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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자 400만 시대, 일시적 문제가 아니다

-2010년 경기회복도, 고용도 ‘불안정’



경기는 회복된다는데 고용은 악화
2010년 경제전망을 두고 MB정권과 각 경제연구소들은 낙관적 경기회복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 회사들(이들은 사실 2008년 경제공황의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는 세력이기도 하다) 역시 4~5% 정도의 경제성장을 예측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공식 성장률은 이해관계에 얽힌 이들의 기대를 더 높이는 발표다. 물론 경기회복을 알 수 있는 각종 경제수치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제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특히,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점에서 과연 ‘누구를 위한 경기회복’인가에 문제가 대두된다.
실업자 400만 명 돌파
실업문제는 지난 며칠 동안 언론을 달궜다. 통계청이 2009년 고용현황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18시간미만 취업자, 쉬었음, 구직 단념자, 취업 준비생을 포함할 경우 408만 명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또한 2009년 취업자 수는 7만 명 감소로 지난 몇 년 30만 명 증가와 비교할 때 고용은 최악의 상태다. 문제는 개선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MB정권은 25만 명 고용창출 계획을 제출하고 30대 기업들을 모아놓고 투자와 고용확대를 훈시했다. 더불어 고용을 확대할 경우 기업특혜 약속도 잊지 않았다. 기업들 역시 투자와 고용확대를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언론 발표에 따르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8%가 채용계획이 없다고 응답했고 채용계획을 발표한 기업들도 2009년과 비교할 때 오히려 5.6%가 줄어들었다. 2009년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용을 악화된 해다. 특히 30대 기업들은 2009년 고용이 13.9%나 감속했는데 이를 감안한다면 2010년 기업들의 고용계획은 부재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만들어지는 일자리도 모두 비정규직이지만 말이다.

경제공황만이 이유는 아니다
MB정권은 고용악화의 원인으로 금융위기 또는 경기불황 등 단시적 요소라기보다는 고용창출력 저하, 노동시장의 경직성, 인력수급의 불일치 등 보다 구조적인 요인을 꼽는다. 이는 고용없는 성장→새로운 영역의 고용창출과 노동유연화 확대로 대책이 제출된다. 물론 이는 일면 진실이다. 이미 2004년부터 실질 실업자는 300만 명을 돌파한 후 계속 증가됐다. 즉, 위기로 인한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 결과는 어떤가? 불안정한 일자리 확대와 실업급증이다. 그리고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삶의 악화다. 현대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3인 기준 102만 6603원 이하를 받는 일해도 가난한 빈곤층이 273만명으로 전체 취업자 중 11.6%다.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식료품 가격 급등, 가계부도 직전에 몰린 가계부채, 6월 이후 본격화될 공공요금 인상 등 노동자민중들은 그저 숨을 쉬어도 사는 게 아니다. 2010년, 경기회복 전망은 미국정부의 은행권 규제 발표 하나로 ‘불안’으로 바뀐다. 결국 경기회복을 기대하며 일자리를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얘기다.

김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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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권, 실업 해결은커녕 비정규직 양산만


고용정책의 거품
MB는 집권 5년 동안 300만개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하며 민심을 챙겼고, 당선됐다. 출범 첫해인 2008년에 목표는 절반 수준인 35만개로 바로 낮췄지만 결과적으로 그 해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15만개에 수준이었다. 2009년 정부는 희망근로, 청년인턴, 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을 통해 최고 50만개 정도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했지만, 민간부문에서 급감하는 일자리 수를 메우기에 급급했고, 최종 성적은 연 7만개 감소로 마이너스였다. 이제 MB정권은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를 통해 고용목표를 25만 명+α를 제시하며 또다시 일자리 민심을 챙기려 하고 있다.

2010년, 반복되고 구조화되는 불안정노동 양산
MB정권은 2009년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정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노동유연화를 제출했다. ‘임금삭감’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4대강 살리기 등 건설 경기부양을 통한 일자리창출, 사회적 일자리, 희망근로 프로젝트, 청년인턴제 등 겉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주장했지만 그 실 내용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 양산이었다. 또한 일자리 창출 이면에는 오히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고용조정, 희망퇴직으로 시작한 살인적 정리해고, 비정규·최저임금·근기법 개악 등 노동유연화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노동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는 어떤가. 공실업자 수만 89만 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12만 명이나 증가했고 실질 실업은 408만 명에 육박해 10명 중 1명이 실업자인 시대가 됐다. 정부는 2010년 여전히 같은 방식의 고용정책으로 일자리 수를 아무리 부풀려 노동자 민중을 현혹하려해도 시작부터 그 현실성은 둘째 치고 이미 그 속내가 드러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MB식 고용정책  = 노동유연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MB정권은 2010년 1월 발표한 ‘국가고용전략’의 중점추진과제 1순위로 임금·노동시간 유연화를 제시하고 있다. 단기적 고용대책인 ‘2010 고용회복 프로젝트’ 추진을 통해 고용율을  높여놓고, 중장기 고용구조 개선대책을 병행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취하겠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특히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유연근로제·단시간근로 등 근로형태 다양화 추진, 임금피크제 및 직무·성과급 확산 등 임금유연화 추진, 이를 위해 일자리 창출형 노동운동으로의 전환, 임금유연화를 이루기 위한 취업규칙 변경절차 변경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09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셈이다. 그럼에도 실업이 계속 급증하자 ‘일자리를 만들면 기업에게 특혜를 주겠다’며 또 자본가들의 세제혜택, 규제완화, 재정지원을 들고 나왔다. MB식 고용대책은 여전히 노동자에게는 저임금과 불안정노동을, 자본가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주는 전형적인 MB식 대책이다.
특히 이러한 고용정책은 여성고용정책(대표적으로 퍼플잡-유연근무제)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퍼플잡’은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전일제 근무가 아닌 시간제, 요일제근무, 재택근무, 시차 출퇴근제 등 유연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2009년 하반기부터 일자리 창출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단시간근로 확산 유도 정책’이 ‘퍼플잡’이라는 여성고용정책으로 확산되고 있다. 취업애로계층에 대한 고용대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취업애로계층 중 하나인 여성에게 ‘단시간 근로’를 제공하면서 친서민 정책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지게 포장한다 해도 MB식 고용대책은 실업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있는 일자리마저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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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은 '정치'의 문제다

[인터뷰] 김혜진(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대표)



실업자 400백만 시대다. 이쯤 되면 자연적으로 실업자들이 거리를 휩쓸고 다닐 것을 상상하는 운동세력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언론은 요란한 데 비해 정작 실업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은 조용하다. 간간히 단체들이 기자회견도 하지만 그 뿐이다. 각종 대책과 법제도 개선 논의가 있지만 그 역시 정책 논의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 역시 ‘실업’을 고민하지만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민 끝에 철폐연대를 찾아갔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인지, 정규직 중심의 노조운동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했던 그들의 경험과 상상력이 필요했다.

실업급증에 대해 한국 사회 이제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진입했다는 진단이다

경기회복과 맞물리는 고용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진단은 현상적으로 맞는 말이다. 문제는 고용구조다. 제조업 축소는 맞는 말이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제조업분야는 세계에서 최대의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민간서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 강도는 강화되고 있고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즉, 고용확대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노동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용문제는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때 가능하다.

실업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있고 요구도 다양하다. 그에 비해 투쟁주체는 막연하다

최근 실업부조 제도 요구가 떠오르고 있다. 야 3당을 비롯해 민주노총, 시민단체들도 모두 주장하는 요구다. 그런데 문제는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는 운동 세력들도 고용과 실업이라는 이분법 구도에 갇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은 유지하고 ‘실업’은 복지로 해결한다는 이분법적 구상 속에는 실업과 반실업을 오고가는 불안정노동자들은 없다. 노동유연화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불안정 노동층에게는 고용과 실업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한국사회는 가구단위로 생존이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 중에 누군가는 노동시장에 편입돼 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단시간 노동을 반복하는 불안정노동이다. 서로 교차하면서 단시간 노동을 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주체형성이 어려운 지점 중에 하나는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실업은 ‘개인의 무능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럼 여전히 중요한 것은 ‘불안정 노동’인가?

지역별로 실업자 대회를 조직한 사례들이 있다. 그러나 90%이상은 안정된 노동을 희망하는 불안정노동자들이다. 이런 지점들에 착목할 필요가 있다. 실업문제에 대한 좀 더 구체적 분석과 논의가 필요한데, 예를 들어 IMF 위기 때 각종 실업문제 관련한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시민단체들도 고용센타 같은 것을 만들어서 취업알선을 돕기도 했다. IT붐이 한창일 때 실업문제를 창업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개인파산자가 돼서 돌아왔다. 일자리 알선은 어떤가. 다 비정규직이다. 결국 의도와 무관하게 신자유주의 유연화 공세에 조응한 꼴이다.
실업해결이라는 이름으로 고용구조를 왜곡하는 일자리 만들기 방식에 시비걸기가 필요하다. 고용/실업 이분법 구도를 문제제기 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청년실업의 문제는 좀 다른 것 같다

여기야 말로 조직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청년 실업이 100만이 되고 있는데 실천적인 흐름은 잡히지 않는다. 이들은 실업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고 일자리에 대한 권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층이다. 나도 궁금하다(웃음) 문제는 청년세대의 시대정신이다. ‘능력주의’가 내재화되어 있는 세대라는 점이다. 개인의 능력을 가지고 뚫어내야 한다는 경쟁에 익숙한 세대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한국에서는 실업자운동의 전형이 없다. 투쟁방식에 대한 제안과 조직화가 필요하다. 예컨대 청년인턴제를 반대했는데 현실에는 청년인턴제로 노동시장에 진입한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가라고 하면 싸우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개척되지 못한 영역이다.

실업자운동을 조직하는데 어려움은 뭔가?

여전히 주체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운동진영들이 저마다 이런 제안들을 하고 있지만 몇 가지 편향이 있다. 실업부조의 경우에도 투쟁요구가 아니라 ‘복지제도’ 측면으로만 접근한다. 어떻게 실업자운동을 만들어나갈 것인가, 어떻게 투쟁하는 주체를 세울 것인가에 대한 운동내용이 없다. 정책, 개선되어야 할 법제도 제안만 있는 꼴이다. 그러나 실업은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문제다.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까?

정치운동에서 출발할 수 있다. 지금 노동조합이 직접 조직하는 것은 의지, 역량 면에서 한계가 많다. 지역정치를 고민한다면 지역과 실업노동자들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들은 감각이 있다. 공론화도 잘한다. 하지만 정책에 머무는 한계가 있다. 그에 비해 사회주의 정치세력들은 입장만 있다. 대중투쟁에 주력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투쟁의 폭을 넓히는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생존의 문제를 사회적 권리로 요구하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거다. 또 하나, 비정규운동 속에서도 고민할 수 있다. 자활, 사회적 일자리 소개하면서 불안정 노동 양산에 기여하는 것이 실업운동이 될 수는 없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다수의 불안정노동층을 조직하는 등 타깃을 정해서 투쟁을 조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인터뷰 정리 : 선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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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내,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정파는 노선투쟁의 역사적 산물
‘정파’에 대한 융단 폭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한 ‘총체적 위기’의 원인이 민주노조 내 ‘정파’때문이라는 비판들이 그것이다. 물론 민주노조 위기의 원인을 다 ‘정파’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고, 모든 정파가 다 똑같은 수준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도매금으로 평가할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지난 20여 년간 민주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정파’의 역할은 중요했기 때문이다. 중요했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곧 지난 20여 년간의 ‘정파운동의 위기’이며, 바로 ‘정파운동의 위기’가 민주노총을 총체적으로 무력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파’ 자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마녀사냥식으로 이루어져서는 곤란하다. 마치 자신은 정파적 질서와 책임으로부터 무관한 듯이 초월해서 양비론적으로 훈계하는 방식으로 진단과 평가를 하는 것은 더 더욱 곤란하다. 자칫 ‘정파’가 노동운동 내 노선투쟁의 역사적인 산물이고, 노동운동이 합법칙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의 일부라는 점을 은폐하거나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정치적 허무주의를 조장함으로써 노동운동을 탈정치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정파의 ‘폐해’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아니다. 정파의 ‘실체’, 정파의 ‘노선과 입장’, 정파의 ‘실력’을 더욱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드러내 놓고 공론화하고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위기가 ‘정파운동의 위기’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진단은 민주노조운동이 정파의 ‘발전’때문이 아니라 정파의 ‘미발전’ 때문에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진단이기도 하다. 목욕물을 버리려다 그 안에 있는 아이까지 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정파’는 어떻게 ‘정파’가 됐나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은 정파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그 분화 과정과 분리할 수 없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반독재 민주화투쟁과정에서 “통일과 민족 문제 중심으로 변혁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인가”, “남한 내 계급 문제를 중심에 둘 것인가”를 둘러싸고 ‘민족해방파(NL)’와 ‘민중민주파(PD)’ 등의 정파가 형성됐고, 여전히 이 두 흐름이 지금까지 노동운동 내에서 커다란 정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가 ‘정파’로서 형성·발전·분화되어 온 것은 1990년대 초반 이후였다.
1990년 전노협이 출범한 이후 ‘전노협 사수’를 둘러 싼 두 차례의 총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운동 위기론’이 전면적으로 제기됐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둘러싼 노동운동 위기 논쟁 과정에서 주로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사회발전적 노동운동론’, ‘진보적 노사관계론’ 등이 제기됐다. 노동운동의 목표를 둘러싸서 변혁적인 ‘노동해방’의 기치를 계속 내세울 것인지, 변혁노선을 포기하고 체제내적 노동운동을 해나갈 것인지가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그리고 이 때 형성된 노동운동의 목표에 대한 두 가지 노선적 경향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어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노선’의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민주노총의 출범 직후 1기 집행부가 내건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서였다. ‘사회개혁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어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노선에 반대하며, 노동자의 ‘계급적 요구’와 ‘계급적 단결’을 통해 사회를 변혁시켜 나가야 한다는 ‘계급적 노동운동’노선이 제기됐다.
이러한 노선적 대립은 1996년~97년 노동법개악 저지총파업 이후 총파업에 대한 평가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둘러싼 입장의 차이로 분화되었다. 노동법개악저지 총파업의 패배가 노동자출신 국회의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 세력들은 이후 ‘국민승리21’을 거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건설로 나아갔다. 이에 대해 노동자민중의 전면적인 투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 지도부의 ‘국민주의적 노선’과 ‘유연한 전술’이 패배의 원인이었다고 평가한 세력들은 변혁적인 계급정당 건설로 나아갔다. 민주노조운동 내 노선의 차이와 분화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둘러 싼 차이로까지 확장된 것이다.
민주노조운동 내에서 ‘정파’간 분화와 갈등이 본격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과정은 1998년 1월 정리해고제 직권조인 이후 거세져가는 정권과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공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둘러싸서였다. 특히 당시 김대중 정권의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지 여부를 둘러싸서 정파간 입장의 차이와 대립은 첨예해졌다. 물론 겉으로는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의 차이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크게 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대세라고 보고, 자본의 틀 내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능한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입장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그 자체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으로 대별되었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 현실화되지 못했고, 그 결과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지고 확장됐다.
이와 더불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의 하나인 ‘산별노조’ 건설을 둘러싸서도 산별교섭과 조직형식 전환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간 입장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산별투쟁을 통해 산별노조를 건설해 나가자는 입장이 대별되었는데, 이 역시 두 주장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전략’을 둘러싸서, 사회연대전략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과 ‘정규직 노동자 양보론’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아래서 민주당까지 포괄하는 반MB연합을 결성하자는 주장과 반MB연합은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론의 연장이며 반신자유주의 진보대연합을 결성해야 한다는 주장 등이 서로 논란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반자본’ 정파로 서나가야
이렇게 민주노조운동 내 정파는 우파-중앙파-좌파의 3분립 구도로 형성·분화되어 왔다. 정파의 역량과 실력의 한계 때문에, 또 정파운동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정파적 이기주의나 종파주의적 활동방식 때문에, 정파 운동이 때론 대중조직운동에 폐해를 끼치고 질곡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정파’의 형성과 발전과 분화는 민주노조운동의 질적 발전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길이다. 정파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전망과 주장을 하는 정파냐’, ‘어떻게 활동하는 정파냐’, ‘어떻게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파냐’로 논의 지형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파‘다운’ 정파로 서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한국사회에서 ‘반자본’ 정파로 굳건하게 서나가야 한다.

박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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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성찰, 좌파인 우리부터 극복할 문제들


사진출처 노동과 세계

‘지침’에 익숙해지는 게 문제다
무능한 좌파, 대안 없이 투쟁만 외치는 꼴통이란 게 현장좌파의 수식어이다. 이것에 대해 좌파는 투쟁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변명과 비아냥거림 정도로 여겨왔다. 
각 사업장에서 고용불안이 높아지고 자본의 탄압서슬이 퍼래 질 때 마다 조합원들은 그래도 꼴통인 ‘좌파’를 지지했다. 그들은 도망가지 않고, 뒤에서 야합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대는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일부 현장에서, 2009년 쌍차 파업 한복판에서 일어난 현장좌파로 일컬어졌던 민투위가 배출한 현자집행부의 부끄러운 역사도 있고, 현장 단위 모든 사업장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 여전히 현장좌파를 당당하게 만들지 못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산별노조체계가 보편화되면서 지침에 익숙해 졌다. 이는 현장좌파도 마찬가지다. 현장의 역동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침 없이 움직이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때문에 그 결과는 언제나 ‘누구 탓’이 되어버렸다. 이걸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쌍차투쟁에서 좌파활동가들은 현장에서 연대파업서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서명을 넘어서야 한다. 물론 엄혹하다. 산별노조에서 승인되지 않는 파업, 그것도 개별인자들이 자의적으로 진행한다면 징계감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제도를 넘어서기 위한 현장조직화에 더 집중해야 한다. 집행부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면 민주노조 20년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 왔겠는가?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만들고, 민주노조라는 외피를 쓴 관료성을 넘어서야만 우리가 원하는 역동하는, 투쟁하는 현장과 노동자계급이 살아날 것이다.

좌파!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일까?
우파(자주파)와 중앙파를 반대하는 것이 ‘현장좌파’의 정체성일리 없다. 변혁의 경로의 차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자기 정파의 정체성이다. 정파의 정체성을 온전히 현장의 노동자들이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우파이든, 중앙파이든...  ‘누가 싫어서’가 아니라 노선의 차이가 있어야 하지 않은가? 노선 차이 속에서 전략과 전술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노동자의 무기인 ‘파업’을 운운하는 것이 노선의 차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정파운동의 암울한 현주소다. 자본의 공격으로부터 노동자계급 자신을 보호하는 무기인 ‘파업’은 정파와 상관없이 누구나 주장되어야 할 전술이다.
파업전술을 넘어 민주노조의 역할을 확대해 가야 한다. 더 나아가 민주노조가 세상을 변혁하기 위한 자기 정파활동을 자유롭고 원대하게 해야 한다. 의회주의 노선을 통한 변혁전략을 얘기하든, 민족통일을 통한 해방을 말하든, 대체권력형성을 통한 혁명을 말하든 말이다. 이러한 노선적 표명 없는 정파운동은 언제나 조합주의, 패권주의, 종파주의, 끼리끼리 주의로 전락할 것이다.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자고 했다. 현장의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민주노동당하자고 하고 진보신당하자고 하더니 이번에는 사회주의 정당?’, ‘죽어버린 사회주의를 누가 마음이 움직이겠느냐’고 한다. ‘당 없이 현장좌파만 하면 된다’고도 한다. ‘노동조합활동에 활동가조직도 어려운데 당 활동까지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도 한다. ‘잘되면 가입하겠다’고도 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최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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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운동 이렇게 하자

제도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운동은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그래서 조직을 만들고 함께 실천해 왔다. 그리고 운동노선과 실천방식의 차이에 따라 정파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파운동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면 부패, 무기력으로 실패한 민주노총 집행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파운동을 하고 있다면, 이제 무엇을 극복할 것인지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자
지금 노동운동은 ‘차이도 없는데 분열되어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차이는 있다. 민족모순의 해결을 우위에 놓는가, 계급모순의 해결을 최우선시 하는가? 사민주의인가, 혁명주의인가? 등등 노선상의 근본적 차이가 분명 있다. 이는 정당운동 수준에서는 물론이고 민주노조운동 내의 제 활동가조직들 간에도 노선상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노선을 대중 앞에 있는 그대로 표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노선과  정책을 대중 앞에 책임 있게 제출해야 한다. 제출할 내용이 없다면 그것은 한낱 ‘패거리’에 불과하므로 해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중들의 선두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하자
정파조직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많은 비판이 ‘선거조직’이라는 것이다. 선거 때만 나타나서 대중조직의 집행 권력을 장악하는 데만 골몰하는 조직을 말한다. 그동안 민주노총 임원선거에 후보를 낸 정파조직들 중 투쟁의 현장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조직들이 많다. 노동조합 질서에 안주할 뿐 대중조직이 어려울 때 선도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자본과 정권의 공격으로 대중조직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대중조직이 미처 태세를 갖추고  있지 못할 때 활동가들이 결집한 정파조직이 기민하게 그리고 헌신적으로 나서야 한다. 자본과 정권의 책략을 폭로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대중에게 호소하는 선전선동에서부터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일상의 실천도 제대로 하자. 배후에서 선전선동만 일삼는 ‘신문조직’으로 전락하지 말자. 대중을 함께 움직이려는 노력 없이 맹동하는 ‘가두분자’도 정답이 아니다. 대중과 함께 때로는 대중의 한 발 앞에서 헌신적으로 일상 활동을 전개하는 정파운동으로 거듭나자.

대적투쟁전선으로 힘을 모으자
내부 대립전선으로 대적전선을 약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견해가 다른 정파가 집행할 때 자본과 정권에 맞서는 투쟁을 외면하거나 구경하는 조직은 운동하는 정파가 아니라 한낱 종파에 지나지 않는다. 심지어 방해까지 한다면 척결되어 마땅하다. 대중적 논의 끝에 투쟁이 결정되면 책임 있게 공동실천에 나서야 한다. 만약 전술적으로 투쟁방식이 동의되지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대적투쟁에 나서야 한다.

스스로에 대해 원칙을 잃지 말자
‘자기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는 정파를 비난하는 말 중에 하나다. 조직보존 논리를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심지어 핵심지도부가 뇌물수수로 구속되었을 때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하자 이를 정파적 공격이라고 몰아붙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자기 조직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할 대중적 책임을 지지 않고 정당한 비판을 공격하는 것은 전형적인 종파주의다. 조직이나 조직원의 오류와 과오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야 정파운동은 변화 발전할 수 있다.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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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공간과 사람들

1주년, 남일당 전경. 나중에 이 앞을 지나면서 번쩍이는 건물을 볼 때 이 사진을 떠올려보시라.


촛불미디어센터 레아
참 많은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이 투쟁에 함께 했다. 그 중에 미디어 활동가들은 시간을 기록하는 활동의 특성 때문에 그 공간에 오랜 시간 결합해야만 했고, 자연스럽게 레아 호프를 활동 공간으로 접수(?)해 촛불미디어센터 레아라 이름 붙였다. 카페까지 차려 부업으로 커피장사도 했다. 그러다보니 결합하는 미디어 활동가들이 늘어났고, 다른 장르의 활동가들도 좀 더 편하게 모일 조건을 만들었다.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이 보기에 카메라 들고 다니며 거기 사는 줄은 알지만, 뭘 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서로 알아가며 각자의 투쟁을 벌였다.
어느덧 투쟁이 마무리되고, 레아를 비워야 될 때가 되었을 때, 레아 사람들은 여전히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에게 우린 뭐였지? 우린 뭘 했지?’하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1월 19일에 거리투쟁 하느라 영상을 볼 수 없었던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에게 레아 활동의 결과물들을 상영하는 자리를 만들었다. 19일 상영회 안 했으면 촛불미디어센터 레아는 앙꼬 없는 찐빵으로 끝날 뻔 했다.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은 그들이 출연한 영상들을 보는 내내 울고 웃고 박수쳤다. 그들이 이 투쟁의 주인공이었음을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그 찐빵을 완성시켰다.


촛불미디어센터 레아 사람들은 이제 공간이 없어져 무척 서운하다. 그래도 앞으로 계속 모여 이 투쟁의 기록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계획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몇 편이 제작될 것이고, 그 중에는 책과 함께 엮는 작품도 있다.



마지막 문화제. 용산투쟁에서 매주 목요일 연극공연이 있었고, 마지막 문화제까지 많은 공연팀이 함께 했다.

마지막 문화제
용산참사 1년, 1월 20일 용산에서의 아주 질긴 투쟁이 마무리됐다. 용산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참사현장에서 느꼈던 숨 막히던 처절함은 이제 기억으로만 남았다. 마지막 문화제의 날씨는 흐렸다. 부슬비가 내렸고, 강추위는 꺾였지만 한겨울의 추위는 여전했다. 그러나 유가족들, 용산 4상공 철대위 사람들, 대책위 사람들, 문화제에 함께 한 사람들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파괴과정의 건물들로 둘러싸인 그 공간은 황량한 감각과는 달리 따뜻한 감정이 맴돌았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눈물 흘린 황량한 공간에서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남겨놓고 간 감정의 조각들 때문이다. 설사 이 투쟁이 완전한 패배로 끝나 그 공간에서 억울하게 떠밀려 쫓겨났더라도 그 감정의 조각들은 여전히 우리를 배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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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커처 그리기. 만화가 이동수님이 그리는 철거민들의 캐리커처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공저. 4월에 기획을 했고, 6~7월에 철거민들을 취재해 만들어진 만화책. 마지막 문화제 때 이 책과 함께 이승현 작가의 화보집 ‘파란집’이 출판기념회 및 증정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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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여행과 성숙의 대가

어슐러 K. 르 귄 읽기 2

 

 


단편집 ‘바람의 열두 방향’의 한국어판과 영어 판. 이 단편집의 첫 작품 ‘셈레이의 목걸이’는 헤인 에큐먼 시리즈를 탄생시킨 짧은 전설이다. 표지 그림은 셈레이가 살던 은하 제8지역, No. 62 : 포말하우트 II의 바람말과 셈레이로 추정된다. 이 행성은 나중에 다음 작품에서 그 제목인 ‘로케넌의 세계’란 이름을 얻는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
책을 펴면 당신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다른 환경의 행성을 본다. 거기는 공전과 자전의 주기가 지구와 다르기 때문에 시간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한동안 시차적응기가 필요하다. 작가가 시차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줄 때도 있지만, 미지를 탐험할 때 안내자에게 너무 기대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시간 개념이 다르면 생각도 분명히 다를 것이란 걸 추리할 수 있다. 단지 관찰의 목적만으로 여행할 거면 그 정도만 유념해도 되겠지만, 다른 행성의 주민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들 방식으로 생각하는 연습도 필요할 것이다. 권리의식이나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라면 이 모험에서 재미보다는 짜증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르 귄의 문장은 그리 쉽게 재미를 선사하진 않는다. 대신 다른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학습시켜 준다.
 
단순한 서사, 깊은 사색
이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자신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적과 대결하기 위해(로케넌의 세계), 생존을 위해(유배 행성), 자아를 찾아(환영의 도시), 연맹을 맺기 위해(어둠의 왼손), 위기를 극복하려고(빼앗긴 자들) 떠난다. 이들의 여행은 대단히 고단하다. 자신이 모르는 곳을 여행하기 때문이다. 그 여행을 읽는 독자도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만큼 고단하다.
그런데 이 여행은 의외로 단순하다. 외계인과 결투하거나 괴물에게 쫓기거나 하는 스펙터클한 모험이 펼쳐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이 여행이 흥미진진한 것은 모르는 환경을 익히며 알아가는 지적인 과정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자아와 여행 속의 자아가 서로 대립하는 모험이다. 이전의 자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을 잃고, 여행 속의 자아는 뭔가를 얻어간다. 주인공의 여행은 주인공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그것을 읽는 독자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만큼 독자도 주인공과 같은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그저 관찰만 해도 상관은 없다. 어떤 소설이나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물으면 물론 그렇다. 그러나 다른 어떤 소설들과 차이는 그 깊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소통의 방법 찾기
독자는 여행이 시작되고 주인공과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거나, 스스로 주인공이 되었다면, 이제 새로운 동반자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간다. 주인공과 여행의 동반자는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왔다. 말은 통하지만 그 생각이 통한다고 볼 순 없다. 시차적응기 같은 한동안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그 시간이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다. 대화로는 어려워 텔레파시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텔레파시 또한 그들이 살아온 문화를 극복하진 못한다. 그래서 르 귄은 침묵을 권한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면 일단 침묵하라고 한다. 그런데 둘 다 침묵하면 어떻게 들을까? 참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렇게 여행은 계속된다. 표정과 손짓 발짓에서 상대를 차츰 알아간다. 오랜 침묵 끝에 서로의 대화는 그 전의 대화보다 좀 더 깊은 공감대를 만든다. 작은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제 좀 더 빠른 진전을 경험한다. 이 소중한 경험은 큰 기쁨을 느끼게 만든다. 독자와 주인공과 동반자는 서서히 소통의 방법을 찾는다. 이 정도 되면 긴 여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맺음 할 것인지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책을 놓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한편 각 편은 르 귄이 저작한 순서대로 보일듯 말듯 한 희미한 끈으로 연결되어있지만, 각 편은 모두 독립적이다. 그래서 어느 편으로 읽기를 시작해도 상관은 없지만, 로케넌의 세계에서 배운 여행의 기술은 유배 행성의 여행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유배행성에서 배운 여행 기술은 환영의 도시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그런 식이기 때문에 저작 순으로 읽으면 여행을 따라 잡는데 힘이 적게 들고 더 큰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성숙의 대가
이제 여행의 마지막 단계다. 로케넌은 적으로부터 행성을 지킨다. 유배자들은 멸족을 면하고, 젊은 왕자와 인류는 적의 지배에서 해방된다. 에큐멘의 대사는 겨울 행성과 연맹을 체결한다. 쌍둥이 행성의 물리학자는 두 행성의 유대를 형성하고 사랑하는 동반자에게 돌아간다. 좋은 결말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아주 큰 희생을 치렀거나, 희생을 감당해야 한다. 적이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여행에서 동반자와 진정한 소통을 통해 이룬 유대의 힘이다.
로케넌은 낯선 행성의 여행에서 얻은 텔레파시 능력에 힘입어, 그리고 빛보다 빠른 통신기 앤서블로 에큐멘 본부에 사격지원을 요청하자 곧바로 빛보다 빠른 무기가 적들의 기지를 파괴한다. 본부에서 그 행성으로 곧바로 빛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이 하루 만에 그 행성으로 날아갔지만, 로케넌은 이미 죽은 지 몇 십 년이 흘렀고, 행성의 원주민들은 그곳을 로케넌의 세계라 불렀다. 빛의 속도로 나는 우주선이 있지만, 그보다 더 광대한 우주에서 한 인간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인류의 유대를 위해 에큐멘의 대사들은 자신의 짧은 시간을 기꺼이 희생한다. 참 까마득하고 아스라한 시간의 이야기다.
지금은 지구의 반대편에 불과 하루면 날아갈 수 있다. 불과 500년 전에는 수년간 목숨 걸고 항해했다. 인류는 그렇게 어렵게 다른 문화와 관계를 맺으며 변화해 왔다. 꼭 좋은 방향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변화는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헤인 에큐멘 시리즈의 기나긴 여행과 성숙의 대가는 어스시의 마법사 시리즈에서 마법의 균형으로 표현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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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쌍용차 노동자들은 무죄다


지난 18일 77일간의 치열한 투쟁을 벌이다 구속된 쌍용차 노조 간부들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한상균 노조지부장 7년을 비롯해 노조 간부 21명에 대해 징역 2-5년을 각각 구형하고 이어 1월 20일 금속노조 간부 김혁 동지에게는 6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한상균 지부장 등에게 중형을 구형한 이유를 “법원의 구조조정 결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법을 위반하며 계획적이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또한 김혁 동지에게는 “반성의 기미가 없고 장기파업으로 이끈 장본인”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
검찰의 중형 구형은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면모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일일이 반박하지 않더라도 쌍용차 사태에 가장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가장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자는 바로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다. 특히 이번 구형으로 마지막까지 국가기구를 이용한 폭력을 자행한 셈이다.
77일 한국사회를 뒤 흔들었던 쌍용차 파업은 ‘해고는 살인’이라는 진실을 폭로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샀다. 또한 노동자들이 공장을 점거하고 쇠파이프를 든 것보다 공장을 원천봉쇄해 음식물 반입조차 금지하면서 하늘에서는 최루액을, 밤이면 밤마다 평택 전역을 떠나갈 듯 질러대는 경찰들의 악다구니를, 공장 안 노동자들의 인명 피해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폭력적인 강제진압에 더 분노했다. 나아가 자본가들이 자행하는 파렴치한 도둑질도, 경영파탄의 책임도 은폐하면서 이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행위는 어떤가. 국가권력을 이용해 때로는 법을 활용하면서, 때로는 법 위에서 서서 휘두르고 있는 폭력은 그 어떤 행위보다 무자비하다.
작년 10월 취임한 임태희 노동부장관은 공무원 노동자들의 민주노총 가입에 대해 ‘법을 고쳐서라도 정치활동을 금지 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검찰은 말한다. ‘법을 위반한 폭력 행사’라고. 노동자들도 말해보자.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면서 살인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정권과 자본, 이를 엄호하고 있는 법률을 고쳐서라도 해고를 금지하겠다고.. 차이는 명백하다. 노동자들은 전체 노동자민중의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한 줌도 안 되는 저들은 자신들의 부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무죄다. 아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가권력과 자본의 폭력성을 폭로시킨 이 사회의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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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은 마이더스의 손

[김영수의 세상뒤집기]

수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고 싶어 한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죽을 때까지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다. 어떤 것을 가지고 어떻게 살든,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세상에선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호주머니에 돈을 집어넣기가 참으로 어려운데도 아낌없이 돈을 바치는 곳이 있다. 서로 돈을 내려고 줄을 선다. 그것은 바로 돈이 저절로 굴러들어오는 대학이다. 대학은 마음만 먹으면 돌조차 황금으로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 평생 끌어 모은 수 억 원의 김밥 할머니 돈이 대학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시쳇말로 ‘신의 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 부담률은 전체 대학교육의 비용 중에서 20% 정도로 OECD국가 중 최하위다. ‘신의 손’은 재단전입금을 아예 생각하지 않고, 그저 등록금이라는 돌을 주물럭거리면서 어떻게 황금으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할 뿐이다. 급기야 대학은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만들었다. 2015년부터 대학생 수가 줄기 시작해 향후 50년 안에 우리나라 대학생 수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다고 하니, 대학의 재정대책은 조만간에 등록금 2,000만원 시대 혹은 3000만원 시대를 만들어 내면 그만이다.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이 지속적으로 높아져 지금은 약 80%에 육박했기 때문이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대학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을 냈다. 투표권을 가진 대학생들은 등록금 반값시대를 꿈꾸거나 혹은 10% 이상의 구조적이고 장기화된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CEO라는 환상에 빠져들어 이명박 후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지지하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그런 대학생들의 꿈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이명박 정권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대학의 자율적 사안인 등록금에 대해 상한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얼마 전,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자, 노무현 정권조차 실현하지 못했던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려 했던 이명박 정권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대학생이 4년 동안 무려 4,000만원을 갚아야 하는 빚쟁이가 되는 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었다. 아마도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해서 돈을 벌어 갚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 실업과 빚의 고통을 동시에 겪어야 한다. 이런 고통의 늪에 누가 빠져들겠는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졸업을 계속 연기하는 것이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일진대.
그들에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공부하면서 살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의무교육을 보장하고 있는 이상, 대학교육까지 의무교육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으로 하여 무상교육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대학 등록금을 1,000원으로 하면 어떨까! 멕시코시티에 있는 국립자치대학(UNAM)의 한 학기 등록금이 1페소(약 100원)였던 사례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생들이 등록금만 무상이거나 싸다고 해서 대학생활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부모와 독립된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생활인이다. 그들은 노동력을 갖추어 나가는 예비 노동자이다. 그들에겐 적지 않은 생활비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최저임금이나 생활임금을 받아가면서 살아갈 권리가 그들에게 있다. 대학생들이 임금을 받으면서 공부하는 사회, 취업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주체적으로 계발하는 사회, 그런 사회가 바로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다가 죽는 사회다.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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