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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밥먹기

* 이 글은 NeoScrum님의 [밥이라도 맘 편히 먹고 싶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난 혼자서 밥을 잘 먹는 편이다. 같이 먹는 밥도 싫어하지 않는다.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같이 먹는 밥상은 유쾌해서 좋고, 혼자서 먹는 밥상은 조용하고 나른해서 좋다. 하지만 억지로 여러사람들과 어울려서 먹는 밥은 너무 싫다. 특히 직장에서 먹는 점심은 그렇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구내식당이 없다. 그래서 아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몰려나가서 먹는데 그렇게 같이 먹으려면 미리 점심약속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내 책상위에 올려놓은 탁상용 달력에는 칸칸이 "ㅇㅇ랑 점심"이라는 글자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이 회사에서 점심약속을 잡는 건 일종의 업무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점심약속을 못 잡아 놓았거나 갑자기 점심약속이 펑크가 난 과장들은 내게로 와서 애처롭게(정말로 그때는 애처롭게 보였다) "ㅇㅇ씨 혹시 점심약속 있어?"라고 묻곤 했다. 그때 만약 내가 "없는데요. 같이 드실래요?"라고 말하면 그들의 얼굴은 일순간 환해지면서 "그래~ 내가 점심 사줄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남들과 비교하여 튄다는 건 분명 남한내 직장문화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되는 것이고, 자신이 만약 '남들과 다른 인간'으로 찍혔을 때 받을 수도 있는 '상상속의 불이익'이 두려운 것이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너무 웃긴다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에는 나 자신도 거기에 많이 동화된 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달력에 수많은 약속들을 적어두고, 저녁때 배가 고파도 괜히 집근처에까지 와서 밥을 사먹는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서는 괜히 혼자 밥먹기가 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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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랫만에 일찍 퇴근해서 된장찌개를 끓여먹었다. 혼자서 TV를 보면서 찌개에 방금 한 따뜻한 밥에 후식으로 귤하나까지... 먹을 때는 뱃속이 아늑하고, 먹고 나니 온몸이 나른하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랫만이다. 어디서 혼자 밥을 먹더라도 제발 이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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