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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나라당 의원들은 왜 EBS가 못마땅할까

*출처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no=191231&rel_no=1

 

11일 열린 EBS를 상대로 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오전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은 유난히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인상비평'들을 쏟아냈다. 정체성을 둘러싼 현안질의에 피 튀기는 KBS, MBC 국감과는 대조적인 풍경. 하지만 과녁에선 빗나갔다.

 

이재웅 한나라당 의원은 EBS <세계의 명작> 프로그램에 방영된 '정사', '바람둥이 알프레드' 등의 영화를 언급하며 "이게 국민의 교육적 발전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재원도 없다면서 왜 이런 걸 늘리나, 본연의 역할(수능방송)에 충실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고석만 사장이 "별 5개를 받은 세계적인 명작"이라고 답하자 궁색해진 이 의원은 "교육방송에서 왜 이리 영화를 많이 편성하냐"고 재차 따졌다.

 

이 의원은 또 전례 없는 '문화실험'으로 격찬을 받은 바 있는 EBS의 국제다큐페스티벌의 팸플릿을 문제 삼았다. 이 의원은 "다큐 이거 누가 보나, 이런 짓 하지 마라, 이거(팸플릿) 보내면 돈벌이 되나, 돈 받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이걸 누구 보라고 비싼 돈을 들여 찍나, 돈 낭비하지 마라, 인터넷으로 보게하라"고 충고(?)했다. 지상파TV가 일주일간 정규방송을 접고 하루 17시간 동안 다큐멘터리를 방송한 국제다큐페스티벌. 하지만 방송국으로는 찍지도 않은 국제다큐페스티벌의 '포스터'를 구하려는 매니아들의 문의가 쇄도한 바 있다.

 

심재철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국제다큐페스티벌을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언어문제를 꼽았다.

"국제다큐영화제의 심사위원 중에는 외국인도 있는데 원주민의 언어를 해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외국의 사실관계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이 영화제에서 상을 주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이 행사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내 지적에 일리가 있나?"

고석만 사장은 "자막처리를 했다"고 답했으나 심 의원은 "말과 글은 다르다, 자막으로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이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칸느니, 베니스니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어떻게 다른 언어권의 영화를 시상했던 것일까.

 
다음은 EBS의 또 다른 히트작 <명동백작>. 다큐+드라마 형식의 이 프로그램은 1950년대 명동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문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기획된 '문화사 시리즈'의 제1편. 이재오 의원은 EBS의 비정규직 문제를 짚다가 <명동백작>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삑싸리'를 냈다.

 

이 의원은 "한 예술가의 삶은 그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50년대 전후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상을 그리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술인들의 낭만적 삶을 다루는 것인지 분간이 안간다"며 "누굴 타깃으로 하는 방송이냐"고 따졌다.

 

고석만 시장이 "중장년과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답하자 "오전 시간에 누가 보나, 직장 가고 학교가는데"라고 방송시간대를 문제 삼았다. 하지만 명동백작의 방송시간대는 토요일과 일요일 밤 11시. 고 사장은 "의원님은 재방송을 말씀하는 거다, 시청율은 높지 않지만 네티즌의 접속이 굉장히 많다"고 답했다. 이 의원은 "방송 효과를 생각해서 편성을 하라"고 얼버무렸다.

 

고흥길 의원은 제작비를 이유로 '문화사 시리즈' 후속편부터는 다큐멘터리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고 의원은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면 870만원이면 일회분을 제작할 수 있는데 굳이 10배가 되는 9천만원씩 들여서 제작할 필요가 있나"라고 지적했다. 물론 다큐의 형식은 고 의원의 말마따나 진실성, 역사성, 사실성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밥만 먹나? 다큐와 드라마를 섞는 것도 또 다른 형식 실험.

 

한편 이계진 의원이 EBS 사보의 지질과 '한(아래아)사람'이라는 제호를 문제삼은 것도 이채로웠다. 이 의원은 "이렇게 호화로운 지질은 화장품 회사나 삼성같은 회사에서나 맞는다"며 "교육방송 같은 데에서 양질의 종이를 쓴다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시정을 요구했다. 또한 제호에 대해서는 "아래아는 안쓰는 것이 맞춤법에 맞다, 장난할 때나 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맞춤법 상으론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아래아'를 오늘에 되살려 나랏말씀을 사용코자함은 '시적허용' 같은 것일 터.

 

EBS도 '코드방송' 나섰다?

 
사실 이날 한나라당 의원들의 '혼선'은 EBS 정체성 공방에서 빚어졌다. EBS가 지상파TV(평생교육체널)와 위성채널(수능전문·중학·직업채널)로 이분화 되면서 일반 시민을 상대로 한 평생교육채널이 현대사, 시사다큐 등 예민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깔려 있다. 하지만 이날 국감에서는 사전경고의 수준에 그쳤다.

 

박형준 의원은 'EBS도 코드방송 나섰나'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최근 3년간 EBS의 현대사 프로그램이 늘어난 까닭과 내용의 편향성 문제를 지적했지만, 국감장에서는 "유의하라"는 수준에서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KBS, MBC도 한두 가지 때문에 편향됐다는 지적을 받는다"며 "EBS의 현대사나 정치관계 프로그램은 그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심재철 의원은 좀더 구체적이었다. 심 의원은 "특정이념사관으로 방송을 만들면 안된다"며 고석만 사장에서 다음처럼 물었다.

 

6·25는 남침인가, 군사적 충돌인가?
새마을 운동은 자립운동인가, 장기집권의 정당화인가?
한국경제는 외자를 바탕으로 경제 건설했나? 자본과 기술이 외세에 종속되는 과정이었나? 천리마운동은 극단화된 주민동원인가, 대중의 열정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인가?

"1번이냐, 2번이냐" 심 의원이 다그치자, 고 사장은 "꼭 선택해야 하나, 선택하기 어렵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들이다"라고 머뭇거렸다.

심 의원은 이어 "최근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문제가 EBS 프로그램에 투영되어서는 안된다, 학생들에게 좌파적 이념을 심어주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나가다간 EBS도 다음 국감에선 MBC와 KBS처럼 '코드방송', '색깔방송' 공세에 휘말릴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11일 국회 문광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는 '수능방송' 채널로서의 EBS 정체성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성인인 나는 불만이다. 사실 성인들이 재교육을 받을 기회란 거의 없다. 물론 직업과 관련한 '기술' 재교육의 기회는 회사에서도 마련해 주지만 문제는 '교양복지'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런 점에서 최근 EBS 지상파TV 채널의 변화는 반갑다. 흡사 나는 TV 앞 삐딱하게 앉아 있는 학생같다. '사회변화형 프로그램'이란 수식을 달고 있는 <똘레랑스>, <미디어 바로보기>, <도전 죽마고우>도 좋고, 정범구 전 의원이 진행하는 < TV 정치교실>은 현실정치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나 교양적으로 정치에 접근할 수 있어 좋다.

 

의원들은 EBS가 웬 영화프로그램을 그리 많이 하냐고 뭐라하지만 나는 토요일밤 <세계의 명화>, 일요일 낮 <일요시네마>를 통해 세계 명작을 어디 문화원에 가서 보지 않아 좋다. 사실 월요병이 시작되는 일요일 자정, 잠을 이루지 못할 때 한국영화특선을 틀어놓고 신파를 즐기기도 한다.

 

특히 최근엔 <명동백작>(토·일 11시 방영)에 푹 빠져 있다. 시간대가 안맞으면 녹화해서 본다. 명동백작을 보면서 1950년대 전후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친 황폐한 사회상을 보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역으로 로맨티시즘에 빠져드는 문화예술인들의 '모순'을 보는 게 흥미롭다.

그 덕에 문학을 전공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며 모자란 정보를 얻고, <김수영 평전>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요즘 자꾸 EBS 채널로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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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족 이야기 - 조주은 著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올해 5월부터 "대화"라는 기획연재가 시작되었다. 그 첫번째 코너로 이 책의 저자인 조주은씨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의 저자 전순옥씨와의 대담이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그때 너무나 재미있게 기사를 읽은 나머지 두권 모두 구매를 했었는데 아직 읽어보지도 못하고 쳐박혀(말 그대로다. 포장박스째 방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있던 걸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사를 학술적 방법으로 다룬 전순옥씨의 책은 다소 읽기에 힘들 것 같아 조주은씨의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가 더해왔다. 왜냐하면 내 고향은 울산으로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20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조주은씨가 현대자동차가족의 일상을 지적할 때마다 나는 "맞아. 맞아"라는 말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들이라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하거나 으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을 조주은씨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집어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낸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학력 저임금의 노동과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의 미혼여성들에게 결혼이란 일종의 탈출구 내지는 환상으로 작용한다는 것
  2.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편의 상대적 고임금수준과 기혼여성을 퇴출시키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기혼여성들에게 전업주부의 길을 강요한다는 것
  3. 노동자계급내에서 상대적인 고임금이 자녀들에 대한 계층상승욕구를 충동한다는 것
  4. 인간의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는 노동환경(2교대 혹은 3교대 컨베이어작업)에서 남성노동자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교묘한 좋은아내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
  5. 이러한 기제를 통해 가정중심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여성은 자본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중으로 착취를 받고 있다는 것
  6. 노동자간의 집단거주방식이 올바른 형태의 여성공동체형성을 위한 기반 혹은 여성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등...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무슨 일을 했었고 학교 다닐 때의 추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거의 들은 바가 없다. 아마도 어머니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가정형편은 힘들었을테고 아버지와의 결혼이 단조롭고도 고난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하였을수도 있다. 또한 세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과 울산이라는 기혼여성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할 길이 막막한 환경 속에서 전업주부로 생활이 강요되었을테고 남성중심의 지역문화와 좋은 아내를 강조하는 기업들의 전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아이와 가정에서 찾으려고 했을 것도 같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가 자식들에 대해 그토록 큰 집착을 품고 계신 이유와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거의 경쟁을 하듯 교육에 관심을 가지셨던 이유도 쉬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퍼뜩 이제는 어머니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 드려야 할 때이고 좀더 어머니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릿속에 그리고 몸 속에 녹아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도 알겠고 말이다. 근데 맨날 생각은 이렇게 해도 부모님 앞에 가면 말은 왜 반대로 나오는지... 갑갑하다. 머리 속에 든 것과 실제 행동을 일치시키는 일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숙제인 듯 싶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다가 먼저 눈길을 끈 건 조주은씨의 특이한 인생내력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하여, 서슬퍼렀던 공안당국의 탄압과 뜨거운 운동권적 투쟁열기가 뒤덮고 있던 80년대 대학이라는 전장(?)을 현명하게(?) 잘 넘기고 사회로 진출했던 여성이 갑자기 자신의 생활을 통해 늦깎이 운동권이 되다니.. 또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젖먹이 아이들을 이끌고 상경을 감행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그만큼 진지하게 바라보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육아와 가사의 쳇바퀴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삶의 문제를 제기했기에 훨씬 흥미롭고 값진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 노동 주체를 상정해야만 남성들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이 가시화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남녀 모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동의 기회를 갖게 되고 가정 내 책임을 공유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감명깊은 말이다. 하지만 레니님이 말했듯 당신의 투쟁이 나의 투쟁이 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어려운 문제다. -_-a


* 참고 : 랄라님의 서평 http://blog.jinbo.net/bepossible/?pid=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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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에서의 글쓰기

* 이 글은 헤헤님의 [나는 왜 글을 완성하지 못했을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헤헤님의 두번째 글이 첫번째 글에 비해 마음에 들었습니다.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들고 이른바 불로거가 된지도 이제 꽤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적다가 왼쪽 밑의 숫자를 보니 제가 여기 둥지를 튼 게 올해 8월6일이네요. 기술이란 훌륭한 것이군요.)

 

저는 이 공간에 제가 읽었던 책이며, 보았던 영화를 주로 적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나름의 생각을 쏟아붓는다거나 하는 일기장류의 글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그 이유는 진보넷에서 느껴지는 어떤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어서 2달 정도 운영을 해 본적이 있었는데, 왠지 너무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그곳을 폐쇄하고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이곳은 왠지 정치적인 색채도 강하고 뭔가 좀 더 의미있는 소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4달정도를 보낸 지금 이곳에서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기는 하지만, 또 다른 불만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른 불로거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헤헤님이 글을 쓰는데 있어서 어떤 강박같은 걸 느끼셨다고 쓰셨는데, 저도 이 공간에 글을 쓰면서 그런 강박을 많이 느낍니다. "이걸 쓰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여기서 이런 내용을 써서는 안 될 것 같아. 이거보다 좀 더 뽀대나는 표현이 있을텐데..."라는 식의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된다는 얘기고,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불로거들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걸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이곳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장문의 논리적인 글을 읽고는 많이 놀라기도 합니다.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내가 이렇게 무식했구나" 등등의 감정을 느끼고는 하지요. 그렇다고 그 글 밑에 덧글을 달지도 않아요. 잘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들었던 단순한 감상 같은 것을 적을 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그 글이 어려운 내용이라 글의 중간중간에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덧글로 물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을텐데도 그에 대한 질문도 잘 하지 않게 돼요. (이런 걸 아는 척이라고 하나? 사실은 모르면서...)

 

그럴 땐 나라는 인간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요즘에는 의도적으로 불로거 여러분들의 글 밑에 질문덧글도 달아보고, 진보넷의 딱딱한 이야기와는 또다른 외부 블로그에 자취를 남기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진보넷 블로그의 진지함도 좋아하지만, 그 진지함이 진보넷 블로그의 모든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며 가지는 평범한 고민거리들도 들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훌륭한 답변과 해설도 들을 수 있는 곳, 내가 해보지 못한 새로운 많은 것들이 있는 곳, 언제라도 가볍게 내가 느끼는 걸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곳... 그런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시 읽어보니 제가 써놓은 글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이것도 자기 검열인가?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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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덫 - 한스 페터 마르틴, 하랄트 슈만 著

 

정말 오래 걸려서 읽은 책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2인이 쓴 책이기도 하고, 옮긴이인 강수돌 교수가 번역을 잘 하기도 해서인지 문맥이 쉬우면서도 잘 읽히긴 했다. 그래도 굵기나 무게가 좀 나가는 책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오며가며 읽기에는 부담감이 느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들기 전에 잠깐씩 읽다가 어제서야 끝장을 봤다. 한번에 원샷으로 읽지 못하고 오랫시간에 걸쳐 야금야금 읽어서인지 뭘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런~~~-_-a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실체와 그 대안에 대해 서술한다. 언론인 저자들답게 유럽과 미국의 풍부한 사례들과 인터뷰들을 섞어 써서 그 양은 상당히 늘어났지만, 물 흐르는 듯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세계정세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폐해를 겪은 독일에서 1997년경 씌여진 책인만큼, 책의 곳곳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그 대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들는 유럽연합과 국제연합 등 세계기구 차원에서 국가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제적 투기자본의 흐름을 차단하고 정치적, 생태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역설한다. 대안은 있으되 자본과 권력자들에 의해 행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 국가 혹은 정부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난 아직 어떤 확신도 없고, 그런 이유로 저자의 말이 가능할지의 여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의해 갈수록 우리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사실인만큼 무언가 대안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화론자다. 하지만 "저들"처럼 "자본의 세계화", "범죄의 세계화", "착취의 세계화"만이 아닌 "자유와 평등의 세계화", "인권과 생태의 세계화"를 원하는 진정한 세계화론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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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트로이카 - 안재성著

 

이 책은 '파업'의 작가 안재성씨가 1930년대 조선내 사회주의자들의 자취를 뒤쫓아가며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선내 자생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경성트로이카"를 이끌던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章에서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고 있다. 1990년대초 소장파 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비로소 활자로 기술된 "이재유 연구"와 이효정 할머니(경성트로이카조직의 유일한 남한내 생존자)의 아들 박진환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가인 안재성씨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허탈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이재유는 해방을 1년 앞둔 채 감옥에서 죽음을 당했고, 해방정국과 6.25를 거치며 남로당 총책이었던 김삼룡과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동했던 이현상도 남한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또한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순박한 이상주의자 이관술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일제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버림받고서 설자리를 잃고 죽어갔다. 박헌영 또한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총살당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혁명적 좌익세력이 생각났다. 인류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페인의 혁명적 좌익을 탄압하고 심지어 사살했던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생적이고 현장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인 경성트로이카를 견제했던 국제파의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후에도 일제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2004년 6월의 어느 초여름밤 경성트로이카 조직의 일원이었던 남한내 유일한 생존자 이효정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모진 핍박만 받았던 한많은 생이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같은 구성을 피해 소설적 장치를 차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졌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과정을 시대순서에 따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읽고 싶으신 분은 덧글로 남겨주시라. 널리 읽힐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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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그램

* 이 글은 sopoi님의 [21 grams 감상]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금요일 <21그램>을 봤다. 사무실에서의 일상에서 벗어나 수요일부터 안국동에서 3일간 연수를 받았는데 그 마지막날 수업이 오후 3시에 끝났기 때문에 뭘 할까 하다가 영화를 보러갔다. 저녁에는 스머프님의 오프모임이 안국동에서 있었기 때문에 지척에 있는 허리우드 극장으로 갔다. 

 

상영중인 영화중에 <21그램>이 눈에 띄었다. 감독이 알레한드로 곤쌀레스 이냐리투였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 <아모레스 페로스>를 너무나 재미있게 본 적이 있었던 나는 그냥 <21그램>을 끊고 들어갔다.

 

'삶'과 '사랑에의 집착'이라는 의미에서 <21그램>은 <아모레스 페로스>의 연장선에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는 <21그램>에서 <아모레스 페로스>에서 느꼈던 신선함과 강렬한 영상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는 도중 조금 지루하기도 했고 뭐랄까 왠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았다.(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겠다. 생각을 정리해서 나중에 더 쓰도록 하겠다.) 더군다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장면을 혼합하여 편집한 것도 왠지 나는 거북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이 영화 속에서 어느 누구도 죄인은 아니다. 그저 우발적으로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뿐이다. 감독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 그리고 삶의 가벼움을 설파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내게 있어 이건 거의 성인의 수준이 아닐까 싶다. 신이 할 수 있는 용서를 인간세계에 강요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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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머프님의 10월오프모임 후기

이글은
스머프님['시월 벙개 장소 '공지'..']
이러나님의 [우리들의 시월?] [그들의 면면] [브라더스[연작]]과 연결된 글입니다

현근님[10월오프모임후기]

 

10월 오프모임에서 두 분의 new face를 뵙게 되었네요.

스머프님, 현근님, 이러나님 모두 반가웠습니다. 이러나 님이 추천하신 "사막"도 차~암 좋더군요. 한바탕 일이 벌어진 후의 동아리방같은 황량함이란... 왜 간판이 사막인 줄 알겠더군요. 달착지근한 취생몽사의 맛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인 쿨피스의 맛에 버금갔으며, 메인 안주였던 "얼큰해물너구리"도 역시 대단했습니다. 그것은 진정 너구리 라면맛이었거든요~~ └(-_-;)┐ ㅋㅋㅋ

 

농담이구요. 이러나님. 어제 제 멘트로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옵니다. 그리고 전 정말 그 분위기가 좋기 때문에 다음에 친한 친구들도 데려갈 거에요~~^^

 

그리고 후기를 보면 참석자분들 중 어제 오프모임이 1차로 끝난 것에 대해 아쉬워 하시는 분들이 계시던데, 어제 제 체력이 뒷받쳐 주지 못해 파장 분위기로 몬 것에 대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토요일에 일정이 있어서 일찍 들어와서 좀 쉬어야 했거든요.

 

암튼 어제 참석자분들로부터 다양한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구요. 현근님은 시험도 잘 치시고 부디 잃어버린 지갑을 하루속히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가지 활동하시느라 많이 힘드실테지만, 다음번에도 꼭 뵈었으면 해요.

 

그리고 이러나 님도 원하시는 바대로 공부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후라이팬 얘기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색해요. 으흑....-_-;;; 제가 생태적으로 살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이런 오프모임 추진하려면 항상 누군가 한 사람이 나서야 하는 것 같아요. 그걸 먼저 해주신 스머프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도 오프계획 있으시면 저한테도 꼭 알려주세요. 전 어제 너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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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운동권은 아니다.

* 이 글은 달군님의 [난 왜 운동권학생이 되었나]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어.. 빨리 자야 하는데, 오늘도 이 XX을 하고 있군.=.=;; 역시 네트는 광대햐~~

 

근 20년을 경상도 땅끝마을(?)에서 보낸 나는 대학교에 들어갈 때 모든 일가친척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데모만 하지말어라"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런 걱정을 하덜덜덜 말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공중파 9시뉴스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이 철썩같이 진실이려니 믿고 있었던 나에게 "데모하는 놈=빨갱이"라는 등식이 있었다. 초등학교 다니던 87년에는 전두환이 노태우에게 대통령 물려준다는 뉴스 듣고 "음..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생각까지 했던 나니께...

 

그러던 내가 촌에서 상경해서 서울로 대학을 왔다. 기숙사에서 1학년을 다녔는데, 하루는 고등학교 선배가 점심 사주면서 어딜 좀 같이 가자고 했다.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별 생각없이 따라갔는데, 대학교 입학식 몇일전이었던 그날 김영삼 화형식을 하더라. 투쟁가 부르고 영새미 인형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면서 불에타고 어... 등에서 식은 땀이 흐르더만. 그날 보았던 장면은 내게 참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이거 데모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입학식도 마치기 전에 어기다니.

 

그러던 차에 뭔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의 나도 대학생활에서 동아리를 연상했던 걸 보면 어릴 적 월요일저녁마다 보았던 "우리들의 천국"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듯 싶다.(어릴 적 보았던 홍학표는 참 멋있었지) 솔직히 그냥 어울려 놀기만 할 뿐 별다르게 하는 것도 없는 동아리이긴 했지만(내가 뭐 시키면 맨날 피해다녔거든) 그냥 거기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환경에서 적응을 해서 살았고,그렇게 동아리 사람들하고 어울려 놀다보니 데모하는 거나 집회가는 거나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과 환경이라는 놈은 그래서 무서운 건가보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동기나 선배가 집회 나가자 그러면 맨날 도망다니고, 변명 늘어놓고, 암튼 지금 아무리 돌이켜봐도 내 기억에 집회에 나갔던 적은 드물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난 운동권은 아니다"

나같은 사람이 운동권이라면 운동권 욕 맥이는 말같고, 난 그저 운동권 주위를 맴도는 주변인일 뿐이다. 관념적인 주변인 정도로 해두자. 아무래도 내 거대한 몸통에서 달팽이눈처럼 돋아나 있는 팔과 다리가 조금씩 강인해졌을 때라야 "나 운동권 맞다"라고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면 그때까지 뭐라도 조금씩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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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오늘 아침부터 몸이 좋지 않아 일어날 때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정말 일찍 자야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일찍 들어오지도 일찍 자지도 못했다.

머, 밀린 일 때문에 늦게서야 퇴근했는데, 집에 와서는 잠깐 컴퓨터 앞에 앉아서 진보불로그에 덧글질 하다가 시계를 보니 벌써 한시다. 젠장할.

한주의 시작을 자~알도 끊었다. 내일 아침에도 일어날 때 "오늘은 일찍 들어와서 정말 일찍 자야지"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내 조둥이가 눈에 선하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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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가긴 간다

* 이 글은 한심한 스머프...님의 ['시월'이 간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나라는 인간은 역시 프로젝트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스머프님은 행사에 행사의 연속이라고 말씀하시는데, 만약 나였으면 거의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

 

성격탓인지는 몰라도 난 별다른 일이 없는 평온한 일상이 좋다. 하던 일(?)이나 계속하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은 거다. 난 일요일에는 별다른 약속을 잡지 않는다. 놀려면 금욜밤이나 토욜밤에 놀지, 일요일에는 밀린 빨래하고 방청소를 한 다음에 낮잠을 자던지, 인터넷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요즘들어 늘 하던(?) 일 때문에 사무실에서 조금 바빴다. 매일 야근에다, 결재에다... 뭘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현재 내가 하는 일로 내 한 몸은 너끈히 추스릴 수는 있지만 뭔가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간간이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쳇바퀴에서 나와 조금은 딴짓을 해봐야겠다. 시월이라 서늘한 것이 날씨도 좋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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