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과 우비를 준비해야지

나의 화분 2005/12/04 22:03
12.4 민중대회가 열렸다.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걸었다.
경찰은 순순히 길을 내주지 않았고, 오늘도 물대포를 쏘았다.
 
오늘처럼 추운 날 물대포를 맞으면 그 즉시 몸이 오들오들 떨린다.
이빨은 딱딱, 뼛속까지 으슬거린다.
물대포를 맞자마자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옷이 흠뻑 젖는가 싶더니 바로 꽁꽁 얼어버린다.
광화문은 금새 얼음인간들로 넘쳐났다.
여기저기 모닥불이 타오른다.
얼음인간들이 녹기 시작하면서 몸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른다.
 
축축한 바지를 불에 가까이 대도 타지 않는다.
젖은 신발을 불에 가까이 대도 안 탄다.
모자를 말리고, 디지털 카메라를 말리고, 젖은 핸드폰 배터리를 떼내고 그 속을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불에 말린다.
그 불에 고구마라도 구워먹으면 딱이겠구만.
 
아스팔트 바닥은 얼음으로 뒤덮여있고, 옷 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만이 황량히 불어오는데 사람들은 어디에선가 나무를 가져오고, 땔감을 가져온다.
신기하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라 온몸을 감싼다.
눈을 뜰 수가 없다.
훈제연어가 되어가는 듯 몸이 점차 따뜻해진다.
불을 떠나기가 싫어서 정리집회가 열리는 쪽으로는 가보지도 않고 잘 모르는 사람들과 그냥 광화문 아스팔트 바닥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저멀리 만 명의 시위대와 각양각색의 깃발과 이순신 동상과 슬금슬금 사라지는 전투경찰들을 물끄머리 바라볼 뿐이다.
 
12월 11일 평택 평화대행진에서도 경찰은 분명히 물대포를 쏠 것이다.
겨울에 쏘는 물대포는 몽둥이보다 더한 폭력이다.
다음에 집회에 나갈 때는 반드시 우산과 우비를 가져가야겠다, 고 결심한다.
우산에 'STOP 경찰폭력'이라고 써서 들고 전투경찰 앞에 서있어도 좋겠고, 우산에 '전용철을 살려내라'고, '미군기지확장 반대'라고 써서 들고 집회에 서있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물대포는 너무나 세차서 약한 우산살이라면 바로 부러뜨리고 우산천도 발기발기 찢어버릴 것 같다.
그래도 멀찍이서 우산이라도 들고 있으면 물에 젖지 않을 수 있겠지?
경찰은 우산을 공격용 시위용품쯤으로 간주할지도 모른다.
폭력시위 운운하는 사람들은 시위대가 먼저 우산으로 전경을 찌르려고 했다며 입에 거품을 물지도 모른다.
상관 없다.
몸뚱아리 하나로 버티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겐 내 우산이 공격용품으로 비춰도 하는 수 없지.
 
모두들 우산을 하나씩 준비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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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4 22:03 2005/12/0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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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ri~ 2005/12/05 00:03 Modify/Delete Reply

    넵.그래요^^

  2. 달군 2005/12/05 00:23 Modify/Delete Reply

    우비에 그림이나 글씨 써가면 멋질거 같아요. 방한 효과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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