바로 맞는 곳까지 들어가진 않았지만,
물안개를 뒤집어 쓰면서,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파업이란 멀기도 하구나.
파업보다 더 먼 건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이 아닐까?
어제 당 지역위원회에서 당의 위기 토론회를 열었다.
이래 저래 바쁜데도 20여명의 당원들이 모여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산오리는 파업집회 갔다가 느지막히 갔고, 한마디도 못했지만,
오늘 지역위 게시판에 글을 하나 올렸다.
지역위 사람들 참 열성적이다......
<때로는 당의 위기가 정상이지요.>
당당의 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토론회가 어제 열렸지요.
산오리는 그 전에 열린 운영위원회에서
나올 결론이 뻔하게 '열심히 잘하자!'로 될 것이고,
별다른 이견도 없을 텐데 그런 토론회가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얘기했던게 생각납니다.
그래도 많은 당원들이 '위기'라고 느끼고 있고,
그 여러가지 지표나 상황이 나빠졌다면
위기를 진단해 보고 타개책을 찾아 보는 것은 그런대로 쓸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늦게 갔기도 했기에, 또 별다르게 할 얘기도 없었기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서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경영'과 '마케팅'을 예로 많이 듭니다.
우리의 상품이 이러저러해서 이 상품을 잘 만들고, 예쁘게 포장해서
많이 팔아야 한다는 논리이죠.
그런데, 정당이라는 게 집권이 목표이기 때문에 상품을 최대한 짧은 기간내에
최대한 잘 만들어서, 최대한 이쁘게 포장해서 최대한 많이 팔아서
그 목표를 이루면 좋겠죠.
근데,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의 자본가들이 하고 있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것도
아니고, 또 현재의 자본가들이 팔고 있는 방식으로 포장하자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자본가들이 많이 팔고자 하는 방법으로 팔자는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또 설사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저들과 비슷한, 또는 같은 방법으로
경쟁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이거나 경쟁이 안되는 것들 뿐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출발점을 저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한다는 게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물건을 나누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더 나아가서 물건을 팔 것이 아니라 그 물건들을 우리가 거꾸로 사는 방식을 고민해 본다든지...
그런 방식은 현대의 살벌한 자본주의에서는 도무지 살아날수 없다고 생각해서
설사 물건을 판다고 하더라도, 상품의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또 이쁘게 포장하지 못하더라도 그게 우리의 특성이나 장점으로
살려 나가고,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한 두개, 수십개를 팔더라도 그게 올바른 방법이고
제대로 된 장사라고 한다면 그렇게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이장사가 잘 된다고 이 장사로 뛰어들고,
내일 저 장사가 잘 된다고 이 장사를 접고 저 장사로 뛰어드는 것은
철저한 자본의 논리일 뿐이고, 그 장사판에서 꼬질꼬질한 물건을 가지고
경쟁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15년전에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이 나라의 장사판에서 그게 좋은 물건이라고 칭찬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팔려는 물건이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장사판에서 계속 '나쁜 평판'을 받는 것이 오히려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내가, 우리가 올바르고 정당한
상품이고,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죠..
내 쌀이 좀도 좀 쓸고, 윤기도 없지만, 농약은 없는 쌀이라고 한다면
계속 그런 쌀을 팔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날 윤기 있는 쌀이 잘 팔린다고 해서
쌀에 들기름이라도 발라서 장사 좀 해야겠다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일, 우리가 좋아 하는 일이 곧
다른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당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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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27일)오랜만에 북한산에 올랐다.
11월 역사와 산을 따라 모악산에 갔다 온 이후로
노동자대회와 시제를 이유로 산에 가지 못했다.
같이 간 '꿀단지'들의 여유만만 덕분에
북한산성매표소->중성문-> 대남문->문수봉 아래 -> 삼천사
로 널널하고, 편안한 산행을 했다.
낙엽 다 떨어지고, 볼건 없는 산이었지만,
날씨 제법 포근한데다, 바닥에는 낙옆이 그대로 쌓여있고,
그런데로 을씨년스럽지 않은 분위기여서
여유 있는 산행이었다.
아직도 응암동 이마트 앞에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병관옹과 형선씨를 만나서 저녁 먹고 왔다.
삼성에 맞선 그들의 싸움이 성과를 거두고
빨리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대남문 옆 성벽을 통해 본 보현봉인가? 형제봉인가?

대남문과 성벽..

나무를 기대고 있는 바위..

숨은 얼굴 찾기...

삼천사 계곡에 발을 담갔더니..... 차더구먼..

삼천사 뒤의 바위탑??

삼천사...
삼천사에서 올려다 본 의상봉 능선..
지역위원회 노동위원회(준)에서
비정규 활동가 학교를 열었다.
지난 금요일부터 4주간 매주 금요일날 강의를 하고,
마지막 주에는 1박2일 수련회를 거치기로 계획을 세웠다.
노동위원회(준) 띄우고서 첫 사업으로 야심찬 계획을 세웠는데,
날자가 다가올 수록 참가자 조직이 문제였다.
정경화 부위원장이 전화 이리저리 돌리고,
찾아 다니면서 참석하라고 부탁했지만,
당혹스럴 정도였다.
첫 강의에 당원들과 당 간부들이 자리를 대부분 채웠고,
지역의 노동조합 간부나 조합원들은 겨우 2-3명 정도 참가했다.
연말이 다가 오고 있고, 그것도 금요일 저녁에 교육 오리라고
기대하는 게 무리일까 싶었다.
그런 거 생각하지 않고, 계획잡고 밀어부친
우리 노동위(준)도 치밀한 검토를 못했기 때문이겠지.
그래도 2강인 다음주에는 많은 동지들이 오겠다고
약속했다는데, 한번 믿어 볼까나...

'학교장'으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홍우 위원장

조직하랴, 이것 저것 챙기랴 정신없이 바쁜 정경화 노동위(준) 위원장
그가 움직이는 만큼 사람들의 호응이 있었으면..

첫 강의를 맡은 비정규센터의 김성희 소장...
비정규, 미조직 운동의 의미와 필요성 이라는 제목으로 교재도 많은 분량을
만들어 줬지만, 강의는 주로 현재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문제에 집중되었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어 치워서 그런지 저도 배고프네용..
넘넘 먹고 시퍼요~~ 저 빵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묵고싶다....
헉! 보지말걸...ㅜㅜ 무지 후회하고 있는중..
빵 별로 안 좋아하는데, 저 빵 보고 나니까 너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두부를 강타하네요*^^*...
그빵으로 송년회 하면 되겠네...
연락해서 23일쯤 얼굴한번 보자고...
나야 24일 하면 더욱좋겠지만^^
집합하라고 연락좀 해보쇼....
오밤중에 출출해서 눈요기라고 할라고 저 빵을 또 보러 왔습니다. 아, 언제 동명이의 빵맛 좀 보러 가야하는데... 쫍....
두번째 빵이 맛있어보여요^^
심란할 때면 산오리님 글을 찾게 돼요.. 한참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든요.. 오늘은 빵구경까지 하고 나니 배도 부르네요. ^^
늘 한결같은 마음을 간직한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것도 행복 중의 하나인 것 같네요.
연하/연락하기 귀찮소..ㅎㅎ
행인/아침이 아니라 늦은 저녁에 빵이 나오니, 시간을 잘 맞춰서 오시길..
왕비/감사합니다...
우와
제법 '빵'다운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