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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 등록일
    2004/11/24 11:14
  • 수정일
    2004/11/24 11:14
* 이 글은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공공연맹 임원선거에 나간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과기노조 이성우 위원장님의 공공연맹 사무처장 출마가 노동의 소외와 인간이 평등한 세상 광명의 빛으로 가는 밑걸음이 되기를 바램하며 트랙백을 걸어보았습니다.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화두가 9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내 선진노동자들에게 먹구름과 근심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80년대 노동운동이 역동적이고 민주노조 깃발이 전국 방방곳곳에 힘찬 함성으로 요동칠때가 엊그제 갔더니만 90년대 들어서면서 온갖 수식어가 부쳐가며 노동운동이 위기라 말하며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현장을 등지고 떠나갔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이 참으로 힘겹게 보였지만 남아 있던 사람들의 속은 숯 검둥기가 되도록 따들어갔습니다. 지금은 그 숯이 재로 변해가는 시기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잊은 채 말입니다. 박기평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 일 다 사람이 생각하고 뭉쳐서 만들어가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저버리기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너무 많은 사람이 꿈꾸고 있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붉은악마의 말은 그러나 허상입니다. 꿈은 실천하는 자의 몫입니다. 우리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이많큼 조건을 만들어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역경과 감동이 있었습니까? 그 감동 잊지말아야죠... 그리고 그 감동과 역정,,, 희열 등등 수 많은 동지애들은 우리는 머리보다 몸으로 느껴오지 않았습니까? 경험이 누추한 저에게도 이 수많은 기억들이 수십개쯤 되는데, 구사대 폭력과 백골판 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동해방을 위해 쉼없이 달려오신 분들이야 오죽 많겠습니까?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말의 의미를 우린 곱씹어봐야 합니다. 대공장연대 깃발 들고 힘차게 전진하자!라는 노래가 있듯이, 작은 단위들은 대공장연대를 통해 스스로의 미약한 노조의 힘을 키워나갔고, 대공장은 큰 파업의 시기 이 작은단위의 중소영세사업장의 공동파업투쟁으로 대공장투쟁을 홀로 지켜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이 선진활동가였던 시기... 비록 지금 민주노총 70만 육박하는 노동조합원 수보다는 적은 수였지만 전체노동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교옥받고 전국의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던 시기 수련회가 있던 시기... 모든 조합원들이 활동가요 노동현장의 주체였던 역동적 시기입니다. 그리고 전노협의 발전을 위한 전노대의 출범과 다음해 민주노총의 출범.... 짧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우리내 노동자가 이렇게 성큼 자신이 조직을 세울 수 있던 저력을 보여준 시기.... 타협보다는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였고, 노동악법을 어기면서 철폐하던 저력을 과시하던 시기였습니다. 경험에 비해 우린 너무많은 것들을 일찍 쟁취해서 그런지 위기니 침체기니 하는 것들이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장을 둘러본다면 위기이니 침체이니 하는 것은 배부른 고민에 불과합니다. 한사람의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와 노동해방의 깃발을 휘날리며, 굽힘없이 투쟁하는 것은 희망입니다. 다른 분들은 100사람의 한걸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다수를 위한 걸음이 필요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의견에 뭍쳐 빛을 바라지 못한 소수의 의견 또한 중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보며 행동통일의 원칙이라는 말속에 다수의견에 대하여 결정된 사항은 반듯이 지켜야 하고 행동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소수에 대한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창구와 귀를 열어두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내 노동자들은 초기 어느 입장에 대해 가/부를 결정하기 보다 토론과 지난한 논쟁을 거쳐 사안사안 하나하나를 즉시 결정하기보다는 시일내 여러의견을 수렴하고 진지한 고민을 통해 사업을 집행하였던 시기가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의 기풍이 지금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산별연맹, 산별노조를 건설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우리내 힘들다고 하지만 돌아보면 계승할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 평가뒤에서 우리가 제대로 실천만 한다면 위기니 침체니 하는 말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전 냉철한 판단을 하는 사람보다 따스한 감동을 느끼고 그 감동을 동지들과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더욱더 좋아합니다.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에겐 이성과 감성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기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냉철한 이성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냉철한 이성은 때론 그 주관적 실제가 객관적 실제로 착각하는 무오류를 범합니다. 냉철함은 무수한 이론 속에 자연 파생적인 정파운동을 통한 분파형성을 통한 운동발전의 과정을 저해하는 요소로 파생합니다. 조직내 분파와 다양한 의견그룹이 있다는 것은 그 조직의 건강성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 건강성의 균열은 냉철함이라는 이성이 갖는 위험성을 낳습니다. 그렇다고 감성에만 치우쳐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파운동의 피폐로 현 운동이 종파운동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성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이길래 냉철해야 하는가?에 대한 판단을 가져봅니다. 우리내 운동세력들은 다들 냉철한 이성을 지닌분들로 각 정파별로 모여있습니다. 그러나 이 냉철한 이성에서 포용이나 합의 도출이 어려운 상황이 이 정파운동을 분파운동으로 치닫게 하지 못하고 종파운동으로 치닫게 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늘 늘어납니다. 일치단결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하여 함께 공동투쟁 전선이 구추되지 못하는 현실의 안타까움이 그러합니다. 다양한 이론과 사상은 그 사상만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나의 입장은 있으되 나와 다른 입장의 말에 귀를 기울일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내도 나보다는 너를 인정해주는데 인색합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선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 이러한 논의 및 토론구조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전체 의견을 포용할 수 있다는 것과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고 논쟁과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운동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90년대 초반 이후 사회구성체논쟁이 치닫고 더이상 토론과 논쟁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고민거리들이 사장되어지고 이론이라는 것이 여과없이 대중들에게 퍼저나갔습니다. 이론이 많다는 것또한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대한 유연성이 없다면 그 이론은 죽은 이론이며, 그 이론은 책속에서 공상적 이념을 꿈꾸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내 이전 다소 부족했지만 그래도 다양하게 벌였던 사업들이 노동현장 일상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조직이 발전되었지만 조직원(평조합원)들이 연맹과 함께 할 사업이 없습니다. 연맹은 지역본부나 시지구협 노조전임자 또는 간부를 교육하는데도 버거워 하거나 연맹의 사업은 단위노조 상집들의 수련회 공간으로 전락되어 진지 이미 오래입니다. 연맹이 진행하거나 중앙이 진행하는 사업에 참여하기엔 평조합원들에 대한 문은 너무나 좁습니다. 이러다 보니 노조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하는 사람들이 무방치 속에서 서서히 소심한 조합원이나 관심의 눈초리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연맹이 거대해져서 어쩔 수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정작 보십시요. 민주노총이나 연맹이 왜 모든사업을 직접 관장하여야 합니까? 다양한 노동운동 단체들과 상호협의하며 평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은 지구협이나 본부와 공조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특히 지역본부는 지역노동단체들에 대한 지원과 지지를 통해 지역운동을 함께 모색하여야 합니다. 투쟁을 위한 연대가 아닌 서로가 발전하기 위한 고민 그리고 계획이 이젠 본격적으로 수립되어야 합니다. 하종강 선생같은 분이 전국을 혼자 노동교육을 위해 돌아다니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물론 하소장의 경우 강의를 잘하고 노동자에 대한 시각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기에 많은 조합에서 듣고 싶어서 그럴겁니다. 강연도 귀에 속속 들어오게 잘하시구... 그런데 문제는 왜 제2의 하소장 같은 분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그리고 왜 연구단체들이 많이 형성되지 못할까요. 그 만큼 민주노총이나 연맹들이 자신의 활동에 대해선 많은 부분을 투자하지만 정작 전문단체나 노동운동을 진지하게 성찰하는 노동단체에겐 홀대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이 이렇게 굳건한 민주노조 깃발을 휘날리 수 있는 것은 그 곁에 민주노조운동을 염원하고 노동해방을 위해 매진하는 노동단체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민주노총이나 연맹은 소통과 연대를 넘어 발굴과 모색의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여야 합니다. 조합원과 호흡하지 않으면서 소통과 연대만을 호소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함께 호흡하며 긴호흡 강한걸음을 딛을 수 있는 노동운동 10년에 대한 추상적 상이라도 이제 제시되어야 합니다. 조합원은 동력이자 민주노총 아니 민주노조 운동의 자랑입니다. 그들과 함꼐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만 노동운동의 대중적 확장 및 소통과 연대는 이루어진다 생각합니다. 이성우 위원장님이 출마하는 공공연맹 사무처장 자리에 당선이 되시면... 투쟁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공연맹의 기간 평가와 향후 비전 그리고 조합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및 여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주시기를 바라며... 횡수를 마칠까 합니다. P.S 위기다. 어렵다. 침체다 말하지만 우리내 과거부터 현재까지 걸어온 길은 결코 녹녹치 않으며 걸어온 길 평탄치만 않았습니다. 지금도 투쟁을 하는 노동형제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입장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무처장님이 될거라 확신합니다. 투쟁의 길에 늘 건승하시고 선거기간 몸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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