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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해방을 자기 과제로 한 사회주의 건설운동이 필요하다

2007년 세계여성의터 날을 알리는 포스터

사회주의자들의 모든 투쟁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인가?
가부장제를 통한 여성억압은 자본주의 이전 체제에서부터 공고히 유지돼 왔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를 통해 여성억압을 더더욱 심화시켜 차별기제로 활용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은 자본주의의 폐절만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배제하고 소외시켜왔던 가부장제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투쟁이어야 한다. 우리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의 계급착취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성적 불평등과 가부장적 억압의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의 투쟁은 모두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자들의 모든 투쟁은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래야 한다. 
이제 어떤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인가에 있어 성별화된 권리를 인식한 사회주의, 여성해방 투쟁을 자기 과제로 하는 사회주의 건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여성해방 투쟁을 위한 전략 없이는 계급환원론을 극복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한‘노동의 여성화’,‘빈곤의 여성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되어 가고 있는 시기에, 남성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적 착취를 얘기하는 동안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남성 중심적·가부장적 조직문화로 비판 받아 왔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반성과 성찰보다는 남성중심적?가부장적 조직문화를 사회주의적 규율과 도덕으로 치부하여 더 강고한 사회주의자들의 원칙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지 않았나 되돌아봐야 한다.
또한 사회주의 운동 진영은 여성억압에 대해 근본적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채 개량화되어 가는 자유주의적 성향의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만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할 뿐, 변혁적/사회주의 여성운동의 전망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사실상 외면해왔다. 동시에 사회주의 세력은 계급정치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들에 입장을 제출하지 못해왔고(아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세상에서는 여성억압이 존재할 수 없다며 여성노동자들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간의 계급적 단결만이 여성해방을 위해 주요한 투쟁이라고 강조해왔다.
20세기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제출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의 시계는 멈춰있다. 이제 여성해방을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로 선언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투쟁 전략 없이는 계급환원론을 벗어날 수 없다. 여성의 권리에 입각한 계급투쟁을 위해 우리는 20세기의 성맹목적 계급정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자들의 정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계급착취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가부장적 억압과 성적 불평등의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계급착취로부터의 해방과 성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투쟁은 분리될 수 없다. 특히 노동자계급은 계급 내부의 가부장적 관행과 제도에 맞서 투쟁하지 않고서는 정치적 계급으로의 고양은 물론 계급적 단결조차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가부장제를 활용해 여성억압과 성별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에 맞선 정치투쟁을 해야 한다. 정치투쟁의 장은 작업장, 지역, 국가뿐만 아니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침투해 있는 곳곳에서 벌어져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 정치 영역의 확장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의 영역을 공적인 것으로 한정해 왔다. 정치 영역의 확장을 제기하는 지금, 사적 영역에서의 정치투쟁의 의미를 강조하는 막대 구부리기가 필요하다. 정치의 영역을 공적 영역으로 분리하는 순간 가정, 가족, 사랑과 결혼, 모성, 돌봄노동, 감정, 출산과 양육 등과 같은 문제들은‘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동시에 여성들의 역할로 분리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사회주의 정치와는 상관없는 것들로 생각해 온 것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정치영역에서 배제된 사적영역 속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권력관계의 문제야말로 여성억압의 핵심적 사안 중 하나이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간의 분리가 여성억압의 중요한 양태이자 조건이라 할 때,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에서의 성차별과 성별 권력관계, 성차별적 법/제도들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구조화시킨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여성해방을 자기 과제로 하고 성별화된 권리에 입각한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하려 할 때 이러한 여성억압의 발생지인 사적 영역으로 정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일상의 삶, 성과 사랑, 육체 등 정치의 영역에서 배제됐던 공간에서 불평등과 억압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체가 투쟁의 장이며, 정치적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의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은 공적 영역에 갇힌 ‘정치’의 경계를 허물고 재정의하는 것을 통해 시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치와 투쟁의 영역은 확대되어야 한다. 공/사분리, 생산/재생산 영역에 대한 구분을 허물고 위계를 허물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투쟁의 영역을 재정의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투쟁을 위해 변혁적 여성운동의 전망을 만들어 연대해야 한다.

사회주의 진영에 여성해방을 자기과제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주요 모순이 무엇인가?’,‘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는 사회주의 건설 프로젝트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만 가지고 논쟁하고 씨름하는 사이, 성적 억압과 불평등은 반복 재생산된다. 그리고 변혁적 여성운동의 건설 없이 착취받는 여성노동자들과도 함께 할 수 없다.
물론 모든 여성이 억압받더라도, 억압의 강도는 여성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또 노동자들 중 일반적으로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착취받고 고통 받는 자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 진영의 여성해방운동은 가장 억압 받고 착취당하는 여성 다수와 함께 해야 한다. 가장 착취 받고 있는 계급에 근거한 운동만이 비타협적인 방식으로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여성노동계급을 조직하고 변혁적 여성운동을 조직하기 위한 사회주의 세력의 여성해방운동에 대한 방향과 계획이 필요하다.
이제 함께 모색하자. 여성 우선해고 반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육정책을 넘어서)한부모 가정의 여성, 비혼모 문제, 매매춘과 성노동,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성폭력 및 가정폭력, 가족임금제도의 대안, 가사노동 가치평가, 가사노동의 사회화 문제 등 여성관련 의제들을  사회주의 관점에서 정책적 프로그램과 전략으로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 조직 내부의 성찰을 제안한다. 조직 내부의 성차별과 성별분업, 성폭력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있는가? 사회주의자들의 규율로 이를 재단하지는 않았는가? 조직 보호와 보위의 논리에 의해 봉합되지는 않았는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동원대상으로만 여성들을 사고하지는 않았는가? 여성들의 주체화를 위한 사회주의 조직들의 고민은 있었는가? 이러한 제기는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사노준은 여성해방을 자기 과제로 하는 사회주의운동 건설을 위해 기간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 새로운 모색을 준비할 것이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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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논리 넘지 못하면, 성폭력 근절 없다

7월 22일, 민주노총 김○○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기자회견



반성폭력운동 10년, 여전한 조직논리
민주노총 김ㅇㅇ성폭력사건이 발생한지 9개월이 넘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민주노총은 성폭력 관련 규약·규정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의 핵심간부라는 자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조직은 이를 은폐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건이 공개된 후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퇴했고 새롭게 당선된 집행부는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과 조직문화 혁신’을 과제로 제출했다.
그러나 9개월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올바른 해결은커녕 몇 차례 걸친 피해자측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겠다던 지도부는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규약규정에 얽매어 형식적 처리로만 접근하고 있다.
민주노총 진상규명 특위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통해 남성중심적 조직문화 속에서 성폭력에 대한 무감함과 조직보위 논리에 의한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를 제기한 바 있다. 그리고 특위 보고서는 민주노총의 공식 보고서로 채택됐다. 그러나 특위가 제기한 성폭력 사건의 성격과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 제기한 문제는 전교조 집행부의 ‘조직의 명예회복’이라는 명분으로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전교조 내에서는 2차 가해자들의 구명운동이 공개적으로 전개됐고 특위의 ‘조직적 은폐 조장행위’라는 판단은 전교조 징계재심위원회에 ‘혐의 없음’으로 뒤집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또한 2차 가해자들의 징계양정은 ‘정권의 탄압과 조직에 대한 공적을 인정’해 ‘제명’이 ‘경고’로 경감됐다.
이에 분노한 전교조 내 여성활동가들, 피해자 지지모임은 전교조 대의원대회에서 ‘피해자의 상처 치유와 활동복귀, 성평등한 조직문화 건설을 위한 요구안’을 제출하고 대의원들과 7시간에 걸친 장시간 논쟁을 벌였지만 요구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전교조 다수 대의원들은 ‘피해자 상처 치유와 활동복귀’, ‘성평등한 조직혁신’보다는 조직보위와 조직논리에 따른 규약규정과 형식적 처리가 더 우선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그 누구도 피해자의 치유와 복귀, 성평등한 조직혁신을 위한 안을 제출하지 않은 것일까? 역으로 말하면 그들은 조직의 형식적 처리와 조직 지키기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성폭력사건’의 해결, 공론화 없는 과정은 형식적 징계로 남아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은 과연 뭘까?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폭력 사건이 가해자 징계를 중심으로 한 처리’에 의문을 제기한다. 맞다.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의 초점은 ‘징계’가 아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대다수 조직들은 징계위주의 처리를 요구하게 만드는 조직문화와 논리를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완강한 조직보위 논리에 부딪혀 성폭력이 일어나게 되는 가부장적 조직구조와 문화에 대한 공론화와 성평등에 대한 인식의 전환 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에 걸친 연속적인 피해와 상처를 방어하기 급급하며, 조직논리를 앞세워 사실상 제대로 된 반성을 거부하는 조직적 결정에 분노하고 이를 둘러싼 치열한 공방에 힘을 소진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성폭력사건 이후 대국민사과를 발표하며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복귀,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사건 초기에 나타났던 긴박함과 조직문화 혁신에 대한 목소리와는 달리 정권과 자본의 탄압 속에 긴박한 투쟁을 이유로, 규약과 규정에 의한 절차를 따지느라 성폭력사건의 해결은 지체됐다. 해결의 원칙 또한 피해자 중심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피해자를 외면하는 꼴이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위한 공론화는 가시화되지 않았고 결과로서 형식적 처리, 즉 징계만이 남게 됐다.
그런데 징계마저도 형식적 처리에 그쳐 피해자의 일상/활동 복귀를 위한 조치들은 전혀 취해지지 않았다. 조직 내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한 구성원들 간의 토론, 공론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그저 조직의 처리를 지켜보고만 있었을 뿐이고 조직 내 처리에 문제제기하는 조합원들은 ‘조직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비판자’들로 취급됐다.
운동사회는 성폭력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주체로 함께 서면서 운동사회에 만연한 (여)성억압적-차별적 조직구조와 문화를 혁신하는 운동에 동참하기 보다는 그저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문제로 치부해버렸다. 결국 운동사회는 사건 초기와는 다르게 대부분 침묵하거나 사건 자체를 잊어버렸고 해결의 몫은 고스란히 피해자,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몇 명의 문제로 남았다.
그럼에도 피해자와 지지모임은 민주노총과 전교조 내에서 ‘혁신해야 해야 할 조직운동’을 제기하고 피해자의 상처치유와 일상/활동 복귀를 위해 발언을 중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번번이 ‘조직의 명예’를 중시하는 바로 그 조직보위 논리라는 벽에 부딪혔다. 이번 전교조 대의원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요구안을 반대하는 대의원들 또한 피해자 치유와 복귀를 바란다고들 한다. 그러나 조직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성폭력, 조직논리 발생에 대한 진단이 필요
조직논리가 팽배한 운동사회 조직문화는 들여다보면 여성을 부차화하고 비가시화하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조직문화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조직보위 논리이다. 10년 전 운동사회 가부장적 조직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냈던 일이 바로 민주노총 포스터 였다. 이 포스터는 ‘가족 부양자로서 투쟁하는 남성노동자와 이를 격려하는 의존적 주부로서의 여성’을 보여줬고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여성을 종속적으로 위치 짓는 언어 및 슬로건들, 대중조직에서의 성별 대표성 문제, 남성성을 강조하는 노동조합활동 기풍과 전술, 조직내 여성 분리와 차별관행, 성폭력에 대한 무감함,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등은 한국사회의 가부정적 인식으로부터 운동사회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조직문화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남성 혹은 조직권위에 기반한 성폭력 이슈는 사라질 수 없다.
또한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 해결에 임하는 태도 문제다. 물론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성폭력 문제는 조직이 처해질 수 있는 어려움 때문에 침묵을 강요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허다하다. 특히 정권과 자본의 탄압이 거세지면 이런 행위는 더욱 정당화된다. 이번 사건 역시 조직보위를 앞세워 피해자를 압박하고 고통을 주는 2차 가해가 일어난바 있다. 여기에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몰성적 태도는 정세를 이유로 성폭력 문제 해결을 부차화시켜 버린다.

다시 일어나 이야기하자.
그리고 지지 연대를 만들자
여성의 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필연적으로 조직보위론을 낳는다. 가부장적 조직문화는 여성의 문제를 부차화하고, 성별화된 권리를 인식할 수 없다. 이 속에서 가장 숨쉬기 어려운 자는 운동조직 내 여성들이며, 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 축출되었던 피해자들이었다. 민주노총 성폭력사건의 올바른 해결이란 이러한 조직문화를 아프게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을 통해 시작할 수 있다. 형식적·절차적 조직논리와 조직보위를 넘어 피해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확산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공론화를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아직 늦지 않았다.
유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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