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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번 잊혀질 이름....

  • 등록일
    2005/06/18 22:14
  • 수정일
    2005/06/18 22:14

노동열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명지대 강경대 열사처럼 동상 비석이 될 열사의 이름을 되새겨 본다.

 

근래의 열사들이 나왔지만 이내 우리가 열사를 마지막 보낸 고 박창수 열사 이후 노동열사가 나와도 그 이름은 열사력에 표기될 뿐... 이에 상응하는 우리의 투쟁은 큰 파장과 그 열사의 삶의 발자취를 글자 몇귀로 흘려보내거나 잊고 만다. 과거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망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일상을 버티는 힘으로 믿고 살아간다.

 

마석 모란공원을 가보면 낮설은 이름들.... 그리고 책에서 보던 분들의 비석을 읽으면서 그 열사의 삶 그리고 그 현장에서 쓰려졌을 그 열사의 삶을 역추적 해본다. 그러나 이도 시간이 없어 마석 모란공원을 가보지 않은지가 꽤 되어 새롭게 들어온 열사들의 이름을 가늠할 수 없다.

 

이 만큼 우리는 열사정국의 국민대회를 했던 기억이 10년하고도 4년을 흘러보내고... 이제는 그 발자취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때 시청진격투쟁으로 시청을 가득메웠던 곳엔 이명박이 잔디밭을 만들어 관변단체 집회장으로 전락시켰고, 더 이상 그 땅을 밟기 힘들 상황이다. 집회신고를 해보지만 개정집시법으로 인하여 이도 큰 대회가 아니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배달호, 김주익, 박일수 열사 그리고 이어져 나온 몇명의 열사들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그 열사의 죽음에 애타하며, 투쟁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야기도 시간이 지나면 뭍혀진다. 그래서 마냥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다. 책꽃이에 꽃힌 배달호 열사를 추모하는 호루라기라는 시집이 마냥 외롭고 쓸쓸하게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열사의 죽음으로 죄인이 되기도 해보지만.... 그 죄의식은 시간의 흐름에 뭍혀진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또한번 반성과 잊혀진이라는 그 시간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언젠가 명지대에서 술먹기에 간 적이 있다. 강경대를 그가 죽은 공간에 세워진 동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명동성을 갈때면 그 뜨겁던 유서대필 사건으로 얼룩진 김기혁열사를 떠올리고, 을지로를 갈때면 토끼몰이 진압으로 죽어간 김귀정 열사를 떠올리고, 전남대에 가면 강경대 열사의 죽음을 규탄하며 죽어간 박승희열사를 떠올리고, 서울대 캠퍼스에 가면 흉상이된 열사를 되새겨 보며... 각 거리를 지나면서 그 집회와 시위로 죽어간 무수한 열사...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동지들의 뜨거운 눈물로 보낸 열사를 본다. 인천에 있을때는 경동산업에서 사측의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다. 분신하여 죽음을 맞이한 두분의 열사를 본다. 이 처럼 열사력에 수놓은 많은 열사들.... 그 죽음에 우리는 쉽게 떠나보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시간의 지남은 우리를 나약하게 만들어서인지.... 90년대 활동가를 만드는데... 투쟁하는데 게을리 하였는지... 그 힘을 발휘하기엔 너무나 나약하기 그지 없다.

 

난 슬퍼할 자격도 없기에... 그냥 그 자본가 정권을 죽음으로 내몰린 그 현실을 시간을 기억해 둘련다. 그리고 달력에 또 뺴곡히 써본다. 열사력이 있다면 그 열사력에 또한분의 노동자가 노동해방열사로 기록되는 것이 못내 서운하지만.... 그 기억을 잊혀먹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렇게 보낼때... 때로는 날씨가 궂으면 열사가 울지나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너무 조용하다.

 

이 투쟁이 전국을 아니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기엔.... 우린 너무 나약해졌다. 그냥 본다. 어찌 노동자의 죽음이 하찮겠는가? 그러나 보라 우리 현실을.... 노동운동이 세상을 바꾸는 운동으로 그 이름이 퇴색해져 가고 있는 현실을.... 이 땅의 주인이면서도 주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개같은 자본가 세상에서 우리는 힘이 없으면 이렇게 이렇게 슬퍼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힘도 발산하지 못하는 나약한 현실이다.

 

그래서 청소년 축구를 위해 모인다는 그 붉은악마의 열기... 그 도가니를 보며 우리는 왜 저렇게 모였으면서도 이제는 그 어디에서 그런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본다.

 

노동운동이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게 된 것도 큰 작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린 또 나약함이라는 비겁을 무기삼아 그렇게 시간의 흐름으로 떠나는 이에게.... 잘가오 그대라고 말하지 못하고, 부끄럽게 보내겠지.... 나 또한 무감각하다. 그러나 서럽지는 않다. 언젠가 우리 힘이 되는 그날을 다시금 세우며 이 기억 차곡차곡 쌓아야 하기에.....

그러나 현실 우리 너무 무기력하고 나약함은 반드시 잊지 말아 할 것이다. 부끄러움 보다 잊혀지지 않기 위해 삶으로서 운동이라는 단어를 반추해 본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삶 그 자체로서의 운동이라는 것은 지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냥 생각만 해본다.

 

우리 경기지역 행운레미콘 노동자들 또한 연대동지들의 손길을 내밀지만 전국적 사안이 아니기에... 아니면 이러한 사건이 벌어져야 연대의 손이 내밀려질려나.... 전국에 투쟁을 하며 연대투쟁을 간곡히 기다리는 동지들의 모습 또한 떠올린다.... 장기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특수고용직노동자라는 이유로 때론 혼자 때론 집단으로 힘찬 투쟁을 전개한다. 고작 한번 연대를 가도 고마워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연대투쟁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그러나 우리 너무나 미약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너무 미약하다... 말은 무수한데.... 운집되는 군중은 우리 얼마더냐.... 그 4-5만의 대중들은 다 어디로 살아졌나.... 한국이 싫어 해외로 다 떠났냐...... 아니 우리 운동이 그들을 떠나보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던가..... 소리 없는 외침이라도 불러보고 싶다. 그 떠남에 우리 무엇하나 했던가.... 푸념만 해본다.

 

또 잊혀지겠지.... 열사여 영면하소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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