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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15
    [시/도종환] 흔들리며 피는 꽃
    간장 오타맨...
  2. 2005/03/15
    [시/도종환] 그대여 절망이라 말하지 말자
    간장 오타맨...
  3. 2005/03/14
    [시/신경림] 갈대
    간장 오타맨...
  4. 2005/03/14
    정세전망을 보면서 드는 현상들...
    간장 오타맨...
  5. 2005/03/13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갔다왔다.
    간장 오타맨...

[시/문태준] 맨발

  • 등록일
    2005/03/21 10:28
  • 수정일
    2005/03/21 10:28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 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로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시집 <맨발>(창비.200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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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지구의 일부이다.

  • 등록일
    2005/03/21 00:57
  • 수정일
    2005/03/21 00:57
* 이 글은 개굴님의 [독도는 바다제비와 괭이갈매기의 것이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고생대/중생대/신생대 등 지구의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독도는 지구의 일부분이다. 누구의 것이라 볼 수 없다. 다만 지금 누가 점유를 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화두이다.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사회로서 가능하지 않는 사회... 바다갈매기와 그외 무수한 자연 동식물이 어우러진 독도.... 이 공간은 지구라는 환경이 지금 살아 있음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대목이다. 현존하는 생물체들의 것이기 보다는 누구의 것이기 보다는 머물다 가는 곳에 불과하다. 인간은 힘을 바탕으로 국경이라는 것을 긋어나가면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면서 힘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초기적 형태에서는 일국에서의 정치적 사회적 조건에 의해 일국적 상황에 맞는 혁명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혁명이 전지구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국경이라는 힘이 제국이 선으로 명명한 국경이라는 틀을 하나둘 해체해 나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이러한 의미는 국가적 이익과 국가적 영역이라는 틀에서 다들 인식을 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한... 붉은 악마의 필승 코리아... 축구를 열광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편을 가르고 경기를 관람하는 문화가... 내가 속한 나라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라 생각이 사글어 들지 않는한... 영원히 지속될 문제이다. 동식물의 보고... 그러나 변증법을 이야기한 다면 아마 그곳이 영구적으로 지금 현존하는 동식물의 터전일까? 아니다. 지구의 일부분이며... 언젠가 이 곳 또한 시간이라는 흐름속에 그 형태를 달리 할 것이다. 지금 독도를 둘러싼 쟁점은 한일 영유권이라는 쟁점으로 치닫고 있는데... 독도가 갖고 있는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기 바란다. 독도를 한일어업협정에서 배타수역 영역 결정에 있어 한일이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지점이다. 한국정부는 독도라는 영역을 일본에게 내어줄 경우의 문제.... 배타수역에 있어서 한일어협 협정에서 상당한 어획량(북대서양 난류가 흐르는 곳... 쿠우슈우 난류가 지나가는 관통로)의 보고와 이후 미래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자원의 경쟁에 한일이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쟁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렇듯 미래 자원에 대한 동해를 둘러싼 쟁점의 한축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를 마치 한일의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으며, 한일 분쟁으로서 민족감정을 자극한다. 누구의 것인가?를 떠나 합당한 논리를 한일 감정으로서 이 문제를 호도하면서 쟁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그럴 것이다. 독도를 일본에 내어줄수는 없다. 그러나 내어준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를 보면 그렇지 않다. 국제 관계법상 점유권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 자신의 점령지를 과거 통상관례에 따라 내어준 적이 있던가? 제국들이 식민지 지배전략을 하여 과거 민족분할 정책으로 독립국가를 형성하며 소수 지배민족에게 지배권을 분할 한 이후 없는 사례이다. 왜 궂이 이러한 쟁점을 만드는 것인가? 그렇다고 이 문제로 인해 독도는 일본으로 넘어갈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 점유권을 주장하기 전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전국운영에 있어 핵심이슈를 흐르거나 다른 한편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며 정치경제적 문제점들을 희석화 하기 위해 벌이는 농간들이 아니던가? 특히 선거철만 되면 붉어지는 북한한계선(NLL) 문제만 보더라도 적의 적은 동지로 된 적이 많이 빈번히 일어나던 일 아닌가? 독도 문제는 일본에 비해 한국인들이 반일감정을 자극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정치적 이용물로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안타깝다. 이는 한일 정치권이 서로간의 경쟁을 하는 것 처럼 비추면서 서로에 있어서 자국내 이익을 그리고 보수적 정치권의 서로의 정치적 힘균형성을 받기 위한 제스쳐에 지나지 않은지 생각된다. 늘 붉어진 문제.. 그리고 동해니 일본해니 하는 문제들.... 과연 이것이 우리내 민중에게 있어 피부로서 얼마나 다가오는가? 내가 한국에 속한 국민이라서 이것을 주장하여야 한다면 난 아예 한국인임을 포기하겠다. 그냥 지구인으로 남고 싶다. 지구의 일부인 그곳에 머물다 가고 싶다. 제발 정치적 이용거리로 국민을 더이상 쟁점이라 하면서 더이상 맹목적 반한 감정으로 치닫게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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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아이들

  • 등록일
    2005/03/20 09:57
  • 수정일
    2005/03/20 09:57
노는 것에 온통 정신이 팔린 아이들.... 아이들에게 혼내는 것이 미안하지만 간혹 아이들 때문에 짜증나거나 화가 가슴에서 머리 끝까지 날때가 많이 있다. 사랑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것... 그래 나도 사람이기에 그러려니 한다. 어제는 아이들 때문에 혼쭐이 났다. 귀가 시간도 잊어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이리저리 쏘다니다. 동네 사방을 이리저리 찾아다녔다. 노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을 조금만 해주면 좋으련만... 십년 감수하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녀봐도 아이들은 도통 찾을 길 없다. 내가 그런데 담당을 하고 계신 선생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이들을 만약 찾기 못하였다면 선생님은 아마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리라... 그나마 아이들이 이전에 동네 근처 농협 주변에서 놀던 생각이 나서 그 곳으로 가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요를 돌리며 민규와 동근이가 있지 않은가? 아이들을 찾았다는 생각은 잠시뿐 나도 모르게 아이들 목덜미를 잡고 화를 내고 선생님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은 아무런 일이 없다는 것인지 자신의 처신에 대하여 생각을 하지 못해서인지... 서로에게 잘못을 돌리고 집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들어가지 않았았다는 말만 연거풔 하였다. 그러나 난 이런 아이들이 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서성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아이들을 발견한 시간은 저녁 10시 30분 그리고 이전에 다솜공부방에 와서 자전거를 놓고 사라졌다. 왜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 세상이 험난하고 살기가 녹녹치 않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이들이 미워진다.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그런 아이들... 아픔을 간직하고 있고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는 것... 내가 경험하지 못한 무수한 두려움을 지니고 사는 아이들이 그 순간만큼은 미워진다. 아니 아이들이 한 없이 얄밉고 밉상굽게 나에 눈에 비춰졌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인계하고 돌아서는 길.... 선생님의 얼굴에 피어난 수심 꽃을 보고 마음이 아렸다. 사랑으로 늘 다스리고 아이들 하나하나 보이지 않는 시선을 갖고 함께하기란 말로서는 되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열매가 없으면 나눠주지 못함을... 천천히 느낀다. 문득 생각이 든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런 소소한 일상 그리고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연대와 함께 가는 길 속에서 삶으로서 세상을 일구어나가는 것... 내가 바라는 세상을 지향하되 강요를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할 수 있었다. 어제 아이들 사건으로 속이 타들어 간다. 그래도 우리 공부방 선생님은 그래도 어김없이 오늘이나 내일이면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이 나에 눈엔 참 대단한 분으로 비춰진다. 인간이라는 한계를 알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선생님과 얽힌 모진 사랑의 연을 어찌 쉽게 끊을 수 있으랴.... 말보다는 실천과 행동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선생님이야 말로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만큼은 입장의 동일함을 갖고 살아가시는 것은 아닌지.... 누구의 잘잘못을 판단하거나 입장을 내세우기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서로의 장점과 단점을 지적하며 아이가 가진 가장 값진 장점을 그 사람많이 가질 수 있는 특기로 살리는 일... 보통사람들에게는 흔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만 얻는 그런 사랑의 열매 맺기는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있어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데 있어 작지만 크나큰 힘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공부방 선생님과 함께하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게 다가온다. 그래도 동근이와 민규.... 철부지 이지만 큰 사고 없이 잘 자라고 함께하고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늘 미운 짓을 골라하는 아이들이지만 늘 함께하면 가족과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그래도 말썽좀 그만 부려라....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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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종환] 독도

  • 등록일
    2005/03/20 08:34
  • 수정일
    2005/03/20 08:34
우리에게 역사 있기를 기다리며 수백만 년 저리디 저린 외로움 안고 살아온 섬 동도가 서도에 아침 그림자를 뉘이고 서도가 동도에게 저녁 달빛 나누어 주며 그렇게 저희끼리 다독이며 살아온 섬 촛대바위가 폭풍을 견디면 장군바위도 파도를 이기고 벼랑의 풀들이 빗줄기 받아 그 중 거센 것을 안으로 삭여내면 바닷가 바위들 형제처럼 어깨를 겯고 눈보라에 맞서며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서로를 지켜온 섬 땅채송화 해국 술패랭이 이런 꽃의 씨앗처럼 세상 욕심 다 버린 것 외로움이란 외로움 다 이길 수 있는 것들만 폭풍우의 등을 타고 오거나 바다 건너 날아와 꽃 피는 섬 사람 많은 대처에선 볼 수 없게 된지 오래인 녹색 비둘기 한 쌍 몰래 날아와 둥지 틀다 가거나 바다 깊은 곳에서 외로움이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해조류떼가 저희끼리 손끝을 간지르며 모여 사는 곳 그런 걸 아는 사람 몇몇 바다 건너와 물질하며 살거나 백두산 버금가는 가슴으로 용솟음치며 이 나라 역사와 함께 해온 섬 홀로 맨 끝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시린 일인지 고고하게 사는 일이 얼마나 눈물겨운 일인지 알게 하는 섬 아,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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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의 여자, 아니 십이월의 여자

  • 등록일
    2005/03/17 10:52
  • 수정일
    2005/03/17 10:52
* 이 글은 <엄마...>게시판 가기님의 [여성이 되다(뉴스앤조이 기사)] 에 관련된 글입니다.

** 도종환 선생님의 사이트에서 본 글이 알엠님 글과 매치가 되어 옮겨봅니다. 전 되려 사역자이신 분의 글이 이 글과 대치되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되려 부럽게 다가옵니다. 자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러나 그렇지 못한 무수한 여성들.... 가부장이라는 사회 제도라는 틀에서 억매여 있습니다. 제가 느끼지 못하는 것을 말할 수 없음이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지금도 삶을 콘트롤 할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그 삶이 자신의 삶이 아니면 이해는 그만큼 반전된다고 봅니다. 삶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자주가는 도종환 선생님의 이전 글에서 쇠망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는데... 알엠님 글과 매치가 될 것 같아서 훔쳐 놓아 봅니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온 산의 모든 나무가 잎이란 잎 다 떨구고 가진 것 다 잃어 황량해진 십일월 하순 같은 여자. 산뽕나무 잎이랑 두충나무 잎 군데군데 푸른 잎들도 있었는데 그것들마저 어느 날 한 순간에 다 지고 산천은 갑자기 잿빛의 겨울 풍경으로 몸을 바꾸고 말았는데 인생이 그런 잿빛 풍경 같은 여자.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뚝뚝 떨어지고 문바람 스며 들어와 방안도 썰렁하고 자면서도 어깨가 시려 뒤척이는데 그런 냉기 속에서 일생을 산 여자. 십일월의 여자. 아니 십일월에서 십이월로 옮겨가듯 그렇게 살아온 여자. 그 여자는 "육지 것하고 붙어먹은 년"의 딸이었습니다. 새 아버지는 엄마와 딸을 그렇게 욕하면서 모질게 대했습니다. 일곱 살 된 딸이 있는 여자라는 걸 알고 같이 살자고 해 놓고서도 툭하면 그렇게 몰아부쳤습니다. 낳아주신 아버지는 전쟁 중에 군인들을 훈련시키러 온 군인이었습니다. 엄마를 데리고 한동안 살다가 육지로 가버렸습니다. 가서는 영영 소식이 없었습니다. 생부의 얼굴을 모르는 딸은 씨다른 동생을 업어 키웠습니다. 소 부리듯 일을 시켰지만 보리죽 한 그릇도 배불리 먹여주지 않았습니다. 광목치마 한 겹으로 엄동설한을 낫고 내복 한 벌 못 입어보고 나일론 양말 한 번 못 신어본 채 동상으로 손발이 얼어터지곤 했습니다. 새 아버지의 구박을 견디기 어려울 때면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고아원으로 갔습니다. 그러다가 고아원 문 앞에서 붙안고 울다가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친구들은 교복 입고 학교 갈 때 호미 들고 밭으로 갔다가 밤이면 야학당을 다녔습니다. 고단한 몸으로 한밤중까지 숙제하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쥐라는 놈이 문틈으로 튀어 들어오다가 등잔불을 떨어뜨렸고 겁이 난 그녀는 어머니의 매질이 무서워 싸락눈이 내리는 새벽 집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곤 남의 집 식모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풍으로 휠체어에 의지해서 지내야하는 그 집 주인 사장님 병수발을 하고 다른 식구들은 못 알아듣는 사장님의 말을 그녀는 알아듣고 전달해주곤 하였습니다. 병수발 임무를 맡으면서 바깥에서 오시는 손님들에겐 딸 역할을 했고 그 몇 년은 그래도 행복하였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예절과 법도도 배웠고 옷도 좋은 옷으로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마침내 사랑고백을 해오고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미친 듯 아버지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아버지를 꼭 만나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찾아야 자기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고향이 경기도라는 것과 최아무개 중사라는 이름만 가지고 병무청을 찾아가서 거머리처럼 매달렸고 온갖 데를 다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병이 들었습니다. 죽을 병이 들었고 삶을 포기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 어머니를 보고 싶어서 있는 돈 다 털어 제주로 내려가 어머니 집 문 앞까지 갔습니다. 딸을 버린 어머니였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여서 죽어가는 딸을 버리진 않았습니다. 식모살이 하면서 부쳐준 돈으로 어머니는 땅을 사놓으셨습니다. 그 땅 얘기가 나오자 의부는 그녀가 마시려는 약 그릇을 발로 걷어찼습니다. 문짝을 부수고 어머니를 두들겨 팼습니다. 그녀는 또 떠나와야 했습니다. 그래도 딸이라고 양은솥에다 굼벵이를 달여 먹여가며 살려보려고 애쓴 어머니 힘인지, 병상에서 눈물로 기도해준 이름도 모르는 수녀님 덕인지 겨우 목숨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고아 아닌 고아로 자라 근본도 없는 게 어디를 넘보려 하느냐고 첫사랑은 실패로 끝이 났고 아이 둘이 있는 홀아비한테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 시골집에 갔다 오는 길에 옛 애인 집에 들러 취하도록 마시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덧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결혼한 지 채 일 년도 못 되었는데 말입니다. 낳은 지 50일밖에 안 된 딸을 안고 그녀는 통곡했습니다. 자기가 낳은 아이든 아니든 제 자식처럼 키우려고 노점 행상을 하며 손발이 터지도록 일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당한 후 아이들 앞으로 나오게 만든 보험료가 있는 걸 알고 시아버지는 그걸 당장 현금으로 내놓으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서방 잡아먹고 전실 새끼 피까지 빨아먹는 년"이라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살기 등등해져 온갖 욕을 하며 짐승처럼 괴롭히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보험을 시아버지 앞으로 다 인계해주고 딸 하나 데리고 나왔습니다. 일곱 평밖에 안 되는 작은 꽃가게 한쪽에 주방 겸 잠자리를 만들어 거기서 살았습니다. 시아버지는 쌀 두말과 그 여자 앞으로 들어왔던 조의금 빈 봉투 50여 장을 주고 갔습니다. 우는 아이와 함께 며칠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아 정신을 가다듬고 마른 젖을 물렸습니다. 젖은 말라버려 나오지 않았고 둘러보아도 먹을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기운차리라고 돈 얼마를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가게는 점점 기울고 월세는 밀려 거리로 장사를 나왔는데 시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결혼자금으로 얻은 농협 빚 갚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그녀가 처녀 때부터 운영하던 꽃가게가 당신 아들 것이라며 월 20만원씩의 생활비까지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식 둘 있는 아들 장가보내면서 방 하나 얻어주지 않고 결혼 자금으로 얻어 쓴 빚까지 과부가 된 며느리한테 갚으라는 시아버지였습니다. 요구대로 하지 않으면 술을 마시고 와 쌍욕을 해대고 장사를 망쳐놓곤 했습니다. 나중에 시가 친척 한 분이 그녀를 붙잡고 우시며 하는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땅 부자인 그 집에서 맏며느리인 그녀를 제쳐놓고 재산을 분할하는 것에 대한 꺼림칙함 때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댁의 재산권을 포기한다면 여자도 단독으로 호적을 가질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일가를 창립하여 나왔습니다. 남자 복이 없어도 어쩌면 이렇게 없을 수 있는지 혼자 사는 그 이후의 삶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었는데 뱀보다 더 싫은 그 남자를 피하는 길은 재혼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자기를 돕겠다는 남자가 있어 서둘러 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남자 사기꾼이었습니다. 남편의 교통사고로 인한 보상금이 두둑한 것으로 착각했다가 뺑소니 사고였다는 것을 알고는 머리채를 잡아끌고 법원으로 갔습니다. 두세 달만에 끝나고만 결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청혼을 받아주지 않으면 자결하겠다는 목사를 만났지만 그 결혼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도시 생활을 접고 딸아이를 데리고 피반령을 넘어 산골로 내려왔습니다. 거기서 채소밭 일구고 꽃 심어 가꾸고 장애로 누워 있는 이들이나 의탁할 데 없는 사람들 돌보며 살고 있습니다. 골짝골짝 다니며 면사무소에서 수당 받고 하는 수급자 실태조사나 인구조사를 하거나 컴퓨터를 가르치기도 하고 찌개를 끓여들고 독거노인을 찾아다닙니다. 그녀가 이사 와 사는 회북면만 해도 스물 한 개 동네에 영세민이 100명이나 됩니다. 자기보다 더 힘든 인생들이 많아서 그들 때문에 바쁩니다. 모녀가 비둘기 같이 지내다가 딸 정이가 올해 고등학교를 청주시내로 가는 바람에 요즘은 혼자 지냅니다. 외롭지 않느냐고 물으면 외로울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고독은 자기를 성찰하게 했고 고독은 글을 쓰게 했다고 합니다. 고독은 아버지 대신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게 했고 고독은 버려진 아이들, 늙고 병든 노인들을 친구가 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고독은 더 이상 자기가 싸워야 할 적이 아니고 생활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독으로 잿빛이 된 십일월의 야산 같은 이 여자가 원고뭉치를 들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그녀가 있는 동네는 내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터라 맞춤법에 맞지 않는 곳이 많은 그 여자의 글을 읽다가 나는 그 원고를 자주 밀쳐 놓곤 했습니다. 읽고 싶지 않은 날이 많았습니다. 읽다보면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팔자가 기구할까 어쩌면 운명은 이 여자에게 이렇게 혹독한 것일까, 그런 생각에 먹은 것이 잘 안 내려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 여자의 인생 어느 부분을 떼어다 글로 옮겨도 절절하지 않은 구석이 없습니다. 대목 대목이 슬프고 가슴 저립니다. 혼자 딸을 키우며 눈물 흘리는 이야기는 너무 가슴이 아파 원고를 멀찌감치 집어 던져 놓았습니다. 이 여자가 만난 대부분의 남자는 이 여자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제 욕심만 채우기에 급급한 남자들이었습니다. 무책임한 남자들이었습니다. 한 여자의 운명을 무자비하게 짓밟아 놓고 떠나버린 남자들이었습니다. 무책임한 아버지가 그랬고, 난폭한 새 아버지가 그랬으며,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남편이 그랬고, 돈에 눈이 어두운 포악한 시아버지가 그랬습니다. 새로 만난 남자들도 모두 그를 이용하려 들었고 탐욕스럽기만 했습니다. 남자들 참 나쁩니다. 남자들 정말 못됐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걱정 되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이 여자의 딸 정이가 엄마처럼 외할머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에게 당하고만 살아도 안 되고 모든 남자들을 적대시하며 살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하고 따뜻하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 여자는 남자들을 미워하고 욕해도 되지만 그게 딸에게 그대로 전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인격적인 눈으로 대하며 인간적인 배려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살 때 아빠를 만나러 간다고 들떠서 따라나섰다가 무덤 속에 아빠가 계신다고 하자 󰡒엄마 빨리 삼촌들 오라고 해, 아빠 꺼내서 빨리 병원에 가.󰡓그러면서 눈물 범벅이 되어 몸부림치던 아이, 사람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말해 주었더니 공원에서 놀다가 흙을 한 움큼 쥐고 들어와 󰡒엄마 이것도 아빠야?󰡓 하고 묻던 딸아이는 지금 시인이 되고 싶어합니다. 그 아이의 별빛 같은 감수성을 잘 키워주어야 합니다. 그런 시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사람을 따뜻하게 만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엄마는 비록 십일월, 십이월 같아도 딸은 삼월 같이 살도록 해야 합니다. 삭막한 풍경의 끝에서 대나무들은 아직도 푸르게 출렁입니다. 사람도 황량한 사막 같은 인생을 살았어도 그 가슴 한가운데 푸르게 출렁이는 댓잎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여자도 인생의 십이월이 다 가기 전에 꼭 한 사람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남은 생애동안 남자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정말 인간적인 따듯한 정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지막 한 사람을 만나게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걸어갈 수 있는 사람, 먼저 일어나 마당의 눈을 다 치우고 신발에 쌓인 눈도 탁탁 털며 조금 더 자라고 속삭여주는 사람, 부족한 부분도 허물이 될만한 습관도 말없이 덮어주며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 아내의 딸을 제 딸 이상으로 사랑하며 키워주는 사람, 어깨가 넓고 등이 따뜻한 사람, 나누고 베풀 줄 아는 믿음직한 사람을 만나 두 사람의 사랑을 이웃에 나누어 주며 살아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꼭 만나게 되길 바랍니다. 지난 오십 년, 운명의 신은 이 여자에게 너무 가혹했습니다. 이 정도면 갚아야 할 전생의 어떤 업보도 갚았다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이 삶의 모진 고개를 넘어 모녀가 봄이 되어 활짝 꽃피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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