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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지는 공단 슈퍼

  • 등록일
    2005/06/02 23:33
  • 수정일
    2005/06/02 23:33

남동공단 모퉁이 작은 점포인 공단슈퍼가 오늘 따라 그리워 진다.

늘 퇴근을 하거나 야간근무를 하고 어김없이 들려 라면과 찐계란을 먹으며 여독을 소주로 털어버리던 그 자그마한 공간... 기숙사에 있는 아무개도 조장도 반장도 한잔하고 가자는 재촉에 마지못해 따라가다 금새 친숙한 단골로 전락한 그 공단 슈퍼가 사뭇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하늘이 흐리멍텅하면 오늘 막걸리 한사발 먹고 가자고 작업하면서 병역특례병과 조장에게 신신당부하며, 그 시간을 기다렸던 순간.... 그 공간에서만큼은 조장과 반장은 친구요 형님이라 부르며 서로가 공장 직장 뒷다마 까면서 마셨던 술병들.... 이런 것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서로가 노동을 그냥 일상적 삶으로서 인정하면서 살아갔던 그 구리빛 친구와 동생과 형님이 있던 그 공간이 오늘 따라 마냥 가보고 싶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장정들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면 옆 공장에서 전자부품 조립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이 혹시 술 주정 부리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며 공단 슈퍼에서 사갔을 컵 라면과 찐계란들을 사던 어여쁜 여성노동자들이 생각난다. 그러면 어김없이 주인 아주머니... 소리좀 낮추고 술먹으라고 호통을 치던 그 불벼락 같은 소리가 듣고 싶다.

저녁 철야 작업을 하고 들리면 단골손님이니 특별히 계란 두개를 풀었다면 어여 먹고 잠자러 가라고 재촉하던 그 아주머니는 잘 계실런지... 늘 몇푼 안되는 돈을 갖고 이렇게 술마시면 언제 집사고 이 노동자 생활 벗어나냐고 말하던 그 아주머니는.... 돈을 벌지만 그래도 인심이 후하여 자주 갔던 것 같다. 늘 회식날이면 들려서 인사차 찐계란에 햄쪼가리 놓고 가뿐하게 종이컵에 소주를 붙고 속으로 털어버렸던 그때... 아주머니 회식인데 뭐 요런 곳에 오냐며.... 목구녕 때좀 빼러가야지.... 하시며 넌지시 웃었던 미소가 그리워 지는 날이다.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정이 넘치고,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기운이 넘치던 그 20대가 오늘 새삼 그리워 진다. 30대를 맞이하여 계획없이 시간을 흘려보냈고, 무엇하나 목표없이 살아왔던 그 무심한 시간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지금도 계속될 그 공단 생활은 얼마나 낳아졌는지... 프레기반에서 나온 자동차 부품을 용접반으로 밀고와 늘 CO2 용접기와 수동 SPOT 용접기를 번갈아 가며 쇠철판을 이어나가던 기억.... 매일 같이 쓰는 작업일지에 일일 작업량이 못미칠때 직장에게 들어야 할 호통이 왜 이리도 두려웠는지.... 쉬는 시간에 피우는 담배 한 개피에 그냥 너털 웃음 털어내던 그 때의 기억.... 양주 덕계리 섬유공장에서 섬유를 염색하였을 때 보다는 그나마 낳았던 기억들이다. 겨울 추위와 밀려오는 잠에 염색할 섬유를 이음하기 위해 쳤던 오바로크에 손이 찔리는가 하면.... 염색 도료를 잘못 섞어 염색이 잘못되어나와 식은 땀 흘렸을때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도 용접은 그럭저럭 견딜만한 일이였다. 힘이 들기보다는 요령을 터득하면 반복되는 단순작업이 손쉽게 되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도 공장슈퍼가 없었고, 기숙사 생황을 하였어야 해서 불편하였는데.... 남동공단에서는 기숙사 생활도 아니고 그냥 자취 기숙을 하면서 살았던 그 시간이 있어서 그마나 잠자러 갔다 오는 것이지만 잠자러 가는 공간의 시간만큼은 내 자유시간이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왜 오래 있지 못하고 뛰쳐 나왔는지... 후회가 심하지만.... 그 곳에서의 삶은 그나마 내가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기폭제가 아니었나 스스로 위안 삼아 본다.

언젠가는 다시 가야 할 곳인 그곳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인가 목표를 갖고 갈 수 있도록 천천히 준비나 해봐야 겠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공장 슈퍼는 건재하겠지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 때 먹던 라면과 찐계란 맛 이 곳에 나와서는 맛보지 못하고 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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