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강연호] 신발의 꿈

  • 등록일
    2004/09/26 13:53
  • 수정일
    2004/09/26 13:53

* 이 글은 처절한기타맨님의 [그저 한없이 걸음 걸으세요]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치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헤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밝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정적인 밥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