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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엽서

  • 등록일
    2004/09/27 17:06
  • 수정일
    2004/09/27 17:06

중고등학교때의 개인적으로 낭만적 삶을 영위하고자 부던히 노력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을이면 제 자신에게 엽서를 쓰든가 아니면 친한 친구들에게 엽서한장을 사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들을 주고 받던 기억이 납니다.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된 지금 저는 낭만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제는 매료되지는 않지만 그당시 사춘기적 열망을 낭만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면 저의 개인적 안위를 불태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을 연거푸 짖게하지만 그 당시 저의 인식과 사고는 오로지 저 개인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거치는 과정이라 저는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알퐁스 토테의 별에서 목동이 스테파네트를 흠모하면서 하던 이야기-내 나이 20세이기에...처럼 저도 그때의 나이에 저의 사고는 오로지 출세와 부귀영화에만 눈이 멀었습니다. 지금은 그리 관심이 없지만 그때의 심정은 이 세상의 가치는 부귀영화와 개인적 안위 이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 또한 그렇게 학교생활때 폭넓게 사귀지 못하였습니다.
  동내 죽마고우 이외에는 친구라곤 대학때 몇명이외에는 저에게 벗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집에가다 예쁜 엽서한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과거의 슬라이드 필림들... 아직도 그때의 사고자 남아있
  음에 저는 엽서를 두장정도 사들었습니다. 무엇을 할까? 그러나 그때의 심
  정과는 다르게 저는 엽서를 보면서 친구들 그리고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들이 희비를 교차하더군요.
  그러나 그때처럼 엽서는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회생활에 찌들데로  물
  든 저에게 낭만이라는 것 조차 이제는 사치이게 때문입니다.
 
  가을엽서...
  그건 아마도 가진자들의 풍요로운 상징이 아닐까요.
  오늘 집에서 사무실로 오는데 서울역 노숙자들이 서울역 지하도에 일 렬로
  누워 자는 풍경을 보면서 그들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희망은  존
  재할까? 아니면 좌절만이 존재할까라는 고민이 되더구요.
  저는 늘 서울역 지하도에서 늘 노숙자들의 모습들을 봅니다. 술에  찌들어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포기한이...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있는 노숙자  가
  족 저는 그들을 보면서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문을 해 보았습니
  다.
지금 저는 그들의 처지와 다르니까요. 저도 그들일수 있으니까요.
 

가을엽서...
전 만약 신이 있다면 쓰고 싶습니다.
왜 가난을 만들었는지, 왜 행복과 불행을 만들었는지,... 왜 인간을  창조하며 평등을 이땅에 심어 놓지 못했는지.,.. 등의 엽서를 요...


그러나 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 정의와 평등은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도 땅에  떨어진지 이미 오래전... 신은 자본가들인 것 같습니다.
 
노숙자들에게 신은 아마도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낭만과 서정은 죽었습니다.
다만 치열한 생존만이 판치는 이 지구.....
아프칸의 난민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신은 그들을 보지 않고 있습니다.
신은 정권이 만들어낸 피조물입니다. 인간을 위해 굴림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권모술수.....
 
가을 그래서 하늘이 이렇게 서럽게 다가옵니다, 겨울이오면 그들은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과 술의 열기로 삶을 연명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가을엽서를 보면서 저를 타박해 봅니다.
배부른 저의 얄팍함을 비웃으면서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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