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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어머니, 나의 어머니

  • 등록일
    2004/09/26 16:24
  • 수정일
    2004/09/26 16:24

* 이 글은 알엠님의 [기독교적 여성주의 세미나 발제문]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아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다.

"뭐 좀 먹었냐?"

어머니이시다.

"예, 곧 먹을 거에요. 에미가 아침에 죽 쑤어놓고 간 게 있어서요."

"먹을 만해?"

"예, 걱정 마세요."

"내가 가서 뭘 좀 만들어줄까?"

"아니에요. 됐어요."

"네 건강 네가 알아서 잘 쳥겨.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있니, 자주 움직일 수가 있니."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작년 초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신 후에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하시면서 아직도 자식 걱정을 놓지 않으신다. 맞벌이하는 자식 내외가 직장 일 말고도 다른 일로 늘 바쁘게 종종걸음을 하는 걸 아시는 지라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반찬을 만들어 주시고 김치도 담가다 주시면서도 늘 더 어떻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신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이 대부분 다 그러시듯 우리 어머니도 늘 자식들에게 무얼 어떻게 더 해주지 못해 걱정을 하신다. 그래서 늘 받기만 하고 갚아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을 가슴에 품고 산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때문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어머니의 평범한 소망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점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소망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사람과 만나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가족들 건강하고, 남에게 욕먹을 짓 하지 않고, 험한 세상 만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지 말고 애들 무럭무럭 잘 크고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 평범한 생활과 소박한 행복, 그런 것을 바라섰다.

 

일본 사람들 밑에서 빼앗기고 짓눌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보고, 결혼하자마자 살벌한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놓고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으며, 전후의 폐허와 가난 속에서 자식을 키우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바라는 평범한 행복은 평화롭고 단란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 모든 기대를 저버렸다. 결혼 샐활은 건강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고, 며느리는 갓난아이 둘을 시어미니에게 맡긴 채 세상으로 가벼렸다. 자식은 험한 세상을 만나 험하게 그 길을 헤쳐 나간다고 여기저기 쫓겨 다니고 있었고, 어린 남매는 어머니가 키우셔야 했다. 하나는 등에업고 하나는 팔에 안고 달래는데 하나가 울면 다른 한 녀석도 따라 울었다.

 

그런 어린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는 기어코 감옥으로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험한 세상 만나지 말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험한 일 겪지 말고 살기를 바라던 어머니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한순간에 고아같이 되어버린 손자들을 키우며 어머니는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오시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니, 교육 운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마다 분명한 자기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안들이라서 주위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우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부자지간의 의를 끊겠다고 화를 내시고 친척들이나 성당분들, 동네 사람들 까지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던 당시에 어머니 혼자 감당한 눈물과 아픔이 얼마나 크셨을까.

 

시집 와서는 앞 못 보는 시아버지를 수족이 되어 공양하시고, 중풍 든 시어머니 병 수발하느라 온갖 시집살이를 하고, 세끼들 굶기지 않으려고 멸치 장사며 막일이며 마다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는 병든 시동생 죽을 때까지 간호하고 돌보았으며, 고아가 되어버린 조카들 데려다 키우고, 이제 손자들에대 자식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찢어지셨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쓸 쑤가 없다.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큰 잘못을 한 것이다.

 

거기다 출옥한 이후에 해직 생활 10년.... . 어머니가 바라시는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나는 살았다. 아이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고, 식구들은 건강하지 않았으며, 모진 일들을 숱하게 겪고, 남들에게 욕을 얻어먹거나 비난을 받아야 했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칠십을 훌쩍 넘기 채 몸이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는 병이 재발하면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신다. 당신보다는 자식들, 주위 사람들, 가족들 걱정을 하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내가 쓰는 글에 혹시 선한 마음의 바탕이 깔려 있다면 그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쓰는 시가 부드럽고 온유한 데가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성품을 따른 것이다. 내 삶과 글에서 묵묵히 고통의 한가운데를 걸어 그 고통의 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어머니의 삶에서 터득한 것이다. 내가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고 거기서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는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삶에서 깨달아 안 것이다.

 

내가 만일 남을 위해 가진 것을 다 내주고 희생하면서도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소박하게, 순하게 살며 어떤 경우에도 남을 악하게 대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어머니의 소리 없는 가름침에 따른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우리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말로 나를 가츠치신 적이 별로 없다. 삶으로서 그걸 보여주셨을 뿐이다. 어찌 어머니의 삶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 있으랴.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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