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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유리] 부질 없는 시

  • 등록일
    2004/08/30 02:12
  • 수정일
    2004/08/30 02:12

- 배달호 노동자의 죽음에 부쳐, 벗에게

 

벗이여,

내가 시 한편을 쓴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결코 아니지만

 

벗이여,

내가 시 한편을 쓴다고

죽은 그대가 다시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기름때에 절은 작업복을 입고 퇴근하는 그대들에게

일등석의 자리가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만



벗이여,

노동자라 말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넘쳐나고

위에서 아래를 측은해 하는

눈높이가 다른 부끄러운 시를 민중시라 부른다지만

 

세상의 바닥에 닿아보지 못한 절망을

모르는 자는 감히 노동자라 말하지마라

 

벗이여,

허리 펴고 고개를 돌린 잠시의 휴식시간

어느새 하늘에 종달새 지저귀고

기계들의 소음도 잠든 퇴근시간에

그대들의 손과 발

피곤한 몸을 누일 집으로 가는 퇴근 길

등짝을 후려치던 겨울도 꽃샘바람도 가고

꽃이 피는구나

세상이 다 환하구나

 

하여 다시 벗이여,

내가 이 서툰 시 한편을 쓴다고

죽은 그대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떠났던 그 길로 하나 들 꽃들이 피는데

만년설도 수 억년의 거대한 빙산도 서서히 녹아

덩어리째 없어진다지 않는가

 

 

정유리 - 1965년생 경암 삼량진 생. 1999년 <시와 생명>에 거미줄 외 7편 발표. 밀양문학, 경남민족문학작가,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이다.

 

                                                             배달호 노동열사 추모시집 "호루라기"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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