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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VS 베를루스코니(SB)

- 시대를 거스르는 닮은꼴 정치인

 


민주주의 공공의 적


탄젠토폴리(tangentopoli), 즉 부패공화국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제1공화국 총리를 일곱 번이나 지낸 줄리오 안드레오티(Giulio Andreotti)와의 대담에서 “총리는 둘 중에 하나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영리한 범죄자거나(한 번도 잡히지 않았으니까), 아니면 역사상 가장 박해받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오고갔다. 이것은 이탈리아의 권력과 부패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예술로 승화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2008년 영화 <일 디보(IL Divo)>에서 백미로 꼽히는 장면이다. 제1공화국이 몰락하고 이탈리아 정치의 지각변동이 있은 후 어쩌면 이탈리아 총리는 “가장 박해받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가장 영리한 범죄자”였으니까.

이탈리아 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SB)는 1990년대 초중반 이탈리아 정풍운동의 결과로 제1공화국이 몰락하는 지각변동을 거친 후 우파로서는 처음 집권한 총리이다. 그러나 제2공화국 이탈리아는 베를루스코니를 통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이제 그는 “가장 영리한 범죄자”를 넘어 ‘가장 뻔뻔한 범죄자’이자 ‘이탈리아 민주주의의 공공의 적’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이것은 비단 이탈리아만의 사정이 아니다. 1980년대 말 어렵사리 시작된 한국 민주주의도 10여 년간의 더딘 과정을 거쳐 자리를 잡아갔지만, 민주화 이후 처음 등장한 우파 대통령에 의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MB와 SB는 최대유사인물의 커플이다. 때문에 SB가 MB의 자서전을 이탈리아어판으로 출간하겠다고 제의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의혹, 인맥동원, 인터넷에서 불어오는 저항
MB와 SB의 부정과 비리는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MB의 삼성비자금과 부동산 및 BBK 의혹, SB의 건설사업 부정 운영과 핀인베스트(Fininvest) 탈세 및 언론사 인수합병 의혹 등은 경제사범만으로도 특정범죄가중처벌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권력이 있어 의혹은 의혹으로 멈춰 있다.
MB와 SB는 권력을 부리는 데 있어서도 대단히 닮은꼴이다. 2B는 공통적으로 사사로운 정치스타일인 개인형 리더십을 활용한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공론을 참지 못하며 도구성 참모와 소모성 부하들을 좋아한다. MB는 연이어 방송 3사를 장악하려고 시도했으며, SB는 자신의 섹스 스캔들을 보도한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와 ‘루니타(L’Unit?)’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2B는 또한 정책을 두고 다른 정치인들과 소통하고 이들의 합리적 토론을 조성하기보다 학벌이나 재계 혹은 친인척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정책을 집행하는 인형의 집을 만들고 있다. MB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끽하고 있으며, SB는 총리에 만족하지 않고 권력구조를 강력한 대통령제로 바꾸어 군림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이것이 그가 MB의 자서전을 번역하려는 배경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정치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본을 위한 정치다. MB의 종부세 인하와 SB의 부자 세금 감면 조치가 대표적이다. SB는 2001년과 2003년에 이어 금년에 세 번째로 부자들의 세금을 감면한다는 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명분은 해외 은행 계좌에 은닉된 부자들의 돈을 본국으로 끌어오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파이낸셜 타임즈가 지적한 것처럼 그것은 부자 탈세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2B는 이제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는 국민탄핵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터넷 블로거 모임의 자발적 제안으로 지난 12월 5일 로마에서는 10만여 명이 모여 SB의 사퇴를 요구하는 거리시위를 벌였고, 우리나라에서도 연일 MB를 단죄하는 시위가 한창이며 MB 탄핵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지난 10월 유럽의회가 SB의 언론탄압을 성토하는 결의안을 제출한 바 있으며, 9월에는 노엄 촘스키 등 20개국 저명인사 173명이 MB의 반민주적 탄압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머피의 법칙
물론 누구나 육안으로 판별하듯이 인물이 확연히 다르고 정치스타일도 다른 만큼 차이점도 존재한다. 우선, 유럽 내 4대 강국으로서 이탈리아는 미국에 대해 우리나라보다 자존심이 더 강하다. 따라서 SB는 오바마의 피부색 언급으로 국제적 비난을 받는 등 노선이 다른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MB는 대통령과 그 정책이 무엇이든 미국이라면 먼저 접고 들어간다. SB가 동일한 부류가 아닌 한 누구에게도 뻣뻣한 안하무인(眼下無人)형이라면, MB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억약부강(抑弱扶强)형이다. 12월 11일 이탈리아에서 SB의 교육 및 공공 정책에 반대해 교육자와 공무원들이 전국 대규모 시위를 벌인 데 대한 정부의 유연한 대응과, 우리나라에서 전교조 시국선언교사에 대한 징계 및 이 징계를 거부한 교육감에 대한 징계가 그 전형적인 사례이다.

2B의 정치경제적 배경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SB가 전통적 기업의 사각지대에서 범죄조직과 부패정치의 음지에서 성장한 신흥재벌로서 자신의 사단을 이끌고 정권을 장악했다면, MB는 전통 재벌을 숙주로 성장한 기업인으로서 정치적 보수를 인계한 신개발독재를 추구하며 정통 개발독재 세력과 위태롭게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SB는 피아트와 같은 전통적 기업들과 경쟁하면서도 사적인 권력 집단을 이끌고 유아독존의 권력정치를 구사하는 반면, MB는 당내 헤게모니 투쟁을 아직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 세력 탄압을 통해 그 기선을 장악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B는 이탈리아 제1공화국을 붕괴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사법부와 대립하는 데 반해, MB는 사법부의 비호를 받고 있다. SB는 이미 1998년에 탈세와 공무원 매수 등으로 2년 6개월의 징역을 선고 받았고 여전히 계류 중인 재판을 앞두고 면책특권법의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이와 달리 한국의 사법부는 BBK 재판과 촛불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재판에서 보듯이 여전히 권력을 비호하는 구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의 경우 공산당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이 제도권 안팎으로 폭넓게 포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진보정당운동의 정치력이 아직 충분히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른바 견제의 역량이라는 조건에서 SB와 MB는 중요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MB와 SB의 부박하고 괴망한 정치를 청산하지 않는 한, 한국 정치와 이탈리아 정치는 머피의 법칙을 따를 공산이 크다. 그러나 견제 역량이라는 조건의 차이에서 볼 때, 한국 정치의 위험성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할 것인가?
 

 

 

정병기(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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