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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14
    태안, 이주여성(3)
    금자
  2. 2008/01/14
    청약저축(9)
    금자
  3. 2008/01/09
    연애랑 정치는 다른 것일까?(7)
    금자
  4. 2008/01/08
    오늘 얻은 교훈(2)
    금자
  5. 2007/12/23
    태안에 다녀왔다
    금자
  6. 2007/12/04
    논문이 끝나면 할 거얌(2)
    금자
  7. 2007/10/28
    나이 서른을 견디는 것
    금자
  8. 2007/10/26
    존경할 만한 사람을 직장에 갖는 것
    금자
  9. 2007/09/15
    비오는 금요일,그리고 민희.(11)
    금자
  10. 2007/09/07
    20070905 엄마와의 잠깐동거(2)
    금자

태안, 이주여성

태안에 다녀왔다. 우주복 입고 꽁꽁 언 기름을 닦는 방제활동이 아니라 태안의료보건원과 함께 산모/영유아 기름유출사고 건강피해 조사를 위해 설문지 테스트를 하러 간 것이다. 방제활동을 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 건강조사 설문과 소변 채취 등을 진행했는데 이리저리 되어서 초등학생과 지역주민들 건강문제는 시민환경연구소에서 하고 (거긴 큰 단체잖혀 T_T) 우리 여성환경연대는 민감 계층인 산모와 영유아를 중심으로 조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화요일부터 추워지길래 어떤 꼼수를 부려서라도 수요일엔 따땃한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꼽고 요새 척, 하고 4년만에 등장한 잭 존슨(Jack Johson)님을 들음시롱 버텨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다간 이번 주말에 다시 방제활동에 투입-_-된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더 무서운 꼼수 아래 자진해서 태안에 내려가게 되었다. 시민들은 자진해서 태안에 가는데 실무자로서 "느자구읍다"고 해도 토욜 새벽1시에 출발해서 버스에서 자고 새벽 6시에 눈물 겨운 아침밥을 먹고 통통통 배를 타고 들어가 우주복 입고 바닷바람에 얼굴 빨갛게 트면서 왠 종일 앉은 자리 돌도 다 못 닦을만큼 점점이 깔린 기름덩어리를 보고 나오는 것...이번 달 말고 좀 따땃해지는 다음달에 하면 안 될깡? -//////- (아아, 난 인쟈 겨울바다 이런 거는 수십년간 안 갈겨 ToT) 달랑 디지털 체온계 하나 주면서 5장짜리 설문을 하고 채혈과 소변 채취를 하는 것도 좀 거시기하고 미안하고 민망했다. 난 <공중그네>의 바다표범과 하마같이 생긴 이라부 의사가 아니라서 남이 주사맞는 장면을 눈 반짝 +_+하면서 감상하는 취미는 읍다.사실 내 피도 잘 못 보고 피 나면 듁는다고 오두방정을 떠는 것이 취미이자 특징이다. 그래서 채혈 양이 부족해서 두 번이나 피 뽑고 혈관이 가는 여성 대상자가 나타나 피가 잘 안 나오는 걸 옆에서 지켜볼 때는 죄 짓는 기분이 마구 들었다. 그런데 피를 뽑고 나오면서 같이 다니시는 분이 "시골에서 살고 우리 말을 잘 못해서 순박하게 말도 참 듣늗다"고 그랬다. 그 분들이 나쁜 뜻 있어서 그런 말 한 것도 아니고 같은 지역민으로서 지역경제와 지역민들을 얼마나 챙기던지 감동먹었던 차였다. 게다가 시민단체 일임에도 협조차원이 아니라 아조 일을 을매나 도맡아 해불던지, 내가 국가 공무원이 꼬옥,많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였음에도 불구하고(이메가 씨, 참고해주333) 맴이 츱츱해지고 스산해졌다. 그래서 후에 이대 예방의학과에서 진행하는 모자보건사업에 참여하라는 동의서를 들고 갔는데도 동의를 안 받고 그냥 나왔다. 의료윤리고 뭐시고 간에 그냥 사기꾼같은 생각이 들었다. 성함이나 임신이라는 단어로 물으면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그들의 남편이나 "형님", 혹은 "어머니"가 "이름이 뭐냐고" "아이 가졌을 때"라고 풀어 말해준다. 오늘 만난 세 분은 한국에 온지 1년도 채 못 된 이주여성들, 이었다.


피해 지역을 돌면서 했던 조사의 세 가구 모두 '우연히' 이주여성이 국제결혼한 경우였다. 요새 '시골'에서 애 가진 새댁은 그렇지, 라는 말도 들었다. 조사 끝나고 나오면서 "요새 같이 바쁜 철에 다덜 집에서 놀고 시집 잘 왔다"라는 요지도 말도 들었다. 그러니까 설문지에 쓰여진 "마음이 답답하다, 불안하다, 속이 더부룩하다" 등의 말을 못 알아듣고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들의 입을 대신하는 것을 판단하고,결혼한지 일 개월도 안 되서 모두들 임신해버린 것을 머리로 계산하면서 그들과 인터뷰 한 것은 시건방질지도 모른다. 그들 집에 있는 큰 김치냉장고나 식기세척기, 디오스 냉장고를 보고 "아니, 나같은 도시빈민보다 잘 살아"라는 생각은 또 뭐고. 이주여성과 결혼한 가정은 디오스 냉장고 큰 거 있으면 놀라운 거야? 한 분은 베트남에서 왔고 두 분은 중국에서 왔다. 모두들 이 조사에 동의했다고는 했으나 그건 그들이 아니라 그들의 남편이거나 시댁 가족들이었다. 기분을 묻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묻는 문제는 건너뛰었다.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을 뿐더러, 첫 번째 가정에서 해 본 결과 그런 건 본인이 알아듣기 전에도 다른 사람들이 '다 알아서' 대답해주었기 때문이다. 것도 그들이 구린 의도가 있거나 잘 사는 것처럼 꾸미려고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못 알아듣고 우리는 자꾸 묻고 옆에서 갑갑하고 같은 집에 사니까 잘 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친절하게 시간 빼서 옆에 앉아서 '편의'를 제공한 거였다. 우리 모두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서툴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는 연애하는 건,나 자신을 가장 이해받고 싶은 타인에게 언어와 몸으로 정직하고 달달하게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그러다가 좌절하면서 다시 시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에 많이 디면 디일수록 알게 되는 것이 내가 팔자 드런 년이거나, 썩을 것들만 만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타인에게 납득시키고 이해받고자 하는 언어에 너무 잼병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연애하면서 '내가 나이지 않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 그런 연애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기회는 되었지만(쿨럭, 차라리 서정시를 쓸깡? ^^), 결과적으로 환멸스럽게 끝이났다. 그런 연애는 빨리 끝낼수록 좋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고독을 극복한 것이다"라는 패터 한트케의 말, 좋아라 했다. 나의 시건방지고 멋 모르고 들썩이는 판단에 비해 그들은 실제로 훨씬 행복하고 안정적이고 정말 "시집 잘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인류학을 공부하면서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그 놈의 이주여성 관련 논문과 글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뻔해서" 잼없다고 시건방진 판단을 했었고 (난 논문도 못 썼어, 흐엉 T0T) 그들을 희생자화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어느 정도 불편했다. 오늘은,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불편한 감이 더 많았다. 이주여성이 결혼하고 애 낳고 시부모 모시는 것이 존재의 의무가 되느 듯 보여 그냥 구조적으로 찜찜했다. 서발턴이 말할 수 있는가?,그럴 수도 있겠지. 어느 상황에서는.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어로 자기를 피괄적으로 그려내는 것'도 어려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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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저축

주발양과 전화질 40분을 했다. 개같은 하루를 보낸 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여자 혼자 사는 것. 여자로서 비혼으로 평생을 나면서 정신과에 들나들 확률은 테러당할 확률보다 높다는 것이었다. 아,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여자 혼자서 이사를 한 내 친구는 부동산 아저씨에게 데이고 수위실 아저씨와 한 판 싸우고 새로 산 버티칼을 달 못을 박다가 실패하고 이사한다고 무담시 신나서 산 밥통이 일주일만에 고장나고 그 와중에 스파게티 해 먹으려다가 소스 뚜껑이 안 열려서 결국 밥 사먹고 그러던 와중에 전화를 한 내게 정말이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이사 안 다니고 집세 걱정 안 하면서 "내 집이댜"라고 할 말한 공간이, 집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열심히 청약주택 들어서 은젠가는 국민임대주택에 입성하자고 토닥토닥했더니 "여자 혼자 단독 세대주로 들어있는 가구가 그런 곳에 당첨될 확률은 생선이 자전거를 탈 확률보다 낮다"고 일침을 놓았다. 된장맞을, 그런 거냐?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변호사 미란다가 집을 살 때 부동산 업자가 '여자 혼자 집 사는 것'을 츱츱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급기야 계약서에 'separted'라고 지 맘대로 작성해 놓은 것을 보면서 '아, 미국도 별 수 없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이것 저것 다 떠나서 집 살 돈만 있으면, 임대주택이라도 들어간다면야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려라"라는 마음쯤이 되겠다. 좀 억울하다. 결혼을 안 하거나 못 한 것이 죄도 아니고 둘이 되면 재산도 둘이 척척 합쳐서 집도 얻고 살림할 돈도 나눠쓰고 그러는 경제적 이득도 있을 것인데 (나 혼자만의 생각인겨?) 혼자 사는 비혼들이 왜 청약주택에서마저 뒤로 밀려야 하냐고. 혼자서 아장아장 살아갈 집은 비혼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은은 순전히 내가 비혼이라서 '이익집단'식으로 생각해서 그런걸까? 비혼으로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적 관계(serial relationship)에 에너지를 쏟는 것도 심들어 듁겠구만 말이쥐. 엄마는 본인이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 세 자식 중 내 생각이, 내 걱정이 젤로 앞섰다고 했다. 짝도 없고 혼자서 벌벌벌 살아야 할 막둥이 딸이 못 미더웠던 거겠지. 그치만 실은, 알아? 엄마가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혼자 사는 여자들이 혼자서 행복해하면서 좋아라 할 겨를이 더 없어지는 것 같아. 엄마가 혼자 사는 딸도 자취가 아니라 결혼을 한 사람들처럼 '살림'을 하고 결혼을 한 사람들도 외로움에 부들부들 떨다가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하고 그런 것들, 나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이해하고 그런 척이라고 해 주면 좋겠어. 삼천포로 말이 샜는데 이렇게 심든 일들이 단지 개같은 날의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살아내야 할 삶이고 다시 반복될 거고 우리 모두 가엾은 것들, 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서른 한 살에 그래서, 연애를 해야 겠다고 죽자고 덤비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엾은 데 옆에서 삶을 스캔해주고 토닥여주는 환각제가 필요해) 그런데 연애가 잘 안 되는 내 친구에게 -_- <자기 보살핌>의 한 구절 선사!


만약 혼자라는 사실로 인한 불안감과 소외감,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면 다음의 두 가지 글쓰기를 이용하라. 며칠 간 첫 번째를 연습한 다음 두 번째로 넘어가라. 1. 혼자라는 사실에 대한 당신의 가장 솔직한 생각과 느낌을 써라. 남녀 관계에 대해 당신에게 불안감이나 분노, 좌절감을 남긴 경험은 무엇인가? 당신에 그런 감정을 표현했는가 아니면 억누르거나 무시했는가? 그 경험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의 기분을 말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2. 글쓰기를 통해 다음의 질문을 탐색하라. 실패자라거나 소외되었다는 느낌 없이 싱글로 지낼 수 있는가? 이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렇게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자기 보살핌을 통해 외로움을 덜고자 하는 싱글 여성들, 그리고 내가 동반자와 분리되어 있는 독립된 자아라는 사실을 자신에게 일깨워 줄 필요가 있을 때 혼자서 하는 자기 보살핌의 방법들. 이 목록을 발판으로 삼아 당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첨가하라. -빈둥거리는 일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켜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황홀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서너 군데 찾아라. 들판이나 근처 공원의 해먹 위 혹은 다락의 은신처, 너덜너덜하지만 편안한 낡은 의자나 지하에 있는 소파 등 -동반자와 단절되었거나, 동반자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거나, 동반자가 없어 외롭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애정 공세를 퍼부어 주기를 기다리지 말라. 당신 자신을 위해 꽃다발이나 예쁜 화분을 사서 침실, 집안의 사무실에 두자. 그에게 생일 선물로 받고 싶었던 목걸이, 핸드백, 벨트, 브로치 등을 당신이 직접 사라. -당신이 선택한 영화를 보러 가라. 한낮에 가 보는 것은 어떨까. 관객이 적은 조용한 극장에서 앞자리에 발을 올리고 볼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라. -당신 자신을 위해 이국적인 목욕 소금을 사서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며 긴장을 풀어라. 불을 끄고 욕조 가장자리에 촛불을 켜라. -근처의 공원이나 벌판으로 혼자 산책을 나서라. 모든 감각이 주는 느낌에 완전히 빠져 들어 순간에 충실한 마음 보살피기 산책을 하라. 당신의 옛 꿈을 추억하거나 얽힌 감정을 푸는 시간으로 삼아도 좋다. 창조적인 프로젝트나 직업적 야망, 이성 혹은 친구와의 관계에서 바라는 변화, 먼 곳으로의 여행 등 새로운 꿈을 구상해도 좋다. 아니면 모든 생각으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비우는 시간이 되어도 좋다. 계속 움직이고, 계속 꿈꾸어라. -연을 사서 공원이나 벌판으로 향하라. 파란 하늘 위에서 알록달록한 연이 앞뒤,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관찰하라. 손가락에 와 닿는 실의 팽팽함을 느껴라. 멀리서 바람에 펄럭이는 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하지만 친구 및 형제자매와 따뜻한 시간을 갖는 것이 자기 보살핌의 극치라는 것, 그리고 어머니들과 할머니들이 풍족하게 누렸던 그런 유형의 우정을 재건하는 일이 여성들에게 최고의 자기 보살핌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렇게 스스로가 가엾고 개같은 일들이 마구잡이 연달방귀로 뿡뿡 터질때에는 언제든 전화하고 언제든 만나서 따뜻한 차를 홀짝이고 마구 이야기하자. 온전히 혼자, 를 이해하는 순간 친구가 더 애틋하게 다가왔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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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랑 정치는 다른 것일까?

근 2달간 출근하자마자 MB 욕 하면서 하루가 시작했고 회의 시작 전에 과일 깎거나 간식 놓으면서 MB 욕을 한 번 더 했을 정도로 우리 단체 사람들은 MB라면 여름철 겨드랑이에 부글부글 솟아난 털처럼 여겼는데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취향이지만 난 여름철 겨 털을 뽑고서 민소매를 입는다고) 그들의 남편과 남친들은 MB를 찍었던 모양이었다. 내 자리의 전임자는 여성학 공부를 한 사람이었고, 생태팀의 은영샘도 평소에는 시민단체가 서비스 회사인가를 의심할 만큼 친절한 사람임에도 no라고 해야 할 때 yes라고 대답하지 않는 인간형이고, 라연샘의 남친 통통이는 친환경상품전시회를 하건, 태안을 가건, 라봉 옆에 붙어 사무실 짐을 척척 나르면서 '남자'를 사귀는 것의 보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전임자의 남편도, 은영샘의 남편도, 통통이도 MB를 찍었다고 했다. 선거날에는 일일 '논개'가 되어 그를 껴안고서 저녁 6시까지 쇼핑몰을 돌던 교외를 나가던, 한 표라도 수장시키라는 우리의 지령도 지키지 못한 채. 도대체 어떻게 MB를 찍는 사람과 평생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실존주의적 고민에 빠져 있는 나에게 앞자리에 앉은 펭귄이 말했다. "전에 현희 샘(내 자리 전임자)도 그랬는데, 결국 MB를 찍을 만한 사람과 만난지 몇 달 만에 바로 결혼했어요" 흠. 살짝꿍 비웃으면서 우리 시네마는 만원 준다고 꼬드김시롱 온 가족이 MB 찍을 것을 강요하고 선거 다음날 뉴스를 보면서 "온 국민 마음이 다 내 마음 같구나"하면서 므훗해하는 아빠를 두고 있음에도, MB를 안 찍었다고 자족했다. 나름 나도 므흣, 이 정도는 되야 사랑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웬지 모르게 이겼다, 라는 뿌듯한 마음까지. -_- 근데 같이 밥 묵다가 시네마가 떡 하니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나서서 운동하는 동성애자들 이해가 안 가, 얼굴 팔리고 손해보고 그럴 필요가 뭐 있어?"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두. 둥. 아니, 이것이. 나는 이해가 가고도 남아서 시간있으면 같이 운동이라고 할 태세다! 음, 그런데도, 그런 말을 잘도 쳐 하시는데도 저렇게 잘 먹고 있는 것을 보니 웬지 모르게 시네마 아빠가 선거 다음날 므흣한 것보다 더 므훗한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잘 먹으니 예쁘더라고. 정치적으로 삑사리 나는 말을 들으면 횡경막처럼 뭔가 가슴 속에 그런 말들을 거르는 체가 있어서 딱, 걸리고 마는데 너한테는 체가 다 뚫려버렸는지 거름망에 남는 것도 없었어. 이렇게 벨도 없다니. 연애는 정치랑 이렇게 다른 걸까? 무방비 상태, 소용없는 거름망, 그냥 예뻐. 그리고 밥 먹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사람들이 다 나처럼 취약해서 명박이가 대통령 되는 세상이 왔구나, 라는 생각으로 잠시 우울. 대통령 선거도 끝났고 차별금지법은 국회 통과를 남기고 있고 니가 밥 먹는 모습으로 나까지도 배부르지만 (미쳤지 참말로), 그래도 계속 이야기해보고 이야기해야겠다. 어차피 진보넷에 블로그를 만드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끼리만 살 세상은 아니고 그런 사람들과만 연애를 하자는 것도 아니니. 그리고 너 역시 날 좋아하니까 나만큼 취약하잖아. 그러니까 잘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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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얻은 교훈

오늘은 두 가지, 나 배웠다. 한 가지는 역쉬 행동은 빨리 해야 한다는 것, 행복이야 노인정에서 광 팔고 등 대고 누워서 꼼지락 거리는 시간처럼 느린 삶에서 더 많이 오겠지만, 급박한 이슈는 초스피드 인터넷 서비스업체 선전처럼 마구 빨리 대처해야 해. 또 한 가지는 절차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 돌이킬 수 없잖아. 태안에 다녀오면서 장윤정의 '어머나'를 삼성 규탄 가사로 개사해 아카펠라 버전으로 불러서UCC를 만들자고 왕 신나서 떠들었는데 녹색연합에서 텔미 버전을 이미 만들어서 뿌렸다. (아아, 게다가 지대로 귀엽고 가사도 좋아부러 -_-) 괜시리 따라쟁이처럼 보일 것 같아서 사무국 식구들 급 실망. 우리가 진행해오던 초록살림터 강사모임을 변경하면서 그동안 관계맺던 사람과 틀어지게 된 것, 그 결정은 사무국 회의 때 나왔는데 정작 초록살림터 강사들과는 전혀 이야기가 안되었구 우리끼리 통보해 버린 결과가 되 버렸어. 흥, 담당은 아니지만 이해원 샘이 회원 탈퇴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걸 들으니 시장통서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는 것도 아니고 기분은 찜찜. 작은 단체에서 일하니 하루 6시간 노동도 안건으로 팍팍 올리고, 서유럽 할아버지 시대 버전으로다 여름에 적어도 2주 연속 휴가를 가자고 제안도 하고 (독일에서는 한 달도 휴가가는 것 같더라고), 사무국 식구들끼리 오리농사 쌀과 현미로 밥 지어 먹는 것도 좋고, 아기자기한 것들, 다 좋은데 오늘은 우리가 작은만큼 미숙해서 안 아름다울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직장 일을 달달하게 초저녁 잠을 자고 얼어나 세수 한 후 곱씹어보고 있다니, 좀 뿌듯한 기분.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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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에 다녀왔다

태안에 다녀왔다.

 

찜질방에서 혜진 샘, 깡 샘, 이미애 샘, 이미애 샘의 어린이 두 명과 함께

찐달걀과 오징어,쥐포얼음을 둥둥 띄운 녹차, 맥주를 집어먹고 잠들었다.

그리고선 새벽 5시 기상, 6 사무실에 들러 헌 면 헝겊, 옷 가지기타 등등을 챙겨

6 30분에 태안으로 떴다

여성환경연대, 녹색연합, 생명의 숲, YMCA 등 총 2000명이 개목항으로 들어갔다.

 

방제복입고 부츠 신고 고무장갑 끼고 어쩌고 하다보니 정작 작업시간은 11시 넘어서 시작되었다. 자갈돌 하나나 닦았을까, 싶었을 때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은 오후 1시가 되자 해변가로 치솟았다.

작업은 2시간도 채 못 하고 차오르는 물에 쫓겨서 패잔병처럼 퇴각했다.

실무자인 우리마저도 민망하고 황당했으니 자원활동 신청가들이 입이 대빨 나왔어도

뭐 할 말도 없었다. 자원봉사 확인서에 8시간, 이라고 써진 것을 보고 서로들 민망해서 쓰러지실 지경이었다.

 

넓고 넓은 해변가의 돌과 모래들이 기름때에 쩔어 있었다.

자동차 정비공장이나 카센타 바닥처럼 검정 기름때가 해변가 그윽그윽 쩔어있었다.

면 헝겊이나 헌 옷은 택도 없었다. 가스렌지 주변에 찌든 기름 때 닦는 것보다 더 힘을 박박 주어도 닦이지 않았다.

바위 틈샘에 찌든 기름때에는 칫솔이 필요했고 큰 바위 몸뚱아리에는 철수세미가 필요했다. 다음번 태안 자원활동은 "기암절벽을 철수세미로 닦다"로 정해서 모두들 철수세미를 준비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위원회 하은희 샘이 이끄는 '삼성-현대-허베이 기름 유출사고 건강조사' 보조로 주민들 건강문제를 설문지로 물어보고 소변샘플을 받는 것을 거들었다. 사건이 터진지 몇 주가 지난 뒤에 시작해서 좀 뒷북이다 싶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했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난 해변에서도 페인트 냄새 비슷한 것이 둥둥 떠다니면서 나처럼 멀미 잘하는 사람의 속을 뒤집었다.

설문조사에서도 구토, 눈충혈, 머리 아픔, 가슴 답답함 등이 수시로 나왔고, 자원활동에 자주 참여한 어떤 사람의 경우 발목에 발진이 생기는 등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문제에 신경을 써야 할 판이었다.

 

얼굴 주름마다 세월 때를 켜켜이 뒤집어 쓰거나,

얼굴의 때깔과 주름만으로도 그가 그 동안 살아온 바닷바람의 양을 가늠할 만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설문조사에 응했다.

한결같이, "밤에 잠을 못 자고 멍하게 앉아 있는다"고 했다.

사건이 터진 후 눈이 붓고 가슴이 답답하고 기름 냄새 때문에 머리가 멍멍하고 구토가 일고, 이런 것보다 "걱정이 되서 하루하루 잠을 못 자는 불면증"이 가장 문제였다.

지금 당장은, 말이다.

 

한 시에 돌 닦기를 그만 두고 방제복과 장화, 면장갑, 고무장갑 등을 분류하는 

거대한 통을 보면서,  많은 수의 자원활동가들이 사용하는 일회용 젓가락과 용기, 컵을 보면서 우리끼리 그랬다.

이렇게 많은 자원을 쓰고,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우리,차라리 이 바위에 다 불질러 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몰라"라는 자괴감.

정제되지 않은 원유라서 유독가스가 품어져 나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만큼 기름때는 찌들었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세월에 비해 너무 조금이고, 기름 제거를 위해 쓰는 물자는 한정 없었다.

12,500톤의 기름이 무사히 도착했다 해도 현대 오일뱅크를 통해서 다 소비되었을 거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랬다. 어차피 우리는 기름에 의지해서 기름으로 살아가고 또 다른 선적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기름이 들어오고 그럴 것이다. 배를 두 겹으로 두르고

배가 정박할 장소를 지정하고 안전 장치를 강화하고 삼성과 현대가 결국 입을 맞춰 보험으로 처리하고 그런들해가 갈수록 더 많은 기름이 오고 갈 것이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대형 전광판에서 LG 텔레콤의 '오일세일광고가, 무슨 정유회사의 "착한 기름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새벽부터 부스스 일어나 토요일 하루를 반납하고

검은 원유를 닦고 돌아오는 "참 착한" 자원활동가들은

청계천과 시청을 장식한 반짝반짝한 크리스마스 불빛을 보고 "아름답다"며 자기들끼리 다음에 구경오자고 한다.

 

돌을 닦고 주민을 만나면서 이 어마어마한 일을 저지른 "삼성-현대" 놈들 욕을 마구 했지만그 기름을 쓰는 삶과 태안 기름 유출 사건의 관계에 대해 순진무구한 것도 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현대 도시에서 태어나 삶을 연명하는 자체가. 미안할 노릇이었다

 

서울에 돌아와 활동가 회의를 했다.

연초에는 새벽 12시에 떠나서 버스에서 자고, 새벽 5시에 "자연아, 미안해" 라는 

캔들 나이트(candle night) 진행을 한 후 돌을 닦자고 했다.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turn off the light, take it slow).

서해안에서 촛불을 켜고 우리끼리 둘러모여 자연에게 기도를 하고 

전기에 의존한 크리스마스 불빛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반성하고,

그래도 서로가 있다고 의지한 후에 돌을 닦아야지.

 

그 날은 자연의 시간, 물 때에 인간을 맞춰 새벽 일찍부터 돌을 닦기로 했다.

가수 이상은 씨도 섭외하기로 했다. 잘 되기를.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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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끝나면 할 거얌

논문이 끝나면 하고싶은 일들의 목록

 

1. 내 인생 최고의 사치, 찜찔방에 가서 얼음 둥둥 띄운 녹차 잔을 두 손 가득 들고

   TV앞과 숯가마 실을 하릴없이 들락달락 한다.

   그러다가 얼굴 마사지를 받는다, 때밀이 아줌마한테 때도 부탁한다. 아이 좋아

   (그치만 너무 빨개지게 밀지 말고 설렁설렁 밀어주삼! 원래 때도 안 밀고 놀러

   간것잉께 그냥 아줌마도 놀면서 밀어주세용)

 

2. 크리스마스 및 신년 선물 for SMK(사무국 -_-) 식구들

   재활용 이면지 공책 겉표지 생각하고 있삼

 

3. EM 발효액 직접 써 보자!

   

4. 스트로 베일 하우스 (볏짚으로 집 짓기-생태하우스) 워크샵 참여해서

    귀농하고서 집 지을 수 있는 기술과 서로 집 짓기 돕기 인맥을 만들자

 

5. 루시드 폴, 사람이었네를 리코더랑 피아노로 얼렁뚱땅 연주할거얌

 

6. 다시 해금 시작해야지, 1년 이상 꾸준히 배울거얌!

   목표는 양음악  '바르카롤레' 연주!

   지금은 한참 해금 배울 때

   왼손 두세번재 손가락 마디에 잡혔던 군살마저 사라져버렸어.

 

7. 수지침 배우고파 -_-;;; 근데 이건 좀 생각 좀 해봐야지, 욕심이 너무 많잖아.

 

8. 동영상에 자막 넣는 거(프리미어) 배워서 유방암 DVD 한글자막 넣야해

   (이건 하고 싶다기보다 그래야만 하는 -_- 에헤라디야, 자진방아를 돌려라)

 

9. 아,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엄마한테 기본적인 옷 만드는 거 배울거야. 패턴은 좀 배웠는데 혼자서는 잘

   못 만드는 듯, 엄마가 바늘귀 뀔 수 있는 시력이 있을 때 집중해서 배워야겠어.

   내 옷 좀 만들어봐야지. ㅎㅎㅎ

 

10. 펠트천으로 색깔별 방석 만들기

 

흠, 또 뭐 있드라, 불질 열심히 해야지 ㅎㅎㅎ

 

11. 내년 여름부터 사회복지  공부 할지도 몰라. (여성건강센타가 내 목표여 -_-)

 

목록은 계속 생각나는 대로 업데이또 하겠삼!

이걸 하루에 세 번 씩 읽으면서 논문을 꼭 끝내야겠다. T0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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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서른을 견디는 것

사랑마저도 '견뎌야 하는 타인'처럼 느껴지는 나이가 서른이라는데,

요새는 '나 자신'마저도 '견뎌야 하는 타인'처럼 느껴지지 않니? (나만 그런가?)

그래서 30대의 출발은 '견디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게 아닐까 싶다.

그 견딤 속에 웃음과 울음과 냉소와 페이소스의 삶이 뚜벅뚜벅 걸어갈테고

그 길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

나의 친구friend이자, 내 언니 sister이자, 내 자신 self인 금숙.

- 07년 주발.



이런 말들과 함께 '서른 살의 강'이라는 소설집을 주다니,

주발이년, 센스는 어디서 고렇게 구비하고 내 친구로 이렇게 남아주다니.:-)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라는 싯구처럼

서른이 힘든 걸까, 아니면 서른 하나도, 서른 둘도, 마흔도 이런 걸까.

왜 너는 '카페 더 로스트'를 보면서

저렇게 잠 못들고 환장할 것 같은 밤들을 나도 온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고

'룸펜 프로레타리아' 계층을 잠식하고 있는 나의 그녀들이

보험도 안 되는 신경정신과에 드나들어야 하고

이제는 약도 안 들어서 약 먹고 자도 잠깐 자다 깬다, 는 말에 나도, 라고 한 친구가 또 응대하고

우리집이 4층 반인데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면 아스팔트가 뛰어내리라고 그래서

저번에 살던 11층 오피스텔에서 여기로 이사와서 다행, 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고

죽고 싶다는, 말 여기저기서 속사포처럼 터져나오고

우리가 서른이라서 그런걸까.

여자 서른,

그런 것을 다 알아도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어서 행복해진다는' 거짓뿌렁을 읊으면서

자기기만하는 윤똑똑이가 아니라

나이가 서른이라서 그래, 나이탓 하면서 헛발질하는 것도 알고

누구한테 미쳐지지도 않아도 삽질하고 자빠져 있는 것도 알고

나이 서른이 지나도 이러코롬 또 힘들 것도 알고

결국 혼자라는 것, 을 사는 순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많은 것들을 능숙하게 받아들이는 얼굴,

까짓거 뭐, 하면서 그 자체를 인정하는 마음가짐.

서른 '견디는 것'으로 시작해 견딤에 담금질되고 결국 견디는 것을 따땃하게 보듬을 수 있을 나이를 준비하는 그 서른.

주발도 나도, 서른을 맞은 생일 축하.

내 곁에서 서른이 되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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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 만한 사람을 직장에 갖는 것

오늘, 부엌에 들어갔더니 꿀초가 오리 촛대 위에서 타고 있어서 대안문화캠페인-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 '캔들나이트', 를 맡고 있는 은진이 설겆이를 했구나,를 새삼스레 다시 알게되드라고. 설겆이 하는 것을 삐꼼히 봤는데도. 오늘은 손님들이 많이 오셔서 (것도 내가 담당인 프로젝트에 속해 계신 샘님들) 사무국 식구들에다가 +6명이니, 거의 열 명이 넘는 사람들 설겆이를 한거고 또 오늘 당신이 식사, 설겆이 당번도 아니었잖아. 할일 많다고 삐죽대고 삐족한 구두처럼 툴툴대고 있는데 내일 진행될 '숲치유 워크샵'을 담당하는 생태팀 짐 챙기는 걸 도와주는 것도 보았다오. 낮에는 설겆이 당번 대신, 오후에는 대안문화-기획홍보팀 일 대신 생태팀 일 같이 하고 것도 여섯시, 퇴근 시간 지나서 한 명씩 부수수 빠져나가는데 그 일을 도와주고 있었단 말이시. 자기팀 일도 아니고, 자기 팀 일 만으로도 '플러그 못 뽑고 캔들은 커녕 어쩔 때는 주말도 나와서 일하는' 처지에 말이지. 이제는 그만두었지만 전에 회계를 맡은 은희 샘, 머리가 부수수 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이, 남말 하지 말고 스스로 머리를 열심히 감자 -_-) 저 긴 머리를 쫌만 다듬으면 조겄다, 이로코롬 생각도 했다가 넘의 일이라 금세 까먹고, 그런 것을 이야기하기도 거시기혀서, 또 넘일에 신경쓰는 자체가 귀찮아서 그런갑다,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은진 샘이 조용히 가서 빗 한 마리를 선물하면서 샘님, 이걸로 머리 빗어요, 라고 하는 것을 또 보고 말았삼. 시시껄렁한 일들, 이라면 시시껄렁한 일들이지만 사람은 취약한 존재니까, 시시껄렁한 것들이 없다면 삶이 기어가지도 못하니까, 시시껄렁한 것들에 기반해서 당신을 존경하는 눈으로, 반짝반짝 쳐다보게 되었어.:-) 일하는 직장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는 거,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 그런 좋은 사람들을 보는 것, 오리촛대 위, 꿀 냄새를 킁킁 내면서 타고 있는 꿀초(밀랍초)보다 더 달달한 느낌. 미국 잘 다녀와요, 은진. 더 좋은 사람이 되서 와줘, 내가 옆 책상에서 기다릴께. '은진 바리스타'가 타 주는 커피냄새가 사무실에 없는 것도 거시기한께 얼릉 오드라고,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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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금요일,그리고 민희.

지도교수님이랑 지도교수 학생들이랑 함께 회식 자료에 앉아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비는 주룩주룩 오고 우산은 없어서 지도교수 학생들 중 한명한테 우산 신세지고 밑단부터 빗물에 젖어든 청바지는 기름종이가 기름을 빨아먹듯이 척척해지면서 무거워가고 고깃집에 들어앉아 (하필 자리도 고기 굽기 딱 좋은데 잡아서) 고기를 불판에 올리고 가위로 척척 자르고 그러면서도 바보같기는, 마음이 둥둥둥 드림 울리듯이, 뇌수에 콜라가 들어가 머릿속을 탄산방울로 톡톡 쏘듯이 기대감에 가득차 행복했다. 고깃집 시계를 흘끔흘끔 보면서 시간이 왜 이리 안 가~ 라고 생각했다. 밤 10시 30분 약속, 내일은 더군다나 토요일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금요일 밤. 내 자전거를 회사 앞에 세워둬서 비를 꼬박 맞고 있을 자전거한테는 미안했지만 비, 너도 오고 싶으면 맘대로 해, 쯤의 관대한 나. 10시 20분, 모임이 늦어져서 어쩌지, 라는 문자가 왔고 나도 모임은 더 늦어질 기세였지만 이미 콜라는 김 샜고 드림은 여전히 울렸지만 그건 아까와는 다른, 기대감이 아니라 실망감에서 오는 둥둥둥. 다음에 보자, 늦었어. 라는 답문자를 보내자 그러자, 하는 기다렸다는 식의 대답에 나 참, 내가 잡은 약속도 아니었고 말이지, 억하심정이 되었다. 왜냐면 공식적인 자리도 아니었고 회사동료들과 함께 한 자리라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는 어떻게든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니까. 왜냐면, 왜냐면, 나는 교수님과 있어도 빠지고 갈 생각이었거든. 모임에 엉덩이 붙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비오는 금요일, 민희에게 문자를 쳤다. "늦게 끝날 것 같아, 재워줘, 자기" 그런데 문자를 받기도 전에 그녀가 전화를 했다. "언니, 학교 근처서 모임 하고 있으면 우리집서 자고 가." ㅎㅎㅎ.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온 민희를 위해 따뜻한 찐빵을 사고 그네 집에서 둘러앉아 따뜻한 구기자 차를 마시는데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고맙다는 말보다는 홀짝거리며 구기자 차 정말 맛있어, 라고 했다. 알겠지, 문자를 보기 전에 바로 그 시간에 전화를 날려준 친구니까. 친구와 빗 소리를 듣고 불 끄고 누워있으니 비오는 금요일 밤도, 네가 없는 이 시간도 충분히, 볶은 구기자 차보다 따뜻하고 구수했어. 니가 예의가 그렇게 계속 없으시면 안 봐도 될 만큼. <친구와의 차,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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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5 엄마와의 잠깐동거

엄마랑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있다니, 고등학교를 떠나 대학에 온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지난 토요일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고고싱.

엄마랑 있을 때 이런 기분이 들기도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다.
내가 뻔히 반육식주의자인 줄 알면서도 닭도리탕을 만들어서 먹으라고 하는 엄마랑 고기도 먹고 (으~~ 슬쩍 나 고기 싫어하잖아, 암시롱~ 하고 살짝 반항)
냉장고를 닦다가 욕실청소를 했다가 이불이 낡아서 사야겠다고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일 못하고 죽은 귀신처럼 구는 것도 그냥 놔두고 (그래도 날마다 빨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여전히 생각함) 
엄마가 서울에 있어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으면서 친구랑 밖에서 저녁도 먹고 (음, 그래도 10시는 안 넘기고 들어오려고 노력했어요) 
엄마가 내 부엌살림의 위치를 바꾸거나 세제를 다른 것으로 사다놓아도  짜증이 덜 나고 (흠, 그래도 내 집인데...)
내가 이번에 다녀온 말레이시아 여행 사진을 찬찬히 같이 보며 조근조근 이야기도 하고 (ㅎㅎ 미리 못 보여줄 사진은 다른 폴더에 넣어부렀으)
엄마가 선 봤으면 좋겠다고, 이런 저런 인간이 있다드라고 하니 그래도 그 돈 내 감시롱 선보게 하려는 엄마가 가상스럽기까지 하고, (그 돈 있으면 도대체 나한테 주라고요!)
좀 많이 이기적인 그리고 엄마에게 가장 이기적인 그 인간, 울 아빠를 지금도 좋아하는 엄마가 이해도 되고 (난 아빠 같은 남자는 안 만나야지, 라고 내 취향은 계속 고고싱)

엄마를 '개조'시키지 않으려고 해, 

그대로 받아들이고 촌스런 울엄마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랬더니 엄마가 서울 있을 때 엄마한테 '봉사'하니라 친구 못 만나는 날 좀 아깝고 속 상하기도 했는데
이젠 엄마랑 있는 '지금, 여기'의 시간이 보글보글 따뜻하게 느껴지드라고.
난 도대체 나이 서른에 도를 닦아부렀을까?? 킁킁~~

엄마랑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 그라인더를 같이 사러 다니거나
일요일날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그 놈의 전국노래자랑을 같이 좋아라하고 볼 수는 없겠지만
집에 엄마가 있으니
혼자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홀짝홀짝 마시는 호사보다 (내 인생의 최고 사치라고!)
왕주전자에 엄마가 끊여놓은 보리차를 대접에다 대고 함께 마시는 것도
참 위로가 되었어. 
니가 있어서 좋아, 라고 내 존재 자체를 보듬어주는 엄마가 있으니,
뜨끈뜨끈한 아메리카노보다 더한 위로,가 후끈 내장을 덥혀줘요.

오래 살아요, 엄마.
그리고 우리 집에 내가 제일 싫어라 하는 텔레비 사다놓을 생각은 그만 하고.

아 글씨 내 집잉께 텔레비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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