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6/04/22 14:27

제르미날님의 [또 다시 약만 올리다.] 에 관련된 글.

 

20일부터 수상하긴 했다.

2층 공공연맹 사람들 사이에서

단병호의원실이 제공하는 각종 국회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2번째 공(!)친 수련회에 대한 아쉬움과 허탈감을 삐죽삐죽 꺼낼 때부터...

 

총파업 조직 못한 보육노조야

할 수 있는 게 집회 참석뿐인지라 어제도 어김없이 기어나갔는데,

솔직히 '오늘도 휘둘림 한판', '언제나 경찰인 경찰놀이', '댐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고 있는 기분'...

 

역시나...

언제나 이상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한나라당의 도움(?)으로 비정규법안 통과가 저지(?)된 것이 공표될 때

연사들은 '작은 승리'라고 말해도

힘겹게 파업 사수하고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에이씨"라는 소리만 나온다.

 

"지치지 말자"고 하는데, 지친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자고 하는데, 제대로 된 비유인지 의심하고 있다.

[[제르미날]]님이 말한 '경우의 수를 준비'하는 것에 공감 백배(-.-)b

 

우리가 뒷북이 아님을, 그들의 약올리기 한판에 걸린 사냥감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자긍심을 기획하삼~!

 

옆의 동지가 "그냥 오늘 끝내자!"라고 외치는 데, 진짜 오늘 안에 뭐라도 끝내고픈 심정이었다.

칼을 뽑았으니 호박이라도 잘라 국회에 던지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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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2 14:27 2006/04/22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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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4/19 16:35

집에서 인터넷선을 하나포스로 쓰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문자메시지 50건 무료 전송의 혜택을~ 원츄~!

 

그런데 불여우(파이어폭스:firefox)에서 쓸라고 했더니만 '발송'버튼이 안 눌러진다.

 

firefox에서 문자전송 안되네여?' 라고 글을 올렸더니

 

얼마 후에 고쳐줬다.

 

대체로 '불여우' 얘길하면 업체들이 생무시하던데,

왠지 넘 기쁘다. ㅋㅋㅋ

왜 이렇게 기쁜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을 바꾼 기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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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16:35 2006/04/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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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4/17 11:35

2004년, 만 47세의 나이에 작업실에서 좋아했다던 포도주와 재즈음반을 들으며 숨진 작가,

작가이자 해박한 이론가이면서 주류를 거부하는 활동가라 불리던 작가.

이름도 (태어날 때) 박철호 -> (미국에선) 박모 -> (한국에 돌아와) 박이소

라고 스스로 바꿔 불렀는데,

이름으로 통칭되는 자신의 명예 등을 이름을 지움으로써 완전히 버리는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나 보다.

 

그는 미국 체류 당시 마이너 인저리(Minor Injury) 갤러리라는 비영리 대안 공간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마이너 인저리의 설명문에는 '1.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수에 속하거나 이에 관심있는자', '2. 분쟁 또는 개도국에서 이민한 작가'를 환영한다고 적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마이너 인저리의 입구는 개성 강한 창고 주인의 작품 같다. 빨간 스프레이로 대충 적은 것 같은 간판과 네모 모양의 다양한 색상 무늬, 그 위에 검정 스프레이로 칠한 입구는 그들의 마이너 지향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전시관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모뉴멘타 미(monumenta me)]라는 이 작품은 내 키높이를 훌쩍 넘긴 성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위의 뾰족 탑들이 동화 속 그것을 연상하게 한다.

 

 

간단한 스케치들 속에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는데,

[MinJoong Art]라고 적혀 있고

부제로 'New Movement of Political Art From Korea'라고 적혀 있다.

 

 

박이소의 작품 중에는 그림 일기같은 작품도 있다.

1986년에 만든 [무제]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나는 그림 그릴때마다 이 그림이 딴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하며 자주 한심해 한다.'

이 글을 읽다보니 당시 작가의 운동(movement)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살짝 배어나오는 느낌이다.

 

 

박이소는 이름을 지울 때 동시에 단식이라는 행위 역시 상징적으로 병행했던 것 같다.

리플렛 표지에 단식을 하면서 밥솥을 메고 어느 다리를 건너고 있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오각형의 자백]이라는 작품은 그가 단식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번 단식에 대해 어떻게 기술했는 지를 몇가지 분류로 나누어 적고 있다. 이는 같은 행위에 매번 다른 답변을 한 것 같아 거짓이면서도 답변 자체는 모두 사실이다.

단식의 오각형

단식일을 적고 있는데 1995.7.21 ~ 8.4 까지...  꽤 오래했네.-_-

저항적 자기 해체

'나의 몸을 소재로 삼은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의 속박(혹은 축복)에 잠시 반기를 들어본, 저항적이나 결국은 소극적인 자학'

자살 충동

'먹지 않기'에 대한 선택은 오히려 자신에게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자살 충동에 대한 예방 백신으로 간주하고 있다.

정신력의 승리

뭔가 자신에겐 예술가적 창조성 등등 보다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를 강화하고 싶었다고...

건강론

건강하고자 하는 사치스러운 욕망

분노와 짜증

보스니아 사태와 같은 인간의 잔혹성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함, 나약함, 생존의 위태함, 가소로움에 대한 실존적 노여움'이며, 자기개혁의 의지가 뒤엉킨 것이란다.

 

 

그의 작품 중에는 1998년도에 제작되었다지만 7,80년대 분위기가 물신나는 작품도 있다.

[포럼 A의 뉴스레터 표지 디자인]은

맨위에 벽돌마다 '성실1','성실2' 라고 붙인 벽돌 더미가 있고,

중간에 벽돌이 쌓인 벽과 '열심히 노력하여'라는 글이,

맨 아래 꽃 모양과 '재능을 꽃피우자'라는 글이 적혀있다.

어찌나 구호적이고 계몽적인지 보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오늘]이라는 작품은 전시장 밖에 비디오 2대를 하늘을 향해 설치하여 태양의 움직임을 찍고,

전시장 안에서는 벽 한쪽을 잘라 눕히고 프로젝터를 통해 하늘의 모습을 보게 한다.

그야말로 실시간 하늘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 참고로 실내는 조명이 있어 구름이나 하늘 색 등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오공계(五空界)]는 스테인레스에 동그라미 5개를 뚫고 나무합판으로 메꾼 작품인데,

작품 앞쪽보다 오히려 작품 뒷벽의 그림자가 더 재미있다.

 

 

[팔라야바다(Fallayavada)]는 작가가 설계해놓은 도면을 보고 그대로 재현한 작품인데, '하나의 선이 만들어내는 천개의 낭떠러지이며, 외부 세계와 연결된 틈, 우주로 통하는 작은 우물'이란다.

콜로세움 가운데 하늘에서 땅을 찍은 영상이 보이는데, 2006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작품의 경우엔 제부도 상공에서 찍은 땅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작품은 10개의 조명이 출구쪽 벽에 집중 투사되면서 내가 나가는 길을 밝혀준다.

그리고 그 길의 끄트머리에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평범한 말을 해서 충격받지 않으셨나요?'라고 적혀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작가가 뭔가 확고부동한 세계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채찍질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들은 재미있고 재치있어보이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무게감의 느낌은 이번 전시의 이름이 단테의 '신곡'을 풀어 쓴 탈속의 코미디라는 점에서 더욱 강화되었는 지 모르겠다.

작가를 생각할 때 잠시 피카소의 서글픈 광대 그림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단식 등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것에 대한 피로감을 느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언제나 예술에 대한 정체성을 고민하기 위한 행위였다는 측면에서 삶의 고단함과 인간의 위대함을 동시에 나타내는 듯한 피카소 그림과는 좀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건 사실이다.

 

확실히 작가는 예술 추구에 대한 괴로움, 진정성에 대한 의문에 휩싸여 있던 것 같지만,

안식을 구하는, 정체성을 추구하는, 희망을 갈구하는 자였기에

포스트모던을 추구하거나 즐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품, 전혀 다른 활동이 가능했으리라 본다.

 

* 사진출처 : 로댕갤러리(http://www.rodingaller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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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7 11:35 2006/04/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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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6/04/16 19:03

jineeya님의 [창밖의 목련] , 강쥐님의 [나만의 꽃차 만들기 - 목련꽃차]에 관련된 글.

아름다운 목련, 또 발견!

다 떨어지기 전에 한번 더 담아봅니다.

(창밖의 목련은 벌써 누렇게 떨어졌어요...ToT

섭리라지만 그래도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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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6 19:03 2006/04/16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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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6/04/16 18:49

뒤늦게 nofta님의 [골때린다] 에 관련된 글.

 

2시부터는 비정규법안강행처리 반대, 한미FTA 저지 전국노동자대회가 있었구요.

3시반부터는 1차 범국민대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집회에서는 엄청 재미있는 문화공연이 많네요. 한미 FTA 저지를 위한 문화행동들의 결실인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 여세를 모아 통일까지"라니 왠지 갑자기 샛길로 흘러간 느낌도 살짝.





 

 


 

 


 

한미 FTA 저지 1차 범국민대회 사진입니다.


 

 


 

 


 

 


 

 

아이들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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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6 18:49 2006/04/16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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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4/13 09:54

월요일에 서울여성영화제 국제포럼에 갔었다.
주제는 이름하여 [여성의 생식력을 둘러싼 국가와 문화권력 : 가족계획에서 저출산까지].

언제나 대한뉴스 말미를 장식하던 출산억제 구호의 향연.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60년대 구호로부터
국가가 여성의 재생산 능력을 어떻게 통제해왔는 지를 감지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다.

오히려 어려운 점은 권리로 주장하기 위해 확립한 개념이 우리의 발목을 덥썩 잡아버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재생산권이라는 명칭

여성에게 가해지던 차별과 폭력을 확연히 드러내고자 주장된 각종 권리들의 명칭들.
즉, '재생산권리',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등과 같은 명칭들은 새삼 재정립이 요구됨을 깨닫게 된다.
아니, 명칭에 대한 재정립이라기보다 여성 자신이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 자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하는 지에 대한 개념이나 입장이 맞을 것이다.

이번 포럼의 기조발제에서 확연히 눈에 들어오는 지점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다들 알고 있었는 데 나만 뒷북인가?^^;;)
분명 재생산권리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여성이 스스로의 몸에 대한 통제권 확보에 상당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황우석 사태 속에서 발견된 난자 매매라든가 대리모, 성매매 등의 현실은 이러한 권리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시키는 자본주의 논리와 맞닿았을 때 우리가 취할만한 의식의 혼선을 초래한다. 그저 그녀의 선택이라 치부하기엔 매우 부족한, 자본주의 모순의 벼랑에 놓인 그녀의 선택이라는 측면에서 재생산권리는 우리에게(또는 나에게) 적절한 해석을 부여하기는 커녕 자본을 위한 명쾌한 논리를 제공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확실히 재생산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것
처럼 보인다.
Petchesky라는 사람이 1995년에 말했단다. '여성이 자기 몸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현실적 서술이 아닌 수사학적 성취라고...

미국에서 70년대 낙태권 이야기를 했어도 아직 임신중절이 불법인 주도 존재하고, 낙태권 확보를 위해 2,30년전에 만든 투쟁 영상이 아직도 유효한 지금,
일본 공주 하나가 임신하면 여성천황제 도입 이야기가 쑥 들어가는 지금,
한국은 낙태와 피임의 천국이라지만 기실 낙태가 불법이므로 '할 수 있되 사고 시 책임질 수 없는' 불안전의 지금,
대리모가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서도 계약법 위반으로 키울 수 없는 지금,
여성이 재생산권을 확보하는 일은 여전히 완료되지 못하였고 그러기에 유효해보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현실조차 해결되지 않는 지점이 많아져버렸다.
이제 재생산의 권리들은 여성들이 처한 다양한 처지만큼이나 다양해졌고 심지어 서로 대립각을 이루기도 한다.
따라서 기존의 재생산권리를 여성 스스로 정치적인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뭔가 새로운 개념의 확장이나 발굴을 꾀하는 건 꽤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보인다.


(이 아래는 정말 답도 의견도 없는, 질문과 고민만 있는 스포일러라고나 할까?)

모성, 재생산의 진정한 인식이 가능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중간 토론자 중에는 현대사회를 모성의 아노미로 규정한 사람이 있었다.
대략 박정희식의 발전주의 논리가 지속화되면서 모성을 '가치'가 아닌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바꿔말하면 모성의 진정한 가치는 '있다'고 보는 입장일 것이다.

이후 종합토론 때 floor의 한 참가자가 모성이라는 개념을 끄집어내는 것이 마치 여성을 모성으로 환원시키려는 듯 싶어 심기가 불편했나보다. 모성을 가지고 어떻게 재생산권의 확대를 꾀할 수 있는 지, 모성도 생식력으로 환원되는 것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또다른 토론자는
과연 70년대 초 미국에서 분 낙태권, 비혼임신 등의 권리는 70년대 미국여성들의 생리적 현상(굳이 붙이자면 모성의 발동?)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의 몸에 가해져있는 제한적 규정으로 인한 역발산이라 할 수 있을까?
라고 발언했는데,
즉, 모성을 인식하는 것조차도 몸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려는 정치적 의도에 기반한 것 아니었을까라는 혐의를 두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이제쯤 뭔가 남아있는 일말의 거리낌을 벗어던지고 '모성은 없다!'고 선포해버려야 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데 선언하기엔 정리가 모자란다.
포괄적 범위에서 재생산에 포함되는 돌봄 역시 근본적인 돌봄의 발동 기원에 대해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데, 특히 열악한 현실이 겹치면서 현실 대응과 근원 찾기 사이에서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사실 이 줄다리기가 그닥 논리적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사람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지라 매우 합당하게 느껴지기는 한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해야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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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3 09:54 2006/04/13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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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 노조 | 이야기 - 2006/04/13 09:41


오후 2시부터 [비정규개악안저지를 위한 공공연맹 총회투쟁]가 있었습니다.

가자마자 행진부터 했답니다.

오랜만에 등장한 문어...ㅋㅋㅋ

그런데 참 희한한 게 평일에 행진을 해서 그런지,

지켜보는 서울시민들이 정말! 길을 가다가 멈추고 매우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쳐다보더군여.

그래서 그런지 선전전 하고 싶었습니다~~!




 

 

행진 맨 앞에는 비정규노동자들이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행진의 끝에 국세청앞에서 집회를 했습니다.


 

 


 

 

공공 깃발 아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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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3 09:41 2006/04/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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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풍경관람기 - 2006/04/04 21:44

앞집과 내 집 사이에 핀 목련꽃들...
중학교 때인가? 학교선생을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 몇명 불러다 미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집 창문 밖에도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수채화로 그리게 했는데,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그냥 하얀 게 아니라고, 예쁜 색이 많이 들어있다고 말씀해주시곤 했던 것 같다.
두 집 사람들만 보기 아깝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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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4 21:44 2006/04/0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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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만화영화책 - 2006/03/27 21:06
요즘 광화문 흥국생명 3층에 가면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에서 개최하는
[우키요에 황금기 - 미인화와 풍경화의 세계]를 관람할 수 있다.
우키요에는 '이 세상'을 뜻하는 우키요와 '그림'을 뜻하는 '에'의 합성어로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서민들이 즐긴 풍속화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복각화라고 해서 당시의 목판화를 기술까지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당시 에도에는 새로운 도시에 무사들이 넘쳐나 남녀비율이 8:2였다고 하는데,
그러니 여성의 직업이라는 게, 1.게이샤, 2. 처, 3. 첩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불현듯 만화 [오오쿠]의 설정이 현실에 기반했다는 사실에 충격..O.O

이 포스터에 보이는 그림은 케이사이 에이센의 [백분 비엔센죠코 - 아침안개]라는 작품인데 사카모토야라는 데서 출시한 백분의 광고시리즈였단다.ㅋㅋ
원래 뒷배경에 바다가 있는데 지금 막 눈을 뜬 모습. 이마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이 그림의 현실감을 더해준다. 당시에 아랫입술을 여러가지 연지로 덧발라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이게 하는 게 유행이었다는데 그러니 저 초록 입술은 뭐 묻은 게 아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가 이치라쿠데이 에이스이라는 작가의 [기루 츠루야의 기녀, 무츠]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눈매가 술에 풀린 듯 너무 해학적인 것이 과연 이 그림이 '미인도가 맞나?'싶을 정도로 재미있어서였다.
간혹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여우나 너구리 들의 유머스러운 표정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 지 가늠하게 한다. 일본 애니의 힘!

아래 작품은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청루 니와카의 여자게이샤부, 오오만도 오기에오이요 타케지]. 우타마로는 당시에 가장 유명한 작가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리자마자 마구마구 팔리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어디까지 옷이고 어디까지 끈 인지 알 수 없는 엄청난 섬세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에도시대에는 도쿠가와 막부가 매년 교토에 있는 천황에게 말을 진상했다고 하는데,
우타가와 히로시케라는 사람이 1832년, 이 행렬을 쫓아다니며 [도카이도 53역]이라는 풍경화 시리즈를 그렸다. 아래 그림은 그중 [누마즈]라고 해질녘을 그린 것.


도카이도 53역중에는 [하라]라는 그림이 있는데 하라는 후지산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후지산이 화면 전체를 꽉 채우다 못해 후지산 꼭대기는 네모난 화면틀을 뚫고 나와있다. 어떻게 화면틀 무시할 생각을 했을까? 놀라워.


가츠시카 호쿠사이라는 사람은 [후가쿠 36경]시리즈를 남겼는데, 여기서 후가쿠란 후지산의 별칭이란다. 아래 그림은 그중 [쿠로후지]라는 그림인데 간결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이다.


호쿠사이의 후가쿠 시리즈는 인기가 너무 좋아 나중에 10작품이 추가되었는데 이중에 [미노부가와 우라후지]라는 그림이 있었다. 그림을 보는데 마치 웅장한 산이 걸어서 앞으로 나오는 바람에 아래쪽의 강물이 요동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그림은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명소에도백경 - 아사쿠사킨류산 카미나리문]인데, 하얀 눈과 문과 절의 붉은 색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가만 보면 사람들이 밟고 있는 경내 바닥 부분은 종이 자체를 올록볼록하게 나오게 해서 마치 눈송이가 내린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우키요에의 황금기였던 19세기 전중반의 미인화, 풍경화들이라 그런지 무척 화려해보인다.
서민화라고 하는데 김홍도처럼 서민을 그렸다기 보다는
서민이 꿈꿀만한 걸, 즐길 만한 걸 그린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즐길 거리가 미인과 풍경이라는 대상이란 건 역으로 그 서민이 남성임을 뜻하는 것이다.
심지어 인구비율이 8:2였으니 19세기 에도에서 여자로 산다는 건
예쁜 도자기처럼, 어떻게 살지 고민할 여지가 없는, 세상이 답답하다 여기는 자는 녹녹치 않은 삶이었을 것 같다.

풍경을 즐길 땐 정취에 취하지만,
인물을 즐길 땐 문득 해학을 찾는(일종의 도피행위인가?ㅋㅋ) 관람.
그런데 여성은 어느새 여자를 감상하는데 무척 익숙해졌다!

* 사족 : 이치라쿠데이 에이스이의 [기루 츠루야의 기녀, 무츠]를 잊지 마시오.(^o^)b
* 사진출처 : 일본국제교류기금 서울문화센터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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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7 21:06 2006/03/27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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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생각_펌 - 2006/03/27 11:04

며칠 전 한국사회포럼에 갔다가 민중언론 참세상 칼럼에서 본 [문신을 하다]의 완군을 봤다.

만났다하기엔 몇마디 못 나눈터라 그냥 '보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듯...

 

"문신에 대해 글 쓰신 분이죠?"
그랬더니 맞댄다.ㅋㅋ

그리곤 완군이 속해 있는 문화연대 사람들이 문신에 대해 왁자지껄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옆에 있던 노동조합 활동가 3명은 꿔다놓은 보리자루 마냥 말 한마디 끼어들지 못했다.
아니, 끼어들기는 커녕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신에 대한 맥락이나 주요 사건 등등 뭐 하나 아는 게 있어야 말이지. 쩝..
(옆에 논지를 못 따라가 띨띨하게 입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살짝 설명해주는 센쑤!)

사실 문신을 귀 뚫는 거랑 비슷한 느낌으로 언젠가 '땡길 때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문화연대 사람들은 문신을 운동적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실제 문신하면서 느꼈던 자기 검열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나누고 있었다.

그래, 나도 어느새 안한 게 아니라
못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중 하나가 된 건 아닌 지 싶다.

원래 노동조합 쪽은 노동자들 자체가 참 다양한 종류의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문제에 엮여있고 당면해있어서

왠만한 사안은 귓등으로라도 들어봤을 법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일상을 파고드는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 하나 열심히 고민하지 못한 느낌.

그리고 이런 식의 분류화는 상당 싫어하지만

순간 운동의 주류와 비주류의 희미한 경계선을 확인한 기분도 살짝,

운동 주제에 대해 대의와 명분에 첨착하고 있는 건 아닌 지 하는 기분도 살짝 들었다,


이렇게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인 세상의 대중과 함께 숨쉬는 시작은

일상에서의 자기 통제권을 늘려나가는 것부터가 아닌지 하는 다듬어지지 않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 사족

문신은 병원의 의사에게 가서 하지 않으면 불법시술이 된단다.

처음 알았다.(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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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7 11:04 2006/03/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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