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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힌봉] 연탄불 사랑

  • 등록일
    2019/10/08 08:29
  • 수정일
    2019/10/08 08:29

참 오랜만에 연탄가게를 본다

시골이라지만 집집마다 기름보일러 윙윙 돌아가고
스위치 하나면 방에 앉아 온도 조절할 수 있는데
아직도 연탄난방을 하는 집이 있긴 있나보다
연탄은, 아랫연탄 윗연탄이 서로 물려 뜨겁게 타오를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가난한 사랑의 또다른 이름
아랫연탄 다 타면 윗연탄은 또 아래로 내려가
위에 얹힌 새 연탄에게 불길 전하고는
마침내 흰 재가 되어 얼음길을 덮는 꿈의 순례자
추운 오늘은, 뜨끈뜨끈 연탄불 사랑으로
가난을 녹일 그 집 아랫목에 앉아
연탄불로 끓여낸 뜨거운 라면 한 그릇 얻어먹고 싶다
젓가락 부딪치며 함께 먹는 그 사랑의 마음을
스위치만 내리면 냉방이 되는 세상에다 부려놓고 싶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쉽게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는
기름보일러를 몸 속에 내장하게 되었다
수틀리면 언제라도 스위치를 내리고
보일러 온도 떨구듯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게 되었다
한파 몰아치는 오늘은 내 몸 속에 연탄난방을,
서로 윗연탄 되려고 음모 꾸미지 않는
저 검은 꿈의 가난한 사랑을 뜨겁게 지피고 싶다
사랑을 순례하느라 자기를 다 태워 버려도
또 뜨겁게 그 꿈의 불길 잇는 연탄의 몸 구멍
우리 핏줄 같은 몸 구멍이 피워 올리는 불꽃에
뜨거운 국밥 끓여 그대와 나눠 먹고 싶다

---시집 『악기점』(세계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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