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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 48호> 만신창이가 된 민주노총, 새로운 전망 찾기가 필요하다

만신창이가 된 민주노총, 새로운 전망 찾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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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몰락
 
아니길 바랐다. 설마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둔 4월 8일, ‘민주노동자 전국회의’가 발표한 성명서는 민주노총 위원장선거 재투표를 “이미 무산된 선거를 편법적으로 절차나 마무리하자는 식의 (무원칙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통합지도부 구성을 위한 민주노조운동 제 진영의 일치된 노력을 촉구”하고 있었다. 누가 읽어도 ‘재투표를 무산시키고 통합집행부를 구성해 선거를 다시하자’는 것으로 이해될 주장을, 성명서라는 공식적 형태로 발표할 수 있는 그들의 당당함과 자신감이 끔찍했다. 
대의원대회 당일, 서울로 향하는 전세버스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대의원대회 성원이 쉽지 않겠다 싶었다. 그러나 다행히 과반을 7명 넘긴 467명의 대의원이 참석해 회의가 성립됐고 투표가 시작됐다. 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비로소 커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누는 데 장기투쟁사업장의 한 동지는 “성원이 안됐으면 단상에 뛰어올라 마이크 잡고 쌍욕을 하려고 했다”고 농담반 진담반 얘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참석 대의원 중 25명은 투표를 하지 않았고, 결국 442명 투표로 투표율이 과반을 넘기지 못해 선거는 무산됐다. 선관위원장은 선거무산 발표에 항의하는 대의원들에게 규정대로 할 뿐이라며 담담하게 이야기했고, 금속노조 위원장은 “투표 전에 문제제기 하지 왜 이제 와서 난리냐”며 버럭 화를 냈다. 결국 위원장 선거는 그렇게 무산됐고, 대의원대회도 성원부족으로 유회됐다.
대의원대회에 참석했으나 투표를 하지 않은 25명은 누구일까 알고 싶었다. 그들의 투표 거부는 선거 무산을 위한 목적의식적 행동임이 분명했다. 25명 명단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 대한 비난과 분노 이전에, 민주노총의 현재 모습을 맨얼굴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서, 역사는 제58차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어떻게 기록할까? 어쩌면 ‘민주노총의 몰락’을 서술한 부분에 그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같은 역사적 순간에 누가 주역을 맡았고, 누가 조역이었고, 누가 실없는 웃음을 흘렸고, 또 누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오직, 지금 민주노총이 몰락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몰락 뒤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 질 지가 중요할 뿐이다. 
 
 
새로운 전망 
 
이번 선거에서 노동운동 내 현장파로 불리는 ‘노동전선’은 ‘원탁회의’를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당면과제에 대한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구성논의는 실패했다. 과거에도 통합지도부 구성논의는 몇 차례 있었지만 ‘자리싸움’으로 번번이 실패했고 그 후 활동가들의 대응은 무기력했다. 운동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 위기적 상황에서 통합지도부가 요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위기를 넘어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위기관리’가 최선의 역할일 수밖에 없는 통합지도부로는 몰락을 지연시킬 수는 있어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시기 노동운동 내 계급적인 활동가들의 역할은 통합지도부의 한 세력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에서 탈출할 수 있는 운동의 새로운 비전과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혹 지금 우리가 제시하는 새로운 운동의 전망이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틀린 답이라고 하더라도 뭔가 새로운 전망이 제시되어야 그 속에서, 그 밖에서 또 다른 해답, 제대로 된 해답을 찾아 갈 수도 있는 법이다. 당장 정답을 제시할 능력이 없다면 정답을 찾아가는 도화선이라도 되는 것, 그 길에 밑거름이 라도 되는 것이 현 시기 계급적인 현장활동가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무산된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의 후폭풍이 어떻게 불어올지 알 수 없다. 투표를 하지 않은 25명의 명단이 무슨 ‘인터넷 신상털기’ 식으로 공개되는 걸 봐서는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아주 오래 아수라장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 아수라장 속에 뛰어들거나 구경하기보다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기 위한 계급적인 노동운동의 프로젝트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금속노조 마창지역금속지회
이김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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