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자살 공화국...

  • 등록일
    2004/09/18 15:33
  • 수정일
    2004/09/18 15:33

오늘 새벽 5시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언론을 통해 목도할 수 있었다. 일개 국민과 가족의 죽음에는 분량이 별로 되지 않는 기사를 써내려 가거나 미친년 취급하는 언론이, 재벌가의 죽음에는 특종기사를 써내려가기 위해서 언론 홈페이지 탑기사로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계층을 막론하고 죽음의 서곡은 울려펴지고 있다.
신용불량, 성적비관 아들자살에 아버지도 자살... 등 자살의 형태가 날이가면 갈수록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자살의 서곡만 지켜보고 있다.


신용불량의 문제는 비단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개인사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이는 구조적 문제이며, 신용불량은 구직과 연결된 국민이 살아갈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기에 일어나는 현상과 무관치 않다.



이 죽음의 행진은 언제까지 될 것인가?
죽음이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너무많이 일상언론에 비춰지고 있다. 이제 죽음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를 읽어내려가면 무덤덤해진다. 왜 죽었을까? 라는 물음전에.... 이 세상을 등질려고 수만가지 고민을 했을 그들의 급박함만을 상상해 본다.

 

과거 기아, 질병,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러나 현대화가 되면 질병과 기아로 인한 사망률은 과거에 비해 현격히 낮아졌지만 아직도 제3세계는 질병과 기아의 고통에 허덕이고 있지만, 과거보다는 낮아진 상태이다.

 

도시화가 낳은 또다른 자화상....
공동체는 도시화속에서 서서히 붕괴되고, 개인의 개별화 파편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로인한 개인의 정신적 균열이 도시화라는 개발논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개인의 공동체속의 나가 아닌 죽지않기위해 살아가는 도구로 전락된지 이미 오래다. 도구를 사용할 능력이 없다면 철저히 개인은 도시사회에서 이탈하거나 도퇴시킨다.

이 삭막한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나의 죽음이 어찌될지.... 막연한 상상만을 해본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